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풀 컴퍼니 - 경영을 디자인하다!
마티 뉴마이어 지음, 박선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일단 나는, 디자인 하면 모 자동차 CF가 떠오른다. "그거 알아? 예쁘지 않으면 쳐다도 안 본다는 거." 말하자면 내게 있어서 디자인은 '예쁜 겉모습'을 가리킨다. 디자인으로 회사를 가득 채우라는 <디자인풀 컴퍼니>가 신기해 보인 것은, 이 편협한 디자인의 정의가 30%정도는 차지하고 있다.

  <디자인풀 컴퍼니>가 말하는 '디자인'이란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보다 광범위하고 다면적이다. 내가 생각한 디자인의 정의도 틀리지 않다. 단지 <디자인풀 컴퍼니>에서 사용하는 디자인의 개념보다 한참 하위에 위치한 개념일 따름이다. 그리고 <디자인풀 컴퍼니>는, 그것이('디자인=스타일링') 옛날 스프레드시트식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디자인풀 컴퍼니>에서 사용하는 디자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기존 상황을 원하는 상황으로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고안하는 행동(<디자인 풀 컴퍼니>, p.46)".

  결론적으로 <디자인풀 컴퍼니>가 말하고 있는 것은 혁신이다. 얇고 작은 책 안에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혁신을 꽉꽉 눌러 담았다. 페이지로는 별로 되지 않지만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문구가 있다. 차이에서 디자인이 나온다는 것과, 있는 것과 될수 있는 것의 틈새에서 차이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회사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조금 더 본질적인- 그러니까 머리 속의 가치체계를 뒤엎는 수준이다(그도 그럴 것이, 스프레드시트식의 가치체계가 자리잡았다면 디자인이 고사하고 말 테니).

  혁신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을 읽다보면 질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디자인풀 컴퍼니>도 그렇다. 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저걸 현실로 끌어담는단 말인가? '있는 것'과 '될 수 있는 것' 사이에 살고 있는 용은 여기에도 있다. 생각해보면 용은 어디에서나 살고 있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면, 단순한 활자가 사람의 행동까지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내 영역인 것 같다.
 

  덧붙인 말.

  경제경영엔 초보자나 다름없는 나도 괴로워하지 않고 읽을 수 있게 내용을 풀어냈다. 디자인을 강조한 책이라 그런지 좀 색달랐다. 삽화와 도식이 팡팡 튀어나오는데, 그것들만봐도 내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촘촘한 활자에 시달린 눈이 한 번 쉬어가는 것도 좋고. 책의 뒷부분에는 요점을 정리한 페이지가 있어서 귀차니즘을 함유하고 있는- 혹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 머리가 엉키려 했을 때 도움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혁신을 위한 참고도서목록이 있다.

  개인적으로 표지에 양각된 글자 감촉이 참 좋았다.

 

2009. 10. 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비를 던지다 - 왕들의 살인과 다산의 탕론까지 고전과 함께 하는 세상 읽기
강명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시비를 던지다>는 고문(古文)을 읽고 그 속에서 현대사회의 문제를 짚는다. 색다르다. 옛 것은 그저 옛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사는 현실과는 떨어져 있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조선 시대의 글인데 이상하게도 그 글이 현재와 이어진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가슴이 콕콕 쑤시기도 하고 머리가 트이기도 한다. <시비를 던지다>에 등장한 고문을 보면, 조선시대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던 것보다 더 '나쁜' 사회 같다(정확히는 교과서 속의 역사가 좀 미화되었다는 느낌에 가깝다). 그렇다고 지금의 사회가 좋은 사회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조선의 글을 읽다가 현대를 돌아보면 글 속의 악습이 고스란히 이어져 있다. 각각의 글은 그다지 길지 않지만 사람을 쿡쿡 쑤시면서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에 대해 생각해보길 종용한다. 달라졌는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사회에 '시비를 던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한 글도 있고 밍숭맹숭하게 받아들인 글도 있었고, 잘 알고 있는 문제를 익숙한 방향으로 접근한 문제도 있고 색다른 방향에서 접근한 문제도 있고 그 동안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과 지방"의 관계가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와도 같다는 문제는 내가 그 동안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다. 왜냐하면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으며, 지금도 서울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면 불편한 게 없다. 그래서 으레 지방도 그러려니 생각해버린다. 지방도 아닌 서울 근교에 가서 겪은 불편-교통편이라던가 편의시설-을 떠올려보면, 심각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국어사전에서 '시비'를 찾아보았다. "옳음과 그름. 옳은과 그름을 가리는 말다툼."이라고 나온다. 옳은과 그름을 가리고자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옳은지 그른지를 알아야 다음에 옳은 일은 계속 하고 그른 일은 안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생활 속에서 시비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쓴다.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냐?"

