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 탐구하고 천착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이해해보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언젠가 우리는 지금과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렇게먼 미래에도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하며 닿기를 갈망할 것이 다.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45. 릴리는 모든 문제가 자신이 태어나기로 결정된 그 순간에 있다고 생각했다.

🖍49.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 어떤 결점들은 결점으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마을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52.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54.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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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하던 노학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광경이 떠오른다. "암흑 속의 빛(Lux in tenebris). 이것이 세상에서 기적이 갖는 의미다. 기적은 어둠 속의 빛으로서 민중과 작가의 표상 속에 살아 있다. 왜 우리는 성탄절 밤에 촛불을 켜는가? 우리는 그 빛을 그 밤에 일어났던 기적의 상징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의 종교와 문학은 빛의 상징을 알고 있다." 암흑 속의 빛. 그건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빛이다. 그렇기에 기적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의 베르너처럼 깊은 밤, 심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목소리에 단 한번이라도 귀를 기울여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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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이 좋아?"
동년배 친구들과 젊음이 화제가 되면,
"서른여덟 살 정도가 좋아."
대체로 이즈음의 나이가 나온다. 20대가 보기엔 좀더 젊은 편이 좋지 않나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서른여덟 살은 얼핏 보면서른 남짓. 자세히 보면 서른 서넛. 충분히 젊다. 그리고 내가 강해졌구나, 하는 것을 그제야 느낄 수 있는 나이다.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고 싶다, 생각되어야 한다. 하는 마음에서해방되기 시작할 무렵이기도 했다.
젊은이는 자신이 원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이 높다. 이상의깃발을 계속 흔들다 이건 좀 무리네, 하고 일단 깃발을 내리는것이 30대 후반이다.
어떤 사람이든 언젠가는 서로 이해하게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가 싫어지는 것은 내 속에서 소중히 여기는 그 무언가가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아하 그건 어쩔 수 없겠구나 하고 어깨의 힘도 빠진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그냥 사람‘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을까. 흑백 가리지 않고, 흐르는 강물 같은 관계를 맺는것도 괜찮지. 그렇게 생각하는 데 38년 정도는 걸린다.

🖍97. 볼탕스키 인터뷰 영상이 흐르는 방도 있었다. 그가 앞으로 제작하고 싶은 작품은 먼 파타고니아 땅에 거대한 트럼펫을 설치하여 바람이 불 때마다 고래의 노래를 연주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도 볼 수는 없겠지요."
그는 냉정하게 얘기했다.
제작해도 아무도 볼 수 없는 작품.
그 작품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존재를 아는 데 의미가 있다.
지칠 대로 지친 하루의 끝에,
"오늘 밤도 극한의 파타고니아 땅에서 트럼펫이 고래의 노래를 불고 있겠구나."
상상해보는 것도 볼탕스키 작품이다. 가지 못해도 좋다, 보이지 않아도 좋다. 아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나는 그의 작품전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언제였던가, 소중한사람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해준 얘기를 떠올렸다.
그 사람은 혼자 공원을 걷고 있었다. 그때, 흰나비 한 마리가계속 뒤를 따라왔다고 한다. "이별 인사를 하러 와주었네." 생각했단다. 멋진 얘기구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까지 팔랑팔랑춤추는 봄나비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98. 이야기가 사람을 강하게 한다.
나는 볼탕스키 작품으로 인해, 혹은 미얀마 축제로 인해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파타고니아에서 트럼펫이 고래의 노래를 부는 것. 미안마에서는 오늘도 "맛있네" 하고 서로 얘기하며 찻잎 샐러드를 먹는가족이 있는 것, 확인은 할 수 없지만, 알고 있는 것만으로 뭔가 기쁘다.
소중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잃었다고 해도 있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괜찮다. 그것이 흰나비를 대신하는나의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힌트는 바깥에, 사람 수만큼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108. 엄마는 "으응?" 하고 웃으면서도 가지튀김찜, 야채 튀김, 무말랭이조림 등 몇 가지 요리를 들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지만, 하나도 엄마처럼 만들지는 못한다.
언젠가 닥칠 엄마와의 이별은 엄마의 요리를 잃어버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살아 있을 동안 배워두고 싶은 마음이들지 않는다.
특히 오하기.
오하기를 좋아해서 본가에 가면 종종 엄마가 만들어준다. 팥을 어떻게 삶는지 냄비 속을 슬쩍 본 적은 있지만, 결국 먹는 것전문이다. 동생은 화과자를 먹지 않아서 오하기도 먹지 않는다.
당연히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배우지 않으면 대가 끊길맛인데 귀찮다고 미루고 있다.
사카이 준코 씨가 『생활의 수첩 부록 - 생활의 수첩 인기 요리』에 기고한 아름다운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아무도 살지 않는 친정에 혼자 서성거리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카레가 있었다.
사카이 씨는 이렇게 썼다.

