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내의 그 집은 겨울이면 비탈길이 꽝꽝 얼이서 차는 물론이고 사람도 올라가기 힘든 곳에 있는데 해마다 누군가가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 밧줄을 백 미터도 넘게 묶어놓아서 그것을 잡고 사람들이 오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은수는 그 광경이 좋아서 어쩐지 겨울을 기다리게 되지만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지금은 매어놓지 않았다는 것도.
그런 게 왜 좋아, 그게 왜, 하고 물니까 은수는 재밌잖아요, 했다. 붙들 것이 있다는 게 누나는 재미있지 않아요?

그리고 그렇게 서로가 특별해질 수 있었다면 그것이 멈춰져야 하는 데도 일종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는 나의 그런 감상적인 성격이 문제라고 했다. 인생이란 열기구와 같아서 감상을 얼마나 재빨리 버리느냐에 따라 안정된 기류를 탈 수 있다고, 아무것도 잃으려 하지 않으면 뭘 얻겠어, 하고 충고했다.

이를테면 바람, 막 출발한 동대구행 KTX가 달리면서 일으키느 이 광포한 바람, 흩날리는, 승강장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현수막, 그리고 바람이 멈춘 뒤 찾아오는 정적 사이에서 느껴지는, 살아있다는 것. 진행되지만 실감할 수는 없는 그것을 모멸하고 난폭하게 굴고 싶은 마음.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나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었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택되는 것이다.

"배우님, 죽은 분은 죽은 분이시고 산 사람은 살아야죠. 정신을 똑바로 차리세요. 무엇보다 생활을 단정히 하세요. 남들처럼 술도 줄이고 아무거나 막 드시지 말고 잠도 자고요. 낮에 일하고 밤에 자고 추운 날에는 코트를 입고요, 장갑도 끼는 겁니다."

"결국 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 미워할 사람이 없어."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니, 그런 건 염세일까, 완벽한 처세일까.

"눈을 감으라고 했다고요?"
"응, 그러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까 나를 좀 봐달라고, 이렇게 어린 나를 누구도 봐주지 않는데 원래 세계는 이렇게 고독할까, 이렇게 흔들어도 계속 혼자일까, 이렇게, 하고.

적어도 여자는 거부하지 않았음을, 살 것을. 최선을 다해 사것을 여자가 했다면 자기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 이 도시에서 어떤 무게를 감당하면서 거짓말처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루어야 할 모든 것을 이루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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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배경음악도 꽤 중요한데, 느리고 구슬픈 음악은 듣는 사람의 마음마저 그렇게 만들기 쉽다(여기에 PMS가 겹치면아주 바닥을 친다), 포르투에서 지낸 지도 어느새 한 달쯤 되었을 무렵, 언제나처럼 카페에 앉아 입 꾹 다물고 혼자 책을 읽고 있는데, 열린 문 앞에 첼로 연주자 3인조가 자리를 잡더니제프 버클리의 〈Hallelujah〉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실로 묵직한 힘이 있다. 순식간에 마음이 스산해지고, 겸허해지며, 인생 뭐 있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나는 왜 포르투까지 왔을까, 대체 여기서 혼자 뭘 하는 걸까. 외롭다. 앞 테이블도 옆 테이블도 다들 즐거워 보이는데, 나는 외롭다.
첼로 3인조는 어느새 다음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찌잉 하는 첼로 소리에 화창한 초여름이지만 내 마음만은 겨울이 된 기분이야…라고 생각하며 한없이 축축 처지려는데, 카페 주인이 벌떡 일어나 문을 닫고 와선루이스 폰시의 〈Despacito〉를 스피커가 터질 듯한 볼륨으로 틀어제꼈지 뭡니까. 갑자기 기분이 확 좋아지면서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마구 흔들고 싶어지더만요. 사장님 여기 맥주 주세요.

여행 중일 때든, 바쁘게 일할 때든, 번아웃 상태에서 회복 중일 때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살살 다독여 다스려야한다. 잊지도 않고 또 오는 스트레스를 잘 구슬려가며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게 가능해지려면 결국 마음의 기초체력과 유연성이 그만큼 받쳐줘야 한다. 하루 중 즐거운 일은 생각보다 적고, 그나마도 아주 짧게 후다닥 지나간다. 그 외엔 종일 무덤덤하거나 멍하거나 불안하거나 울적하다. 한마디로, 잠깐 즐겁고 내내 칙칙하다.

