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은 중증 환자들과 전문가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 괜찮은척하는 사람들,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경계를 서성이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일상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사람들, 어쩌면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아직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많이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 아픔을 표현하는일 자체가 두려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들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대면을 위해서는 일단 상처를 숨기기보다는 나 자신에게라도표현해야 한다. 상처가 부메랑이 돼서 내 뒤통수를 치기 전에 내가먼저 상처와 대면해서 싸워야 한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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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회복탄력성과 내적 자원을 맹렬하게 키워내다 보니 이제는 예전처럼 아프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예전보다 더 심한 말을 들어도 미소로 넘어가기도 하고, 농담으로 받아넘기기도 한다. 화를내는 나, 분노하는 나로부터 멀어지려는 연습을 한다. 화는 화를 부를 뿐, 화풀이를 한다고 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노를 쟁여놓은 나, 억울함으로 가득 채워진 나, 내 분노를 풀 대상을찾는 나를 멀리 해야만 분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아는 나, 화에 사로잡히지 않는 나, 차분하게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자꾸 오해를 한다.  - P18

우리는 항상 그렇게 위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아래로 성장해야 한다. 위로 성장하는 것이 성공이나 경쟁을 통해서 가능한 에고go 의 확장이라면, 아래로 성장하는 것은 내면의 깊이가 풍요로워지는 것, 즉 셀프self의 심화이다. 우리가 삶의 보람과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바로 에고의 과도한 성장이 아니라 셀프의 비옥함이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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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진은 갓난아기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진 뒤에야 아이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이를 유심히 보고 싶은마음, 다음 표정과 다음 행동을 신기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마음, 찡그린 얼굴을 가엾고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있는 마음, 관대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 인내심…… 모든 게 그 간격 이후에야 왔다. 한영진의 모성은, 그걸 부르는 더 적절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언젠가 한영진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타고난 것이 아니고 그 간격과 관계에서 학습되고 형성되었다. 그건 만들어졌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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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 말을 들으면 약간 얹힌 기분이 들었다. 밥을 먹거나물건을 얻거나 대접을 받은 것은 나인데, 혹여 가게 주인에게는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정해진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감사하다는 말까지 들어야 한다니. 그래서 혹여 과도한 친절을 강요하는 현대사회의 병폐가 이 말로 전이되었거나,
우리가 무의미한 관용어로 일상의 빈번한 거래를 마무리짓고있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 P176

버스가 정차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평범한 일상의 개수가 너무 많아 눈물이 났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 들어가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 버스는 주행하며 덜컹거렸다. 머릿속이 아득한 공간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버스는 무엇인가를 평범하게 밟아내며 나아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평범하게 같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평범한차바퀴, 평범한 선량함, 평범한 슬픔, 그리고 평범하게 우리가밟는 것들.....… 나는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매일같이 바꾸어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았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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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오래된 친구들 중 작가는 없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일상에서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친구인가,
내가 그들에게 친구이기만을 강요하지 않았나, 돌이켜보게 됐다. 그러고 보면 나는 별로 좋은 친구는 아니었다. 나 역시 그들이 외로울때 곁에 있지 않았고 그럴 여지를 주지도 않았다. 카카오톡의 친구목록을 넘기는 외롭고 절박한 순간에 나의 이름도 가볍게 화면에서멀어졌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나의 모든 것‘을 써 나가는 존재다. 누군가가 그것을 나의 앞에 가져오는 여정은 아주 길고 힘들고 무엇보다도 외롭다.  - P88

책임지지 못할 일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실 나는 그게 ‘시작‘ 인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백지에 별생각 없이 점 하나를 찍고 말때, 누군가는 그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어떤 긴 선을 그리려고 한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알았어야 했다.


작은 기대일지라도 번번이 좌절될 때 조금씩 바스러지는 마음에 대해,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받게 되는 상처에 대해 나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M의 아픔은 다시 나의 아픔이 되었다.  - P95

마음을 다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친구란 그저 매 시절 유행했던 대중가요 같은 거라는 사실을, 유행할 때는 질리도록 듣고 흥얼거리고 떼 지어 부르다가도 유행이 바뀌면 시들어 버리는 그런, 오래 들은 카세트테이프처럼 느슨해지는 그런, 세월이 흐른 후에 소주 한잔 들어가면 이따금 생각나는 게 전부인 그런,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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