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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는 중국의 옛 음식들과 음식에 얽힌 역사적 일화들을 소개한 책입니다. 책의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고 음식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중국사에 문외한인 분들도 읽기 좋습니다. 우리가 중국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음식들은 사실 그 역사가 오래 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옛 중국인들의 식습관은 시대별로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가령 중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음료는 차(Tea)인데, 차가 중국에서 널리 퍼지게 된건 당나라 시대부터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차가 있기는 했으나, 중국 남부 일부 지역에서만 마시는 음료였습니다. 남북조 시대에 중원을 지배하던 이민족들은 남방의 차를 매우 싫어했고, 우유 등 유제품을 주로 마셨습니다. 당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차 문화는 귀족과 상류층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고, 다도와 차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차 문화는 17~18세기 유럽에도 전파되었고, 차 수입으로 인한 무역수지 불균형은 영국이 아편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은 단연 밀과 쌀입니다. 중국 북부 지역은 전통적으로 밀을 주식으로 하고, 남부는 쌀을 주식으로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러한 구도가 정착된 시기는 송나라 시기였습니다. 송나라 이전에는 중국 북부 지역에서 기장, 수수, 귀리, 조, 토란 등이 주로 재배되었습니다. 밀이 중국에 처음 전래된 시기는 한나라 때입니다. 밀은 호두, 포도, 석류, 오이, 완두콩 등과 더불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고, 들어온 직후에는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한나라 시절에 밀 요리는 국가의 제사나 왕실의 행사 등 아주 중요한 행사에만 나오는 귀한 음식이었고, 당나라 시대에도 밀로 만든 호떡과 국수 요리는 부유층들이나 먹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 북부에서 밀이 보편적으로 재배된 시기는 송나라 때이며, 이 때 비로소 서민들도 국수 요리를 접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송나라 시기에 관개시설과 모내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중국 남부에서 쌀이 주요 작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렇게 송나라 시대가 되자 중국은 북부 밀, 남부 쌀이라는 구도가 자리잡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만두, 국수 요리가 생겨났습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고기는 단연 돼지고기입니다. 돼지고기가 중국인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끌게 된건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명나라 이전에는 상류층들은 주로 양고기, 닭고기, 거위고기, 오리고기 등을 먹었고 돼지고기는 가난한 하류층들만 먹는 고기였습니다. 하지만 명나라가 건국되면서 이러한 지위는 뒤바뀌게 됩니다. 명나라의 건국자 주원장은 지독한 흙수저 출신이었고, 이 시절 즐겨먹었던 돼지고기를 황제가 된 후에도 계속 찾았습니다. 주원장 이후 의 명 황제들도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고, 이로 인해 돼지고기는 나름 귀한 고기로 상승했습니다. 명나라 멸망 후 중국의 주인이 된 청나라의 황제들 역시 돼지고기를 무척 즐겨먹었습니다. 애초에 만주족은 만주에 살 때부터 돼지고기를 즐겨먹었고, 이러한 습성이 중국을 제패한 후에도 이어진 것입니다. 청나라 시기에는 또 새로운 고급 요리들이 생겨났는데, 바로 샥스핀과 제비집입니다. 상어 지느러미인 샥스핀은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고급 요리로 자리잡았고, 제비집은 약 18세기부터 청나라 황제들이 찾게 되면서 고급 요리가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고급진 요리치고는 역사가 꽤 짧은 셈입니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음식과 관련된 흥미로운 중국사 일화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중국음식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들이 의외로 역사가 길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특히 쌀, 밀이 중국의 주식이 된게 겨우 송나라 시기부터라는게 충격이었습니다. 고대 한나라와 삼국시대 중국인들은 쌀, 밀이 아닌 수수, 기장, 조 등을 주식으로 삼았다는게 꽤 신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