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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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마저 괄호 속에 갇혀있다. 룸이 아니라 [룸]이다. 겉표지를 열어 안을 보니, 안도 마찬가지다. 오렌지색 바탕에 [ROOM]이라고 제목이 적혀 있다.
 
  다섯 살이 된 잭은, 방에서 5년 간 살고 있다. 방에는 진짜 엄마가 있고, 진짜 자기가 있다. TV속에는 진짜가 아닌 것들이 나온다. 잭과 엄마는 아끼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시리얼을 세어서 먹고, 일요일마다 필요한 것을 적어 올드 닉에게 준다. 올드 닉이 올 때마다 잭은 벽장 속에서 눈을 꼭 감고 숫자를 센다. 잭은 자기가 갇혀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바깥 세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어느 날 바깥 세상에 진짜가 있다고 말하면서, 잭에게 탈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잭은 요구하는 대로 탈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잭과 엄마는 방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끝?
 
  아니다. [룸]은 잭의 대탈주를 기점으로 정확히 반으로 나뉜다. 방 밖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잭과 엄마는 아직 갇혀 있다]. 잭은 바깥 세상에 도리어 갇혀버린 느낌이 들어 엄마와 단 둘이 있을 수 있었던 방이 그립고, 엄마는 자신을 포기하고 숨죽여 살아야 했던 방 안의 기억에 갇혀 있다. 그들이 진짜로 자유로워지는 장면은, 이 책의 마지막에서야 나온다. 
 

  "안녕, 방아."
  나는 천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인사해. 안녕, 방아."
  엄마는 소리 없이 말했다. 나는 한 번 더 돌아보았다. 방은 어떤 일이 일어났던 구멍, 분화구 같았다. 우리는 문밖으로 나갔다. 
                                                                                             ( [룸] 555p에서 인용 )
  
  
  이 책은 특별한 사건들이 엮여 숨막히게 굴러가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이라고는 잭의 대탈주 정도인데, 이 탈주는 짧게 끝난다. 책이 대부분의 내용에서는 방 안에서의 잭과 엄마, 그리고 방 밖에서의 잭과 엄마의 모습이 비춰진다. 하지만 읽으면서 굉장히 숨가쁜 느낌이 드는데, 그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잭에게 가지는 감정은 상당히 묘하다. 둘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엄마는 잭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인' 잭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잭이 "너는 네 것"이라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아니야, 나는 내 게 아니라 엄마 거야."라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특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다른 사람과 인터뷰하며 18세 때 낙태한 경험이 있으나 그 경험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부분을 보면, 낙태한 아기와 잭(그리고 사망한 잭의 누나)의 차이가 뭘까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방 안에서 잭을 보며 그래도 살아갈 기운을 얻은 건 아닐까? 얘 때문에 살아야 해, 얘 때문에 이 사람 말을 따르는 거야, 얘는 나 없이는 못 살아. 생각해보면 방 안에서 엄마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하고 온전한 자기 것은 잭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지극히 사랑했을지도.
 
  잭의 심정도 복잡하다. 바깥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게 있고, 그래서 너무나 많은 게 변해간다. 잭은 그 때마다 엄마의 썩은 이빨을 빨면서 엄마를 느낀다. 끊임없이, 엄마가 자기와 함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엄마와 둘이 있을 수 있던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감금 생활이 오히려 그립다니! 하지만 잭에게 있어 엄마와 함께 있던 그 방은 하나의 온전한 세계였다. 갇혀있는 게 아니라, 그게 그냥 전부인, 하나의 세계.
 
  뒷부분을 읽다 보면, 잭과 엄마가 방 안에서 살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서로에게 있었기 때문이지만, 바깥 세상에서는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가둬두는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의 긍정적인 변화는, 둘이 떨어져 있으면서 나왔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는 방에 돌아가고 싶다고 계속 말했던 잭은, 엄마와 떨어지고서 서서히 바깥 세상에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엄마를 데리고 방으로 가서 작별 인사를 한다. 엄마도 잭을 따라 방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7년 간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작별하는 것, 5년 간 믿고 있었던 세계를 포기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잭과 엄마는 방과 작별한 이후로도 힘들어하겠지만, 이전처럼 위태롭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범죄 그 자체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범죄가 더 끔찍하게 생각되는 [룸].
  만약에 올드 닉이 소녀를 납치해서 감금하고 아이를 낳게 한 뒤 잡혀가는, 범죄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였다면 이렇게 여러 생각이 나오지는 못했겠지.
  [룸]은 인간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은 완벽하지 않다. 잭도, 엄마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양할아버지도, 폴도, 디나도, 브론윈도, 다른 사람들도 단점이 있다. 하지만 다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그래. 하지만 복잡한 게, 세상에는 중간쯤 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단다."
  "어디쯤?"
  엄마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무엇을 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과 악 사이 어딘가에. 양쪽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
                                                                                           ( [룸] 547p.에서 인용 )

  
  
  사랑스럽다. 
  
