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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내가 온 마음을 다해 믿고 있는 친구와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살고 싶다는 본능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 중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놓인다면?
수잰 레드편의 '한순간에'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여행을 같이 갈 정도로 막역한 사이인 핀의 가족과 나탈리의 가족, 핀의 친구인 모린과 핀의 언니 클로이의 남자친구 벤스는 스키를 타러 가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갑자기 길에 나타난 사슴으로 인해 이들을 태운 자동차는 벼랑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핀은 즉사하고 유령이 되어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본다. 이렇듯 사망한 핀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조난 동안 사람들이 어떻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지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설정이다. 관찰자의 시점이라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전부 꿰뚫어볼 수 없지만 특이하게도 '유령'이라는 특이한 설정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거의 500 페이지에 가까운 긴 장편소설이지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금방 몰입할 수 있는 책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는 순간까지 이야기가 막힘없이 전개되고 사고 이후 사람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슬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대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드는 생각은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이다. 핀의 가족과 나탈리의 가족은 남이지만 가족같이 막역한 사이였지만, 이들이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 놓였을 때 행동하는 방식은 모두 달랐다. 살고 싶다는 생존 욕구와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간절함, 인간으로서의 양심 등 수많은 갈등과 선택의 기로에 놓인 그런 재난의 상황 속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그럼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 위험을 자처하는 행동을 보인 사람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우리는 이런 행동을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등장인물을 비난하지만 그런 상황을 직접 겪지 않은 이상 내가 그런 영웅적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사람의 생존 욕구는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를 위험속으로 내모는 것, 그런 용기는 모두에게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의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양심은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최소한의 인간다움 버리는 사람들에게 '이기적'이라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그런 다짐을 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한순간에'라는 제목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그들이 사고를 당하고 평생을 따라다니는 장애와 고통을 얻게 된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시간이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악함, 용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더불어 한 인간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그 과정이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지 절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