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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이집트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영화화되었던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작가인 안드레 애치먼이 자신의 조부모 세대부터 본인이 1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집트에서 보냈던 시절을 담은 회고록이다. 작가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와 서술로 소설처럼 읽을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섞여 있어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을 한 권 이상 읽어봤다면 이 회고록을 읽으면서 그의 여러 소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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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거주하는 유대인 가족으로서 그의 가족은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섞여 있었다. 여러 직업을 가지면서 사업을 벌인 빌리 할아버지,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다가 자식들이 결혼하면서 사이가 묘해진 할머니들, 청각장애를 가진 씩씩한 엄마, 공장을 운영하며 돈을 잘 벌지만 바람을 피우는 아빠, 그리고 여러 하인들과 가정교사들이 등장해서 따뜻한 여러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그러나 전쟁과 이집트의 정책에 따라 유대인들은 여기저기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이웃과 가족도 여러 차례에 걸쳐 흩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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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조부모 세대인 할머니들이 친해지고 가족이 되어가는 부분이었다. 친한 이웃이었을 땐 좋았지만, '내 아들이 그의 청각장애인 딸과 결혼하는 건 참을 수 없었던' 친할머니의 분노였다. 부모 세대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애를 하며 결혼하게 되는 과정 또한 사랑스러웠다. 안드레 본인의 이야기에서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느껴진다. 유대인으로서 아랍어를 강제로 배워야만 하고 때로는 유대인을 모욕하는 아랍 시를 외워야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위태로운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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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라디노어, 아랍어 등의 여러 언어와 문화가 회고록 전반에 걸쳐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여름의 더위를 피해 바다에 가서 여름 과일들을 먹었던 추억들, 집을 드나드는 이웃들과 하인들에 대한 회상이 섬세하게 그려져있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 회고록에서도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여 책을 읽는 동안 배경음악처럼 음악이 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