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가 간다
조혁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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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자체는 잘 쓰여졌다. 하지만 도통 내가 좋아하지 않는 류의 이야기이고 이런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 나는 결코 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점수가 낮다.
 
  나는 블랙코메디를 꽤 좋아한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웃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뒤에 있는 광고, '트로트풍 코믹 액션 러브로망'이라는 단어에 꽂혀서였다. 나는 애초에 이 책에 웃음을 기대하며 출정했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같은 사물 같은 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니 누군가에게는 코메디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도통 이 책을 코메디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감정소모가 유독 큰 책이 있다. 그런 책을 읽다 보면 뭔가에 잔뜩 시달린 것처럼 축 늘어진다. <삼류가 간다>를 읽고 나는 그런 경험을 했다. 굉장한 비극, 굉장한 슬픔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이 책에서 받은 인상은 무기력함이었다. 우울한 일상, 벗어날 수 없는 우울, 그런 것. 마치 장마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날이 갤 수는 있겠지만 내일 당장 날이 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마 말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생의 희극과 비극을 섞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극히 비극에 치중한 것 같다.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분명 웃을 만한 포인트는 곳곳에 있다. 정의를 위해서라고 잔뜩 거들먹거리지만 사실 신고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중요한 남자, 개를 죽이러 갔다가 개에게 반격당해 도망치는 사람들, 9평짜리 빌라 지하방에 가득찬 세 대의 냉장고, 화염병에 불붙일 라이터가 없어 허둥거리고 자신이 공격한 영업점 여직원이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학생...... 하지만 전체적으로 글에 깔린 분위기가 웃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같은 유머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불러오는 웃음의 정도가 다른 법. 작가는 유머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같다.
 
  이 책의 태반에는 연애 얘기가 깔려있다. '달려라 자전거', '고물 냉장고' 두 편을 빼고 전부 나온다. 이 책에 나오는 연애가 연애일까. 연애는 연애인데 활활 타오르는 연애가 아니라 모진 바람에 휩쓸려 거의 다 사그라진 깜부기불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연애조차 열정 없이 흘러간다. 잔뜩 얻어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복서처럼.
 
  <삼류가 간다>를 읽고서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
  장마는 끝나고 열정은 다시 타오를 수 있을 것인가? 
  
   

 2011.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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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2 펭귄클래식 102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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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년 전 쯤, 갑자기 <작은 아씨들>의 뒷 이야기가 읽고 싶어져서 찾아다녔다. 그런데 절판이 된 상태였다. 그냥저냥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펭귄클래식에서 <작은 아씨들 2>를 2011년 2월 출간한 모양이다.
 
  작은 아씨들 2부는 개인적으로 <조와 에이미>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조&에이미의 위주로 전개된다. 1부에서의 비중은 조>메그>베스>에이미라면 2부는 조>>에이미>>>>>메그>베스다.
 
  알콩달콩 가족드라마의 성격이 짙었던 1부와 달리 2부는 연애 얘기에 가깝다. 1부에서 거의 비중이 없어 철없는 막내공주의 이미지만 있었던 에이미는 2부에서는 거의 인격이 바뀐 것 같다. 다정하고 신중하고 남에게 쓴소리도 할 줄 알고 인내심도 있고 야망도 있고...... 허영끼는 아직 있지만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안다. 게다가 그림 잘 그리고 얼굴 예쁘고 사교적. 한 마디로 거의 엄친딸이다. 그에 비해 조는 확실히 1부의 연장선에 있다. 활발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고집세고 자기애가 강하다. 조와 에이미의 대립이 선명해서 재미있었다.
 
  "말싸움하고 싶지 않아. 다만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란 거야. 그 이치를 어기는 사람은 비웃음만 당할 뿐이야. 난 혁명가를 싫어하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아."
  "난 혁명가를 좋아해. 될 수 있다면 되고도 싶고. 비웃음에 굴하지 않는 혁명가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결코 잘 돌아가지 못할 걸. 너는 오래된 세상에 묻혀 있고 난 새 세상을 갈망하니까 생각이 다를 수밖에. 넌 가장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 난 가장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살 테니. 난 돌멩이와 야유소리가 난무하는 세상이 더 좋아."
(작은 아씨들 2, p.102에서 조와 에이미의 대화)
 
  결국 조의 말처럼 됐다.
 
