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즘 - 철학.정치 편 -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
박민영 지음 / 청년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유리를 통과하는 햇빛은 여러가지 색깔로 빛난다. 그 색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지개의 색깔이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보라"라고 한다. 경계가 없는 세계에 경계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ISM이다.

  나는 나라는 개체로서 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에 세계는 필연적으로 주관적인 물건으로 대체 된다. ISM은 불완전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재구축하는 데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ISM은 중요하다. 하지만 ISM- 신자유주의, 매카시즘, 파시즘, 민족주의 등-에 대해 물으면 그 익숙한 용어가 무엇인지 설명할 말을 찾을 사람이 많지 않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나와 논의하고 싶거든 먼저 당신의 용어에 대해 정의를 내려 주시오." - ISM 5p에서

  무언가를 연구하거나 논의하고 싶을 때 제일 처음 필요한 것은 용어의 정의이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세상은 수많은 ISM(~주의)이 존재하는데, 대부분은 그 용어를 사용할 뿐 내용이나 역사 그리고 정의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 책은 ISM의 정의를 시도하는 책이다. 사전 형식으로 ㄱ~ㅎ 순서로 각 ISM이 나열되어 있다. 거기엔 ISM의 단순한 정의 뿐 아니라 사조, 주요 사상가, 시대적 분위기, 사상의 역사, 장점과 단점 등이 들어 있다. 그로 인해 ISM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시선에 충실해서 각 ISM을 바라본다. 서문에서 이미 그렇게 밝히고 있고, 내용에서도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다. 객관적인 척하려는 책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조심스럽다. 따라서 재미가 없다. 게다가 사실은 객관적이지도 않다. 이 글의 처음에 내가 밝혔듯이, 우리는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니까. 단순한 사실의 나열조차도 다분히 주관적이 된다. 이즘은 저자의 ISM에 관한 생각을 드러내는 동시에 나는 이 ISM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단, 이 책은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이라는 부제처럼 난잡하게 모든 ISM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다만 자주 듣는 ISM, 세계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미친 ISM는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알아야 할 주요 ISM을 보기 좋게 정리해 놓은 책에 가깝다.

  ISM은 마치 톱니바퀴 같아서 한 ISM의 약점을 다른 ISM이 보완하거나 반격하여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따라서 한 ISM을 설명할 때 필연적으로 다른 ISM들이 거론된다. 모든 ISM을 뒤섞어놓으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되는 것 같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그러나 모든 인간이 세계를 보는 시선을 합치면 가장 객관적인 세계가 형성됨을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이 책은 세 번 읽어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입장을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한 번. 저자의 입장에 딴지를 걸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한 번. 각 ISM과 연계되는 ISM 항목들을 따라 왔다갔다거리면서 한 번. 그리고 흥미가 생긴 ISM에 관한 심도있는 책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즘 : 사회-문화-예술>편이 기대된다.

 
 2008.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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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 (100쇄 기념판) 웅진 세계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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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 책은 어른이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이십 년 가까이 어린 애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글이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작이란, 세월과 나라를 건너뛰고 나이마저도 사뿐히 무시하는 건가 보다.

  우연히 서점에서 만나게 된 <돼지책>. 어린 조카도 없고 어린 동생도 없고, 이십년의 나이를 뛰어넘어 우정을 키우는 어린 친구는 더더욱 없는 나에게 그림책이란 멀기만 한 존재다. 하지만 <돼지책>은 오히려 다른 수많은 어른용 책들과 섞여있어도 돋보인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그리고 집에 있는 피곳 부인. 수식어부터 피곳부인의 위치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그녀는 하찮다. 집에 딸린 부속물 취급을 받는다. 피곳 부인이 없어졌을 때에도 세 부자는 "왜 엄마/부인이 없을까?"보다 밥을 줘라고 하면 밥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걱정한다.

  짧은 문장이기에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마지막 장을 덮고, 자동차 수리할 시간도 없었던 피곳 부인을 생각했다. 내 어머니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돼지가 아닐까?" 어머니의 희생이 당연한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의례적인 감사만 표한 건 아닐까.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묶여있다고 마음이 풀어지려 할 때 읽으면 정말 좋은 책이다. 


201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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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력 - 고수가 알려주는 협상의 기술 46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고은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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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상하는 건 어렵다. 내 이익을 지키려면 상대가 좀 손해를 봐야 하는데, 남 손해보게 하는 게 어디 쉬운가. 그렇다고 남 기분 맞추자고 무작정 내가 손해를 감수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해관계를 2로 나눠서 딱 떨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교섭력>의 특징은 먼저 문제가 하나 나오고, 해설이 쭉 나오는 방식에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독자가 문제를 풀기를 기다린 뒤에 여러 얘기 없이 간단명료하게 교섭의 법칙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저자의 답이 100%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그가 찍은 답은 설득력이 있다.) 나는 정답을 반 정도 맞췄다. 당연히 이럴 거다! 라고 생각한 게 틀릴 때가 있어서 꽤 놀랐다. 책 하나 읽고 교섭 능력이 갑자기 300%로 치솟지야 않겠지만, 교섭에 임하는 기본 자세가 어떤지 맛보기할 수 있는 책이다.
 

  덧붙임.
  문제집인데 문제가 너무 없다. 부제를 보면 알겠지만 본문에서 다루는 문제는 46개이고 뒤에 있는 종합문제는 모두 10개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컨셉으로 잡은 '교섭에 관한 문제집'이라는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여러가지 상황에 관한 문제를 많이 풀어야, 협상에 임하는 자세가 확실히 잡히지 않을까? 문제를 주는데 너무 박하게 군 것 같아서 아쉽다.
 

