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사랑 - 우리가 알아야 할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
다이앤 애커먼 지음, 송희경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사랑은 복잡하다. 도대체 사랑이란 뭔가 정확히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사랑에 관한 책은 많고도 많다. <천개의 사랑>을 집어든 것은 목차 때문이었는데, 무척이나 다양한 항목을 다루고 있어서 끌렸다. 게다가 부제를 보라. "사랑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고 하지 않은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접근을 한 권의 책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게 <천 개의 사랑>의 장점이다. 그러나 다양한 항목을 다루는 것은, 다시 말해서 깊이있고 세부적으로 파고들지 못한다는 소리다. 사랑에 관한 인문학 서적을 몇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천개의 사랑>에 그다지 새로운 정보가 있지 않음을 알 것이다. 저자 다이앤 애커먼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는 편안하고 또 재미있지만, 그 안에 담긴 게 내가 원하던 세밀하고 깊이있는 정보가 아니라는 게 아쉽다.

  하지만 '사랑을 잃어버린' 우간다의 이크 족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사랑이라는 것은 풍요 속에서만 자랄 수 있는 건가?   

2009. 10. 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산의 마음 - 정약용 산문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1
정약용 지음, 박혜숙 엮어옮김 / 돌베개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산 정약용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국사 교과서에서다. 조선 후기, 목민심서를 비롯한 많은 책을 저술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는 것 이외에 아는 것이 없었다. 교과서에서는 그 정도만 알면 되었으니까.

  그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 하면 나는 늘 묵묵히 글을 쓰는 강한 학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산 선생은 흔들림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상관하지 않고 꿋꿋이 헤쳐 나가는 바위 같은 이미지였다. 그래서 더욱 다산 선생에 관한 글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어느 정도 잘난 사람을 보면 흉내를 내 볼 엄두라도 나지만, 어마어마하게 잘난 사람이라면 지레 포기하고서 "저 사람은 나와 종자가 달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는 그런 심보였달까.

  <다산의 마음>은 제목답게, 다산 정약용 선생의 여러 모습을 담고 있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 학자의 모습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한 것은 어린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 관직을 잃고 긴 시간 유배당하면서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못하고 그래서 편지로 훈계를 할 수 밖에 없던 아버지의 모습, 벽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보면서 즐거워하다가 급기야 친구들까지 초대해 국화 그림자를 보여주는 소탈한 모습, 그리고 남이 한 이야기 하나를 허투로 듣지 않고 귀기울여 듣고 생각하는 학생의 모습까지 다양했다. 우습게도 <다산의 마음>을 읽는 내내 한 것은, "이 분도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200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0년 전의 사람인 다산 선생이 쓴 글에 내가 이렇게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생각컨대, 다산 선생은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물을 깊게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도 같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무척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있었고, 괴로우면 괴롭다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있었다. 가만히 책을 덮고서 생각했다. 어떤 사람의 업적을 보고 존경하기는 쉽지만, 어떤 사람의 인품을 보고 감동하기는 그보다 어렵다. 그것도 실제로 본 것이 아니라 활자를 통해 접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으로 200년 전의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간 느낌을 받다니 신기한 경험이다. 책을 통해서 지은이와 읽은이가 소통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2009. 9. 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속 오컬트 X-파일
멀더 이한우 지음 / 나무발전소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공포영화다. 무서운 게 쥐약인 나는 이 빠진 그릇처럼 공포영화가 없는 여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 왜? 무서운 얘기, 무서운 소설, 무서운 영화를 다 쏙쏙 빠져나간다 할지라도 공포영화의 포스터와 공포영화의 예고편과 공포영화를 소개하는 TV프로그램까지 모두 빠져나가기란 힘드니까.

  뭉뚱그려서 공포영화라고 하지만 알고보면 이쪽도 꽤나 복잡한 모양이다(일단 이 쪽에 적용되는 용어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고어? 스플렉터? 슬래셔? 스릴러...는 좀 틀린가). 갈래갈래 나뉘는 공포영화 중에서 내가 특히 쥐약인 것은 소위 '귀신'이 개입된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간이 좀 커졌다고 해도 귀신 나타나는 영화는 못 본다. 공포라는 분야에 호기심이 조금 생겨서 깔짝거리다가도 흠칫 물러서게 된다.

  이것이 <영화 속 오컬트 X-파일>을 집어들게 된 이유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고 했는데, 솔직히 백 번을 다 이길 자신은 없고 백 번에 세 번만 이겨도 횡재한 거다. 더구나 영화를 예로 들었으니 심심하지는 않을 테고, 단순하게 공포를 나열한 게 아니라 분석까지 했다니 기대가 빵빵하게 차오를 만 하다. 


  이 책의 장점 : 

  1. <출발 비디오 여행>을 읽는 듯한 재치 넘치는 저자의 입담. 읽는 내내 딱딱하거나 축 늘어지지 않고,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강점, 내용, 캐릭터, 배경 등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2. 영화가 소재 별, 시간 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각 소재가 어떻게 영화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공포영화의 흐름을 잡는다고 해야 할까? 유명한 작품도 있고 들어본 작품도 있지만, 잘 몰랐던 작품도 심지어 졸작인 작품까지 소개되어 있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를 알면 얼추 공포영화 봤겠다고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서양의 소재, 서양의 영화만 다루지 않고 한국의 것도 집어넣었다.

