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이이치로의 사고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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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처럼 읽은 추리 단편 소설집. 수수께끼 찾는 것처럼 간단 명료하게 읽을 수 있다. 단편이라 그런지 등장인물 성격묘사가 심도깊진 않고 일종의 해프닝에 가까운 가벼운 분위기를 보인다. 이야기 시점은 탐정 역인 아 아이이치로가 아닌 제 3의 인물.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가 시리즈 1편이라고 하는데, 안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도 별반 위화감이 없었다.

 

  지푸라기 고양이, 사나가 가의 증발, 스즈코의 치장, 뜻밖의 유해, 비뚤어진 모자, 네 거두의 싸움, 사부로 정 노상, 환자에게 칼 이렇게 총  8개의 단편이 있다. 살인범 찾기, 물건의 주인 찾기, 바뀐 풍경의 이유 찾기 등 제시된 수수께끼가 살인 뿐 아니라 꽤 다양하다.

 

  수수께끼를 푸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짐작하기는 그렇게 어렵진 않은데 해답이 이해가는 것도 있었지만 좀 갸우뚱한 것도 섞여 있었다. 꼭 등장하는 세모꼴 머리 양장차림 노부인이 재밌었다. 전체적으로 유쾌하고 재미있다.

 

 

201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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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 갈색 눈 -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
윌리엄 피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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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엘리어트가 1968년부터 한 시골마을 초등학교 3학년 생에게 진행한 차별 수업에 관한 이야기. 엘리어트의 실험 내용은 심리학이나 인문학 책에서 간간히 보아왔는데, 진행 과정을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마틴 루터 킹의 암살을 계기로 앨리어트는 편견에 대해 자신의 학급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앨리어트는 이제부터 실험을 하나 할 거라고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오늘은 갈색 눈이, 내일은 푸른 눈이 더 우월한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푸른 눈이 차별당하는(급수대의 물을 먹을 때 갈색눈은 이전처럼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지만 푸른 눈은 종이컵을 사용해야만 한다던지 하는) 아이들은 너무나 빠르게, 푸른 눈의 친구들을 차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날 상황은 역전되고, 이번에는 갈색 눈의 아이들이 '열등'해져서 푸른 눈의 아이들의 차별을 받는다.

 

  앨리어트는 이 실험을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이보다 편견에 대해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실험은 입소문을 타고 퍼지고, TV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나온다. (그 전까지의 실험이 간략하게 서술된 것과 달리, TV에 촬영된 학급의 이야기는 자세히 나왔는데 아마도 비디오 자료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 삭제되거나 왜곡될 여지가 거의 없어서인 것 같다).

 

  쉽게 쓰여졌지만 내용은 쉽지만은 않다. 편견이란 무엇일까? 어렴풋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진짜로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편견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편견에 따라 말하고 움직이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앨리어트도 같다. 그녀 또한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서 '흑인 세입자는 받지 않겠다'고 돌려 말한 경험이 있다. 편견이 나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진짜 알고 있고 그것에 저항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이 책은 알려준다.

 

  p.16.

  마지막으로 엘리어트는 아이들에게 흑인 소년이나 소녀로 사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상상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중략)... "그러니까 아이들은 흑인에 대해 반감 혹은 멸시에 가까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동정하게 된 거예요. 흑인 아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이 다르게 취급받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어떤 책인가에서 조선 시대 어떤 왕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왕은 백성에게 자비로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어떤 '상것'이 제 남편에게 죽었을 때 상것의 일은 상것이 알아 해야 한다고 넘겼다는 이야기다. 그는 백성에게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백성이 현실에서는 상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위의 문장을 읽으며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p.42.

  차별은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다. 차별은 당신이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당신이 행동하는 방식은 당신이 하는 일의 종류 뿐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느끼는 자기 모습에도 영향을 끼친다. 당신이 하는 일의 종류, 당신이 스스로 느끼는 자기 모습, 이 모든 사항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영향을 끼친다. 사실 이것들은 당신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에 영향을 끼친다. 차별은 충분히 오래 지속되기만 한다면 당신을 바꿔놓을 수 있다.

p.252.

흑인이 전체 '흑인집단'에 속하는 존재하면, 백인은 항상 개인으로 존재한다. by 존 그리핀.

 

  이 책은 편견은 차별의 결과라고 말한다. 맞는 말 같다. 뒤의 후기도 알차서 읽는 맛이 있었다. 얇지만 내용이 꽉 찬 책이었다.

