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엔딩
이진영 지음 / 파지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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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결혼기념일이 지나고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사고를 쳤다.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알던 세계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그 사고는 여전히 수습 중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p.9)"

서른 여덟 여자와 서른 여섯의 남자가 만나 6개월 만에 부부가 된다. 남편의 잦은 외근,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호주 출장 겸 여행 등의 위기가 있었지만 부부는 서로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맞춰나가며 사랑한다.

아내는 가족 모두가 달려들어 일군 가게를 정리한다. 그 시기에 남편 또한 번아웃으로 퇴사를 하고, 부부는 백수가 된 기념으로 여행을 떠난다. 제주도에서 남편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남편이 숨겨온 비밀이자 남편이 오랫동안 고칠 수 없었던 문제를 알게 되는데...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다면 상대가 ‘내 눈에만 잘생겨 보이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남편의 외모를 가꿔주면서 한층 나아진 배우자를 사랑스럽게 묘사한 ‘내 남편은 비밀미남’을 공감하며 읽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배우자가 어느 날 엄청난 비밀을 고백한다면.. 그리고 그 일이 우리의 관계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사실이라면 부부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결혼 전이었다면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뱉었을 것이다. 결혼 3년차인 지금은 결혼이 힘든 만큼 이혼은 더 힘든 결심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힘으로 부부에게 찾아온 문제를 견디고 있을텐데, 누가 그들을 바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미혼이었을 때엔 보이지 않았던 단단하고 따뜻한 사랑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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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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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쓴다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삶으로 채워 넣는 일이고, 삶을 감각하는 일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풍경과 느낌을 아는 사람이 당신만은 아니라고, 나도 알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독자를 안아주는 일이다. (p.122, 정소현)”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는 작가정신 창립 35주년을 기념하여 소설가 23인(김사과, 김엄지, 김이설, 박민정, 박솔뫼, 백민석, 손보미, 오한기, 임현, 전성태, 정소현, 정용준, 정지돈, 조경란, 천희란, 최수철, 최정나, 최진영, 하성란, 한유주, 한은형, 한정현, 함정임)의 ‘작가 정신’을 담은 에세이다.

김사과에게 글쓰기는 ‘여행’이다. 박민정에게 소설은 ‘묵묵히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는 노동’이고, 함정임에게는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천희란에게 작가란 ‘스스로의 상투성과 씨름하는 직업’이다. 손보미는 한때 쓰는 행위를 ‘동력’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잠시 쉬어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다시 소설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물론 이런 일이 늘 일어나진 않지만 가끔 일어나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문학은 포기라는 사실을, 모든 것을 시도하고 모든 것에 실패했을 때에야 비로소 문학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내 능력 너머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서 문학이 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p.144, 정지돈)”

소설과 작가, 소설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쓰는 행위’, 그리고 문학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밑줄을 그어가며 읽게 될 책이다. 글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다. 또한 소설가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을 통해 그들의 서재와 작업실을 구경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쓰는 사람이자 읽는 사람의 서재는 더욱 궁금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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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아서
박산호 지음 / 더라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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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4살의 영문과 교수인 선우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지만 큰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졌다. 독신인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단독주택에 가정부도 두고 있다. 그러나 선우는 사실 과거가 복잡한 남자다. 바람둥이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는 자살했으며, 그는 아버지의 자랑이 되기 위해 살아왔다. 아버지는 사랑을 나누던 젊은 문하생 선아와 사고로 함께 사망한다.

과거 선우가 15살이었던 해, 이웃집에 25살의 젊은 여자 아랑이 갓난아기 연우와 이사를 온다. 남편도 없이 홀로 아이를 돌보면서도 좋은 엄마가 되어주는 그를 보며 선우는 아랑을 점점 좋아하게 된다. 선우가 차에 치일 뻔한 연우를 구해주고 아랑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이후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어느 날, 아랑은 연우를 집에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지고 이에 아랑의 쌍둥이 자매 아난은 그를 찾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한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미국에서의 사고로 기억도 잃고 다리도 절게 된 선우는 대학교에서 '아랑이 다시 돌아온 것만 같은' 대학생 지아를 만난다. 쌍커풀 없는 큰 눈과 까마귀 깃털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지아는 알고보니 아랑이 살던 집에 이사 온 이웃이었다. 선우는 재활치료를 위해 지아의 엄마 케이트가 운영하는 클리닉까지 다니게 된다. 학교에서, 이웃에서, 클리닉에서 자꾸 마주치는 두 사람은 점점 사랑에 빠진다.