 2008.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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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열전 : 후비 - 황제를 지배한 여인들, 개정판
샹관핑 지음, 한정민 옮김 / 달과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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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 열전 : 후비>를 읽다보면 방추형의 높은 탑이 떠오른다.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에 휘날려 불안하게 되는 탑 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후비란, 바람에 휘청거리는 첨탑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중국사 열전 : 후비>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 황제의 여인들을 주목한 책이다. 사사로운 정을 돌보지 않은 후비, 공을 세운 후비, 잔인했던 후비, 신분이 낮은 후비, 다재다능한 후비, 재가한 후비, 못생긴 후비 등등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후비에 대해서는 사료가 적어서 상당한 고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한 후비에 대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골고루 말하고 다루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때로는 사료가 너무 적어 단편적인 제시밖에 못하는 후비도 있다.

  등장하지 못한 후비도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듣지 않았어도 <중국사 열전 : 후비>에 나온 여인들으로 그들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 붙여진 < 황제를 지배한 여인들>이라는 부제를 보고, 황제를 좌지우지한 능력있는 후비들의 얘기인 줄 알았더니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옛날에 여성의 위치가 낮았다, 낮았다 말들 하지만, 정말 일국의 황후와 비빈들의 위치가 이토록 불안정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황후로 임명되면 큰 잘못을 하거나 사건에 연루되거나 죽거나 하지 않으면 교체되지 않는 줄 알았는데, 황제의 마음이 바뀌면 휙휙 갈아치워지고 권력 잡은 대신의 압력에 의해 휙휙 죽어버리는 처량한 신세다. 저런 곳에서 살면 정말 권력에 미치지 않고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후비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나빴고 (육체에만 가치를 두고 탐하는) 황제가 나빴다."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성격의 폐단이나 조정을 농단한 행위의 이면에는 결국 불안정한 지위가 한 몫 했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그것은 중국 역사에 있는 어느 나라이든지 똑같다.

  <중국사 열전 : 후비>는 '사사로운 정을 돌보지 않은 후비'로 비교적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훌륭한 여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정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었고 부군과의 사이도 좋았다. 자식도 황제가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후궁 내의 암투가 얼마나 심했는지 또 얼마나 불안정한 위치였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부군과의 관계가 좋고 애틋했던 경우는 별로 없다. 설혹 관계가 좋았더라도 권력자의 뒷배를 가진 다른 후궁의 압력으로 죽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중국사 열전 : 후비>는 후비의 이야기지만 그녀의 개인사는 아니다. 후비의 삶 자체가 국제정세와 국내정세 그리고 황제와 뗄 수 없는 것이어서인지 때로는 후비에 관한 것보다 국제-국내 정세와 황제에 대한 얘기가 더 많이 나온다. 그리고 후비의 내적인 면보다 외적인 면에 대한 평가가 많다(성품보다는 집안 등).

  키워드에 따라 분류-열거한 것이기 때문에, 한 후비의 얘기가 하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기 나왔다가 다음에는 저기에도 나온다. 앞뒤를 넘기며 잘 비교해보면 후비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다.

  다양한 후비들과, 후비의 다양한 모습,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가랑잎 같았던 위치에 대해 잘 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의 겉과 속디자인이 모두 예뻐서 무척 마음에 든다.

 

  덧붙임.
  눈에 띄는 단점이라면 오자가 너무 많다는 것. 한 두개가 아니라 읽으면서 신경이 쓰인다. 

 

2008.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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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시대 중국인의 일상 - 라루스 일상사 시리즈
제롬 케를루에강 지음, 이상해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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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문화에 관한 책이 마침 땡기던 참이라서 집어든 책이다. 저자의 이름이 '제롬 케를루에강'이라는 걸 나중에 발견하고 살짝 불안해졌는데, 책을 펼쳐보니 불안이 적중했다. 나는 역사서나 문화사는 기실 그 나라 사람이 적은 게 가장 정확하고 좋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이 책은 <명나라 시대 중국인의 일상>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중국에 대한 대략적 개괄서'라는 제목이 어울린다. 게다가 주거 환경이라던가 복식, 직업에 관한 심도있는 내용을 기대했는데, 대략적으로 적혀 있는 데다가, 복식은 아예 청대의 것만 간략히 설명해 놓았다. 


   명나라보다 되려 청나라를 더 비중있게 다룬다. 수록된 그림도 중국화보다 서양에서 중국을 보고 그린 판화나 수채화 등이 많다. 

  게다가 황제를 얘기할 때는 만력제(명대)와 강희제(청대)가 마구 뒤섞여 나오는데 누가 명조의 왕이고 청조의 왕인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명나라'와 '청나라'의 구분을 확실히 짓지 않았다. 하지만 왕조가 바뀌면 문화도 다소 바뀌기 마련이고, 명나라와 청나라는 황제위를 가진 민족이 달라 많은 것이 바뀌었을 텐데, 이 책은 그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중국'은 '중국'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처럼.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중국의 자료를 찾아보지 않고, '서양인이 본 중국'에 관한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듯하다. 게다가 중국과 같은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한 개념-유교, 도교, 명절 등-의 간단한 개념 설명에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서양인에게는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나는 지루했다.

  책의 디자인 면에서 보자면, 다른 책의 두 배 정도 되는 사이즈가 부담스럽고, 무겁다. 장점이라면 올컬러라는 것. 판형도 그렇고, 그림이 많이 있는 것도 그렇고, 읽다 보면 그림책을 보는 것 같다. 

 

2008.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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