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 개정증보판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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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지니 슬슬 땀이 나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덥게 느껴지나 싶었더니 머리가 제법 길었더라. 몸도 마음도 시원해지자 싶어 한산한 오후 시간 잠깐 미용실에 들렀다. 도착했을 때 한 명 있던 손님이 막 나가던 참이었고, 커트해주시는 형님이 잠시 담배 한 대 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다림 없이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음, 약간의 기다리는 시간과 커트 하는 시간 내내 자리에 앉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덥수룩한 머리 때문일까, 내 얼굴이 왠지 어색하다. 하긴 최근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내 모습을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주변의 사람과 일들, 상황들, 물건들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나를 바라보지는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누군가가 그랬듯,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음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자신이 살고 있는 순간과 상황에 온전히 몰입되지 않으면, 한시라도 주변의 작은 변화에 집중하지 않으며 생존자체가 불가능 한 요즘이니, 스스로 최면상태를 걸며 살지 않으며 삶을 버티기 힘들다는 말도 괜히 나온 건 아닐 게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과 집단 속에서의 큰 의미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너무 몰입하며 살고 있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오직 확장된 의미로서의 자신의 모습만을 인식하며 살다가는, 어느 순간 밀려오는 공허함에 대처하기가 상당히 난처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가끔은 철저한 고독 속으로 스스로를 몰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전혀 다른, 기존의 나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 이르러 오히려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 있어서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다. 물론 단순한 휴양으로, 때론 다른 현실적인 여러 이유로 여행을 떠날 때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떠나는 여행의 대부분에서 이질감 속에서 진정한 나를 보는 경험을 하곤 한다.





최갑수 씨의 여행에세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을 읽었다. 굳이 이 책을 집게 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초반부에 나오는 하조대의 사진과 글이, 나홀로 동해안을 걸었던 예전의 일을 떠올리게 한 뒤부터는 계속 이끌려서 읽었던 것 같다. 마치 여행이 여러 요소들을 포괄하고 있는 것처럼, 책의 구성 역시 감성이 느껴지는 선명한 사진들과 글들이 함께 실려있다 보니 여행에세이 치고는 조금 두께가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두께와 양과는 관계없이 책 자체는 금방 읽힌다. 글이 딱딱하거나 길지 않고 직관적으로 읽기 좋게 되어있는 것도 한 몫 했지만, 최갑수 씨의 솔직한 경험과 감정선이 잘 묻어나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책 목차가 봄/여름/가을/겨울의 모습을 담은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저자인 최갑수씨가 아마도 35살의 봄부터 그 해 겨울까지의 여행지에서 본 풍경과 느낌을 담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여행에세이는 여행을 직접적으로, 또 무작정 예찬하지는 않는다. 다만 스스로가 생각하는 여행과, 반대로 여행이 스스로에게 주는 생각들을 약간은 유치하게 느껴지는, 오글거리기도 한 언어들로 전달하고 있다. 내게 그 글과 사진들이 조금은 부끄러움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은, 마치 치부를 들킨 듯한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정을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그가 여행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다시 한 번 책을 보면, 에세이의 부제인 Sentimental Travel 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아, 그랬구나. 그제서야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여행을 떠나면 조금은 개방적이고 대담하게 된다는 것. 모든 것들을 새롭게 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일어나는 불확실한 일들을 모두 나의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저자가 말하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자세라는 것을 이 ‘센티멘탈’이라는 단어 하나에 집약해놓은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 여행의 태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제라는 것이 제목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저자는 결국은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까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여행을 통해서 스스로를 온전히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런 여행으로 느끼게 하는 기본적인 태도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삶을 여행자로 살아가는 저자만큼의 내공은 없지만, 진심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그래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짐작하건데 그가 말하고자 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역시도 결국은 앞서 말했던 ‘나 자신을 고독으로 몰고 가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데, 항상 진지하게 힘을 바짝주고 전쟁터에 임하는 것 같은 삶을 고수하다가는 나를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한 발, 조금은 떨어져서 상황을 이색적인 것으로 몰고 가서,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서 나를 희극으로 바라보는 것. 그게 누군가에게는 휴식으로, 누군가에게는 경험으로, 누군가에게는 고생으로, 각자의 구체적 느낌은 모두 다르겠지만 결국은 더 진실된 내 삶을 지키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책 커버 뒷 편에 쓰여진 소설가 김중혁씨의 추천 글은 최갑수 씨의 등을 ‘단단하고 야무지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짧은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여행자는 모든 것을 자신이 감내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 경험과 무게와 고독감과 넓어진 감정의 폭들은, 삶을 보다 크게 넓게 또 이왕이면 아름답게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선물할 것이다.

 

휴, 책을 덮었다.

어느 새 궁둥이가 또 들썩들썩 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또 여행을 가고 싶어지게 된 것 같다. 참 큰일이다.











 그의 몸은 길 위에서 단단해졌고 정신은 투명해졌다카메라를 들고 배낭을 멘 순간에야 그는 비로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길에서 만나는 꽃과 구름과 바람과 사람들은 구체적이었다그것들은 살아 있었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만 오면 인생이 간결해지는 것 같아.” 하조대 해변을 거닐다 친구가 던진 말. “일하는 데 여덞 시간사랑하는 데 여덞 시간자신을 위하는 데 여덞 시간하루를 이렇게 삼등분해서 살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텐데… 해변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정확히 3분의 1씩 차지하고 있는 곳 하조대.