  다시 말하면, "너 지금 나랑 한 번 싸워보자는 거냐?" 정도가 되겠다. 옳은과 그름을 가리는 것이 왜 싸우자는 소리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저렇게 쓰고 내 친구도 저렇게 쓰고 부모님도 저렇게 쓰신다. 조금 생각해봤더니 저 말 속에는 "뭘 따져? 옳든 그르든 대충 넘어가지!(옳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니고 그르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아닌데 사람 귀찮게.)"라는 말이 숨어있는 것 같다. 혹여 이 말의 어원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는 커녕 트집을 잡아 양민의 재산을 빼앗던 부패한 조선 시대의 관리 밑에서 살아가던 백성들의 언어가 없어지지 않고 현재까지 면면히 내려온 게 아닐까?

 
  덧붙임.
  <시비를 던지다> 속에 <다산의 마음>에서 읽은 글이 다수 보였고 <중국시가선>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시도 있고 해서 신기했다. 같은 텍스트인데 느낌이 좀 다르다.

 

2009. 10. 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개의 사랑 - 우리가 알아야 할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
다이앤 애커먼 지음, 송희경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사랑은 복잡하다. 도대체 사랑이란 뭔가 정확히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사랑에 관한 책은 많고도 많다. <천개의 사랑>을 집어든 것은 목차 때문이었는데, 무척이나 다양한 항목을 다루고 있어서 끌렸다. 게다가 부제를 보라. "사랑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고 하지 않은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접근을 한 권의 책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게 <천 개의 사랑>의 장점이다. 그러나 다양한 항목을 다루는 것은, 다시 말해서 깊이있고 세부적으로 파고들지 못한다는 소리다. 사랑에 관한 인문학 서적을 몇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천개의 사랑>에 그다지 새로운 정보가 있지 않음을 알 것이다. 저자 다이앤 애커먼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는 편안하고 또 재미있지만, 그 안에 담긴 게 내가 원하던 세밀하고 깊이있는 정보가 아니라는 게 아쉽다.

  하지만 '사랑을 잃어버린' 우간다의 이크 족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사랑이라는 것은 풍요 속에서만 자랄 수 있는 건가?   

2009. 10. 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산의 마음 - 정약용 산문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1
정약용 지음, 박혜숙 엮어옮김 / 돌베개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산 정약용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국사 교과서에서다. 조선 후기, 목민심서를 비롯한 많은 책을 저술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는 것 이외에 아는 것이 없었다. 교과서에서는 그 정도만 알면 되었으니까.

  그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 하면 나는 늘 묵묵히 글을 쓰는 강한 학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산 선생은 흔들림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상관하지 않고 꿋꿋이 헤쳐 나가는 바위 같은 이미지였다. 그래서 더욱 다산 선생에 관한 글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어느 정도 잘난 사람을 보면 흉내를 내 볼 엄두라도 나지만, 어마어마하게 잘난 사람이라면 지레 포기하고서 "저 사람은 나와 종자가 달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는 그런 심보였달까.

