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해리 보슈 시리즈 no.1

  별 네 개 반

 

  나는 계획적으로 독서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때그때 눈에 들어오는 걸 읽는 편이다. 그래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잊어버리는 일이 왕왕 있다. 마이클 코넬리도 그 중 하나였는데, 해리 보슈 시리즈와 미키 할러 시리즈, 스탠드 얼론 중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다. <블랙 에코>는 꽤 작심하고 책을 산 편인데, 역시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읽었다. 책이 안 읽혀서가 아니라 다른 책에 밀려서. 왜 그런가 가만 생각해보니, 일단 책이 두꺼워서 뒤로 미뤄뒀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읽고 보니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금방 읽었다.

 

  시 외곽의 굴에서 시체가 하나 발견된다. 형사 해리 보슈는 그 시체가 베트남 전쟁에서 땅굴쥐로 활약했던 자신의 옛 전우 메도우스라는 것을 알아본다. 언뜻 자살 같지만 자살이 아니라는 정황이 몇 개 보이고, 해리는 메도우스의 아파트가 수색당했고, 메도우스가 죽기 전에 전당포에 물건을 저당잡혔으며, 전당포가 습격당해 그 물건이 도난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리는 물건의 내력을 찾아보다가 메도우스가 9개월 전 일어난 은행털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FBI 은행범죄 담당팀을 찾아가는데....

 

  시작은 사소하다. 마약한 부랑자로 보이는 시체가 굴에서 발견되었다. 단순하게 넘길 수 있는 사건이지만, 해리 보슈의 눈에 이상한 사항이 몇 개 눈에 띤다. 손가락이 부러져 있다던지, 마약 정제에 어떻게 불을 붙였는지 이상하다던지. 그래서 처음 시작되는 의문은 "메도우스는 자살인가, 타살인가? 타살이면 왜 이렇게 위장해야 했을까?"이다. 이 작은 의문이 꼬리를 물다 9개월 전 유명한 은행털이와 엮이면서 증폭되는 솜씨가 굉장하다. 마이클 코넬리가 던진 단서며 미끼는 추리소설과도 같은 의문을 떠올리게 하고, 하나가 해결되었다 싶으면 다른 판으로 옮겨가면서 다시 의문을 던져 추리소설처럼 머리를 굴리게 한다. "누가, 언제, 왜, 어디서, 어떻게 이 사람을 죽였을까?"에서 "그들은 왜 은행이 아닌 개인금고들을 노렸을까?"로 말이다.

 

  은행범죄가 하나의 긴장선을 그리고 있다면, 이 소설의 또 다른 긴장은 경찰조직 내부에서 나온다. 주인공 해리 보슈는 내사과의 감시를 받고 있는데, 상당히 악의가 느껴지는 24시간 밀착감시다. 그들은 꼬투리를 잡아 해리를 쫓아내려고 한다. 해리가 일을 잘하든 말든 사실 그런 건 관계 없다. 따라서 경찰 조직이 관심 있는 건 범인을 잡는 게 아니라 단순히 조직의 결속력과 안녕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생긴다. 해리가 그들의 눈밖에 난 이유는 '조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해리는 거기에 강압적인 태도로 맞선다. 쫓아낸다고 해서 쫓아내질 거 같아, 하고 비웃는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 와서 해리는 짤리는 위기는 면하지만, 그냥 유예되었다는 생각이 들 뿐으로, 얘가 이러다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추리소설 같은 긴장감, 그리고 중간에 계획이 망쳐진 데서 오는 스릴감, 동지가 적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등등 책은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후의 반전을 짐작하기란 쉽고, 매우 고전적이다. 그리고 범인의 입에서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중간에 암시가 좀 있었으므로) 어쩐지 김이 빠진다.

 

  끝 마무리에 아쉬움이 남지만, 여러가지 갈등이라던가 사건들을 엮는 솜씨,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와 경찰 조직의 분위기 등이 효과적으로 어우러져 무척 재미있었다. 특히 판이 커지는 과정이 어색하지 않고 무척 빠르게 진행된다. 게다가 마지막에, 경찰이 사건을 포장하고 해리가 찾아낸 범인이 정상적 방법으로는 제대로 잡혀들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해리가 내린 처방(네가 자수하지 않는다면 은행질로 피해입은 범죄자에게 내 수사결과를 알려주겠다)은 그의 가치관을 명확히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2012. 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