  2부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면 조가 로리를 찬 사건&로리와 에이미의 결혼이다. 1부에서 조와 로리의 시끌벅적 장난질을 본 사람이면 "얘네 둘이 곧 사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조는 로리를 찼다. 로리는 조를 사랑하지만 조가 로리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게 비극의 시작이고, 성격이 너무 비슷하여 로리가 불행해질 거라고 조가 생각한 게 비극의 끝이다. 하기야 부자에다 귀부인인 조는 상상이 안 가기는 한다.... 어쨌든 로리는 상심하고 유럽에 가는데, 숙모 가족과 함께 유럽에 가 있던 에이미와 니스에서 만나고, 에이미에게서 "난 로리를 경멸해."라는 엄청난 쓴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사랑의 시작. 로리의 취향은 자신에게 잔소리&쓴소리 하는 여자인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조의 사랑은 참 조 답다. 조는 잠시 가정교사 일을 하기 위해 머물던 뉴욕에서 가난한 독일어 교수 프레드리히 바에르를 만나 친구가 된다. 로리를 차고, 베스가 죽고, 집 근처에 머물게 된 바에르 교수와 교류하면서 조는 사랑이 싹튼다(바에르 교수의 경우 뉴욕에서부터 이미 조를 좋아하고 있었다). 조는 마치 숙모할머니에게서 플럼필드 저택을 물려받고, 바에르 교수와 결혼하여 함께 학교를 세운다. 조는 네 자매 중에서 가장 가족에 대한 애착이 심하니까 아버지를 닮은 바에르 씨와 결혼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메그는 존 브룩 씨와의 결혼생활의 해프닝(돈 문제/육아 문제)이 주로 조명된다. 보고 있으면 존 브룩 씨가 메그를 참 귀여워하는구나 싶다.
  베스는 거의 공기같다. 죽음조차도 조용하다. 나는 1부의 수줍음 많은 소녀 베스가 좋아서, 베스가 그렇게 조용히 간 게 슬펐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브룩 부인, 바에르 부인, 로렌스 부인이 마치 부인과 함께 있는 모습에서 특히.
 
  1부와 2부를 합쳐서 조가 자매들에게 가지는 인식은 대충 이런 것 같다.
  메그 - 언니는 멋져! 좋아! 내 자랑!
  베스 - 사랑스러운 동생. 지켜줘야 함.
  에이미 - 라이벌!  

  "네가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 내 소원은 결코 안 이뤄지지만 네 소원은 항상 이뤄지니까."
(p.122에서 조가 에이미에게 한 말)  

  사실 에이미는 메그와 닮은 구석이 많은데(메그보다 조금 더 대차긴 하지만), 조는 메그를 따르는 반면 에이미랑은 싸운다. 언니와 동생의 차이인가?
 
 
  1부만큼 2부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작가의 도덕적 설교는 거북하다. 게다가 남자가 여자보다 당연히 우위라는 게 보여서 불편했다. 여자의 재능과 직업적 성공보다 가정을 이끌어가는 미덕이 더 중요하다는 논조도 그렇고. 그런데 올콧 여사는 19세기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나. 
  
   


201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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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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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정신이고 하나는 물질이다. 물질의 개념으로 보면 책은 잉크로 글자가 적힌 한 뭉치의 종이에 불과하다. 정신의 개념으로 보면, 책은 사람이 표지를 여는 순간 글자를 통해 무한히 영역을 확장하여 세계의 일부를 보여주는 특별한 과정이다.
 