 

 

201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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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코요테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4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4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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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편 <콘크리트 블론드>는 건너뛰고

  해리 보슈 시리즈 no. 4

  별 세 개 반?

(미리니름 있습니다)

 

  상사인 파운즈를 폭행해서 정직처분을 당한 해리 보슈는, 오랫동안 묻어놓은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파티걸 마저리 로우는 자신의 벨트에 목이 졸린 채 쓰레기통에 박혀 발견되었고, 성관계를 한 흔적이 있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태.

  마저리 로우의 수사기록을 읽어본 보슈는 수사는 안 한 것과 다름이 없었으며, 누군가가 수사에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30년 전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서 해리는 파운즈 경위의 이름도 사칭하고, 아노 콘클린의 오른팔이었던 고든 미텔의 파티에도 참석하고, 플로리다에 가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도 만나고, 사건을 담당했던 또 다른 형사의 미망인도 만나면서 사건의 윤곽을 더듬어가는데......

 

  3편인 콘크리트 블론드를 건너뛰고 바로 4편을 읽었더니 상황이 꽤 변해 있어서 놀랐다. 보슈는 왜 파운즈의 머리를 유리에 처박았는가? 보슈는 왜 어빙과 사이가 좋아졌는가? 보슈는 왜 실비아와 헤어졌는가? 이런저런 의문점이 있지만, 사실 내용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건 아니니까 읽는데 거치적거리지는 않는다. 다만 그 동안 악역 역할이었던 어빙이 내려오고 파운즈가 등극했다는 데에는 굉장히 궁금증이 든다. 파운즈가 좋은 상사였다는 건 아니지만 이미지상 어빙>>>>>>파운즈라는 느낌이었는데.......

 

  <라스트 코요테>는 해리가 상당히 핀치에 몰린 상태에서 시작한다. 형사 일에서는 정직처분을 당했고, 저번에 일어난 지진으로 집에는 철거명령이 내려온 상태고, 애인인 실비아는 떠났다. 스트레스 덩어리나 다음없는 그 상태에서, 해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를 찾기로 결심한다. 정직 상태인 형사가 30년 전 사건을 수사하다니, 상당히 무리를 해야 할 게 뻔한데도. 게다가 수사에 압력을 가했던 사람은 과거 경찰청의 실세였던 아노 콘클린, 그리고 현재 잘 나가고 있고 정계에도 줄인 있는 고든 미텔이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라스트 코요테>는 전의 두 편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일단 하나의 작은 사건이나 단서가 다른 것과 맞물려가며 뻥튀기가 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그 빈 자리를 해리의 스트레스 상황과 해리의 과거사 등이 간격을 메운다. 정식으로 수사할 수 없어 해리가 동원하는 편법이나 권력가를 상대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설정이 긴장감을 높이는데, 아무래도 이전에 두 편보다는 조금 느슨하다.

 

  반전에서는 허탈한 기분마저 든다. 마저리 로우의 살인은 매우 단순히 일어났고- 이미 일어난 살인사건이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반전이 너무 급격하게 방향을 획 틀어 이야기 전체를 흔들어놓는다. 이 소설이 처음에 아노 콘클린과 고든 미텔을 너무 의심스럽게 만들어놓은 덕분에 모든 초점이 '이들을 어떻게 잡아넣지? 살인도 불사하는 놈들인데!'하는데 맞춰져 있다가, 끝났다 싶었을 때 '사실은 그건 지레짐작이었습니다.'로 가자 어안이 벙벙해진다. 사소한 일이어도 자신에게 흠이 되거나 꼬투리 잡힐 일이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권력자의 속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뻘짓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진짜 범인에 대한 암시가 아주 전혀 없었다는 소리는 못하지만(일단 지문과 허리띠 얘기가 있으니까), 역시 당황스럽다. 그건 메러디스 로만의 자살과 쟈니 폭스가 살아 돌아오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범인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토로하는 것은 이번에도 여전하고, 기왕 허탈한 거 조금 더 허탈하게 될 뿐이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불만사항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잘 읽히고 재미있다는 것이다(개인적으로 해리 보슈가 시청을 뱅뱅 돌면서 이 공무원에서 저 공무원에게로 보내지는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다). 마이클 코넬리가 글을 재미있게 쓴다는 말도 되겠다. '모두 중요하거나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는 해리 보슈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읽은 해리 보슈 시리즈 3권이 우연찮게도 모두 번역자가 달랐는데, 번역자에 따라 소설의 느낌도 다소 변하는 듯 하다. 이번 번역은 상당히 부드러운 혹은 톡톡 튀는 어조로 번역되었다. 처음엔 좀 괴리가 있었는데 읽다보니 익숙해진다. 뒤에 페이지 소개를 보면 번역자가 번갈아가며 바뀌는 듯 한데, 어조에 익숙해지려면 조금 어지러울 것 같긴 하다. 역시 번역은 중요한 것 같다.

