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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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고전이라는 꼬리표, 그리고 '오만과 편견'이라는 어려운 단어들이 나열된 제목.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은 사실 재미있는 연애물이다. 현대 드라마로 옮겨도 손색 없는 신데렐라 물(일단 베넷 가의 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길가에 나앉을지도 모르는 처지고, 다아시 씨는 부자니까)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베넷과 다아시 씨가 만나서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라고 한 줄 정리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을 사람들이 긴 시간동안 읽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로맨스 소설로 보고 읽어도 무리가 없긴 하지만, 이 책은 19세기 당시의 분위기를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더러, 19세기를 넘어 21세기에 읽어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생생한 인간의 성향('오만'과 '편견'을 비롯하여)을 보여준다. 

  어렵게 읽으려면 또 어렵게 읽을 수 있을 테지만, 나는 가볍게 읽었다. 캐릭터가 살아있어 읽을 때 즐거웠다. 콜린스 씨, 베넷 부인, 리디아, 위컴 등의 희화화된 캐릭터는 정말 유쾌하다. 읽다보면 실소를 흘리면서도 어딘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옆에도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다. 혹시 나일 지도 모르고. 실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보다도 그들을 보는 것이 더 신났다.

  그 중에서 세상에 대해 줄곧 냉소적인 시선을 보이는 베넷 씨가 마음에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사위는 위컴이 되겠지만."이나, "그러나 나라면 조카 편에 설 겁니다. 그쪽이 더 많이 가지고 있어요."라는 위트넘치는 대사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가끔씩 다시 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도 봤는데, 소설의 매력을 다 담지는 못한 것 같다. BBC에서 만든 드라마가 있다고 하는데 이 쪽은 아직 보지 못했다.

 

2008.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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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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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로가 왜 143.5센티미터 혹은 4피트 8과 2분의 1인지 알려준 소설. 말의 엉덩이 둘이 나란히 놓였을 때 4피트 8과 2분의 1이 되기 때문에 로마 시대의 도로가 그 넓이가 되었고 훗날 말과는 아무 상관 없는 선로도 관습에 따라 143.5센티미터 혹은 4피트 8과 2분의 1이 되었다고 한다. 

  선로의 길이에 대한 이야기 외에 <오 자히르>에서 얻은 것이 뭐냐면 대답을 못하겠다. 여러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의미있는 질문과 대답을 만들고 있지만, 불행히도 나는 이 책에 몰입하기가 퍽 어려웠다. 읽으며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자아성찰이 중요하다는 게 주제였을까. 어쨌든 자아성찰은 중요하다. 알아야 뭔가를 시작하는 법이니까. 

 

2008.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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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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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비닛 안에 무엇이 있을까? 이것저것 넣을 수 있겠지만 (뉴스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캐비닛에 아기를 집어넣기도 한다), 보통은 보관하고 싶은 것 혹은 숨기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는 캐비닛에 대한 이미지는 이 정도다.  

  김언수가 <캐비닛>에 숨겨놓은 것은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어떤 현상들. 김언수는 익숙한 삶에 생소한 것을 집어넣는다.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혀가 도마뱀이 된 여자,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하는 사람... 어찌나 그럴 듯하고 능숙하게 뻥을 치는지, 읽으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소재는 말 그대로 '환상'적인 것들이지만, 그 소재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이야기들은 참 현실적이다. 마치, 안에는 기묘한 이야기가 담긴 파일이 넣어져 있지만, 겉은 동사무소에서 유행한 다른 철제 캐비닛과 다를 바가 없는 13호 캐비닛을 뒤집어 놓은 듯하다. 겉은 특이하지만 속은 일상적인 얘기들...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캐비닛>에는 아주 큰 단점이 있다. 마지막 부분이 황당할 정도로 급작스럽게 나타난 사건으로 급작스럽게 마무리된다. 호흡 조절에 실패했다기보다는 시간이 없어서 끝마무리를 제대로 못한 것 같다. 에피소드 연작 형식이라 마무리짓기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 책의 결말은 꽤 눈가리고 아웅 식이다. 초반부터 차근차근 복선을 끼워넣었으면 훨씬 좋은 글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것처럼, 이런 '성급한' 마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재미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덧붙임. 

 지인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 준 결과, 이 책은 사람을 탔다.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린달까;

 

2008.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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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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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책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 '대충 뒤적거려본 책',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 등으로 비독서를 구분한다. 그 중에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에서 다른 사람의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읽거나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꼭 직접 본 것 마냥, 책과 영화와 기타등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을. 