 

 순간, 새들이 휘익- 하며 화살처럼 날아올랐다. 나는 셔터를 눌렀다. 타타타탁. 셔터 소리가 기관총처럼 울렸다.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하숙집 창틀에 기대 바라본 그녀. 골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녀. 내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사랑했던 그녀. 내 기억의 깊은 우물 속에 숨어 있다 홀연히 나에게로 다가온 그녀. 새들이 찍혀 있었다. 시간의 저쪽에 매복하고 있다가 갑자기 엄습하는 그리움처럼, 날카로운 휘파람처럼 구름의 한 귀퉁이를 찢으며 날아온 새들.

 

 하긴 마음먹고 떠나온 여행에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두 배정도는 대담해지는 법이다.

 

 우리 모두는 시궁창에 있지. 그러나 우리 중 몇 사람은 별을 바라보고 있지 – 오스카 와일드

 

 삶은 우리에게 몰입을 요구한다. 우리는 최면 상태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서른다섯. 이젠 슬픔도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가령 밤 열 시의 슈퍼마켓에서 라면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살 때,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와 백원짜리 동전 다섯 개, 오십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내고 사십 원을 거슬러 받을 때,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주머니에 거스름돈을 찔러 넣을 때, 마흔을 바라보는 여자 선배가 올해는 꼭 시집 갈 거야, 하며 말할 때, 그 선배가 탱고를 배우러 다니는데 함께 레슨을 받는 젊은 애들의 동작은 따라할 수 있어도 예쁜 표정은 절대로 따라할 수 없다며 푸념할 때, 슬픔은 너무나도 구체적이다. 서른다섯. 슬픔의 무게도 잴 수 있을 것 같은 나이.

 

 많이 아플 때마다, 나는 내가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몸이 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음이고 정신이고, 사랑이고 다 필요 없다. 몸이 먼저다.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데 익숙하지 않아. 불안해지지. 끊임없이 전화를 하고 메신저를 하고 문자 메시지를 날리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안심하곤 하지. 하지만 여행을 떠나봐. 기꺼이 혼자가 되어봐. (중략) 그렇게 해봐. 생각보다 평화로워질 거야. 네가 비로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될 테니.

 

 사람들은 대개 마흔 정도가 되면 젊은 시절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들과 안녕을 고하고 속수무책으로 진부해지고 따분해지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것인데 – 가령 멋진 차를 산다든가, 새로운 취미나 공부거리를 가진다든가,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든가 하는 방법들 –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여행이 아닐까.

 

 해안도로와 중간산도로를 번갈아 갈아타며 겨우 모슬포항에 도착했지만 배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코앞에서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다음 배까지는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어쩌겠어, 다 내 잘못인걸. 여행에서는 이렇게 마음을 먹어야 편하다. 놓친 배, 떠나버린 버스, 이륙한 비행기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여행자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 미리 도착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을 것.

 