  책의 신비로운 점은,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똑같은 책을 동시에 읽는다 해도 결코 진정한 ‘같은 책’을 읽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을 통해 재탄생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을 물질이라기보다는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대답들이 돌아온다. ‘잉크로 글자를 적어놓은 종이뭉치’라는 대답을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책에 대해서 적을 것이다. 내가 읽은 책들과 읽지 않은 책들과 숨어있는 책들과 사라진 책들과 존재하지 않는 책들과 소문의 책들과 잊어버린 책들과 드러난 책들과 미래에 나타날 책들과 미움받은 책들과 사랑받은 책들과 쫓기는 책들과 죽은 책들과 버려진 책들과 파괴된 책들과 망가진 책들과 부서진 책들과 불탄 책들과 젖은 책들과 파먹힌 책들과 도둑맞은 책들과 팔린 책들에 대해서 적을 것이다. (p.13)


  실제로는 책이 시작하고 약 10p 정도 지난 뒤에 나온 구절이지만, 나는 이 부분이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이 나오지만, 그들은 모두 책에 의해서 휘둘린다. 모든 사건은 책에 의해 일어나고, 책에 의해 진행되며, 책에 의해 마무리 된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의 독특한 점은, 이 과정에서 책의 신성함을 부정하고 철저히 물질적인 단계로 끌어내렸다는 점이다.
 
  이 책은 재미있게도, 책이 죽은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차 도서파동이 지나간 후, 책들은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사람들은 분서축제를 계획한다. 모든 출판물은 검열당하고 책들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책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세계, 그 세계에서 의미 있는 것은 고서들과 희귀본들이고, 그것들은 거액에 거래된다.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소유하는 책이다. 물질이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 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관심이 있는 것은 그 책을 소유할 수 있는가 혹은 아닌가이다. 또는, 그 책이 ‘무언가를 얻는 데’ 필요한가, 혹은 아닌가이다. 그들은 책의 저자, 판본, 내용, 역사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그 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 아니고 돈벌이의 수단이다.
 
  ‘소유하는 책’. 이 말에는 일견 거부감이 느껴진다.
 
  일단 나는, 사람이 읽어야만 책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나를 떠나면 다른 누군가에게 읽힐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내 생각대로라면, 내가 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내가 읽은 책을 남에게 모두 건네주는 것이다. 그 책은 내 손을 떠나서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로 여행을 갈 테고, 아주 많은 의미를 가진 뒤에 어딘가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책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해도 그 책이 내 손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니 나는 책을 어느 정도 ‘소유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책을 끌어안고 있으면 책에 발이 묶이게 돼. 책은 읽으면 버려야 되는 거야. (p.168)


  반디의 친구인 제롬은 반디에게, 자신이 찾아다니고 결국 소유한 책들을 언젠가 다 처분할 거라고 말한다. 한 권도 남김없이. 그리고 그 뒤에 다시 모을 거라고 덧붙인다.
 
  반디는 책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이 책의 끝에서 반디는 자신의 모든 책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반디는 마지막에 누군지 모를 사람이 보낸, 타다 만 책(그동안 반디가 줄곧 찾아다녔던 <또다른 찰리 이야기>)을 손에 넣고, 자신이 언젠가 책 사냥꾼이 다시 된다면 두 권의 책(자신이 직접 쓴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와 방금 손에 넣은 <또다른 찰리 이야기>)을 시작으로 하겠다고 생각한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를 얼핏 보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어지럽게 널린 책들에 의해서 어지럽게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흐름을 짚어보면, 이 책은 ‘찾고- 소유하고- 잃어버리고- 찾는’ 도식을 가지고 있다.
 
  찾고, 소유하고, 잃어버리고, 찾는다. 이 반복을 보고 있자면 마치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기분이 든다. 찰리도, 반디도, 제롬도, 윤선생도, 윤노인도 모두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밤하늘의 별들보다 많은 책들 사이에서.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책의 미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속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미로를 헤매는 걸까? 세계의 책?
 
  저자는 이 책을 미로로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거짓들을 만들어낸다. 반디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모습 이면에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언급되는 책들은 실존하는 책과 환상 속의 책들이 뒤얽혀 있다. 배경이 한국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풍기는 느낌은 오히려 환상적인 책의 세상에 가깝다. 책의 미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찾고, 소유하고, 잃어버리고, 찾는 책들에 대해서 기록한 ‘안내서’를 남기는 것뿐이다.
 