   


2011.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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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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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상호처형제도, 일반인들이 '실버 배틀'이라고 부르는 제도가 시행된다. 한 구역 당 한 명의 노인만이 생존할 권리를 가지게 되며, 종료 시점에서 2명 이상의 노인이 살아있을 경우 cjck 요원에 의해 모두 처형당한다. 시행 기간은 30일. 노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이 책에서는 미야와키초 5초메 지구의 모습을 주로 보여주지만, 베르테 와카바다이 지구라던가 구마가야 지구의 모습도 나온다. 어떤 지구든, 그 풍경은 세 글자로 정리할 수 있다. 산지옥.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되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보여주기 때문에 노인들이 노인상호처형제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살아온 배경 같은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술방식의 특징인지,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하며 괴로워하기보다는 누가 살아남을까, 하고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게 사실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한편으로 굉장히 불편한 책이었다. 진지하게 다뤄야 할 주제, 심각한 설정을 가지고 의미없는 잔혹극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인물이나 살해장면이 꽤 희화화되어 있어,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건 이 책을 '블랙코메디'라 설명하는 말에서 납득할 수 있었지만. 책을 읽을 동안에는 코드가 안 맞는 건지, 보는 순간에는 블랙코메디라는 느낌을 못 받았다. 소재가 한층 죽어버린 느낌이다. 이 소재라면 좀 더 깊이있는 글이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 책은 책 자체에서 생각하게 만든다기보다, 기발한 설정 - 노인들이 자신이 살기 위해 서로를 죽게 하는 -  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노인은 사회에 어떤 존재인가, 사회는 노인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 나아가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합법적이라고 해도, 과연 사람을 사람이 죽이는게 타당한가? 라는 생각까지. 
  
  개인적으로 이 책과 함께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시험'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 글도 <인구조절사회>처럼 노인인구에 대한 이야기니까. 

 

  덧붙임. 

  중간에 교정이 제대로 안 되어서 띄어쓰기가 안 되어있거나 문장이 꼬이거나 오타가 나오거나 하는 부분이 몇 장 된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쓸 정도다.
 
 

2011.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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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로버트 바 지음, 이은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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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은 외젠 발몽이 활약하는 추리단편 여덟 편과,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패러디한 단편 두 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이다. 로버트 바의 이 추리단편집은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추리라는 장르를 살짝 비틀어 유쾌함을 만든달까. 거기에 프랑스 총경이 영국에 가서 탐정을 하면서 겪는 외국인으로서의 고뇌도 느껴진다(이 사람들은 왜 이러지??).
 
  추리라고 하면 일단 사람들이 죽고, 그래서 어느 정도 심각한 분위기를 깔고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외젠 발몽이 다루는 사건 중에서 살인 사건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외젠 발몽은, 말 그대로 위풍당당하다. 다른 사람이 조수에게 자신의 활약상을 말하게 시킬 때, 외젠 발몽은 자기 입으로 자신의 활약상을 말한다. 그런데 거만하다거나 아니꼽다는 생각이 안 드는게 참 묘하다. 모든 사건을 척척 해결하여 없는 범인도 만들어낼 것 같던 탐정들과는 달리, 외젠 발몽은 실수를 한다. 범인도 놓친다. 하지만 외젠 발몽은 자기가 종종 실수도 하고 범인도 놓치지만 높은 확률로 범죄자를 잡아들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자기가 범인을 놓치는 건,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기 전까지는 범인을 무죄로 추정하는 빌어먹을 영국의 법 때문이라고. 참 인간적인 탐정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는 법에 처벌받는 범인이 한 사람도 안 나온다(이런저런 이유로)!
 