 오늘은 세상에 대해 그리고 우리 생에 대해 약간은 심미적이며 관조적인 자세를 가져볼 것.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바로 그 정신적 습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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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 - 윤석철 교수의 경영학 특강
윤석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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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흘러가는지 너무 복잡하다 싶다. 결국은 보고 싶은 것만, 알기 쉬운 것만 골라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만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세상 속도에 발걸음 속도를 맞춰보고자 매일 아침 신문은 꾸준히 읽는 편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5월 29일자 한국경제에 실린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최근 읽었던 <경영 경제 인생 강좌 45편>이라는 윤석철 교수님의 저서가 생각났다. 우연히 위즈덤하우스 리퍼도서 판매 행사에서 저렴하게 구매했던 책이었는데, 책의 주요 내용들이 신문기사에 조목조목 요약되어있어서 인상 깊었기에 아마 책 내용이 떠오른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윤 교수님의 <경영 경제 인생 강좌 45편>은 초판이 2005년 발간 된, 그러니까 이미 10년 가까이 지난 책이다. 매일매일 최첨단 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영 환경이 변화하는 현대시대에는 사실 그러한 환경 변화에 맞추어 경영의 방법이나 이론들도 함께 진화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산이 변할 시간 동안 이 책이 가치를 가지고 계속해서 읽혀진다는 것은 경영을 함께 발맞춰 변화하는 기술적 측면이 아닌, 쉽게 변하지 않는 인간의 사고와 태도적 측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많은 이유들 중에서 내가 경영학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 윤리 선생님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당시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께서 뭔가 예시를 들었는데 그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예를 들어 왜 경영학을 배우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사자가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취업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크게 바라보는 사람은 다르다. 경영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경영의 근본적인 속성은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를 파악하는 것에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들의 상호작용이다. 따라서 인간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가장 현대적인 학문이 경영학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사실 나는 대학에서 배웠던 경영학은 단순한 기술적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술과 방법이 현실에 반영되어 연구한 만큼의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적용’이라는 별도의 문제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다시 말해서, 결국 이 책이 10년의 시간 동안 꾸준히 읽힐 수 있었던 것은 경영, 경제의 기본적 원리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생의 문제로 확대하여 바라보는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의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분량도 두꺼운 책이 아니므로 직접 읽어보시는 것을 권하고 싶다. 짧게나마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생존양식이란 늘 무언가를 주고 받으면서 가치를 창출하기도 하고 그 속에서 노동의 원동력을 얻어왔다. 즉, 기브 앤 테이크가 가장 기본적인 삶의 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가 현대적으로 조직화 된 것이 기업이다. 이러한 기업들이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고, 자사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감수성’, 그리고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상력’, 그것을 현실화 할 ‘과학기술’이 필요하다고 윤석철 교수는 말하고 있다. 이 때 감수성, 상상력 그리고 기술발달의 방향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창조성’과 ‘생산성’을 고려해야 한다. 얼마나 창조적인지, 혹은 생산성이 좋은지, 그게 아니라면 두 가치 간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결국 만들어내는 가치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의 전반부가 인간의 속성을 통해 본 기업의 지향점과 기본원리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책의 후반부는 그러한 기업이 좋은 기업으로서 존속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태도와 사고적 측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를테면 속도와 목적적합 추구의 요소는 모두 기업에게 필요하지만, 그것이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경영자의 관점에서 두 요소 간의 최적해를 찾아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조직이 효율성을 중시해야 하는지 효과성을 중시해야 하는지와 같은 경영학의 풀리지 않은 고민에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이 외에도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으로는 직선 코스가 아닌 제곱식 유형의 우회축적의 경로가 오히려 시간적 측면으로는 ‘최소시간’이라는 부분이다. 이것을 쉽게 풀이하면 오히려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바로 앞의 이익을 보고 판단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기본에 충실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때 더욱 따르게 원하는 결과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많은 멘토가 될만한 분들은 이렇게 말한다. 결과는 노력에 비례하지만 항상 일정하게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노력으로 인한 결과는 즉각적으로 그것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계단식처럼 어느 정도 누적되었을 때 비로소, 비약적으로 결과가 좋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우회축적의 경로의 개념은 그러한 노력과 결과의 관계를 측정하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 기억에 남는 부분으로는 기업의 생존부등식이란 [제품가치(V) > 제품가격(P) > 제품코스트(C)] 이라는 것을 전제로, 정말로 기업이 사회에 기여해야 것은 눈에 보이는 투명경영이나 광고성 사회환원(물론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이 아니라, V-P의 가치가 극대화 되어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효용과 가치를 전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이러한 기업 생존부등식을 인간 개인의 삶으로 확장하여, 내가 투입하는 노력 대비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물론 이러한 행위도 합리적인 행위로써 추구해야 할 태도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가치 대비 줄 수 있는 역량 자체를 끌어올리기 위한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것을 단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과정에는 핵심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는 것도, 10년이 지난 이 책을 밑줄 그어가며 읽는 것도 그러한 기본과 핵심에 집중하려는 작은 노력이라 하고 싶다. 복잡할수록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 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갈 것이 요구되는 건 어쩔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 경영자는 한정된 자기 분야를 초월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적 시야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21세기 경영은 그만큼 자유도가 높고, 그것은 곧 생존경쟁이 선택이 아니라 숙명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 실존주의 문학가 카뮈는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이 철학의 기본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시지프의 신화>에서 말한다. “부조리란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좌절시키는 비합리성의 세계”라 한다. (중략) 또 다른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삶의 세계를 논리적 통일성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외쳤고, 하이데거는 “세계는 고뇌하는 인간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토록 부조리로 가득 찬 삶의 세계에서 인간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 결국 삶의 기반은 ‘주고받음’에 있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결국 살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사회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구성체의 생존기반은 결국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지고 유지된다. (중략) 국가-국민, 기업-고객, 가정 모두 각자의 생존기반에 대한 고마움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봉사(보답을 위한 노력)를 실천하는 수준여하가 인간적 성숙을 재는 척도일 수 있다.
 
◆◆ 지나간 명화 <쉐난도>에서는 ‘사랑한다’는 말과 ‘좋아한다’는 말을 엄격히 구별한다. 제니와 결혼하기 위해 허락을 구하러 온 샘에게, 그녀의 아버지 앤더슨은 묻는다. “왜 제니와 결혼하려고 하는가?” 청년은 “제니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라 답한다. 그러자 앤더슨은 “그것은 충분한 이유가 못 돼”라고 말한다. 당황한 샘에게 앤더슨은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지. 어떤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사랑하게 되면 그와 하룻밤을 지내는 일조차 지겹고 싸늘하게 느껴지는 거야! 그런 밤을 지내고 나면 이튿날 아침엔 경멸만 남지!” 하면서 사랑함보다 좋아함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 상상력에도 목표의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가치창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목표의식이란 고객의 필요와 아픔을 해소하고 기호와 정서를 만족시키기 위한 의지다. (중략) 이러한 목표의식은 문제정의로 발전해야 한다. 목표의식을 문제정의로 전환하는 데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문제정의가 제대로 되면 문제가 반은 풀린 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문제정의는 중요하다. 세련된 문제정의가 필요하다.
 
◆◆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무엇인가를 배워야 살 수 있고, 그 배움의 결과는 인간사회와 자연의 존재양식, 이들 두 영역에 관하여 ‘될 수 있음’과 ‘될 수 없음’을 구분하는 지혜가 된다. (중략) 정리해서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인간사회와 자연법칙에 관하여 계속 탐구해야 하고, 자연에서 얻은 지식을 과학, 과학을 삶에 적용하는 지혜를 기술이라 한다.
 
◆◆ 사실 기업의 도덕성은 그러한 생존부등식의 만족여부에 달려있다. 오늘날 기업을 부도덕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인식오류다. 생존부등식을 만족시키는 기업은 제품 한 단위를 팔 때마다 V-P 만큼의 순가치를 소비자에게 기여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그것으로 축적하는 기업의 부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반대급부다.
 
◆◆ 가치는 어떻게 측정될까? 결국 가치는 구매하는 사람, 받아들이는 사람이 알아주는 만큼이 가치다. 사회생활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의 세일즈맨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같은 의미다. (중략) 그렇다면 제품 혹은 서비스에 대해서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의 구성요소는 무엇일까?
 