무슨 양파를 그렇게 썰고 있냐, 그럴 거면 마트나 같이 가자고 핀잔을 주는 어머니. 구슬이나 꿰고 앉아 있느니 나가서 카페라도 가자는 친구. 마음은 감사하지만 곤란합니다. 지금 저를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간만에 근처 왔다며 점심이나 같이먹자는 지인에게도 쉽게 오케이 소리를 하지 못한다.
손님이 찾아오는 내가 밖으로 나가든, 맥이 제대로 끊겨버린다. 한번 뚝 끊긴 맥은 어지간해선 다시 달라붙지 않는다…라고 한참 쓰다 보니 꽤나 외롭고 고독한 창작자 같지만 그건아니고, 어떻게 보이든 간에 나는 근무 중이라서다.

‘남들 다 어쩌고 살더라‘란 소리는 남 얘기일 뿐이다.

인풋이 넉넉해야 아웃풋도 풍성해진다. 우리는 눈으로 코로 귀로 입으로 온몸 구석구서인으로 온몸 구석구석으로, 온갖 좋은 것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게 왜 그렇게 좋은지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안에서 더 좋은 것이 튀어나온다..

시간은 공평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똑같이 흘러간다.
뭐가 되었든 간에 일단 하면 남는다. 물론 좀 민망할 때도 있다. 하이고, 이 나이에 유튜브에 얼굴까지 공개하고서 이러고있냐, 아무도 안 보는데 혼자 헛짓하는 거 아니냐, 주책이지..
이런 생각은 멀쩡하던 사람을 아주 쉽게 쭈그러트린다. 그럴 때면 가만히 생각한다. 나는 왜 이걸 시작했지? 유튜브만그런 게 아냐. 나는 왜 계속 새로운 걸 하는 걸까? 답이 나온다. 그야, 재미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재미가 싹 사라졌을 때 그만두든 말든 해도 늦지 않겠네.

혼자 먹는 밥, 혼자 읽는 책, 혼자 보는 영화, 혼자 하는 여행,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과 말은 공을 들였다. 소중히 지키고 싶다.

여성은 한 손에 빗자루를, 다른 손에 행주를 쥐고 태어나지않았다. 만약 어떤 여성이 자신과 주변을 깔끔하고 건강하게 관리한다면, 그건 하나부터 열까지 후천적으로 습득한 능력이다.
배우고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하고싶지 않다면 혹은 거기에 쓸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전문가에게맡기고 적절한 비용을 지급하시라.

하지만 그렇게 다그치는 사람들은 정작 비혼을 경험해보지못했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훈수를 둔다니, 참 이상하죠.

살면서 반드시, 당연히,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없다. 진지하 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정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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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다인 사람들은 일어난 일을 그냥 받아들인다고 했다. 재앙을 좋아하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서는 아니고, 이번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다음 생이 있고, 다음 생에서도 안 풀리면 그다음 생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행운을 누리는 시기와 불운에 시달리는 시기가 번갈아 나타나는 게 당연하니 모든 것을 그저 운수와 운명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다음에도 새로 태어나라. 유준이 중얼거렸다. 축복의 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또다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인생에 속아 넘어갔다는 기분이 들었고 이것이야말로 누구의 잘못인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개는 안 짖었답니까?"
"개요?"
관리인이 또 뜬금없이 군다는 듯 지명을 쳐다보았다.
"단지에 개가 이렇게 많은데…..."
"이렇게 많은 건 아니고요. 여섯 마리죠."
관리인이 정정했다.
"여섯 마리나 되는데 한 마리도 짖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느 비행 물체가 비행 중에 시속 150킬로미터에 달하 는 물체에 맞을 확률은 2백억분의 1이랍니다. 상식적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명백히 그런 일이일어나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요."
"무슨 소리예요? 이 일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는 겁니다."

남편과 나는 여름 내내 함께 지내야 한다. 이수가 집에 머무는 시간도 늘 것이다. 우리는 타는 듯한 더위 속에서 가급적 마주치지 않으려고 공간을 나누고 시간을 조절하며 소소하게 서로를 배척할 것이다.

우리가 이수를 낳았다는 것이 그 애가 우리를 이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나는 자주 잊는다.

진에게 호프집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상자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가면서 유는 술에 취했다 싶으면 하는 일, 같은 숫자가 계속 반복되는 대리운전 번호를 속으로 외웠다. 그러면 세상이 단순해졌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면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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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생님께 궁금했던 건 이런 거야. 어쩜 그렇게 재밌고 탁월한 소설을 그렇게나 많이 쓸 수 있었을까. 소설을 쓸 수 없던 사람이 소설을 완성한 사람이 되는 것.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하거든. 어쩌면 진화일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경험하는 특수한 과거와현재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 이들은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고통스러운 현재를 견디는 것 같아. 뼛속까 지 불행하지는 않을 수 있는 힘은 남과 나 모두를 거리를두고 보는 시선에서 나온 걸지도 몰라.

