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엄마는 내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다. 나는 아몬드라면 미국산부터 시작해서 호주산, 중국산, 러시아산까지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종류는 다 먹어 봤다. [...]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산이 최고다. 이제 태양 빛을 잔뜩머금어 은은한 갈색빛이 도는 캘리포니아산 아몬드를 먹는 나만의 방법을 알려 주겠다.
🖍52. 해가 공기를 붉게 물들이면 할멈이 소주를 들이켜며 캬, 소리를 냈고 엄마는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목소리로 좋다, 하고 장단을 맞췄다. 캬, 좋다! 엄만 그 말의 뜻이 행복이라고 했다.
🖍52.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아아라아아앙, 사랑. 사랑사. 랑사. 랑사. 영원, 영원, 영원. 영.원. 여어엉, 워어어언. 자, 이제 의미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백지였던 내 머릿속처럼.
🖍94. 책의 제목은 ‘데미안‘ 이었다. - 어쨌든 백만 원이에요. 그건 엄마의 책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엄마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한 책. 팔지 않을 책이었다. 하필 그걸 고르다니 용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132.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139. 그래서, 누가 그러자고 정한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 곤이와 나는 서로 모른 척했다. 말을 섞지도 눈을 마주치지도않았다. 우리는 칠판지우개나 분필처럼 그저 학교를 구성 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거기서는 누구도 진짜가 아니었다.
🖍252. -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189. 책방에 이렇게 많은 책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칸칸이 꽂혀 있던 이 많은 생각들, 이야기들, 연구들, 한 번도 보지 못한 숱한 저자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그들이 나와는 너무도 멀리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 보는생각이었다. 그 전까진 그들과 가깝다고 생각했다. 비누나수건처럼,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곳에,
🖍179. - 근데 엄마,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 거야? 할멈이 도끼눈을 떴다. 그럼! 그러더니 낮게 읊조렸다. -사랑.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궂게 물었다. - 예쁨의 발견.
🖍171. 나는 운명이 주사위 놀이를 하는 거라고 말해 주려다가 그만뒀다. 그거야말로 책에서 읽은 구절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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