◆◆ <논어>의 [안연]편에는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묻는 질문이 나온다. 이 질문에 공자는 경제, 국방, 그리고 국민 신뢰가 정치의 기본이라고 답한다. “그 세 가지 중 부득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하고 자공이 묻자, 공자는 국방을 버려야 한다고 답한다. “나머지 두 가지 중 다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경제를 포기하라고 답한다. 결국 공자는 ‘식량’이나 ‘국방’보다 ‘신회’를 더 중요한 기본으로 본 것이다.
 
◆◆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그가 도달한 철학적 성숙의 함수다.
 
◆◆ 정신심리학자 쿤켈은 자아의 파멸에 이를 만큼 심각한 사태에 직면한 인간은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 진실로 무엇인가를 묻게 되고, 이런 진실의 순간에 인간은 오만하거나 이기적이었던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위한 창조적 삶을 선택하는 계기를 맞는다고 한다.
 
◆◆ 짧은 사랑과 긴 사랑을 구별할 줄 아는 지적성숙이 필요하다. 생텍쥐베리는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데 있지 않고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데 있다”고 표현했다. 또한 앙드레 지드는 “사랑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아함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좋아서 끌리는 힘, 즉 인간적 매력은 우리 삶에서 가장 강력한 힘일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상대방이 계속 자기를 좋아하도록 외모뿐만 아니라 교양, 지성, 가치관, 도덕성 같은 인간적 매력을 가꾸는 일은 긴 사랑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 오늘 날을 정보화 사회로 규정하면서 정보의 창출, 공유, 활용이 경쟁력의 원천이라 외친다. 정보에는 기계적 장치에서 얻는 시그널정보(SI)와 인간을 통해 얻는 휴먼정보(HI)가 존재한다. 미국이 9.11테러를 막지 못한 것은 SI를 믿고 HI를 소홀히 한 데 원인이 있다고 한다. 기업이 인력을 감축하고 자동화, 기계화를 하면 HI의 창조적 아이디어 창출은 줄어든다.
 
◆◆ 아우렐리우스의 지도자론에 따르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1)지혜 2)정의감 3)강인성 4)절제력이다. 지혜란 조직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미래를 기획하고 실천에 옮기는데 필요한 지적 능력을 말한다. 정의감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을 뜻하며, 특히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막는 중요한 덕목이 된다. 강인성은 위험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정서적 힘을 뜻하고, 절제력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여 균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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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합시다
이철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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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작스럽게 더워졌다. 시간이 참 빠르다. 그러고보니 어느 새 5월도 절반이 지났다.

 

몇 일전부터 주요 언론의 기사들을 대부분 정치면이 채우고 있다. 아마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

출마를 위해 누구 의원이 사퇴했다라는 기사부터 시작해서, 후보자 가족들의 언행이나 기존 조직의 부당 활용에 대한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시끄럽다. 시끌시끌하게 새로운 정치 기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선거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언제나 제기되었던 아쉬움은 이번에도 반복된다. 후보자가 주장하는 정책의 의미나 해당 정당과 정치인의 정치업적 등에 대해서 부각시키기 보다는, 상호비방이나 깎아 내리기 위한 기사가 우선적으로 등장하고 조명된다는 점. 언론의 입장에서는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정보를 접할 때 힘을 가질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자본을 획득하기 때문에 결국 자극적인 기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 언론이 만드는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실과 도덕성 검증을 가장한 인신공격에 중독된 국민정서를 고려해서라도, 후보자 입장에서도 상대의 약점을 물어뜯는 것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쉬운 전략처럼 여겨진다. 언론, 유권자, 정치인(정당)의 사고가 이런 식으로 이뤄지다 보니선거에만 집착하는 저급한 민주주의의 악순환이 지속된다. 매 선거 철마다 인심성 발언을 남발하지만 그것에 대해 개선이 이루어지거나 검증받지 않는 현실에 답답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저급한 민주주의의 악순환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이철희 씨의 <뭐라도 합시다>는 그러한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글의 목차를 따라 [1. 문제는 좌우가 아니야]에서는진보는 시끄러운 깡통’, ‘보수는 답답한 꼴통으로 표현하며 진보와 보수 각각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진보가 왜 몰락하고 있는지, 김대중/노무현과 같은 과거 진보 진영의 대표적 인물의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을 보기도 한다. 박원순/안철수/문재인 등의 현 진보 진영을 이끌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장단점도 볼 만 하다. 마찬가지로 보수의 뿌리가 어디이며, 지금의 보수의 정체성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이명박과 박정희/박근혜 등의 인물의 장단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리고 진보/보수 인사, 위치에 따라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어지는 [2. 우리가 바라는 정치]에서는현실정치 똑바로 보기챕터를 통해 민주주의의 속성과 입법부/행정부, 지도자/정당 간의 갈등 조정 문제, 여론조사와 언론의 중요성과 문제점 등을 언급한다. 그렇게 현실 민주주의의 속성을 파악한 후 다음 장인정치는 우리 삶의 문제이다를 통해 저급 민주주의의 악순환을 끊고 바람직한 선진화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는, 바로정치는 삶을 결정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며 따라서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바꾸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바뀐다는 전제와 동기가 깔려있다.

 

이처럼 개괄적으로 전체의 틀과 사실관계 등을 파악한 후,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는 서술 구조는,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다소 회의감을 가지고 정치를 기피하는 독자들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게 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의 역할을 확대하고, 동시에 책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유권자들이 정치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오자.