  나도 한 때 책 사냥꾼이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찾는 책은 두 권이었는데, 절판된지 시간이 꽤 지나서 찾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 서점, 오프라인 서점, 출판사에서도 재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고책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온라인 중고책 시장은 매물이 거의 없었다. 헌책방에 가 보았지만 켜켜이 쌓여있는 책들의 산을 뒤질 용기가 나지 않아 물러났다. 다행히 찾던 책 중 한 권은 찾기 시작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어 재판이 되어 내 품에 안겼다. 다른 한 권은 아직도 구하지 못했지만.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정말로 책을 물질로 보고 있지 않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책을 물질로 보는 데에는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책이 정신이라면, 절판된 책을 굳이 찾아다니지는 않았을 거다. 그 책은 이미 내가 한 번 읽은 책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록 희귀한 책을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책 사냥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소유한 책 목록을 보니 그 생각이 한층 강해진다. 나에게는 읽어보고 싶은 책, 그리고 내 책장에 꽂아 넣고 싶은 책의 목록도 있다. 나는 책 사냥꾼인가? 다시 질문해보았다. 그렇다. 한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나는 책 사냥꾼이다. 나도 찾고-소유하고-잃어버리고-찾는, 책의 미로 속에 있다. 그렇다면 나도 세계의 책을 찾아야 이 미로에서 나갈 수 있는 걸까.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단호하게 말한다.


  네가 찾는 그런 책은 이제 세상에 없어. (p.206)


  내가 생각해도 세계의 책은 있음직하지 않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의 내용을 담고 있다니, 그것은 세계 자체이거나 혹은 신이라 불리는 존재일 것이다. 세계도 신도, 한낱 인간이 소유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다. 게다가 실체도 없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다. 그런 것을 어떻게 물질로 치환하여 소유할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혹은 자신이 가진 모든 책을 포기할 결심이 설 때까지 책의 미로에서 헤매 다닐 수밖에.
 
  그러나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에서 책 사냥꾼들은 마지막 순간 ‘안내서’를 남긴다. 세계의 책을 포기하지 않고 말이다. ‘안내서’는 자신이 찾아다닌, 소유한, 잃어버린, 찾는 책들의 목록이다. 그것은 책 사냥꾼의 책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기도 하다. 책 사냥꾼의 안내서는 책의 미로를 헤매 다닌 결과물인 동시에 책의 미로로 다시 안내하는 안내서이다.
 
  책의 역사.
 
  이 단어를 곱씹다 나는 내 독서기록장을 떠올렸다.
 
  2008년부터 나는 내가 읽는 책들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읽게 됐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어떤 점이 별로였는지, 뭐가 특이한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줬는지, 그리고 또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그 기록들은 두서가 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어떤 책으로 시작해서 어떤 책으로 나아가는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다시 말해 독서기록장은 내가 책의 미로에서 헤맨 기록이고, 또한 내가 책의 미로에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를 읽으면서, 이 혼란스럽고 다소 장황한 이야기를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을까, 왜 이 책 속의 세계가 이렇게 나를 끌어당길까 생각했다. 그건 이 책이 책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책 사냥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책 사냥꾼이고, 책을 미로를 헤매고 있고, 안내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부디 내 책 사냥꾼으로써의 여정이 모든 책을 잃어버리면서 끝나지 않기를, 내가 나만의 세계의 책을 완성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내 ‘안내서’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반디가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책 사냥꾼이 되기를, 그래서 책의 미로를 헤매는 동료가 줄어들지 않기를 꿈꾼다. 그게 비록 책이 더이상 의미없고, 책 읽는 사람들이 희귀해진 세상 속이라 하더라도. 
   


