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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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용 자체는 워낙 방대한 초기 로마사를 다루고 있기에 자세히 다루지는 않고, 이 책에 대해 관심 있으실만한 특징들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우선 이 책은 티투스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를 번역한 것 중 일부분이며, 로마의 건국부터 로마시가 갈리아 인들에게 약탈당하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리비우스 로마사의 1 파트의 경우, 앞의 상당부분은 허구와 신화가 섞여 있으며 신빙성이 상당히 낮다고 봅니다. 상식적으로 로마인들의 선조가 트로이에서 도주해온 아이네이아스라는 주장은 매우 믿기 힘들며, 아이네이아스부터 로물루스까지를 다룬 부분은 완전한 창작/허구일 확률도 높다고 봅니다.


우선 이 책을 쓴 티투스 리비우스라는 인물에 대해 말하자면, 기원전 64년 혹은 59년에 태어나 서기 17년에 사망한 사람입니다. 대략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비슷한 시기를 살다 간 사람이죠. 리비우스는 로마 초기 역사를 다룬 역사가 중에는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명이며, 그가 집필한 <로마사>는 라틴 문학계의 고전 중의 고전으로 대우받습니다. <로마사>는 원래 아우구스투스의 죽음까지 다룬 150권으로 이루어질 계획이었으나, 리비우스가 도중에 사망하면서 142권까지만 작성되었습니다. 그나마도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부분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총 142권의 책들 중 1~10권과 21~45권만이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이 중 제가 읽은 리비우스 로마사 1은 1~5권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만약 리비우스의 로마사 142권이 전부 남아있었다면 오늘날 책 기준으로 923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을거라 하니, 그 많은 저작들이 온전히 남아있지 않은게 아쉽기만 합니다.

번역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중역본인지라 매끄럽지 않을까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생각보다는 잘 읽히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 두께만 봐도 아시겠지만(1권만 해도 두께가 600쪽 가까이 됩니다), 내용이 상당히 많고 복잡합니다. 저도 나름 로마사에 관심이 있는 편이지만, 초창기 로마사에는 문외한인지라 읽는데 상당한 고충을 겪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단 인물들의 이름이 수십개는 나오고, 이름들이 다들 거기서 거기인지라 이것부터 헷갈립니다. 정말 제대로 읽고 싶으시다면 뒤에 있는 연표를 봐가고 인물들의 이름, 사건들을 정리해가며 읽으셔야 할겁니다. 또한 로마 초기 왕정, 공화정 시절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낮은 편인만큼 읽다보면 새로운 사건, 일화들을 많이 발견하실 수 있을겁니다. 아니, 사실 이 시기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 않으시다면 새로 배우는 사실이 알고있던 사실보다 훨씬 많겠죠.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어보실 분들은 무턱대고 읽기보단 로마 초기사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쌓고 읽어보시는걸 추천합니다.



PS 다시 말하지만, 1차 사료는 분명 흥미롭긴 하나 결코 읽기 쉽지 않습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읽다간 심하게 고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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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1 - 1910-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1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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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만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로 유명한 박시백 작가님이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쓰신 책입니다. 일제시대 만화 시리즈는 총 7권이 출간될 예정이며, 이 책은 그 중 1910년부터 1915년까지의 기간을 다룬 1편입니다. 이 책은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번째 부분에서는 먼저 1910년대 세계 각국의 정세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정치적 상황과 신해혁명 등 중국의 사건들, 1차 세계대전 등 일제시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굵직한 사건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놓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일제시대라는 시기를 한국사라는 틀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더 넓게 세계사와 일본 정치사까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 짤막하게나마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실어놓은 것은 굉장히 참신하게 느껴졌습니다. 두번째 부분은 조선총독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그 통치 방식은 어땠는지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사를 공부해본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이 시기 일본은 소위 말하는 무단통치를 펼쳤으며, 통치 방식은 매우 치밀하면서 무자비했습니다. 일본령 조선의 최고통치자는 조선 총독이었는데, 이 직책은 덴노의 바로 아래에 있었으며 일본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총독부는 조선 전역에 헌병대를 파견하여 일본 통치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조선의 교육, 행정 등등의 체계를 일본식으로 개편하여 지배를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세번째 부분에서는 식민지가 된 조선에서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한 사람들, 소위 친일파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선인들 중 한일합방에 협력한 고위공직자들은 귀족 작위를 받아 호화로운 삶을 살았으며, 갑신정변을 이끌었던 주요 관계자들 대부분도 친일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또한 대한제국 시절 일본 육사에 유학했던 이들 중 상당수도 친일 군인이 되어 일본군의 고위 장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고위층 뿐만 아니라 하급 관료, 경찰들도 일본 통치에 적극 협력했습니다. 특히 일제시대 당시 순사 등의 하급 경찰자리는 조선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고 하며, 출세지향적인 일부 경찰들은 독립운동가 색출에 적극 협력하여 진급을 했습니다(대표적으로 노덕술).