  <다산의 마음>은 제목답게, 다산 정약용 선생의 여러 모습을 담고 있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 학자의 모습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한 것은 어린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 관직을 잃고 긴 시간 유배당하면서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못하고 그래서 편지로 훈계를 할 수 밖에 없던 아버지의 모습, 벽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보면서 즐거워하다가 급기야 친구들까지 초대해 국화 그림자를 보여주는 소탈한 모습, 그리고 남이 한 이야기 하나를 허투로 듣지 않고 귀기울여 듣고 생각하는 학생의 모습까지 다양했다. 우습게도 <다산의 마음>을 읽는 내내 한 것은, "이 분도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200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0년 전의 사람인 다산 선생이 쓴 글에 내가 이렇게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생각컨대, 다산 선생은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물을 깊게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도 같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무척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있었고, 괴로우면 괴롭다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있었다. 가만히 책을 덮고서 생각했다. 어떤 사람의 업적을 보고 존경하기는 쉽지만, 어떤 사람의 인품을 보고 감동하기는 그보다 어렵다. 그것도 실제로 본 것이 아니라 활자를 통해 접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으로 200년 전의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간 느낌을 받다니 신기한 경험이다. 책을 통해서 지은이와 읽은이가 소통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2009. 9. 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속 오컬트 X-파일
멀더 이한우 지음 / 나무발전소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공포영화다. 무서운 게 쥐약인 나는 이 빠진 그릇처럼 공포영화가 없는 여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 왜? 무서운 얘기, 무서운 소설, 무서운 영화를 다 쏙쏙 빠져나간다 할지라도 공포영화의 포스터와 공포영화의 예고편과 공포영화를 소개하는 TV프로그램까지 모두 빠져나가기란 힘드니까.

  뭉뚱그려서 공포영화라고 하지만 알고보면 이쪽도 꽤나 복잡한 모양이다(일단 이 쪽에 적용되는 용어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고어? 스플렉터? 슬래셔? 스릴러...는 좀 틀린가). 갈래갈래 나뉘는 공포영화 중에서 내가 특히 쥐약인 것은 소위 '귀신'이 개입된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간이 좀 커졌다고 해도 귀신 나타나는 영화는 못 본다. 공포라는 분야에 호기심이 조금 생겨서 깔짝거리다가도 흠칫 물러서게 된다.

  이것이 <영화 속 오컬트 X-파일>을 집어들게 된 이유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고 했는데, 솔직히 백 번을 다 이길 자신은 없고 백 번에 세 번만 이겨도 횡재한 거다. 더구나 영화를 예로 들었으니 심심하지는 않을 테고, 단순하게 공포를 나열한 게 아니라 분석까지 했다니 기대가 빵빵하게 차오를 만 하다. 


  이 책의 장점 : 

  1. <출발 비디오 여행>을 읽는 듯한 재치 넘치는 저자의 입담. 읽는 내내 딱딱하거나 축 늘어지지 않고,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강점, 내용, 캐릭터, 배경 등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2. 영화가 소재 별, 시간 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각 소재가 어떻게 영화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공포영화의 흐름을 잡는다고 해야 할까? 유명한 작품도 있고 들어본 작품도 있지만, 잘 몰랐던 작품도 심지어 졸작인 작품까지 소개되어 있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를 알면 얼추 공포영화 봤겠다고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서양의 소재, 서양의 영화만 다루지 않고 한국의 것도 집어넣었다.

  4. 영화를 쭉 훑은 뒤에 그에 관련된 오컬트 지식을 정리해 놓았다. 이쪽에 일자무식한 사람이 보기에 꽤 흥미롭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일단, 아무리 '구미호'하면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라지만, 영화를 다루는 책에서 드라마가 나온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경계가 확 흐려진 느낌이랄까. 이런 부분은 또 있다. 늑대인간을 다루는 부분에서 갑자기 동화 '빨간 망토'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야기를 '늑대'가 아니라 동화의 잔혹성 쪽으로 풀어내서 어안이 벙벙했다. 가끔 발을 삐끗한 (내가 발견한 것은 이 두 곳 정돈데) 것을 빼면 전체적으로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공포영화와 공포 현상에 대해서 알 수도 있었고 말이다. 앞으로 공포영화를 본다면 무서움과 함께 그 배경에 대한 호기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 같다.

  아, 그런데 공포에 대해서 모두 분석을 하는 게 아니다. '오컬트'가 등장하는 공포영화가 대상이라고 머릿속에 미리 못을 쾅쾅 박아놔야 한다.

2009. 9. 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