🖍109. 이 카레는 아마 엄마가 영원한 외출을 하기 전에 자식에게남긴 마지막 음식이지 않을까.‘
나도 언젠가 그런 요리와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134. "근력이 좀더 생기면요."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다음 날, 나는 도쿄에 돌아가야 해서 그 전에 아버지에게 켄터키를 사 갈까. 생각했다. 별로 식욕이 없는 듯해서 한 입밖에먹지 못하겠지만, 그 한 입이 먹고 싶은 것이리라.
그러나 역 앞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까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기다렸다가 이래저래 하면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생각하니 귀찮아서 결국 엄마가 깎아준 감을 들고 아버지에게 갔다. 감을다 먹고 아버지는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이 아버지가 내게는 살아 있는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이 됐다.
병실을 나가는 내게,
"또 와라."
아버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벚꽃 가로수길과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나란히 써놓고 보니 아무런 맥락도 없다.
그러나 어떤가. 순수하게 마음을 전하고, 귀찮아하지 말고 살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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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누구나 남을 자기로밖에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있을 때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 조금 슬펐던가.

🖍212. 나는 엄마가 소피마르소 사진을 자주 바라보던 때가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그때 엄마는 최대한의 자신을 꿈꿀 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될 수 있었던 어떤 자신, 그 무수한 가능성들이 다 아까워서 서글펐다.

다. 엄마가 될 수 있었던 어떤 자신, 그 무수한 가능성들이 다 아까워서 서글펐다.

🖍244. 그리고 작가가되고 싶었다. 왜인지는 잘 설명할 수 없었다. 뭔가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지독한 짠순이인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장면이 너무 아까워서 어떻게든 가지거나 복원하려고 애쓰는 짠순이라고.

239. 엄마에게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니 돈이란 정말이지 근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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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여름도 끝이구나, 세시는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밤에는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안에 깃들여야지.
이제 그녀는 타르 웅덩이 옆 길가의 훌륭하게 토실토실 살찐귀뚜라미 속에 있었다. 다음에는 철문에 맺힌 이슬방울 속에 있었다.

🖍45. 그럼 저는요, 할머니?" 티모시가 말했다. "저도 꼭대기 다락방 창문으로 들어온 건가요?"
"넌 찾아온 게 아니란다. 우리가 너를 찾아냈지. 셰익스피어로 발을 싸고, 포의 어셔 가를 베개 삼아 바구니 안에 들어 있었단다. 네 윗도리에는 ‘역사가‘라는 쪽지가 핀으로 꽂혀 있었지.
너는 우리에 대해 적으라고, 목록을 만들라고, 태양에서 날아내려오는 모습과 달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록하라고 보낸 거란다. 하지만 어쩌면 너도 저택이 불렀다고 할 수도 있겠구나. 너는 글을 쓰고 싶어 조바심치며 작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으니말이다."
"뭐를요, 할머니? 뭘 써야 해요?"

🖍61. 티모시는 어둠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부디, 제발, 시고 제발, 저도 지금 도착할 가족들처럼 자라나게 해주세이 늙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되게 해주세요. 다른가족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해도 죽을 수가 없거나, 먼 옛날에 이미 죽은 이들이라고 말했어요. 세시도 그렇게 말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할머니도 그렇게 속삭이시는데, 그리고 이제 다른가족들도 모두 오는데 저는 아무것도 될 수가 없어요. 벽을 뚫고 들어오거나 나무 위에 살거나 땅속에 살다가 17년 만에 비가 내리면 물을 타고 흘러나오는 이들도, 무리를 지어 뛰어나오는 이들도 될 수가 없어요! 저도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 모두 영원히 사는데, 왜 저는 그럴 수 없나요?"

🖍180. "죽음이란 신비로운 것이란다." 어머니가 티모시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삶은 더욱 신비롭지. 네가 고르면 된단다. 그리고 삶의 끝자락에서 먼지가 되어 흩날리는 일도, 젊음에 도달해서 탄생으로, 탄생 속으로 되돌아가는 일도, 모두 단순히 이상하다고는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니?"
"그렇겠죠. 하지만."
"받아들여." 아버지가 포도주 잔을 높이 들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 기적을 축하해라."

🖍221. 여러분은 아주 오랜 시간을 사는데, 끝없는 시간이 있는데, 그 모든 시간을 다 써도 별로 행복한 것 같지가 않거든요."
"아, 그렇지. 시간은 무거운 짐이니까. 우린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한단다. 너무 오래 산 것이 분명하지.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이다. 티모시, 네가 얻은 새로운 지혜를 이용해 충실한 삶을 사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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