현실세계의 민주주의는 최고의 제도가 아닌 현재까지 찾아낸 최선의 제도에 가깝다. , 언제나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제도는 되지 못한다. 그러한 불완전성을 설명하는 여러 논리 중에호텔링 원리’, 혹은최소차별화 원리라 불리는 것이 있다. 원래는 경제학의 상품유통거리 개념에서 시작된 개념이지만, 다운즈에 의해서 양당제 하에서 중위투표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정강을 만들다보면 결국 양당은 비슷한 정강을 제시할 수 밖에 없다는 정치 이론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래서 결국 세상은 중도의견을 따라 움직이는 중위투표자이론이 성립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야당은 진보가 아닌 보수적 색채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그것 역시 근본적으로는 호텔링 원리에 의해서 당의 정강이 보수진영과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에 기인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는 여당의 선거 전략이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경제민주화, 복지정책에 대한 진보의 주제를 지난 대선 새누리당은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가져왔다.)

 

각 당이 서로의 정체성을 담은 미래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공하지 못하고, 서로 비슷한 내용의 정책을 주장하다보니 여야는 언제나 정책이 아닌 인물에 기대를 걸어 승부를 보려 한다. 마치 단기필마의 조자룡 마냥 시대적 영웅을 기다리고만 있는 셈이다. 그런데 애초에 인간은 크게 다를 수가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좋은 정치인이 등장해서 정말 국민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당내 경쟁에게 이긴 사람으로 하여금 책임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작동시켜 좋은 지도자를 '만들어'내야 한다. 저절로 인기 있는 이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당의 정강 정체성에 부합하는 인물을 알림으로 해서 인기를 얻어나가는 방식으로 후보선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만들어진 후보를 찾을 것이 아니라, 좋은 후보를 성장시켜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우리나라에 건전한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정치인을 만드는 시스템이란 결국 선거와 정치를 보는 우리 시각과도 연관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의 목표는 마치 선거자체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선거로써 모든 것이 심판 받기 때문에, 선거에서 이기면 뭐든 허용된다는 논리가 강하다. 그러고서는 다시 선거철이 돌아오면 지역주의나 여러 엉뚱한 이슈들로 심판을 피해간다.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우리의 삶의 개선을 위해서는 정치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그 영향을 확대하고, 선출된 정치인(정당)과 언론, 그리고 유권자의 몫까지 각자의 책임을 확실히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꿈을 이야기 할 때도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그것을 미래에 이루어 낼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것처럼, 정책도 이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때 보다 설득력이 높고 그것이 말하는 미래를 만드는데 더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더 나아가 책의 저자 이철희 씨는복지 = 일상의 삶이라는 말로서, 우리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사회의 핵심 의제로복지를 제안한다. 지역주의와 같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과거시대의 잣대가 아닌 현재에 적합한 복지와 경제적 계급의 관점으로 단 1원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정책을 지지하자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과 정당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담지 못하면 선택 받지 못하게 될 것이고, 선택되더라도 그것을 잘 수행하지 못하면 선거를 통해 심판 받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무한도전 방송은 참 흥미롭다. 오늘 서울 시내 몇 곳에서 무한도전 프로그램을 이끌어 갈 예능후보를 뽑는 선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단다. 공약에 대해서 선호도를 조사하고, 인물과 공약을 공개한 상태로 또다시 선호도를 조사하는, 그리고 토론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홍보영상도 만들고 각 후보의 이미지를 구체화 시켜가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실제 정치판 같기도 하다.

 

지난 주 무한도전에서는 후보검증 명분으로 멤버들이 스쿨존 제한속도 30km/h를 지키는 지에 대해 몰래 카메라 형식의 촬영을 방송했다. 사실 이는 같은 멤버 길의 음주운전 사태에 대한 반성의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나타난 우리사회의 '원칙'을 등한시 하는 태도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조차 예능의 이름을 빌려 '정치'의 영역이 그러한 우리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르게 알고, 그것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 , 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너무 쉽게 민주주의를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무기라고 말한다. 무기는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효과적인 평화유지 및 안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반면,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단테의 신곡에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 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란 말이 있다. 여기서 중립이란 도덕적 위기의 사회에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무심하거나 외면하는 자들을 뜻한다. 또 플라톤 역시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정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훌륭한 도구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정치영역을 혐오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정치영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그것이 건전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최근 세월호 관련하여 교통사고 사망자와 희생자 수를 비교하는 것으로 논란이 되었던 KBS 보도국장이 사임하면서 여권에서의 언론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책에서도 가장 우려하는 것 중에한 권력이 입법, 행정, 언론을 장악하면 견제의 기능을 상실하며, 이것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위의 기사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런 의혹이 제기 될 만큼 공영방송 보도의 질적인 하락이 있어왔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로 인해 신뢰성까지 잃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정말 이 시대에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정말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조차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문제점이 제기가 된다는 것은, 민중의 바람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말 구태의연한 위정자들의 행태가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이지, 뭐라도 해야 할 노릇이다.

