쿡언니의 방구석 극장
양국선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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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거의 매주 영화관에 갔다. 방학이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가기도 했다. 영화광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갔던 것에 가깝다. 그 때 부터 모아둔 수많은 영화 포스터와 티켓을 모아 둔 스크렙북이 아직도 책장에 꽂혀있다. 집에도 DVD와 비디오가 정말 한가득이었다. 안방에 놓인 두꺼운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우리 자매에게 또다른 영화관이었다. 거기서 우리는 세계 곳곳의 애니메이션과 해리포터와 같은 재미난 영화들을 두루 섭렵했다. 부모님 덕분에 보게된 영화들이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영화들이 있다. 그때의 즐겁고 행복했던 감정들이 남아 있다. 그런 나에게 '영화'라는 것은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단어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은 그렇게 영화를 자주 보지는 않는다. 그 대신 계속해서 함께 할 영화를 수집한다. 단순히 말해 '인생 영화'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찾아낸 영화를 반복해서 본다. 특히 나는 '우울'할 때 보는 영화를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데 생각보다 영화가 주는 위로는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즐겨 보는 영화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는 양국선 작가의 '쿡언니의 방구석 극장'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관에서 일하고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작가의 영화 이야기는 영화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삶의 자세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영화와 경험이 함께 어우러져 공감대를 형성하고 스스로의 삶을,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책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은 모두 각기 다른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그 속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와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잘 알고 나에게 좀 더 민감해지는 걸 의미한다. 내 기분과 감정, 의식의 흐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할 줄 알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고 동시에 남의 시선에 더 둔감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30p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웬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않은 이상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무른 마음을 단단하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도 계속해서 연습을 하는 중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내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꿈을 과감히 버리고 다른 노선으로 옮겨가는 그 과정 역시 나다운 꿈이라 생각하고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은 바로 내가 되고, 그것들이 다른 꿈으로 탄생될 수 있음을 믿는다.

238p

책에 담긴 작가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꿈을 찾아가는 입장에서 이런 솔직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많은 위로가 되었다. 미래가 막막하고 두렵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분명 계속되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처럼 무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쉽게 상처받고 쉽게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무겁고 어두운 감정은 비단 마음이 여린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두 울적함이나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감정의 파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 그 감정에 푹 빠졌다가 잘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우리가 감정의 바다에서 조금더 편안하게 머물도록 도와주는 구명조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 게다가 영화를 통해 우리는 말 못할 고민이 있을 때 예상치 못한 해답을 얻을 수도, 마음을 깨끗이 닦아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조언이나 위로를 얻을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좋은 영화를 추천받을 수 있기도 하다. 책을 통해 잊고 있던 영화에 대한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고 취향에 맞는 영화를 알게 되어서 좋았다. 이번 주말에는 꼭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안경> 를 보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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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장면 소설, 향
김엄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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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장면'은 내게 김엄지 작가를 알게 해 준 첫 작품이다. 항상 새로운 작가를 만날 때면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찾아오는데, 어떤 스타일의 작품을 만날지 기대되는 마음과 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 할까 걱정되는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미지의 것은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두근거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문장의 호흡이 짧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R로 시작하는 문장이 계속해서 반복되었기 때문에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문장의 길이가 짧은데도 불구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러 개의 번호로 나눠진 R의 기억이 마구 뒤섞인 채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8개월 전 5미터 아래로 추락한 R은 기억을 잃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도, 상사의 성을 기억하지도 못 한다. 아내와의 기억도 떠오르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다가도 드문드문 단편적인 기억들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생각해보면 당신은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 메시지(13p)를 보낸 번호의 뒷자리가 아내의 5년 전 전화번호 뒷자리라는 사실(29p)이다.

이렇듯 R의 기억을 따라 의식의 흐름대로 펼쳐지는 것 같은 이 소설은 이어지지 못 하고 파편화된 R의 기억들이 뒤얽혀있다. 표리관계를 이루고 있는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R은 그 속을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R은, 모르는 R을 상상해야 했다.

R은 생각보다 더 R을 모르고.

13p

R은 눈을 감고, 감은 눈 안에 자기를 떠올린다.

그는 R과 같은 수많은 R을 상상한다.

그는 그와 아주 똑같은 R을 상상할 수는 없다.

언제나 R은 R에게서 이미 지나쳐 너무나 먼 것이었다.

94p

R은 왠지모르게 불안정해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R의 기억은 정말 R의 기억이 맞는지, R의 착각은 아닌지 계속해서 혼란스럽다. 안개가 가득한 길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R의 심리와 기억들, 조각난 기억들이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R이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R은 삶을 견뎌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R은 견디고 있었다.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뭔 견디고 있는 걸까. 손톱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히터 바람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이 R의 머리칼을 날리고.

26p

R은 지쳐서 누군가 더 믿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왜. R은 지쳤던가?

R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R은 R에게 지쳤다.

매순간 R은 R을 버리지 못한다.

136p

R이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외로움, 복잡함은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는 의사의 말대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든 것은 R의 선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스타일의 소설이지만 김엄지 작가의 독특한 문체가 그냥 좋다. 그냥 그 자체로 음미하게 된다. 계속해서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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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력 높이는 매일 집밥 - 쉽고 빠르게 만드는 약 대신 보약 밥상
음연주 지음 / 길벗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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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전처럼 자주 외식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 코로나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선 밖에서 먹는 횟수를 줄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집에서 직접 해먹는 방법 뿐이다. 모든 배달 음식이 건강에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집밥만큼 건강한 식사는 없다.

