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를 던지다 - 왕들의 살인과 다산의 탕론까지 고전과 함께 하는 세상 읽기
강명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시비를 던지다>는 고문(古文)을 읽고 그 속에서 현대사회의 문제를 짚는다. 색다르다. 옛 것은 그저 옛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사는 현실과는 떨어져 있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조선 시대의 글인데 이상하게도 그 글이 현재와 이어진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가슴이 콕콕 쑤시기도 하고 머리가 트이기도 한다. <시비를 던지다>에 등장한 고문을 보면, 조선시대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던 것보다 더 '나쁜' 사회 같다(정확히는 교과서 속의 역사가 좀 미화되었다는 느낌에 가깝다). 그렇다고 지금의 사회가 좋은 사회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조선의 글을 읽다가 현대를 돌아보면 글 속의 악습이 고스란히 이어져 있다. 각각의 글은 그다지 길지 않지만 사람을 쿡쿡 쑤시면서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에 대해 생각해보길 종용한다. 달라졌는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사회에 '시비를 던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한 글도 있고 밍숭맹숭하게 받아들인 글도 있었고, 잘 알고 있는 문제를 익숙한 방향으로 접근한 문제도 있고 색다른 방향에서 접근한 문제도 있고 그 동안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과 지방"의 관계가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와도 같다는 문제는 내가 그 동안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다. 왜냐하면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으며, 지금도 서울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면 불편한 게 없다. 그래서 으레 지방도 그러려니 생각해버린다. 지방도 아닌 서울 근교에 가서 겪은 불편-교통편이라던가 편의시설-을 떠올려보면, 심각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국어사전에서 '시비'를 찾아보았다. "옳음과 그름. 옳은과 그름을 가리는 말다툼."이라고 나온다. 옳은과 그름을 가리고자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옳은지 그른지를 알아야 다음에 옳은 일은 계속 하고 그른 일은 안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생활 속에서 시비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쓴다.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냐?"

  다시 말하면, "너 지금 나랑 한 번 싸워보자는 거냐?" 정도가 되겠다. 옳은과 그름을 가리는 것이 왜 싸우자는 소리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저렇게 쓰고 내 친구도 저렇게 쓰고 부모님도 저렇게 쓰신다. 조금 생각해봤더니 저 말 속에는 "뭘 따져? 옳든 그르든 대충 넘어가지!(옳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니고 그르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아닌데 사람 귀찮게.)"라는 말이 숨어있는 것 같다. 혹여 이 말의 어원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는 커녕 트집을 잡아 양민의 재산을 빼앗던 부패한 조선 시대의 관리 밑에서 살아가던 백성들의 언어가 없어지지 않고 현재까지 면면히 내려온 게 아닐까?

 
  덧붙임.
  <시비를 던지다> 속에 <다산의 마음>에서 읽은 글이 다수 보였고 <중국시가선>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시도 있고 해서 신기했다. 같은 텍스트인데 느낌이 좀 다르다.

 

2009.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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