네번째 부분에서는 세번째 부분과는 반대로 19세기 말~식민화 직후 기간에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투쟁을 펼친 인물과 단체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탄압을 피해 연해주, 간도 등지로 망명을 떠났으며, 그곳에서도 대한 독립을 위한 활동들을 벌였습니다. 이 시기 국외로 망명을 했던 인물로는 홍범도, 안중근 등이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는 신민회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이회영과 이석영 형제입니다. 이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재산을 보유한 갑부였음에도 독립을 위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다섯번째 부분에서는 국내에서 저항을 선택한 독립운동가들이 등장합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단체는 신민회였으나, 불행히도 105인 사건을 포함한 일제의 잔혹한 탄압으로 인해 끝내 뿌리뽑혔습니다. 19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인 의병운동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당연히 일본의 진압으로 인해 실패했습니다. 당시 의병장중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분은 노병대라는 분인데, 그는 1907년 의병을 일으켰으나 체포되었고 일본군에 의해 눈알 하나가 뽑히기까지 했습니다. 1911년 석방된 후 또다시 거병했으나 1913년에 체포되었고, 그분은 식사를 28일간 거부한 끝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부분에서는 하와이, 연해주, 중국 등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과 독립운동 단체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일제시대에 관심이 많은 분들 뿐만 아니라 한국사를 여러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 하는 분들에게도 강하게 추천합니다. 일단 책 자체가 분량이 작은 편이라(물론 시리즈 전체를 다 살 계획이면 좀 많아지긴 할겁니다)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딱딱한 교재나 교과서로 공부하는것보다 사건의 흐름과 개연성이 잘 파악됩니다. 특히 매우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는 독립운동의 파트는 무조건 외우는것 보다 이러한 만화책을 통해 배우는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또한 이 책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지만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중요한 인물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령 이 책에 소개된 의병장 노병대라는 분만 봐도 저에게는 매우 생소한 이름이었으나 이 책을 통해 그분의 업적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책에 대해 한가지 아쉬운점을 꼽자면 일제시대 일반인들의 생활사라던지 문화 등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하게 다루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일제시대 일본 식민정부의 정책들과 독립투사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일제시대 일반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일제시대의 문화, 예술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이너한 부분을 좀 더 조명했으면 좋았을테지만 다소 딱딱한 정치, 독립운동사 파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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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인물과 연표 - 너무 재미나서 한눈에 읽히는
손잔췐 지음, 진화 옮김 / 나무발전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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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고대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연표들이 나와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첫째로는 크기가 매우 크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한 변의 길이가 무려 30센티미터가 넘는 아주 큰 책입니다. 둘째로, 줄글로 차있는 일반 책들과는 달리 매우 길쭉한 연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고대 하나라부터 중화인민공화국까지 역대 모든 중국 왕조들의 연표를 다루고 있으며 연도별로 일어난 사건들과 역대 황제들이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연표 중간중간에는 황제 외에도 그 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 군인, 정치가 등이 나와있으며, 다채로운 유물들의 사진과 어려운 용어들의 해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사 인물과 연표>의 가장 큰 장점은 글이 별로 없고 연표와 그림, 주요 사건들 위주로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기에 중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특히 춘추전국시대, 오호십육국 시대, 오대십국 시대같이 여러 국가들이 존재했던 복잡한 시대를 공부할때는 국가들의 흐름을 잡기가 힘든데,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을 잡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면, 연표에 굉장히 세세하고 자잘한 사건들이 많이 나와있어서 중국사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다소 읽기 힘들 수 있습니다.


