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자서전
클레이본 카슨 엮음, 이순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에는 개인의 생일을 기념하는 공휴일이 2개가 있습니다. (엄청나지요? 우리도 충무공 탄신일이 공휴일이면 좋겠습니다만^^;;) 도대체 누구의 생일이길래 공휴일로까지 지정한 것일까요?

  하나는 2월 셋째 주 월요일, '프레지던트 데이(President Day)'입니다. 조지 워싱턴과 아브라함 링컨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미국의 건국 대통령과 남북통일 대통령이 생일이 비슷하게 겹쳐 있으니 공휴일로 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누구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일까요? 바로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월 셋째 주 월요일입니다.)


  이렇게 생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만 봐도 루터 킹 목사님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지요. 1955년 12월 1일 로사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에 항의해서 일어난 몽고메리 버스보이콧 운동의 대표가 된 후 (그 때가 겨우 26살이었습니다!) 1968년 39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괴한의 총탄에 쓰러질 때까지 킹목사님은 인권, 평등, 비폭력저항의 아이콘이었고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1964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지요.


  기독교인으로서 흑인차별은 참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 어느 교수님께서 미국의 남침례교단이 성경을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남부지역을 'Bible belt'라고도 부른다고 말씀하시길래 손을 들고 질문을 했지요. "교수님, 그런데 그 바이블 벨트가 동시에 가장 흑백차별이 심했던 지역인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교수님께서는 어물거리면서 넘어가셨구요. (제가 좀 까칠했나요?)

  하나님을 믿고 가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선량한 사람들이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주님의 십자가가, 진리의 성경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요? 혹시 저도 지금 성경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엉뚱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킹목사님은 그런 것에 저항해서 싸운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끌었던 싸움의 방식은 폭력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잘못된 것에 침묵하지 않고 항의하되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는 말자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주장한 비폭력저항주의는 상대세력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해서 사기를 약화시키고 양심을 자극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인들 중에도 킹목사에게 협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고, 세계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도 성공적이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흑인들 스스로가 무력감을 벗고 자신도 훌륭한 인간이라는 새로운 자존감으로 도덕적 목표를 이루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킹목사님을 그저 '비폭력저항주의를 실천한 운동가'정도로 생각해오셨던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진면목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시대의 모순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인함과 지혜도 겸비하고 있었지요. 사실 비폭력저항은 연약한 운동이 아닙니다. 무저항주의와 혼동하면 안됩니다. 비폭력저항은 폭력보다도 오히려 더 큰 용기와 강인함이 요청되는 운동방식입니다. 킹목사님은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그 운동방식을 끝까지 고수했고, 그 정신을 연설로 표현해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I have a dream'을 비롯한 명연설들이 그의 가슴에서 쏟아졌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설에 공감하며 거대한 흐름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킹목사님은 생각보다 과격한 사람입니다. (평화주의라고 해서 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가 자꾸 시위를 하고 긴장을 조성한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킹목사님은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흑인의 지위향상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은 KKK단이 아니라 '정의'보다는 '질서'에 더 관심이 많은 온건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들은 정의가 존재하는 적극적 평화가 아니라 긴장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선호하며 우리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악한 사람들의 완벽한 몰이해가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의 천박한 인식입니다... 우리 세대는 사악한 사람들의 증오에 찬 언행뿐만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의 겁에 질린 침묵에 대해서도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우리는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고 반항세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주님의 몸을 더럽히고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정말 날카로운 통찰 아닙니까? 우리의 무관심을 질타하고 우리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꾸짖는 준엄한 선언이 아닙니까? 킹목사님의 이런 선언은, 그리고 그가 보여주었던 불꽃같은 삶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는 목사로서 복음운동과 사회운동을 분리시키는 태도에 대해서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사회적인 복음운동을 주창합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영혼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또한 개인의 영혼을 변화시키려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성직자는 실업문제와 빈민가와 경제적 불안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사회의 부정과 부패, 제도적/구조적 불의에도 관심을 가지고 저항해야 합니다. (방법은 다양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회의 불의에는 침묵하거나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소위 영혼구원에만 집중하면 된다거나, 개인의 도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제한하는 태도입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않아야'합니다.  


  킹목사님이 베트남전쟁에 반대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이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지만 평화주의에 대한 킹목사님의 일관성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킹목사님의 신앙적 양심은, 그리고 그의 비폭력주의 사상은 전쟁 (더구나 베트남 전쟁처럼 명분 없는 전쟁)에 찬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전쟁 반대운동을 시작하자, 그때까지 그에게 호의적이었던 미국인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립니다. 흑인들까지도 킹목사님을 비난했지요. 그에 대해 킹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특정 상황에 처하게 되면 비겁한 사람은 '안전한가?'를 다지고 편의주의자는 '편리한 방법인가?'를 따지며,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호응이 좋을까?'를 따진다. 하지만 양심적인 사람은 '옳은가?'를 따진다. 살다보면 안전하지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의 호응도 좋지 않은 생각을 양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아.. 맞는 줄 알지만 걷기는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우리들이 따라야 할 길입니다. 킹목사님이 그 어려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길이 예수님의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날마다 십자가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께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킹목사님이 꿈꾸었던 그 세상은 사실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차별이 없어진 것 같고 흑인 대통령까지 나왔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 인종적, 문화적, 신체적인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지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생명을 살리는 세상입니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지만 동시에 약자도 보호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것이 킹목사님이 꿈꾸었던 세상이며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킹목사님의 뒤를 이어서 다시 한번 외쳐야 합니다.


 "We have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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