201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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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의 밤 매그레 시리즈 6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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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그레 시리즈 NO.6.
  내가 읽은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는 세 번째.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표지의 비밀(?)을 알아냈다. 뒷권 표지의 그림이 앞권 표지에 살짝 등장한다는 것 말이다(지금까지 표지는 1-술병, 2-열쇠, 3-세로로 세워진 가방, 4-말, 5-등대, 6-자동차). 내 추리가 맞다면 다음 표지는 모자(중절모) 모양이다. 이런 위트 좋아한다.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보험업자인 에밀 미쇼네가 자신의 6기통 새 자동차 대신 이웃집의 고물차가 차고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웃집에 간 미쇼네는 이웃집 차고에서 자신의 차를 발견하고, 그 안에 총을 맞아 죽은 시체(다이아몬드 상인 골드베르그로 밝혀짐)가 있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집주인인 카를 안데르센을 범인으로 보고 17시간 동안 취조하지만, 자신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는 답변만 받고 카를을 풀어준다. 매그레는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사건이 일어난 장소, 세 과부 교차로에 가서 세 집(정비소, 보험업자 미쇼네, 카를 안데르센의 집)을 둘러본다. 카를이 없을 때는 집에 갇혀있다고 말하는 카를의 누이 엘세, 집안에서 몰래 주변을 감시하는 미쇼네, 하루 종일 자동차가 드나드는 정비소. 그리고 골드베르그 부인이 세 과부 교차로에 도착한 순간, 총에 맞아 사망한다. 카를은 급료를 받으러 파리에 갔다 실종되고, 엘세는 계속 말을 바꾸고, 누군가는 엘세를 살해하려 술에 독을 타고, 실종된 카를은 집에 돌아오다 정원에서 총을 맞는데......
 
  처음 사건도 간단해보이지 않는데 사건이 거듭되면서 얘기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 대체 이걸 해결할 수는 있나 싶다. 두 이웃의 차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골드베르그는 왜 세과부 교차로에 왔던 건지, 미쇼네는 왜 주변을 계속 훔쳐보는지, 카를과 엘세의 관계는 무엇인지..... 지금까지 읽은 세 이야기 중에 제일 복잡한 이야기다. 매그레도 자신의 입으로 말했지만, 엘세의 실수와 조조의 실수와 미쇼네의 실수가 없었다면 사건의 실체와 그 사건의 원흉이 된 거대한 범죄는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 집에 모두 범인이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난 정비소만은 믿었는데 거기가 악의 축이었고 ㅠㅠ 엘세가 카를과 남매가 아니라 부부라는 건 예상했고 미쇼네가 엘세를 좋아한다는 것도 짐작했지만 사건의 핵심이랄 부분은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다 lllorz
 
  <교차로의 밤>은 매그레가 읽어내는 인간 심리보다는 스릴러의 느낌이 더 강하다. 액션도 있고. <누런 개>보다는 <수상한 라트비아인> 쪽에 느낌이 더 가깝다. 끝까지 읽고 나면 "아 그랬군!"이라는 생각이 들고 깔끔하게 정리되지만, 아무래도 중간에 조조가 실수를 저지르고 정비소의 실체가 밝혀지는 부분은 좀 갑작스러운 느낌이 있다. 매그레와 엘세의 심리전에서는 어쩐지 셜록 홈즈와 아이린 애들러가 떠올랐다. 셜록<아이린이었던 것과 달리 여기서는 매그레>엘세이지만.
 
  밤이 불러내는 미묘한 느낌과 신비한 여인, 엿보는 사람들, 숨어있는 적 등, 전체적으로 숨죽이고 보게 되는 글이다.
  그런데 결국 엘세가 카를에게 가진 감정, 카를이 엘세에게 가진 감정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참 묘한 두 사람이다. 
  
   


2011.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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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고뇌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5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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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세 개 하고 반 정도. 네 개라고 하기에는 조금 못 미친다.
 
  <탐정 갈릴레오>를 보고 범인보다는 범행수법에 초점을 맞춘 것이 꽤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갈릴레오 시리즈를 다 읽어볼까 생각했다. 중간의 세 권(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 성녀의 구제)는 모두 장편이라서 <갈릴레오의 고뇌> 쪽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나는 시리즈물을 아주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어쩔 수 없이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갈릴레오의 고뇌>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갈릴레오의 고뇌>는 <탐정 갈릴레오>와 맥락을 같이한다. 범인보다도 범행수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은 신선함이 상당히 무뎌졌다. 다섯 편의 단편에서 기이한 범행수법이 등장한 것은 두 편 정도. 나머지 두 편은 별로 신비스럽고 이상한 일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설정이었고, 한 편은 아예 과학적 증명이 나오지 않았다.
 