나도 보았어. 에스엔에스 속 노란 리본과 유가족 인터뷰와 사진과 기사. 벚꽃나무 꽃을 다 쥐어뜯고 싶었다던부모들의 말과, 5년째 반복되고 있을 그들의 4월을 핸드폰 화면을 통해 읽었어. 봄이 돌아오는 게 그렇게 미웠다.
고, 그들 중 누군가가 말했어.

1. 복희의 말을 들으면 외로움과 충만함이 깻잎 한 장 차 이처럼 느껴져요. 양의 말을 들으면 외로움이 얼마나 불가 능한지 알게 되고요. 우리는 아무리 애를 써도 진짜로는외롭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좋든 싫든 너무 많은 존재와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책임감과 용기가 자주 외로움을 앞서니까요. 나와 함께 비건이 된 당신들에게, 존 버거의 엄마가 했다는 말을 바치고 싶어요.

어제의 월요일에는 제가 너무 못났던 것 같습니다. 온통 나를 알아달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하루 같아서요. 잘한 일이라고는 동물을 죽여서 얻은 것을 먹지 않은 것뿐인 그런 하루요. 어떤 하루는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수 있을까 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오늘은 더 잘해보고 싶습니다.

창작 노동은 다른 일에 비해 돈 얘기를 애매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가나 예술가로 불릴수록 더 그랬다. 지면을 주는 이들에게 내 일은 연재 노동이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다른 일보다 더 고귀하지도 더 천하지도 않으며 여느 노동처럼 시간과 몸과 마음을 내어서 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말해야 구체적인 돈 얘기가 오고갔다. 원고료 명시를 생략한 매체의 원고 청탁서에는 지치지 않고 매번 날 선 답장을 보냈다. 그래야 나와 동료들이 더 나아진 합의 위에서 계속 일할 테니 말이다. 이 용기는 내가 낸 것일 뿐 아니라 오십 년 전의 전태일과 친구들을 거쳐 온 것이기도 하다.

"살면서 나는 알게 되었어. 그는 자신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었구나. 그 눈으로 남을 볼 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 마치 자기를 보듯이, 남을 나처럼 여기니까 고민에 빠졌던 거야. 어떻게 해야 나 같은 남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을까를 고민했던 거야.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잖아."

천재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다시‘의 천재가 되고 싶다. 정혜윤 작가가 쓴 문장들 때문이다. 무의미와 허무와 자포자기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신이 준 은총이 하나 있다며그는 이렇게 적었다.
"그건 바로 ‘사랑을 알아보는 힘‘ 이야. 우리의 멋진 친구 심보선이라면 사랑을 다시 알아봄‘이라고 표현할 것같아. 우리가 미래를 사랑하기 시작했단 것은 뭔가를, 특히 사랑할 만한 것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말과도 같 아.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포함해서. 무릇 다시 시작하려는 자는 자기 자신도 다시 알아볼 수 있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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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시선들을 되받아치면서, 김순영을 보면서, 송인화는 이제 보건소 여직원 정기 모임에는 안 나오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때문에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김순영과 서먹해진다 해도,
무언가를 참는 대가로 얻었던 화기애애함과 편안함 대신 불편함이 찾 아온다고 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때가 온 것인지도 몰랐다.

"세상은 이런데 마음 기댈 데가 없잖아요. 누가 ‘나만 믿어‘ 하고확 끌어주면 눈물날 것 같아요."

그날 서상화가 아빠의 얼굴에서 본 것은 멸시받는 게 만성이 된 사람의 표정이었다. 누군가가 일터에서 매일매일 오랜 세월에 걸쳐 인격적 모독을 당한다는 것. 그게 내 가족이라는 것. 그 사실이 사람의마음을 얼마나 휘저어놓는지를 서상화는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먼저 느껴버렸다.

서상화는 그동안 왜 엄마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얼굴이 안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인화 누나가 의자를 휙 끌면서 내 모니터 쪽으로 온다. 인화 누나가 재채기를 한다. 조용하게 가라앉은 사무실에서 인화 누나의 재채기 소리가 들리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송인화한테 있는 바이러스를 내가 다 먹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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