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인 걸 알았다. 그래서 『커피와 담배』라는 책을 쉽게 쓸 줄 알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쓰면 되니까. 착각이었다. 기분 좋게 좋아하는 것과 절박하게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에 대해서 쓰는 것은 결국 나에대해 쓰는 것이고, 정직하게 대면한 맨얼굴을 드러내며 쓰는 것이다. 커피에 대한 글을 써보면 알게 될 것이다.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고 커피에 대해 쓰려고 하면 그 글은 커피잔 그림과 함께 카톡에 돌아다니는 ‘어르신 짤‘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내 처지에서 원하는 것을 한 가지 이루려면 열 가지쯤 포기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였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멍하게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면, 적게 일하고 적게 벌면 된다. 그러려면 적게 가지고 적게 쓰면 된다. 그 시간과 교환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삶에서 덜어내면 된다.
미용실은 안 가도 되고, 화장도 안 해도 되고, 옷도 친구들이 주는 옷을 얻어 입으면 되지만, 커피는 포기할 수 없었다. 커피는 유일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영역이고 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영역이었다.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거나 누군가의 마음에 담기는 것도 욕심,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누군가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게 하는 것도 결국 다 마찬가지로 욕심이었다.

지나친 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때때로 마음의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바란 것은 이해가 아니라 그저 존중이었던 것 같다.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존중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듯이 좋아하지만 존중하지 않을 수 있다. 존중해도 그것을 상대방이 느끼도록 표현 못 할 수도 있고.

하지만 나는 밥을 굶고 그 5000원으로 커피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가장 값어치 있는 5000원은 커피값이니까. 내 한 시간을 가장 사치스럽게 쓸 수 있으니까. 거기에 500원을 보태서 카푸치노를 마셔야 한다. 먼저 따뜻하고 둥근 잔을 손으로 감싸서 온기를 느끼고, 부드러운 우유 거품을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모금 마시고, 그 폭신한 구름이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런 다음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손바닥에 눈물이 차오른다. 커피값을 줄이라니, 정말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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