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소년 소녀가 자라 청년이 되면서 무슨 일을 겪는 걸까요?
그들은 가슴속에 상실의 씨앗을 키웁니다.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 그들에게 가장 상처를 입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상실을 공유합니다. 상실에 대한 공통의 감각, 그건 아마 그들이 가져왔던 꿈이 그 야릇함과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점점 더 현실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한 어느 날 밤,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자!"라고 말하는 그 밤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이상한 점은 다들 똑같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그만 정신 차려야지!"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는인생에서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생 전체가 중요하다는 것, 매일매일 불행하다가 어느 한 순간 찬란하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나는 뼈 한 조각을 보면서보람이란 것을 어떤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겐 꽃 이름을 아는 것보다 어디선가 꽃이 피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걸 느껴야 합니다. 낙엽 하나가 떨어져도 낙엽이 떨어지는 걸 느낄 줄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릴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늘 어떤 식으로든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낮의길과 밤의 길, 세상이 살라고 하는 길과 내가 살고 싶은 길, 우리 마음도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혼자이고 싶은 것과 함께이고 싶은 것. 용감해지고 싶은 것과 편안해지고 싶은 것. 싸우고 싶은 것과 고요해지고 싶은 것. 인정받고 싶은 것과 초연해지고 싶은 것. 뜨겁고 싶은 것과 서늘하게 마음을 비우고 싶은것. 속하고 싶음과 벗어나고 싶음. 떳떳하고 싶음과 포기하고싶음. 자부심과 자기 비하. 살고 싶음과 죽고 싶음.

그런데 한 인간이 먹고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나 한번은 묻습니다. 대체 내가 왜 힘든 거지? 내가 왜 이렇게 사는거지? 정말로 누구나 한 번은 묻습니다. 자연 속에서 삶의 유한함에 고민하지 않고 슬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행복해하면서 노동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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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사랑하지만 가족은 제게 가장 큰 아픔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감추고 싶은 구석이었습니다. 가족을 찍을 수 없어 풍경을 찍고 친구들을 찍었습니다. 외면하는 일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허함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엄마의 글씨는 선명했지만, 사는 시간이 통증 같아서 삶에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어디 속해 있을 땐 그 소속감이 그렇게 지겹더니 혼자 동떨어지니 부자유가 그리웠다. 누군가의 무엇인 내 상태가 그리워졌다. 바다는 아무런 해방감도 주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가. 햇빛에 그을린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까맣게 탄 고등어를 보며 아빠 앞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했던 찰나다. 만드는 사람은 원래 그래야 한다고. 내 앞에 앉은 아빠는 얼떨떨한 얼굴로 아빠다운 신소리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부정이자 나를 향한 위로, 어떤 말은 뭍에 묻지 않아도 괜찮았다.

예지는 눈이 참 예뻐, 그 눈으로 사진을 찍으면 세상이 아름다울 거야.

저는 점점 제 감정을 말하는 것에 흥미를 잃었고요. 사진을 찍고 짧은 글을 쓰는 동안엔 솔직해질 수 있었어요. 한 친구가 제 블로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너랑 그 속에 있는 글은 너무 다른것 같아" 라고요. 슬프다고 해서 내내 명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이제는 슬픔을 곁에 두고자 합니다. 그 또한 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전하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던, 끝내 들키고싶은 모습을 이 책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저의 시간을드릴게요. 이 책을 덮으면 당신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이에요. 아린 마음과 함께 우리가 다정한 세계로 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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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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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과거처럼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고 풀처럼 걸쭉해져서 반죽기 안에 든 노란색 크림처럼 우리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다.

"나는 리나 아버지에게 맞서지 못했고, 그때만 해도 돈이 없었거든. 리나도 너처럼 될 수 있었는데. 그런데 너무 빨리 결혼을 해버렸어. 이젠 너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거야. 돌이킬 수 없게 됐지. 우리네 삶이란 우리를 제멋대로 이끄는 법이니까."

나는 일화와 니노를 통나는 타인의 요구에 복종하는 존재였다. 나는 릴라와 니노를 통해서만 의미를 얻는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다.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들은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구석에 처박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릴라에게 사랑은 상대방이 자기를 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릴라는 니노를 가질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해변과 바다, 온갖 형상의 짐승 무리와 함께 전 우주적 두려움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미세한 입자일 뿐이고 이 미세한 입자를 통과하는 모든 것은 그제야 스스로의 두려움을 자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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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인 걸 알았다. 그래서 『커피와 담배』라는 책을 쉽게 쓸 줄 알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쓰면 되니까. 착각이었다. 기분 좋게 좋아하는 것과 절박하게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에 대해서 쓰는 것은 결국 나에대해 쓰는 것이고, 정직하게 대면한 맨얼굴을 드러내며 쓰는 것이다. 커피에 대한 글을 써보면 알게 될 것이다.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고 커피에 대해 쓰려고 하면 그 글은 커피잔 그림과 함께 카톡에 돌아다니는 ‘어르신 짤‘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내 처지에서 원하는 것을 한 가지 이루려면 열 가지쯤 포기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였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멍하게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면, 적게 일하고 적게 벌면 된다. 그러려면 적게 가지고 적게 쓰면 된다. 그 시간과 교환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삶에서 덜어내면 된다.
미용실은 안 가도 되고, 화장도 안 해도 되고, 옷도 친구들이 주는 옷을 얻어 입으면 되지만, 커피는 포기할 수 없었다. 커피는 유일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영역이고 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영역이었다.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거나 누군가의 마음에 담기는 것도 욕심,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누군가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게 하는 것도 결국 다 마찬가지로 욕심이었다.

지나친 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때때로 마음의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바란 것은 이해가 아니라 그저 존중이었던 것 같다.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존중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듯이 좋아하지만 존중하지 않을 수 있다. 존중해도 그것을 상대방이 느끼도록 표현 못 할 수도 있고.

하지만 나는 밥을 굶고 그 5000원으로 커피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가장 값어치 있는 5000원은 커피값이니까. 내 한 시간을 가장 사치스럽게 쓸 수 있으니까. 거기에 500원을 보태서 카푸치노를 마셔야 한다. 먼저 따뜻하고 둥근 잔을 손으로 감싸서 온기를 느끼고, 부드러운 우유 거품을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모금 마시고, 그 폭신한 구름이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런 다음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손바닥에 눈물이 차오른다. 커피값을 줄이라니, 정말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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