 

글이 길었다. 정리하면서 <뭐라도 합시다>는 사회의 전반적이고 개괄적인 부분을 짜임새 있고 읽기 쉽게 다루고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특정 개인의 성향이 은연중에 반영될 수도 있는 단점도 존재한다는 말은 해야할 것 같다. 따라서 이 책을 접할 때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 책을 읽을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좋다. 그 목표에 충실하면 책의 장점을 흡수하여 민주주의와 이 사회를 보다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나아가 자신만의 생각을 형성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든지 양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인 줄을 알면서도 행동하면 무서우니까, 시끄러우니까, 손해 보니까 회피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국민의 태도 때문에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죄 없이 세상을 뜨고 여러 가지 수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주의를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 양심에 합당한 일입니까. (중략)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 안하면 됩니다.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면 힘이 커집니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됩니다. 하려고 하면 너무도 많습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는 길도 있습니다. 탄압을 해도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맙니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치면 악이 승리합니다. 투쟁에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비폭력 투쟁을 해야 합니다. 많은 국민들을 동원하되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6.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김대중

 

우리 보수의 현주소는 전성기가 아니라 위기에 가깝다. 보수의 어젠다는 산업화, 선진화, 자유화보다도 더 후퇴하고 있다. 낡은 보수다. 지금 우리나라의 보수는보수가 아니라수구에 가깝다. 그들은 스스로 정통에 가깝게 되고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지금 보수는 업그레이드가 아닌 다운그레이드 되고 있다. 이런 낡은 가치관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중략) 보수의 재구성은 보수에게도, 대한민국의 미래에도 중요하다. 반공주의, 지역주의,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보수, 자신만의 어젠다를 제시하는 개혁적 보수가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면 대한민국 사회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내부를 향한 바른 말과 쓴소리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담론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는 단 한 명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라는 게 혼자서 다 할 수 없는 게 이치다. 그래서 좋은 리더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2인자는 더 중요하다. (중략)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에는군주의 성패는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온다. 1인자는 좋은 참모를 볼 줄 아는 눈, 知人之鑑(지인지감)만 있으면 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2인자의 중요성은 크다. 1인자에게 그 다음으로 필요한 능력은설득력이다. (중략) 리더는 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더 중요하다. 건설적인 대안을 얻기 위해서라도 참모의 리더십, 더 넓게는 어드바이스 시스템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가난한 홍길동이 자기 삶을 바꾸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개미처럼 일해서 열심히 부를 축적하는 것, 아메리칸 드림 방식이다. 자기계발서가 주목 받던 시기는 바로 그런 시대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러한 시대에도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였을 뿐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계층 간의 이동은 어려워진다.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져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볼 수 없다. (중략) 요즘은 인문사회 서적이 부상하고 있다. 개인의 실패에 대한 문제를 사회구조 속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유러피안 드림이다. 그런 사회를 꿈꾼다면 경제와 정치의 긴장관계는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차원에서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정치 시스템을 이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1 1표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1 1표의 시스템을 가진다. 쉽게 말해 정치는 다수의 사람들이 모일수록 자기의사를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1 1표의 틀에서의 다수의 뜻은 1 1표의 사회를 견제할 수 있다. 정치가 제도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보통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합법적이고도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가 효용을 나타내려면 유권자들이 선명하고도 차별적인 대안을 두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제 아무리 현자라도 언제나 옳은 사람은 없다. 설사 그가 옳다고 할지라도 다수가 뜻을 모아 살아가는 사회라면 그 옳음을 강요할 수 없다. 대통령을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옳고 그름의 판정권을 허용하지 않은 게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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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바쁜 일상에 치여 놓치고 있었던,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것들 46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딱히 가리고 편식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심리학 서적들과 수필 글들이 독서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냥 호기심과 거창하게는 상대방을 보다 잘 이해하려는 수단으로 읽기 시작했던 심리학 책들이, 한 때의 심리학 열풍이 불어대던 시간을 지나고서 부터는 상황이 역전되어 어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혹은 유사한 위안을 느끼기 위해서 비슷한 내용의 심리학 서적들에 계속해서 손이 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위안의 말들이 전혀 위안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위안의 말들이 오히려 결국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내면에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면서부터, 전형적인 심리학 책들은 멀리하게 되었다. 그 대신 심리학 서적들이 해주던 역할을 이제는 수필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어떤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의 일상과 생각을 담은, 그래서 덤덤하게 써내려가지만 힘이 있는 그런 글들을 좋아한다.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은 그런 위로와 덤덤함의 적절한 경계에 있는 책이다. 우연히 길을 가다 깨끗한 중고서적이 있어 구매한 책 치고는 행운에 가까울 정도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도시의 삶'이라는 것에 특유의 관찰을 통해 생각을 이끌어낸다. 도시의 삶이라는게 별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밥먹기, 이사하기, 택배받기, 대화하기 등의 46가지의 일상적인 도시의 삶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덤덤하지만 진심이 담긴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것 같다.

 

책에서 다루는 많은 일상 생활들. 그 유사한 상황과 생각들을 나 역시 도시 생활을 통해 겪어왔고, 또 지금도 겪고있다. 9년 전 대학 진학의 문제로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한 시기 이후로 나에게 '도시'란 곧 '서울'을 뜻하는 말처럼 되어버렸다. 대구도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서울과는 다른 느낌이 있으니까. 반지하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해서, 옥탑방도 전전하면서 폭설에 문이 열리지 않는 경험도 해보고 이런저런 가난한 젊은 시절을 겪었다. 이천원으로 일주일을 버텨본 적도 있고, 지나치게 화려한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이 마음을 갑갑하게 짓눌러 답답함을 호소하며 무작정 강원도로, 그리고 다시 도보로 부산까지 여행을 다닌 시절도 있었다. 여전히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은 적응이 된 것일까. 다행히 예전처럼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은 조금 덜한 것이 사실이다. 아니, 사실은 적응이 되었다기 보다는 시간들과 경험을 통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또 새로운 도시의 벽에 부딪치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의 진통을 겪는 것을 반복하는건 어쩔 수 없으리라. 그 또한 아직 젊기 때문이라 생각하자.

 

결국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그 사실은, 책에서 말하는 것과 공교롭게도 맞닿아있다.