PS 이 책의 맨 뒤에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의 수도 및 옛 지명들의 목록과 그곳들의 현재 위치가 나와있으며, 그 외에도 중국의 각 소수민족들의 목록과 중국의 행정구역별 인구, 면적이 나와있습니다. 한마디로 중국사의 백과사전 정도라고 이해하시면 될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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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 세계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 지음, 정탄 옮김, 권성욱 감수 / 교유서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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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덩케르크에 맞춰 덩케르크에 관한 책이 출시되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수작전일것이다. 이 작전으로 40만에 가까운 연합군 병사들이 목숨을 구했으며 이들은 훗날 서부전선에서 나치 격퇴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만약 이들이 덩케르크에서 성공적인 철수를 하지 못하고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면 2차 세계대전의 판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덩케르크에서 철수한 영국군은 영국의 최고 정예 부대였고, 이들이 전부 독일군의 포로로 잡혔다면 영국은 본토를 지킬 정예병의 대부분을 상실하였을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영국의 저항 의지 약화와 심하면 항복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


덩케르크의 신화는 1940년 독일군의 네덜란드 침공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네덜란드, 벨기에와 프랑스 침공 당시 독일군은 그다지 준비된 상황이 아니었다. 전력과 무기 면에서도 프랑스군에 비해 결코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오히려 열세인 면도 많았다. 하지만 만슈타인을 포함한 독일 수뇌부의 과감한 전술과 프랑스군 수뇌부의 뒤떨어진 1차대전식 교리로 인해 연합군은 순식간에 독일군에게 패배했다. 독일군의 속공에 연합군은 순식간에 프랑스 북부에 발이 묶였고, 연합군의 수중에는 칼레, 불로뉴, 덩케르크 등 5개의 항구만이 남았다. 이 중 두개의 항구는 독일군에게 점령되었고 나머지 두곳은 버려졌으며, 결국 수중에 남은 항구는 덩케르크밖에 없었다. 연합군은 덩케르크에 총집결했고, 영국 본토로의 철군을 기다렸다.


덩케르크의 철수작전은 기적에 가까웠다. 덩케르크에 피신한 총 35만명의 영국, 프랑스군 중 10만명 정도가 덩케르크 주변의 해변에서, 25만명 정도가 덩케르크의 부두에서 철수하여 영국 본토로 도착했다. 이 작전에는 영국군 전함은 물론 개인 소유의 상선과 보트, 소형선박까지 거의 모든 선박들이 동원되었다. 병사들은 온갖 종류의 배들을 타고 온갖 종류의 방식으로 탈출했는데, 몇몇 병사들은 조그마한 보트를 타고 직접 노를 저어 덩케르크를 탈출하기도 했고, 몇몇 불운한 병사들은 타고 있던 배가 독일군의 폭격으로 침몰하여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프랑스군으로 변장한 독일군들이 배에 올라타 총질을 하며 깽판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이런저런 사고와 격침에도 불구하고 작전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작전이 절정에 달한 날에는 하루에 무려 6만 6천명의 병력이 영국 본토로 철수할 수 있었다. 덩케르크의 철수작전으로 35만명의 연합군 정예병력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으며, 독일군의 영국 본토 침공으로부터 영국 본토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덩케르크 철수작전 뿐만 아니라 그 이전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의 전황까지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의 초반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덩케르크 전투의 진행 과정과 의의, 그와 관련된 사소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높다. 조그마한 선박들과 보트들의 극적인 탈출 에피소드들은 웬만한 소설 수준으로 흥미를 유발한다. 더불어 덩케르크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은 흥남 철수작전을 같이 생각해보며 읽는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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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로드 - 고추가 일으킨 식탁 혁명
야마모토 노리오 지음, 최용우 옮김 / 사계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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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 중 하나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고추는 웬만한 식탁에는 빠지지 않으며, 고추 없는 한식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고추가 한국에 전래된 때가 불과 300년 전이라면 믿으시겠는가? 그 이전에는 고추장도, 고추를 이용한 붉은 김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고추라는 식물이 불과 300년 만에 한국인들의 식탁을 휘어잡게 된 것일까? 또 고추는 대체 어떤 경로로 저 먼 아메리카 대륙의 원산지에서 한반도까지 전래된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명쾌한 해답들을 내놓아준다. 또한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 유럽 등등 세계 곳곳에 고추가 어떻게 전래되었고 요리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설명해주고 있다. 고추와 그 매운맛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시는걸 추천한다. 고추요리를 즐기는 한국인으로써 한번쯤 이 매력적인 식물에 대해 알아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다.