  이전에 이 책의 앞뒤를 조금 뒤적이다가 내버려뒀는데, 순서대로 읽어나가니 새로운 맥락이 생기는지 예전에 읽은 부분도 또 새롭다. 

  처음엔 서평들이 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책을 읽을 자유>이고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그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많은 얘기를 담고 있다. 내용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철학 이야기.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대로 내려버려두고 읽었다. 개인적으로 서평/영화평/번역평 쪽이 재미있었다.

  p.30. 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이다.(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 위의 글을 인용하며 저자는 독서는 즐거운 저항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나에게 다소 어려웠으나 신나게 읽어갈 수 있었던 건, 이런 저자의 기본 태도 때문인 것 같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다 읽고 생각한 것은 '깊이 읽기'의 중요성이다. '깊이 읽기'란 책과 상호작용하면서 읽는 것이다. 세상-(작가)-책-나-세상이라고 할까.
  다른 사람이 보는 세상과 교류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한층 커진다. 소설도 좋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세상은 확실히 인문학이 보여주는 세상과는 다른 듯 하다. 

  일단 완독한 데에 의의를 둔다. 

 

201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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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나라의 작가들 - 대화적 관계로 본 문학 이야기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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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친구아들(엄친아), 혹은 엄친딸(엄마친구딸)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적으로 쓰인다. 엄마-친구-아들의 의미는 단어를 분해해서 봤을 때는 알 수 없다. 엄마 친구 아들이 뭐 어쨌다는 거야? 하지만 이 단어는 모두들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경험을 토대로 발생했다. "너 성적이 이게 뭐야! 엄마 친구 아들은 이번 시험에서 백 점 받아왔다더라." "너 엄마 말 그렇게 안 듣고, 어휴. 내 친구 딸은 아주 그렇게 효녀인데 너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의 친구 아들이나 엄마의 친구 딸은 세상에서 좋은 것은 다 가지고 있는 하나의 신비한 생물이다.
 
  이 경험의 핵심에 자리잡은 것이 비교다. 비교를 당해보면 아주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비교는 나쁘기만 할까?
 
  <거울 나라의 작가들>은 작품들을 서로간에 비교하고 있다. 어떤 책을 읽으며 다른 책이 무심결에 떠오른 경험, 그 경험을 체계적으로 확장시켰다고 보면 된다. 두 책, 혹은 세 책을 한번에 늘어놓고 보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A가 A'가 되고 A''가 되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더니 한국 문학에서도 흥미로운 공통점을 가진 책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것은 시를 소설로(사평역에서- 사평역) 혹은 소설을 다른 소설로 다시 쓰는 것이기도 하고(김연실전- 신 김연실전),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발견되는 놀랍도록 비슷한 모티브이기도 하고(낭만파 남편의 편지-정체성), 한국 문학에서 비슷한 구도를 보이는 세 소설이기도 하고(아우를 위하여-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우상의 눈물),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패러디(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기도 하고, 고전의 신선한 해석(제망매/찬 기 파랑/서유기, 삼국유사-신라의 푸른 길)이기도 하며, 고전에 가하는 비판이기도 하다(허생전-허생전을 배우는 시간-허생의 처, 심청전-달아 달아 밝은 달아-심청).
 
  <거울 나라의 작가들>이라는 제목처럼, 이들은 거울 관계에 있다. 거울은 현실을 똑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른쪽과 왼쪽을 뒤바꾸어 보여준다. 여기서 드는 이야기들도 공통점이 있지만 결코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 이것은 비슷비슷한 것이 난립하여 답보상태에 있다고 보기보다는 이러한 공통점이 오히려 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쪽이 옳은 것 같다. 이런 읽기 방법의 제시는 재미있다. 같은 책이라 해도 독서할 때 어떻게 연결하는가, 어디에 착안하는가에 따라 신선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울 나라의 작가들>은 읽는 내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나도 한 번 거울 나라의 작가를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깊이의 문제로 가면, 조금 얄팍해지지 않았나 싶다. 다시 말해서 한 작품에 대한 깊이 읽기 이후에 거울 읽기를 하지 않으면 다소 피상적인 읽기가 될 것 같다.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바로 비교에 들어가는 건, 작품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외에 다른 부분은 흐려지게 만들어 고유한 맛을 놓치게 하지 않을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모처럼 읽은 재미있는 평론서다. 
  
   


2011.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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