냉정한 도시의 삶에 지치고 외로운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이지만,

결국은 문제는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임을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윌리엄 포트너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좋은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관찰', 그리고 '상상력'이라고. 우리는 삶에 지칠 때마다 휴식이나 위안을 얻기를 원하고, 때론 그런 삶의 아름다움을 문학과 다른 책들에게서 찾기도 한다. 정말 문학에 위로의 기능이 있다면, 작가에게는 그러한 사람들의 기대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세가지의 능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삶이 꿈꾸는 문학마냥 아름답게 전개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인생의 작가인 본인만의 태도와 관찰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하는 것은 때론 멀리서, 때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시각이 아닐까.

 

"엄마, 아부지가 이런 거나 주지 뭘 해 주겠냐. 쌀 걱정은 말고 열심히 살거라." 

나는 안다. 엄마가 표현하는 '이런거나'의 무게를. 과연 이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불안한 청춘의 날을 통과하는 동안, 왜 사회생활을 집벌이나 옷벌이라 하지 않고 밥벌이라고 부르는지 알게 된 터였다. 밥벌이의 무게만큼이나 엄마의 상자들은 태산의 무게로 나를 이 지상에 붙들어 주었다.

시골의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묶었던 끈은 칼이나 가위로 싹둑 자르지 말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더라도 손으로 풀라고 이르셨다. 그것은 아버지가 세상과 삶을 대하는 자세에 다름 아니었으며, 매사에 정성을 들이라는 산 가르침이기도 했다. (중략) 결국 인생은 인내심과 정성을 얼마나 쏟느냐의 문제임을 아버지는 말없이 가르쳐 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 『택배 받기 : 내가 먹어치운 상자들이여』

그날 나는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 질문을 받았다. "그 동안 어떤 글을 써 왔죠?" 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라는 질문을. 비슷한 단어들의 조합인데도 두 질문이 너무나 다른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쪽이 과거와 성취 중심이라면 다른 한쪽은 미래와 기대가 담겨 있다. (중략) 그날 나는 최 선생님을 통해 인생에 중요한 갈림길이 될 만한 '결정적 순간'이 존재한다는 오해를 풀었다.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했다.

『면접 보기 : 면접관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

모르는 사람 일에 선뜻 나서기도 어렵거니와 두 번이나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걸 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으리라. 남자는 술에 취해서도 예의 바른 젊은이가 아니라 부당한 실존에 항거하는 외로운 병사 같았다.  (중략) 저 남자는 참 외롭게 살겠구나, 싶었다.

한 사람의 존재가 마음속에서 폭발력을 발휘하며 각인되는 순간 세상은 한없이 낯설면서 신비로워진다. 그런데 나는 생각할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답하고 말았다. "괜찮아요. 됐어요." (중략) "넌 '됐다'라는 말을 자주 쓰더라. 상대의 호의를 잘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봐. 잘 받는 사람이 잘 줄 수도 있는 거야." 

『호의 받아들이기 : 잘 받고 잘 주는 법을 배우기까지』

"어느 날은 화장실을 밀대 걸레로 닦는데 손에 힘이 팍팍 들어가더라고요. 정말 미친 듯이 닦았어요. 구석구석 빈틈없이, 눈에서 불이 날 정도로. 어찌나 그 일에 열중했는지 나중에는 눈물이 나더군요. 그거 알아요? 정말 뭔가에 정신을 쏟으면 눈물이 나는거? "

 

나는 B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몰입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중략) 초라한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물 나도록 힘이 솟게 하는 뭔가를 찾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었을 뿐이다.

『일하기 : 일에 관한 지극히 소박한 진실』

"널 꼭 한 번 이 집에 데려와서 삼계탕을 먹이고 싶었어."

"왜?"
"내가 먹어 본 삼계탕 중에 가장 맛있었거든."

그랬다. 그건 한 끼니의 식사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가둬두고 괴롭혔던 것들을 풀어주는 제의같은 것이었다. 나보다 먼저 그 집 삼계탕을 맛보고 언젠가 한 번 나를 데려와 먹여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맞은 편에 앉아 있어서, 내 고단한 여름은 치유 받을 수 있었다.

『도시에서 사랑하기 : 천국에서 미리 가불한 시간』

밤하늘에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약 3천5백 개 있대요. 그런데 도시에서는 잘해야 50개 정도밖에 못 봐요. 꼭 은하수나 별을 보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어둠이 좀 더 어둠다워서 밤에 좀 푹 잤으면 좋겠어서요. 전 유난히 잠에 약해서 푹 자지 못한 날이면 괜히 비관적이 되곤 해요. 인류 평화가 여기서부터 깨지기 시작하는 거에요.

『도시산책1 : 밤이 더 어두웠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음력 설날이다.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타향으로 떠났다. 그렇다. 이제는 타향이 돼 버린 고향으로 간 것이다. 일 년에 서너 차례 들를 뿐인 곳을 왜 굳이 고향이라고 할까. 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을 왜 타향이라고 못 박는가. 고향과 타향의 역전된 이 역설이야말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주는 요약문 같다. (중략)

 

"일부러 내 방까지 찾아왔는데, 왜 선뜻 문을 열어 맞아들이지 않았을까.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종종 그런게 죄가 아닐까 싶어."

 

어찌 D뿐이랴. 서로의 불모, 불구를 인식하고도 모른 척 지나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다 서로 어긋나서 생긴 부서질 것 같은 고통만이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 일 없이 헤어졌다는 것. 그림자 끝자락도 겹쳐 본 일이 없다는 것, 그 역시 막막함이다.