먼저 이 책은 고추의 원산지, 고추의 종류들과 고추가 매운 맛을 내는 이유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추는 매우 오래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식재료였고, 그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다. 고추의 종류에는 크게 안눔, 키넨세, 바카툼, 푸베스켄스 종이 있는데 이 중 우리가 가장 흔히 먹는 안눔 종에 속하는 고추들끼리도 모양과 크기가 천차만별이다. 고추가 왜 그리 매운 맛을 내는지 상상해봤을 법도 한데,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새들에게만 선택적으로 먹히기 위해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자연계에 있는 동물들 대부분은 매운 맛을 극도로 꺼려하지만, 새들만 유독 매운맛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고추가 새들에게 먹힐 경우 고추씨의 발아율이 가장 높고, 때문에 매운 맛을 느끼지 못하는 새들에게만 선택적으로 먹히기 위해 매운 맛을 진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고추는 콜럼버스의 항해를 통해 1493년경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다. 콜럼버스 일행은 그토록 찾던 후추를 찾지는 못했으나 후추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고추를 찾았고, 이것을 후추의 대용품으로 유럽에 소개했다. 이 낯선 작물은 스페인 땅에서 엄청난 환영을 받았고, 16세기 중반 무렵이면 스페인 곳곳에서 고추를 보편적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에서 고추는 식용과 값비싼 향신료 대용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관상용으로 재배되기도 하였다. 16세기 스페인의 기록에는 심지어 고추에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약효' 가 있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하지만 유럽 전역에서 고추가 이렇게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은 고추가 병을 일으키거나 해롭다고 생각했고( 운 맛 때문에 당시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껴졌을만도 하다), 감자를 비롯한 신대륙 작물 대부분 역시 비슷한 편견때문에 대중화가 늦었다. 사실 오늘날에도 몇몇 지역들을 제외하면 고추를 요리에 사용하는 유럽 국가는 거의 없다. 그나마 남이탈리아, 특히 칼라브리아 지방에서는 예외적으로 고추를 다양한 요리들에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고추를 이용한 소세지, 소스 등을 먹는데, 어쩌면 무더운 기후때문에 고추가 그렇게 인기를 끈 것일지도 모르겠다(같은 이탈리아라도 북이탈리아 지역에서는 고추를 요리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유럽에서 고추가 많은 인기를 끄는 나라는 예상 외로 헝가리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나 오스만 투르크제국을 통해 헝가리까지 고추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헝가리에서 고추는 품종개량을 거쳐 "파프리카"라는 새로운 품종으로 탄생했다. 즉 우리가 먹는 파프리카는 원래 고추였으며, 헝가리에서 품종개량을 거쳐 파프리카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유럽보다도 고추가 더욱 많은 요리에 이용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특히 고추를 많이 사용하는 지역은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한국이다. 인도에서는 이미 고추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후추를 이용한 매운 요리들이 많았는데, 16~17세기 경 유럽인들에 의해 고추가 들어온 이후 현재까지도 중요한 식재료로 애용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고추가 악령을 쫓기 위한 부적의 일종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인도 북쪽에 위치한 네팔에서도 고추는 감자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식재료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시아의 최강 고추사랑 국가는 따로 있으니, 바로 부탄이다. 이 동네에서는 말 그대로 거의 모든 요리에 고추가 들어가며, 고추 없는 식탁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맵게 먹는 국가 중 하나이며, 부탄인들의 일상적인 식사조차 우리 기준에서 보면 '토할 정도로 맵다(저자가 직접 체험해본 결과 나온 결론이다).'