  이 책을 가만히 읽다 보면, 작가의 위트에 한 번 감탄하고,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교묘하게 비튼다는 데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겉으로는 완벽한 추리소설인데, 읽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매우 다른 것이다. 나는 거기에 외젠 발몽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최대 단점이 마음이 약한 거라고 말하는 외젠 발몽. 영국인의 독특한(?) 준법정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영국에 사니까 영국인 험담은 안 하겠다고 못박아두는 외젠 발몽. =ㅂ=
 
  외젠 발몽 시리즈가 읽으면서 무척 즐거웠던 데 반해서, 셜록홈즈 패러디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패러디 특유의 과장된 어조와 원작을 반뜩 비꼰 내용이, 웃음을 유발한다기보다는 살짝 불쾌함을 줬기 때문이다(이건 개인적 취향일 거다. 웃는 사람은 엄청 웃을듯).
 
 
  그런데 말이지. <건망증 클럽>은 분명 어디선가의 단편집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어디서 읽었을까? o-<-< 기억이 안나... 
  
   


 
201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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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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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5명의 인물이 나온다. 시나코, 카와라자키, 구로사와, 교코, 도요타. 이 중에는 호감이 가는 사람도 있고 엉망인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어딘지 묘하게 동조하게 된다. 사람이라는 말에 뭉뚱그려져 있는 모습의 일부를 잘라내서 각각 한 사람씩 만들어놓은 것처럼. 사람들이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크던 작던 영향을 주고 살아가는 것처럼 이들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러시 라이프> 안에서 주고받는 영향력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커다랗지만.
 

  글 속에서 제일 안타까웠던 건 가와라자키였고, 제일 정이 간 것은 늙은 개와 다니는 실업자, 도요타였다. 이사카 코타로가 말하는 신이란 바로 이 늙은 개가 아닐까. 도요타는 엄청난 액수의 당첨금을 손에 넣었다. 만약 토요타가 도다에게 늙은 개를 줬다면 자신이 어떤 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았겠지. 소중한 것에는 개 목사리에 숨겨진 당첨된 복권처럼 보이지 않는 가치가 숨어있는 것 같다. 그렇게, 가와자라키는 도요타에게 이어졌다 싶기도 하다. 혹은 시마코와 도다의 대화에 대한 답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일까? 어떻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이란 뭘까? 돈이란 뭘까? 소중한 것이란 뭘까?
 
  각각 연관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엮이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그런 마술을 이사카 코타로는 잘 부리는 것 같다. <러시 라이프>에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릴레이하듯 바통이 연결된다. 센다이 역을 배경으로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그들이 자연히 같은 시간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어마어마한 트릭! 인물들 사이에 문득 엿보이는 연관성을 재미있어했는데 마지막에는 완전히 경악 ㅠㅠ 진 기분이야! 나는 완패했어! 천재다! 이러면서 허겁지겁 앞에 갔다 뒤로 갔다가 했지.
 
  이사카 코타로의 글을 보면, 구성이 글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때가 있는데(골든슬럼버라던가 피쉬스토리라던가), 그걸 가장 잘 보여준 것이 <러시 라이프>라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듯 엇나가는 듯, 이상한 느낌의 정체가 마지막에 밝혀졌을 때 나는 "속았다!"라고 외쳤다. 보기 좋게 넘어갔다. 이사카 코타로의 솜씨가 조금만 덜했다면 조잡해 보였을지도 모르는데 ㅠㅠ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러시 라이프>는 잘 생각해보면 우울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소한 유머가 있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삶이란 건 생각해보면 전체적으로 우울할지도 모르지만, 소소한 즐거움이 있어서 살아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도 해 보고.
 
 
p.s.
  여담이지만, 각 등장인물 얘기가 시작될 때 위에 나오는 아이콘이 몹시 귀엽다. 구로사와는 도둑, 교코는 차, 가와라자키는 토막시체, 도요타는 개와 중년. =ㅂ= 
  
 

 2010.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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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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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원의 엔진', '새크리파이스', '피쉬스토리', '포테이토칩' 네 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소설집.  <러시 라이프>와 묶여있는 단편집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왜냐하면 피쉬스토리를 뺀 세 편의 단편이, <러시 라이프>와 인물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피쉬스토리>를 먼저 읽고 <러시 라이프>를 읽어서 느낌이 덜했지만, <러시 라이프>를 읽고 <피쉬 스토리>를 읽은 사람은 보너스 트랙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네 편의 단편이 다 독특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피쉬스토리'가 제일 좋았다. 구성이 독특하다. 이런 느낌, 꽤 좋아한다. 