사실 누구나 집밥이 건강에 최고라는 것을 알고는 있겠지만, 한정된 재료로 매 끼니를 맛있게 먹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시도 자체를 하지 못 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요리법이 한정적이어서 매번 같은 음식만 반복해서 먹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집에서 만들어 먹는 식사는 어느새 쉽게 질려버리고 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음연주 작가의 '면역력 높이는 매일 집밥'은 매우 유용한 요리서라고 할 수 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의 메인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적은 재료로 다채로운 요리를 할 수 있기도 하다.

요리법도 굉장히 유용했지만 각 식재료를 고르는 법부터 식재료의 특징과 포함된 영양소가 무엇인지, 손질과 보관 방법은 무엇인지까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이름에 걸맞게 면역력이 무엇인지, 왜 높여야 하는지, 어떤 관점들이 존재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면역력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매번 비슷한 종류의 음식을 먹는 것에 지쳐있던 차에 좋은 요리서적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기쁘다. 조금 더 다채롭고 풍성해질 식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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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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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간혹 등장하기도 하는 이들은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존재이다. 

 우리가 그들은 바라보는 시선은 과연 어떨까.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크게 나눠보면 ‘연민’과 ‘불안’, ‘혐오’이다.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에 대한 동정과 연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 곱지 않은 시선. 하지만 그들이 어떤 계기로 어떤 영향으로 이러한 노동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면, 이토록 편협한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의 목차는 13시부터 12시 30분까지 가상의 인물 윤영자씨의 하루를 쪼갠 것으로 구성되어있다. 하루의 시간동안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나가는 여성 노인의 일과를 통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과 위험요소, 사회구조 등을 분석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잠깐동안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폐지 줍는 노인들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 전쟁의 생존자인 현재의 노인들은 수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전쟁부터 외환위기, 그리고 급격한 현대화까지. 책에 따르면 ‘사회 보험에서 제외된 처지’(51p)라고 하니 인생에 굴곡이 많은 세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격동의 세월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 뒷바라지까지 하고 난 뒤 그들은 노인이 되었고 생계를 유지하지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도움을 받고 성장한 자녀들은 나이가 든 부모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생계를 유지하지 어려운 이들은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상황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 국제 정세의 변화 또한 ‘폐지 줍는 노인’을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노인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틈을 타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것이다. 즉,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불완전한)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그리고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92p)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 더이상 그들은 단순 ‘연민’의 대상으로 볼 수 없게 된다. 65세 부터 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결함, 시대적 상황, 소비자와 생산자의 책임 불이행,  재활용품 수입에 관련된 국제적 변수들까지, 그들이 ‘비공식적’ 직업을 얻게 된 것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요소들이 깊숙하게 개입되어있다. 


 나도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택배를 주문했던 것, 팬데믹 상황 이전에도 아무런 고민 없이 주문하던 택배들.. 나 또한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 혼자만 고민하고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현재의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들의 가난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동정의 눈길을 보냈던 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또 일부의 사람들은 그들을 ‘혐오’하는 눈길로 바라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이 처한 위협적 상황들과 사회적 상황, 건강, 심리적 요인 등 다각도에서 가난의 현상을 바라본다면 쉽게 그들을 판단하고 사회적 낙인을 찍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의 눈길을 보내고 함께 고민해 본다면 언젠가는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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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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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온 마음을 다해 믿고 있는 친구와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살고 싶다는 본능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 중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놓인다면?


수잰 레드편의 '한순간에'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여행을 같이 갈 정도로 막역한 사이인 핀의 가족과 나탈리의 가족, 핀의 친구인 모린과 핀의 언니 클로이의 남자친구 벤스는 스키를 타러 가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갑자기 길에 나타난 사슴으로 인해 이들을 태운 자동차는 벼랑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핀은 즉사하고 유령이 되어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본다. 이렇듯 사망한 핀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조난 동안 사람들이 어떻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지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설정이다. 관찰자의 시점이라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전부 꿰뚫어볼 수 없지만 특이하게도 '유령'이라는 특이한 설정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거의 500 페이지에 가까운 긴 장편소설이지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금방 몰입할 수 있는 책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는 순간까지 이야기가 막힘없이 전개되고 사고 이후 사람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슬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대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드는 생각은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이다. 핀의 가족과 나탈리의 가족은 남이지만 가족같이 막역한 사이였지만, 이들이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 놓였을 때 행동하는 방식은 모두 달랐다. 살고 싶다는 생존 욕구와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간절함, 인간으로서의 양심 등 수많은 갈등과 선택의 기로에 놓인 그런 재난의 상황 속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그럼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 위험을 자처하는 행동을 보인 사람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우리는 이런 행동을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등장인물을 비난하지만 그런 상황을 직접 겪지 않은 이상 내가 그런 영웅적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사람의 생존 욕구는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를 위험속으로 내모는 것, 그런 용기는 모두에게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의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양심은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최소한의 인간다움 버리는 사람들에게 '이기적'이라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그런 다짐을 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한순간에'라는 제목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그들이 사고를 당하고 평생을 따라다니는 장애와 고통을 얻게 된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시간이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악함, 용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더불어 한 인간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그 과정이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지 절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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