소중한 아이 연우를 버려두고 갑자기 사라진 자유로운 영혼의 아랑, 쌍둥이 자매 아랑을 찾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 의사 아난, 바람을 피워 아내를 자살하게 하고도 문하생 선아와 사랑을 나누는 아버지, 어린 시절 사랑했던 아랑을 잊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리는 선우, 아랑과 똑같은 외모로 선우와 사랑에 빠지는 지아...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과거에서의 접점이 드러난다.

<너를 찾아서>는 여러 스릴러를 번역하면서 스릴러 작법을 익힌 번역가 박산호의 첫 장편소설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작은 묘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아 나중에 다시 보니 모든 것이 결말의 단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초반, 선우가 지아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참 설렜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달달한 로맨스가 점차 섬뜩한 스릴러로 변해가는데.. 이 소름끼치는 변화가 <너를 찾아서>의 가장 큰 매력이다. 다들 아랑을 찾는 이 여정에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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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어휘 - 모호한 감정을 선명하게 밝혀 내 삶을 살게 해주는 말 공부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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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랫동안 '감정'을 깊숙이 파묻고 '이성'이라는 널빤지로 못을 쳐놓고 살았다. 이러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자기 삶의 나침반이다." -작가의 말

책을 읽고 리뷰를 쓰다 보면 늘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책은 이래서 좋고 저 책은 저래서 싫은데 표현할 단어를 못 찾겠네!'하는 것. 좋고 싫음을 포함해 온도, 통각, 촉감, 빛을 나타내는 어휘들을 모아서 싹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바로 <감정 어휘>다.

나는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습관이 있는데, '나쁜 마음'이라고 생각되는 감정일수록 부끄럽거나 남이 알까 무서워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가 감정을 뭉뚱그리지 않고 알맞은 어휘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고 각 감정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감정에는 선도 악도 없다. 옳고 그름 역시 없으며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마음의 고통은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생생하게 느끼는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고 부정하는 데서 생겨난다." -작가의 말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는 아직 표현력이 부족한 저학년 아이들과 대화할 때가 많고, 이것은 때론 스무고개에 맞먹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짜증났어요', '좋았어요'하고 말하는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가며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그 친구가 얄미웠는데 오히려 먼저 토라지니 너는 그게 참 서운했겠구나'하고.

이 책은 감정에 대해 설명하는 장을 지나 온도, 통각, 촉감, 빛으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감정들에 대해 살펴본다. 불안, 두려움, 시기와 질투 등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감정을 느끼는 이유나 과정, 내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알아본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관련 어휘 목록이 있어 1000개가 넘는 단어를 통해 내가 느끼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나도 책을 읽으며 시시때때로 목록을 보고 여러 단어를 골라 나의 마음을 표현해 보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작가의 말에 나온 경험을 몸소 하게 된다.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나에게 나아길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남에게 다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을 나라도 자주 살펴보고 알아주자는 다짐을 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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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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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서클의 단발머리 후배를 짝사랑하는 '나'는 영 숫기가 없어서 고백은 못하지만, 최대한 검은 단발머리 여학생 눈 앞에서 알짱거리는 방법(일명 '최눈알')을 쓰고 있다. 덕분에 여기저기를 누비는 그녀의 뒤를 쫓다가 온갖 사건에 함께(그녀가 몰라줄 뿐...) 휘말리게 된다.

'나'의 짝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마주칠 때마다 '아, 선배, 또 만났네요' 인사하는 그녀는 누구에게나 상냥하지만 엉뚱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바람에 굉장히 독특한 사람들과 엮인다. 그녀는 술고래이기도 하고 꽤나 씩씩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본토초에서 낮에는 고리대금업자지만 밤에는 좋은 할아버지(?)인 이백과 그녀가 술로 대결을 하는 봄의 밤, 그녀가 어린 시절 보았던 동화책을 찾기 위해 헌책 시장을 누비다 책을 걸고 불냄비 먹기 대결에 참가하는 '나'의 여름 이야기, 우연히 그녀와 연극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는 가을 학교 축제, 감기가 돌아 모두가 고생하는 가운데 그녀만이 건강하게 여러 사람들의 병문안을 다니는 겨울의 동짓날 밤.. 이렇게 사계절을 꼬박 이어나간 '나'의 짝사랑의 결말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남편과 내가 별을 다섯 개 주면서 킬킬대고 읽은 청춘 판타지 연애소설이었다. 잔걱정과 잡생각이 많아 차마 그녀에게 직진으로 고백하지 못하면서도, 그녀의 곁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온갖 고난(?)에 뛰어드는 '나'가 어찌나 귀엽고 짠한지! 언제나 새로운 일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 인물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우정을 쌓아나가는 '그녀'의 사고방식은 어찌나 엉뚱하고 사랑스러운지! 이 소설, 정말 엉망진창으로 재미있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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