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밤새도록 끙끙 앓다가 문득 깨어 등이 땀으로 젖어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이 들면서 친구들의 죽음을 겪었던 날 자신에게 왔던 거대하고 차가운 그것, 슬픔에 안심하던 경애가 있었다. 그리고 때론 그 모든 것을 느끼는 마음 따위는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애가 있었다.

🖍143. 그런데 그렇다면 이런 마음은 어떻게 폐기되는 건가요? 싹 다 폐기하라고 쓰셨는데구체적인 방법은 언급이 없어서요.

🖍151. 안녕, 오늘도 무사한 아침이야.
무사하다는 것은 무한과 무수 사이에서 간신히 건져올려진 낱말같아.
막막한 바다를 떠다니는 작은 보트처럼.

🖍176.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리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209. 그 무렵 인천에 가보면 해고된 자동차공장의 사람들이긴 행렬을 이루고 집회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날 상수는 해고는 불가피한 일 아니야? 라고 말했다. 그즈음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며 하는 대부분의 논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은총은 "너는 소중한 걸 잃는다는 게 뭔지 모르는구나"

🖍258. 상수가 경애를 전혀 모르던 시절에도 있던 경애스러움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상수가 결국 경애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라도 경애가 경애인 것은 계속되겠지. 생활을 위해 밥을 챙겨먹고 필요하면 달리고 어쩔 때는 화도 내고 울고 차갑게 뒤돌아서기도 하며 살겠지 생각하니 뭉클해졌다.

🖍268. 사람이 어떤 시기를 통과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했다. 그때도 나아간다‘라는 느낌이 가능했던가. ‘견뎌낸다‘라는 느낌만 있지 않았나.

🖍291.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한번 써본 마음은 남죠. 안 써본 마음이 어렵습니다. 힘들겠지만 거기에 맞는 마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

🖍307. 생각해보면 경애가 파업 이후 회사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버틴 건, 버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버려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멸 속으로.

🖍310. 산주가 힘을 내라는 명료한 위로를 전한 순간만은 견딜 수 없이 불행해진 기분이었다.

🖍333. 그리고 "최선을 다 해요!"라고 외쳤다. 그건 흔한 구호라서 별다른감동은 없었지만 조던이 "이미 최선을 다 했지만" 하고 유 디드 유어 베스트,라고 덧붙였을 때는 상수도 울 듯 말 듯한 얼굴로 돌아서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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