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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 2 - 가을.겨울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분권이 된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한번에 쭉 읽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한 번 호흡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정상 1권만 있거나 2권만 있게 되면 서글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년시대> 2권을 받았다. 1권을 구한 다음에 읽기 시작할까 하다가 그냥 2권 먼저 보기로 했다. 6월에 이미 책을 많이 사서 책의 구입은 빨라봤자 7월이 될 것 같기도 했고, 2권만 먼저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개인적으로 궁금했기 때문이다(드라마에서야 뒷이야기만 보면 앞 이야기 짐작이 가능하지만 소설에서도 그럴까?).
앞부분을 뚝 떼어먹고 중간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처음에는 좀 시큰둥했다. 2권 처음에는 스워프 읍장님과 코리가 만나는 장면이 거의 곧바로 펼쳐진다. 초록 깃털이 뭔지, 코리가 왜 숨 넘어가도록 놀라는지,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_@?? <- 이런 느낌으로 글을 읽었고 몇 십 페이지가 지나서야 대충 사건의 윤곽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소년시대>의 큰 줄기는 '1960년대 앨러배마 주의 제퍼 마을에 있는 색슨 호수에서 발견된 시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 살인범은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처음엔 막연히 지금과 비슷한 때가 아닐까 하다가 백인과 흑인의 구별이라던가 KKK단, 나치, 우유배달원 이런 이야기를 보면서 이게 좀 더 과거의 이야기구나 알 수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도 시간대가 달라지만 일종의 마법같이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나 열두 살 코리의 눈으로 보는 1960년대의 제퍼 마을은 단순히 시간대가 달라서 '마법같이 보이는' 것이 아닌, 사소하지만 중요한 마법들이 현실의 논리와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총탄이 뱀으로 변한다던가, 자전거가 사람을 물어뜯는다던가, 유령이 자동차를 몰고 범죄자를 추격한다거나.
코리가 봄부터 겨울까지 겪은 사건은 크게는 '살인범 찾기'이지만, 이야기는 살인범에만 매달려 있지 않고 일상생활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코리의 삶은 다양하고 거기에 조금 모양이 다른 조각 하나가 끼어든 것이지, 그 조각이 코리의 삶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두서없는 여러 사건을 보자면 정신이 산만해질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나는 코리를 따라 여기에도 가고 저기에도 가고, 하면서 코리의 삶의 풍경이 어떤지, 제퍼 마을이 어떤지 엿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끔은 "그래, 살인범이 있었지."하는 생각을 떠올리긴 했다. 그건 책 안에서 코리가 살인범을 추적하고 있을 때였지만.
아이였을 적 세상을 볼 때 썼던 안경을 다시 쓴 것처럼, <소년시대> 속 세상은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해피 엔딩이 약속된 동화가 아니라 현실처럼 때로는 비정하고 때로는 불합리한 세계다. 그래서 더 신비로울지도 모르겠다. 코리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여러 사건-살인범 추적, 브랜린 형제와의 싸움, 아버지의 실직, 레벨의 죽음, 데이비 레이의 사고, 블레이록 일당과의 총싸움, 크리스마스에 떨어진 미사일 등-을 겪으면서 여러 감정을 맛보고 한 단계 자란다. 처음에 왜 이 소설이 "성장기"일까 궁금했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2권 처음의 코리와 2권 끝의 코리는 같은 코리가 아니니까(단순히 어른이 됐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빠가 오른편에 다가와 섰다. 엄마는 왼편에 섰다. 우리는 정말로 손발이 잘 맞는 팀이다.
"이제 됐어요."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 괴물들과 마법의 상자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소년시대> 2권 中 451p 발췌, 4장 '겨울의 차가운 진실' 마지막 문장)
<- 이 부분이 아주 좋았다.
그 후에 덧붙은 에필로그, '제퍼 그 후'에서 코리는 어른이 되었고 다시 돌아온 제퍼 마을은 열두 살 코리가 살았던 제퍼마을과는 다르다. 코리의 제퍼 마을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코리는 아직도 소년이고, 제퍼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모습으로 제퍼 마을 혹은 다른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 그 중에는 아직 제퍼 마을을 마법의 세계로 보고 있는 조그만 꼬맹이들도 있다. 그걸 보며 2011년 한국에 사는 꼬마들도 1960년대 미국의 코리처럼 마법의 세계를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꼬맹이들을 보면 학원을 몇 개씩 다니느라 그럴 정신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또 어찌 생각하면 그들도 나름대로 신비가 곳곳에 숨어있는 마법의 세계를 살고 있을 것 같다.
마법이 살아 숨 쉬는 한 그들은 언제나 저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법의 심장은 아주 튼튼해서 여간해서는 멎지 않는다.
(<소년시대> 2권 中 479p 발췌, '제퍼 그 후' 마지막 문장)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어린시절을 곰곰히 생각해 봤다.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들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즐거웠다. 내 어린시절에도 마법이 있었던 건 틀림없다. 하기야 신비란 보려고 하면 어디에도 있다. 나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떡볶이를 만들어 줄 때 그걸 보며 마법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뭘 넣고 조금 끓였을 뿐인데 맛있는 간식이 나왔으니까. 한 동안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 코리를 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한참 기억 속에 묻어두고 지금을 살기 바빴을 거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있는데, 기억으로 묻어버리지 않고 지내는 건 참 힘든 일 같다.
<소년시대> 2권을 읽고 알게된 것. 반토막만 읽어도 재밌는 책은 재밌다. 그러니 한 토막을 다 읽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조만간 1권을 읽어봐야겠다.^^
2011.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