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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오컬트 X-파일
멀더 이한우 지음 / 나무발전소 / 2009년 7월
평점 :
여름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공포영화다. 무서운 게 쥐약인 나는 이 빠진 그릇처럼 공포영화가 없는 여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 왜? 무서운 얘기, 무서운 소설, 무서운 영화를 다 쏙쏙 빠져나간다 할지라도 공포영화의 포스터와 공포영화의 예고편과 공포영화를 소개하는 TV프로그램까지 모두 빠져나가기란 힘드니까.
뭉뚱그려서 공포영화라고 하지만 알고보면 이쪽도 꽤나 복잡한 모양이다(일단 이 쪽에 적용되는 용어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고어? 스플렉터? 슬래셔? 스릴러...는 좀 틀린가). 갈래갈래 나뉘는 공포영화 중에서 내가 특히 쥐약인 것은 소위 '귀신'이 개입된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간이 좀 커졌다고 해도 귀신 나타나는 영화는 못 본다. 공포라는 분야에 호기심이 조금 생겨서 깔짝거리다가도 흠칫 물러서게 된다.
이것이 <영화 속 오컬트 X-파일>을 집어들게 된 이유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고 했는데, 솔직히 백 번을 다 이길 자신은 없고 백 번에 세 번만 이겨도 횡재한 거다. 더구나 영화를 예로 들었으니 심심하지는 않을 테고, 단순하게 공포를 나열한 게 아니라 분석까지 했다니 기대가 빵빵하게 차오를 만 하다.
이 책의 장점 :
1. <출발 비디오 여행>을 읽는 듯한 재치 넘치는 저자의 입담. 읽는 내내 딱딱하거나 축 늘어지지 않고,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강점, 내용, 캐릭터, 배경 등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2. 영화가 소재 별, 시간 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각 소재가 어떻게 영화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공포영화의 흐름을 잡는다고 해야 할까? 유명한 작품도 있고 들어본 작품도 있지만, 잘 몰랐던 작품도 심지어 졸작인 작품까지 소개되어 있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를 알면 얼추 공포영화 봤겠다고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서양의 소재, 서양의 영화만 다루지 않고 한국의 것도 집어넣었다.
4. 영화를 쭉 훑은 뒤에 그에 관련된 오컬트 지식을 정리해 놓았다. 이쪽에 일자무식한 사람이 보기에 꽤 흥미롭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일단, 아무리 '구미호'하면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라지만, 영화를 다루는 책에서 드라마가 나온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경계가 확 흐려진 느낌이랄까. 이런 부분은 또 있다. 늑대인간을 다루는 부분에서 갑자기 동화 '빨간 망토'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야기를 '늑대'가 아니라 동화의 잔혹성 쪽으로 풀어내서 어안이 벙벙했다. 가끔 발을 삐끗한 (내가 발견한 것은 이 두 곳 정돈데) 것을 빼면 전체적으로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공포영화와 공포 현상에 대해서 알 수도 있었고 말이다. 앞으로 공포영화를 본다면 무서움과 함께 그 배경에 대한 호기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 같다.
아, 그런데 공포에 대해서 모두 분석을 하는 게 아니다. '오컬트'가 등장하는 공포영화가 대상이라고 머릿속에 미리 못을 쾅쾅 박아놔야 한다.
2009.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