- 『명절 보내기 : 고향과 타향 사이』

누구나 인생의 한 시절은 싸움닭처럼 격렬하게 세상과 맞서는 시기가 있다. 화살의 방향이 외부로 향하든, 내부로 향하든 상처를 받는다는점은 같다. 상처 받지 않고서야 약을 찾을 일도 없다. (중략) 그때는 불타는 세상의 화염에 화상을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야말로 그 불꽃을 키우는 기름의 일부였음을 이제는 안다. 당신이 옳았고, 내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옳았고, 당신이 틀렸다는 말도 아니다. 애초부터 옳고 그름은 없었다. 그저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하는 감정에 따라 혼자만의 법정에서의 유죄, 무죄를 따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나는 편안해졌다,고 감히 말하진 못한다. 다만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부분에 약하고 강한지, 무엇에 가슴 뛰고 좌절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세요."

『타인 이해하기 : 사람 때문에 마음이 다칠 때』

도시에 처음 입성하던 날, 봄기운을 머금은 비가 내렸다. 비슷한 지방 출신인데다 비슷하게 가난한 친구와 보증금과 월세를 합쳐 방을 얻기로 한다. 두 젊은이는 창조적인 삶에 부록처럼 따라 붙는 세 가지, 즉 젊음과 가난, 고독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도시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가는 동네가 정해져 있다. 두 사람은 봉천동을 택한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가장 서러움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제 한 몸 누울 자리 마련하러 돌아다닐 때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집값은 물가를 웃돌아 올라 있다. 게다가 부동산에서는 늘 이편에서 말한 조건보다 한 단계 높은 곳을 보여준다.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 집을 보면 자신의 예산에 맞는 집은 단번에 추레한 오막살이로 추락하고 만다.

'저렇게 집이 많은데 내가 들어갈 집이 없다니...'

 

자발적 빈곤은 한없이 아름다운 말이지만 해가 갈수록 '자발적'이 맞는지 자신할 수 없다. 도시가 추구하는 욕망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자발적' 이라는 청렴한 수식어는 곧바로 무능으로 대치된다. 젊은이의 눈에는 시대의 우울이 담긴다. 다른사람들의 속도에 허겁지겁 따라가며 살다가는 인생은 이미 소모되고, 그 대가로 집 한 채가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데이빗 소로우는 한 인간이 평생을 걸쳐 자세하기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은 20킬로미터 이내라고 했다.

인간에게 집이란 무엇이었던가. 인간이 집을 부드러운 기운으로 소유하고 가꿨던 시대에는 집 한 채 장만하는 일이 이처럼 살벌한 전쟁이 되진 않았다. 집의 노예로 사는 시대란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런데도 집이 없는 사람에게 적대적인 이 도시를 왜 떠나지 못할까.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대도 생존의 두려움과 탐욕, 문화생활과 활기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욕망의 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젊은이의 원죄요, 정직한 초상이다.

『내 집 마련하기 : 집의 노예로 사는 시대』

여행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는 언제일까. 내 경험으론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과 생활은 연애와 결혼의 차이 같다고. 여행이었기에 우리는 언뜻 새로운 세상을 보았거나 봤다고 생각한다.

『공항 가기 : 여행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

엄마가 말했다.

"해가 지면 그 날 하루는 무사히 보낸거다. 엄마, 아버지도 사는 게 무섭던 때가 있었단다. 그래도 서산으로 해만 꼴딱 넘어가면 안심을 했느니라. 아, 오늘도 무사히 넘겼구나 하고. 그러니 해 넘어갈 때까지만 잘 버텨라. 그러면 다 괜찮다." 그 밤에 엄마가 속으로만 삭인 뒷말이 있었다. '그러다 새벽이 오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게 몸서리쳐지게 무서웠단다.' (중략)

"엄마! 이 넓은 콩밭을 언제 다 맨대요?"

그때 엄마가 던진 한마디. "야야, 눈이 게으른 거란다."

해가지면 안도하고 새벽이오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겁났던 시간. 그런 세월을 살면서 알아차린 것이다. 게으른 눈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의 눈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서 해야 할 일 전부를,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겁먹기 쉽다는 것을. 엄마는 말했다. 오직 지금 내딛는 한걸음, 손에 잡히는 잡초 하나부터 시작하면 어느새 넓은 콩밭은 말끔해진다고. 반드시 끝이 있다고.

『인생 배우기 : 엄마가 말했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귀는 아무리 낮은 소리라도 다 알아듣는다 - 셰익스피어

도시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금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됐는가. 잘 듣고 있는가. 과거에 얽매인 기억을 벗어 두고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오롯이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는가. 내가 만나는 이 사람은 얼마나 오래된 지혜요, 고전일까를.

『대화 나누기 : 오늘 처음 만난 것처럼 듣는다면』

살아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이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일용직 신세였다. 비정규직이었다. 내일 몫까지 미리 쌓아두기 힘든 것, 그게 행복이었다.
- 『행복해지기 : 하루 벌어 하루 살기』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갖고 싶은 게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해도. 사랑도 이와 같다. 애당초 손바닥은 깨물기 좋게 생기지 않았다. 내 손바닥도 깨물지 못하거늘 상대의 손바닥이야 말해 뭣하랴. 전쟁 같은 사랑이 지난 뒤에야 손바닥과 손바닥은 서로 마주 잡기 좋게 생겼다는 걸 깨닫는다.
- 『서로 매혹되기 : 사랑의 호황기와 불황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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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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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조금은 힘을빼고 가볍게 바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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