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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오늘은 저의 멘토를 한분 소개해야겠네요.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김두식 교수님입니다.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변호사이고, 국가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의 자문을 맡기도 하신 분이지요. 보수주의 분위기에서 자란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이제는 조금 삐딱해져서(?!) 폭넓은 시각으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루는 데 관심이 많은 분입니다.
저랑 어떤 관계시냐구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냥 독자와 저자의 관계일 뿐이지요. 그런데도 제가 감히 그분을 저의 멘토라고 칭하는 이유는, 제가 그분의 글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서들의 내용이 다양하고 좋습니다. <헌법의 풍경>에서는 우리나라의 최고의 법인 헌법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 땅에서는 어떻게 지켜지거나 무시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평화의 얼굴>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하며, <불멸의 신성가족>에서는 법조계의 전관예우, 마담뚜, 브로커등에 대해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에서는 진정한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그리고 더 좋은 점은 글을 쓰는 자세가 참 진솔하고 친근하다는 것입니다. 일단 경어체를 씁니다. (지금 제가 쓰는 글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참 솔직하게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은근한 유머도 가지고 있구요.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저의 글쓰기의 멘토가 되기도 합니다. 잘 따라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알고보니 이 분이 또 영화광이셨더군요. 그래서 강의에 영화를 자주 인용하신답니다. (아니, 이럴수가! 이것도 저랑 비슷하네요!!)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요청으로 '영화와 인권'이라는 강의를 몇 차례 하셨고 그러다가 결국 코가 꿰여서 이런 책까지 내게 된 것이지요. 이 책의 부제가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이야기'이거든요. 여러가지 부분에서의 차별을 바라보며 인권을 이야기하되, 우리에게 익숙한 (또는 낯설기도 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좀 까다롭고 딱딱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부드럽게, 또한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물론 글쓰기의 고수인 저자의 친절한 안내가 우리를 잘 인도해주고 있지요.
이 책에서 저자는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종차별 등에 대해서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무려 81편의 영화를 이용해서 말이지요!!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저자는 다름을 인정하자고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쌓이고 쌓이면 엄청난 인종학살까지 가져온다고 경고하지요. 1994년 100일동안 9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학살이 자행되었던 르완다학살의 시작도 '우리 투치족이 후투족보다 키도 크고 잘생겼고 똑똑하다.'는 차별의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차별을 서구의 식민세력이 이용하고 강화했고 그에 대한 후투족의 오랜분노가 결국 투치족에 대한 대량 학살로 드러났다는 것이지요. 하루에 1만명씩 죽였다니요!! 정말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저자가 또 강조하는 것은, 인권감수성입니다. 그게 뭐냐구요? 바로 '불편함'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까칠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 스파르타와 페르시아군의 전쟁을 그린 영화 <300>을 본 우리들은 근육 빵빵한 남자들의 야성미에 감탄하지만 저자는 그 안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읽어내고는 불편해합니다. 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있느냐구요? 그 용감무쌍한 스파르타군의 배후를 치도록 샛길을 알려준 배신자가 우리가 꼽추라고 부르는 척추장애인이거든요. 실제 페르시아전쟁을 기록한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는 장애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에이, 그냥 오락영화에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구요? 저자는 그런 식으로 술술 넘어가다보면 인권감수성이 무뎌진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렇게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우리 사회 곳곳, 아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몸에까지 배어 있는 차별의식을 드러내고 교정하지요. 대단한 내공입니다.
참, 저자의 진솔하고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글쓰기도 제가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지요? 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네요. 청소년 인권을 다루는 부분에서 자신의 딸과 있었던 갈등을 소개한 부분입니다.
"제 딸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엄마 아빠 같은 찌질이로는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고, 집에 올 때면 동급생 남자 친구들의 호위를 받았습니다... 자꾸 충돌하게 되면서 고민하는 저에게 유선생님은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버려야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습니다... <네 멋대로 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부모라는 직업에 필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지, 기대나 닦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제 관점이 변하자 딸도 변했습니다...물론 딸에게는 앞으로 더 써야 할 '지랄'의 총량이 엄청나게 남아 있을 것이고, 부녀간의 충돌도 계속되겠지요..."
좋지요? 이런저런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읽다보면 360페이지의 제법 두꺼운 분량인데도 쉽게 책장이 넘어갑니다. 아는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나도 알아!' 하고 무릎을 치기도 하고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나중에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마음이 뜨끔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슬며시 미소짓기도 하고, 함께 분노하기도 하다보면 어느새 인권감수성이 조금씩 갖추어지게 됩니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아내와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아내가 묻습니다.
'당신이 이 책에서 말하려는 인권이 도대체 뭐야?'
저자는 대답하지요.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거야.'
이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기억하시나요? 바로 마태복음 8:12절에 나온, 예수님의 유명한 황금률입니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인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의 표현으로 한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지요. 쉽지 않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세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더더욱 가져야 할 자세이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교회가 더 차별과 배제, 획일과 독단에 빠져 있을 때가 많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진리를 지킨다는 미명으로 차별과 정죄를 정당화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회개해야겠습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내 입맛대로 교정하려고만 했던 자세를 고쳐야겠습니다. 강자에게는 꼼짝하지 못하면서 약자에게는 가혹하게 굴었던 비겁함을 바꿔야겠습니다. 단호하게 진리를 선포하셨지만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셨던, 특히 당시에 차별받던 여자와 죄인과 환자와 세리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시고 포용하셨던 예수님을 닮아가야겠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불편해하는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보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불편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