  4. 영화를 쭉 훑은 뒤에 그에 관련된 오컬트 지식을 정리해 놓았다. 이쪽에 일자무식한 사람이 보기에 꽤 흥미롭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일단, 아무리 '구미호'하면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라지만, 영화를 다루는 책에서 드라마가 나온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경계가 확 흐려진 느낌이랄까. 이런 부분은 또 있다. 늑대인간을 다루는 부분에서 갑자기 동화 '빨간 망토'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야기를 '늑대'가 아니라 동화의 잔혹성 쪽으로 풀어내서 어안이 벙벙했다. 가끔 발을 삐끗한 (내가 발견한 것은 이 두 곳 정돈데) 것을 빼면 전체적으로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공포영화와 공포 현상에 대해서 알 수도 있었고 말이다. 앞으로 공포영화를 본다면 무서움과 함께 그 배경에 대한 호기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 같다.

  아, 그런데 공포에 대해서 모두 분석을 하는 게 아니다. '오컬트'가 등장하는 공포영화가 대상이라고 머릿속에 미리 못을 쾅쾅 박아놔야 한다.

2009. 9. 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15잔
김리나.차광호.박지인.남지우 지음 / 지상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커피를 마시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15잔>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나의 커피 역사'였다. (아, 뭘 마시지, 생각하기 귀찮아, 할 때면 으레 등장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만만한 음료니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커피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심지어 어떤 카페에서 '커피류'는 팔지 않는다고 하자 항의하는 손님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곳은 홍차전문카페였다.)

  나의 커피 역사를 간단히 서술해보자면 이렇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인스턴트커피를 2:2:2 비율로 타드실 때 나는 옆에서 프리마를 타마셨다. 커피가 필수라는 수능생 시절에는 커피를 조금 마시기도 했는데 카페인이 요상하게 작용했는지 마시고 곧잘 자 버렸다. 대학에 들어가자 사람들과 어울리다 카페를 들락거리게 됐는데 쓴 맛이 너무 싫어서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카페모카를 주로 시켜먹었다. 생크림이 올라가고 양이 많다는 것 이외에 자판기 인스턴트 커피와 뭐가 다른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원두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블랜드커피, 아메리카노 혹은 에스프레소로 즐기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여기서 마시는 커피와 저기서 마시는 커피 맛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안 된다. 걸음마 하는 아이가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나는 서서히 커피에 빠져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15잔>은 '커피를 통해 삶의 성공을 이끌어낸 15명의 커피인'이 들려주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히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말하기보다는 그들이 커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과 노력을 말하고 있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에서 인생이 묻어나오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에서 커피가 묻어나온다. 쭉 읽다보면 책에서 갓 내린 향긋한 커피향이 배어나올 것 같다. 15명의 커피인에게 있어서 커피는 장사도구가 아닌 인생의 동반자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기는 커녕, 스스로 커피를 내려본 적도 없는 내가 이 책에서 공감을 느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더구나 읽는 내내 짧디 짧은 나의 커피 역사가 알알이 떠올랐다는 것도 신기하다. 앞으로 내가 얼마만큼 더 커피를 즐기게 될까? 책의 마지막장을 넘긴 순간에는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근질했다. 불행히도 한밤중이라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이 책을 따라 커피 순례라도 가 봐야겠다. 무척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이다. 



2009. 9. 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공 창비시선 292
고은 지음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쓰는 사람의 눈과 소설을 쓰는 사람의 눈은 다르다는 소리를 언뜻 들은 적이 있다. 눈 뿐이랴, 뇌도 다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누군가의 잡담이었을 거다. 나는 그 때,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시보다는 소설을 선호한다. 시는 한 번 읽어서 잘 와닿지 않는다. 몇 번 곱씹어야 알 듯 말 듯, 페이지 한 장이 몇 번이고 읽는데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나처럼 성격 급한 사람에게는 일종의 고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시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들 이외에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시는 시이고 시는 결코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일종의 붉은 딱지를 시에 붙여놓고 있었다.

  고은 시인의 <허공>은 시집이다. 시집이니 그 안에는 시가 담겨있어야 하는데, 어쩐지 나는 여기에서 여행담을 읽고 푸념이 담긴 수필을 읽고 그리고 신문에나 실릴 법한 사설과 또 두꺼운 역사책에서나 나올 법한 과거의 이야기를 읽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혼잣말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에 느껴지는 묵직함과 편안함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허공>을 시집이 아니라 마치 옛날 이야기 모음 혹은 누군가의 일기를 몰래 보는 마냥 후딱 읽어치워 버렸다.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왠지 졸음이 오기도 하고 정신이 번쩍 깨이기도 했다.

  어린애가 나이 지긋한 어르신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여도 그럭저럭 느낄 수는 있는 것처럼, 나의 시 읽기는 딱 고만한 수준인 것 같다. 책장을 후딱 넘기고 싶어서 안달이 나면 넘겨버리고, 그러다가 앞으로 가서 다시 읽으며 히죽대고, 그리고 뭐 이해 못하면 말지 하는 기분으로 헤헤거리다가도 이해못함이 미안해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를 쓰는 사람의 눈과 소설을 쓰는 사람의 눈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르고서야, 시에서 그렇게 다양한 장르가 흘러 흘러 와 닿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허공>에 있는 시를 하나하나 곱씹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지만, 꼭 다 이해해야만 그것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09. 8. 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