 

 

p.s.

  만약 쟈니 폭스가 살아있지 않고 메러디스 로만이 살아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 정도로 허탈하진 않았을 것이다. 메러디스 로만은 겁쟁이에 비겁자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데, 결국 범죄에 대한 처벌고 그에 합당한 비난도 받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자기를 끝장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아주 불만이 있다. 만약 메러디스가 살아있었다면 해리는 어떻게 했을지가 궁금해서일까?

 

 

201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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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2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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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보슈 시리즈 no.2

  (미리니름 있습니다)

 

마약과 칼 무어가 자살한다. 그 즈음 루시어스 포터 형사가 갑작스레 퇴직을 요청하여 해리 보슈는 일을 떠맡는다. 해리 보슈는 떠맡은 사건 중 하나(가게 뒷문에서 시체가 발견된 것)와 자신이 이전에 맡은 마약중개범 살인사건이 묘한 공통점을 그린다는 것을 알아내고, 거기에 칼 무어의 죽음도 겹친다는 것을 눈치챈다. 해리 보슈는 그 수사를 하기 위해 멕시코로 내려가는데.......

 

  은행범죄에 이어 이번엔 마약범죄. 하지만 시작은 1편에서 그랬듯 사소하다. 해리는 몇 가지 사건을 맡고 있었고, 그 중 하나는 마약 중개인 지미 캅스의 살인사건이었다. 그런데 루시어스 포터 형사가 퇴직하려 하고, 해리의 상사인 파운즈는 종결률 50%를 달성하기 위해, 해리에게 그 사건을 맡기면서 올해가 끝나기 전 몇 건을 빨리 종결시키라고 한다. 해리가 떠맡은 사건 중 가게 뒷문에서 정체모를 시체(후안도우 67번이라고 임시로 불리는)가 발견된 것을 주목한 이유는 단순히 그게 가장 최근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보이는 몇 가지 사건이 공통점을 보이며 엮여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마이클 코넬리는 그런 걸 참 잘 쓰는 것 같다. 사건 하나하나는 표면만 보면 단순한데, 그걸 끝까지 파헤쳐서 큰 판이 드러나게 만드는게 보슈의 저력인 듯 하다. 멕시코까지 가서 수사하는 데에는 보통 저력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 보슈의 그 저돌적임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궁금증도 든다.

 

  마이클 코넬리는 천연덕스럽게 이 소설에서 한 가지 추리소설의 전통적인 기법(?)을 섞어넣었는데, '얼굴 없는 시체는 일단 정체를 의심하라'는 명제를 완전히 잊게 만들 정도로 그 솜씨가 뛰어나다. 당연히 의심할 수 없는 법의학적 증거를 들어 '그 사람이다'라고 말해놓고, 적절한 곳에서 '그 사람이 아니다'라고 터트리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다만 이번에도 범죄를 저지르게 된 내막은 범인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 아쉽다. 뜬금없이 고백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왜 그런 고백을 하는지(할 수 있는지) 상황이나 관계를 설정해놓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추리소설의 마지막에 탐정이 지목한 범인이 "그래 난 사실 이렇게저렇게 범죄를 저질렀고 이러저러해서야" 하고 털어놓는 장면이 오버랩되고 그래서 어색한 기분이 든다.

 

  <블랙 에코>에서 해리의 마지막 행동이 그의 가치관을 드러내주었다면, <블랙 아이스>에서 해리의 결정은 좀 아리송한 구석이 있다. 그건 해리 보슈와 실비아 무어의 관계에서 나오는데, 언뜻 해리의 행동은 연적 제거라던가 실비아에게 유족연금을 타게 해주려는 수작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랙 에코>의 결말을 생각하면, <블랙 아이스>에서의 결말도 해리의 가치관을 드러낸 것 같기는 하다. 범인을 데려가면 처벌 받을지도 확실하지 않고 자신의 목도 위험하니 스스로 정리한 느낌? 해리는 '범죄는 처벌받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합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비합법적으로라도.