 

1. 동물원의 엔진 

:  한 밤 중에 동물원에 가서 놀던 남자들이 팀버 늑대무리 앞에서 자고 있는 나기사와 씨를 발견하고, 나기사와 씨에 대해서 돌아가며 추리해보는 이야기. 일상 속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나름 추리하는 거, 꽤 재밌다. 중간중간 독백이 나오는데, 이게 누구의 독백인지가 포인트. 그런데 나는 이 단편이 좀 별로라서, 자칫 잘못하면 이 단편집 읽는 걸 멈췄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팀버 늑대와 시장 암살, 나기사와 씨에 대해 별로 호기심이 들지 않아서인 것 같다. 추리물은 호기심이 생명인데!  

 

2. 새크리파이스 

 : 풍습추리물 이야기. 빈집털이 겸 탐정인 구로사와 씨가 야마다라는 사람을 찾으러 고구레 마을로 가면서 벌어지는 추리소설. 음침하다기보다는 발랄하다. 구로사와 씨도 독특하고, 고모리사마를 추리하는 것도 독특하고.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읽다보면 묘하게 범죄자가 많이 나오는데, 그 범죄자들은 인간적이고 선량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들보다 더 큰 범죄가 있잖아! 라고 말하는 느낌! 어쨌든 여기서도 선량한 범죄자(?)가 나온다. 왜지? 뭐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그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기발한 반전은 아니었다. 등장인물 때문에 읽기가 즐거웠던 소설.  

 

3. 피쉬 스토리 

 : fish story. 영어로 하면 허풍이라는 뜻이란다. 나는 이 단편이 진짜진짜 좋다. 20년 전 - 현재 - 30년 전 -10년 후 요런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얘기가 진행되고 그 사람들 사이에 아주 작은 접점만 있다. 노래 한 곡이 세상을 구하기까지, 의 이야기랄까. 보통 과거->현재->미래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이야기에 익숙하다면 색다른 느낌이 들 거다. 나는 색달랐다. 만약 이게 30년 전, 20년 전, 현재, 10년 후, 이런 구성이었다면 훨씬 재미없는 이야기가 됐겠지. 이야기 배치에 따라 이야기 자체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단편! 등장인물도 좋고 이야기도 좋다. 

  

4. 포테이토 칩 

: 그러려니 하고 읽다가 탁! 하고 느낌이 온 글. 복잡한 글은 아닌데 복잡한 마음이 되게 한다. p.272에서,

  "관둔다고?"
  "소금맛도 먹어보니까 은근히 맛있다." 오니시는 본심에서 그렇게 말한 것인데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 이마무라는 한 순간 행동을 멈추고 오니시를 말똥말똥 바라봤다.
  "거짓말 아니라니까." 오니시는 목청을 높인 다음 소금맛 봉지를 잡아당겼다. "콩소메 먹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소금도 먹어보니까 나름대로 괜찮네. 착각해줘서 고마워해야 하나."
  그래도 이마무라는 더 뚫어지게 오니시를 바라보았고, 입도 굳게 다물고 있었다.

<- 이런 부분이 있는데, 읽을 때는 그냥 넘어갔는데 마지막을 읽고 다시 보니 왜 이렇게 마음이 찡하던지. 사소한 말과 사소한 행동, 사소한 일이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시간에는 굉장히 크게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아무 설명이 없는데도 읽을 수가 있었다. 주제 면에서 <중력 삐에로>가 약간 생각나기도 했다. 실제로 <중력 삐에로>의 인물이 간접 출연하기도 했고. 
  
   


  장편과 달리 호흡이 짧은데,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맛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속 세계는 조금씩 겹쳐져 있는데(읽으면서 어디가 겹쳤는지 찾아보면 꽤 재미있다), <피쉬 스토리>는 좀 겹쳐져 있다기보다는 약간 '외전! 서비스!' 라는 느낌이어서 약간 쉬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사카 코타로의 글을 읽다보면 아,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군,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 단편집에서는 그걸 좀 늦춘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러시 라이프>를 읽고 이 단편집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독립적으로 읽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재미가 배가 될 거다. 
  
  
  
  덧붙임. 
  책 뒤에 실려 있는 '이사카 코타로 인터뷰'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2010.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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