중국은 광활한 영토에 걸맞게 지역마다 음식과 조리법이 천차만별이다. 중국 안에서도 가장 고추를 애용하는 지역들은 쓰촨성, 윈난성, 구이저우 성 등 중국 서남 지방이다. 나머지 지방들은 고추를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덥고 습한 서남지방의 기후가 큰 작용을 한게 아닐까 싶다. 흥미롭게도, 중국은 동북아 3국 중 고추의 대중화와 전래가 가장 늦었다. 중국에서 최초로 고추에 대해 언급한 서적은 17세기 말에 가서야 나왔으며, 17~18세기 중국의 요리 서적들에는 고추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리 서적에서 고추가 모습을 드러낸건 19세기가 되어서였다. 중국 서남지역에서 고추가 대중적으로 재배, 이용되기 시작한것은 20세기 초반부터였다. 참고로 중국인 중 의외의 인물이 고추를 즐기기로 유명했으니, 그는 바로 모주석이었다. 매운 요리가 발달한 후난성 출신인 마오쩌둥은 고추광이라 불릴 정도로 고추 요리를 즐겨먹었으며, 고추 없이는 식사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모주석은 매운 고추요리야 말로 혁명가의 정신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음식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아마 지나치게 매운 고추 음식들이 그의 뇌와 판단력에 나쁜 작용을 일으킨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고추에 대해 언급해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고추를 최초로 언급한 문헌은 17세기 초에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고추가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일간에 가장 격렬한 접촉(???)이 있었던 시기가 임진왜란이니, 임진왜란 시기에 고추가 일본으로부터 들어왔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고추가 들어온 이후에도 한동안은 독이 들었다는 소문 때문에 요리에 잘 이용되지 않았다. 17세기까지도 고추는 김치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18세기가 되어서야 고추가 들어간 김치가 탄생했다고 한다. 즉 우리가 지금 먹고있는 새빨간 김치는 겨우 200년 전에야 탄생한 셈이다. 그렇다면 고추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일본과 달리 유독 한국에서 고추를 이용한 요리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한국의 육식 문화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육식을 금기시했으며, 주로 생선류를 먹었다. 때문에 고기의 누린내를 잡아줄 향신료가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조선시대 이후로 육식을 즐겨했고, 향신료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고추가 들어오기 이전에 흔히 쓰인 향신료는 후추였는데, 이것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온 비싼 수입품이었기에 일반인들은 쉽게 접하기 힘들었다. 반면 고추는 한국에서도 잘 재배될뿐더러 값이 쌌기에 후추를 대체할 향신료로 빠르게 퍼져나간 것이다. 이것 외에도 한국에서 고추요리가 크게 유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들이 존재한다.


1. 여름의 무더위를 견뎌내기 위해서라는

2. 겨울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는 설

3. 소금 공급 부족을 고추의 매운맛으로 보충하려 했다는 설

4. 고추의 빨간색과 매운맛이 귀신을 쫓아낸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설


의외로 4번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민간신앙에서 고추는 귀신을 막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금줄에도 사용된다. 개인적으로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한국의 고추 붐을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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