 

 

2012.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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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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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보슈 시리즈 no.1

  별 네 개 반

 

  나는 계획적으로 독서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때그때 눈에 들어오는 걸 읽는 편이다. 그래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잊어버리는 일이 왕왕 있다. 마이클 코넬리도 그 중 하나였는데, 해리 보슈 시리즈와 미키 할러 시리즈, 스탠드 얼론 중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다. <블랙 에코>는 꽤 작심하고 책을 산 편인데, 역시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읽었다. 책이 안 읽혀서가 아니라 다른 책에 밀려서. 왜 그런가 가만 생각해보니, 일단 책이 두꺼워서 뒤로 미뤄뒀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읽고 보니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금방 읽었다.

 

  시 외곽의 굴에서 시체가 하나 발견된다. 형사 해리 보슈는 그 시체가 베트남 전쟁에서 땅굴쥐로 활약했던 자신의 옛 전우 메도우스라는 것을 알아본다. 언뜻 자살 같지만 자살이 아니라는 정황이 몇 개 보이고, 해리는 메도우스의 아파트가 수색당했고, 메도우스가 죽기 전에 전당포에 물건을 저당잡혔으며, 전당포가 습격당해 그 물건이 도난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리는 물건의 내력을 찾아보다가 메도우스가 9개월 전 일어난 은행털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FBI 은행범죄 담당팀을 찾아가는데....

 

  시작은 사소하다. 마약한 부랑자로 보이는 시체가 굴에서 발견되었다. 단순하게 넘길 수 있는 사건이지만, 해리 보슈의 눈에 이상한 사항이 몇 개 눈에 띤다. 손가락이 부러져 있다던지, 마약 정제에 어떻게 불을 붙였는지 이상하다던지. 그래서 처음 시작되는 의문은 "메도우스는 자살인가, 타살인가? 타살이면 왜 이렇게 위장해야 했을까?"이다. 이 작은 의문이 꼬리를 물다 9개월 전 유명한 은행털이와 엮이면서 증폭되는 솜씨가 굉장하다. 마이클 코넬리가 던진 단서며 미끼는 추리소설과도 같은 의문을 떠올리게 하고, 하나가 해결되었다 싶으면 다른 판으로 옮겨가면서 다시 의문을 던져 추리소설처럼 머리를 굴리게 한다. "누가, 언제, 왜, 어디서, 어떻게 이 사람을 죽였을까?"에서 "그들은 왜 은행이 아닌 개인금고들을 노렸을까?"로 말이다.

 

  은행범죄가 하나의 긴장선을 그리고 있다면, 이 소설의 또 다른 긴장은 경찰조직 내부에서 나온다. 주인공 해리 보슈는 내사과의 감시를 받고 있는데, 상당히 악의가 느껴지는 24시간 밀착감시다. 그들은 꼬투리를 잡아 해리를 쫓아내려고 한다. 해리가 일을 잘하든 말든 사실 그런 건 관계 없다. 따라서 경찰 조직이 관심 있는 건 범인을 잡는 게 아니라 단순히 조직의 결속력과 안녕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생긴다. 해리가 그들의 눈밖에 난 이유는 '조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해리는 거기에 강압적인 태도로 맞선다. 쫓아낸다고 해서 쫓아내질 거 같아, 하고 비웃는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 와서 해리는 짤리는 위기는 면하지만, 그냥 유예되었다는 생각이 들 뿐으로, 얘가 이러다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추리소설 같은 긴장감, 그리고 중간에 계획이 망쳐진 데서 오는 스릴감, 동지가 적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등등 책은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후의 반전을 짐작하기란 쉽고, 매우 고전적이다. 그리고 범인의 입에서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중간에 암시가 좀 있었으므로) 어쩐지 김이 빠진다.

 

  끝 마무리에 아쉬움이 남지만, 여러가지 갈등이라던가 사건들을 엮는 솜씨,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와 경찰 조직의 분위기 등이 효과적으로 어우러져 무척 재미있었다. 특히 판이 커지는 과정이 어색하지 않고 무척 빠르게 진행된다. 게다가 마지막에, 경찰이 사건을 포장하고 해리가 찾아낸 범인이 정상적 방법으로는 제대로 잡혀들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해리가 내린 처방(네가 자수하지 않는다면 은행질로 피해입은 범죄자에게 내 수사결과를 알려주겠다)은 그의 가치관을 명확히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20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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