 
* 떨어지다
- 한 여성이 자택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서 사망한다. 그러나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정황증거들이 보인다. 여형사 가오루는 여성이 타살되었으며 그 용의자가 아파트 아래에서 여성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범행은 가능할까?
: 유가와가 '나는 이제 경찰에 협조 안 해.'라고 말해서 어리둥절해졌던 편. 이전의 3개 장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가오루는 살인사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다지 타살의 냄새가 풍기지 않아서 과학 실험에도 별 흥미를 못 느꼈던 건이다. 결말은 괜찮았다.
 
 
* 조준하다
- 유가와의 은사가 학생들을 초대한 밤. 은사의 아들이 별관에서 칼에 찔린 뒤 불에 타 숨진다. 한 눈에 보기에도 타살임이 분명하지만 흉기로 추정되는 일본도를 가진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유가와는 사건 정황에서 석연찮음을 느끼고 어떤 실험을 해보는데.......
: 범인이 저 사람 같은데, 저 사람이 어떻게 그 범죄를 저질렀지? 하는 의문에 후딱후딱 읽어버린 단편. <갈릴레오의 고뇌>에 실린 다섯 편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더불어 유가와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드러나는 단편인 듯 하다. 확실히 유가와에게는 유가와의 정의가 있다. 범행수법도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싶어서 좋았다.
 
 
* 잠그다
- 친구의 요청으로 친구의 펜션에 초대받은 유가와. 친구는 저번에 계곡에서 자살한 손님을 찾아 방에 들어갔을 때, 빈 방이 밀실이 되어있는 걸 목격했다. 친구는 밀실의 수수께끼를 풀어달라고 유가와에게 요청하지만, 유가와의 질문에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데.......
: 밀실에서 시체가 발견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밀실에 집착할까? 싶었던 단편. 사용한 수법은 재미있었지만, 별로 임팩트가 있진 않았다. 애초에 수수께끼 자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 가리키다
- 노부인의 집에서 금괴가 도난당하고 개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용의자로 지목받은 40대 여성의 딸은 다우징으로 개의 사체를 찾아낸다. 다우징으로 무언가를 찾는다는 게 가능할까?
: 과학적 실험이라기보다는 유도심문의 승리. 개가 불쌍했다.
 
 
* 교란하다
- 경찰청에 익명의 편지가 도착한다. 자칭 '악마의 손'이라는 그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것이며 경찰은 그것을 사고사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도발하며, 필요하다면 유가와에게 비밀을 풀라고 요청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악마의 손'이라는 자의 말대로 사고로 보이지만, '악마의 손'이 미리 예고해놓았던 범죄가 두 건 일어난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는데.......
: <탐정 갈릴레오>에 나왔던 '폭발하다'와 느낌이 비슷했다. 남탓 쩌는 사람은 정말 싫다. 그와는 별개로 수법이 뭘까 궁금했다. 숙련공을 빌딩창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차를 갑자기 지그재그로 움직이게 만든 수법은??
 
 
  전체적으로 <탐정 갈릴레오>보다 스토리도 사람도 많이 유해진 느낌이다. 이걸 알기 위해서는 중간 시리즈를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아예 시리즈 순서대로 읽을 걸 그랬다고 약간 후회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글을 못 쓰는 건 아니다. 잘 쓴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자면 어딘가 불편해진다. 이번 소설에서도 그랬다. 같은 말을 해도 미묘하게, 정말 미묘하게 느낌이 이상하다. 예를 들어 이번에 가장 나를 찜찜하게 만들었던 건, 여형사 가오루 씨의 똑부러진 말이었다.
  "가까이 있으면 더 자주 전화를 하게 되는 법이죠. 여자란 그런 동물이거든요."
  딱히 틀린 말이 아닌데, 가오루씨의 대사는 미묘하게 불쾌하다. 몇 번이고 뚫어져라 보다가 이 부분이 단순한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가치판단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단정적인, 예외가 없는, 어떤 닫힌 사고방식 말이다.
  한마디로 '잘난척쟁이'라고 하면 될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재미는 있는데, 확실히 나와는 맞지 않는다. 
   


 
201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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