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넘브라의 24시 서점
로빈 슬로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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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독후감입니다. 본 독후감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밤의 서점이라니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하지만 주인공 클레이는 그다지 책이랑 친해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다들 책을 좋아하지 않고 휴대폰을 들고 다니거나 노트북, 아이패드 등을 들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그 기기들이 해결해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클레이는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직장은 어느 순간에 펑하고 공중분해 되어버렸다. 미국의 경기가 어려워졌으니 고급스러운 베이글은 먹지 않는다. 퍽퍽하지만 저렴한 베이글이 잘 팔린다. 그는 고급 베이글을 파는 곳의 웹디자인을 했었다. 그런데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니 잘 안 되서 결국, 관련도 없는 서점 일에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것도 밤 시간 근무에.

 

또 하나의 서점은 뒤쪽에 자리하며, 서가에는 기다란 사다리들이 걸쳐져 있다. 그리고 그곳 서가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은, 구글이 아는 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내가 직접 검색해보았으니 믿어도 좋다. 기록에 남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에 제작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가죽이 갈라지고 금박으로 제목이 들어간 아주 오래돼 보이는 책들도 있지만, 밝고 산뜻한 표지의 새 책들도 있다. 그 책들은 다만·······세상에 딱 한 권만 존재하는 책들일 뿐이다.

나는 그 책들을 뒤쪽 목록이라고 부른다. (24)

 

누군가는 잠들 시각, 누군가는 올빼미처럼 활동할 그 시간에 영업하는 서점이라니. 그는 사장인 페넘브라씨의 어떤 책을 좋아하는 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했을 뿐인데 새 직장을 구했다. 그런데 이곳은 이상하다. 중고서적을 파는 가판대는 앞에 있고 뒤쪽의 책들은 시중에 나와 있지도 않은 책들이다. 요즘은 검색하면 논문까지도 나오는데 책이름이 하나같이 검색이 안 되다니. 검색이 안 되는 물품이 존재한다니! 가히 놀랍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단골들의 표정이다. 뒤쪽목록은 판매되는 것이 아니고 빌려준다. 그는 책을 빌려가는 그들의 행동에 호기심이 든다.

 

그는 현실적으로 볼 때, 하루에 한명의 손님을 올까 말까 하는 이 서점이 불안하다. ‘또 직장을 잃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그는 구글 광고를 낸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광고를. 이를 통해 구글에서 일하는 일명 구글러 캣이 찾아온다. , 그에게는 벤처로 창업 해 성공을 거둔 친구 닐샤도 있다. 집에는 무대소품을 만드는 맷도 있다. 그의 모방 솜씨는 뛰어나다. 이 친구들과 함께 그는 무엇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광고에 쓰려고 만든 3D모형의 가게를 만들기까지는. 그는 책을 빌려가는 사람들의 색깔을 표시했고 컴퓨터 속 3D모형의 24시 서점에서 회원들은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뒤쪽목록의 책을 빌려 가면 또 그 다음에 누군가가 차례대로 빌려가는 식이었다. 그 책을 열어보면 안 된다고 페넘브라는 말했지만 열어봤더니 알 수 없는 문자들의 나열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관성 있게 순차적으로 책을 빌려간다. 그리고 그 색깔로 이어진 선들은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데.

  

 클레이가 구글러 캣, 투자금이 있는 친구 닐 샤, 오래된 지식을 보유한 페넘브라와 함께 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모습이 진지하기도 하고 어쩌면 지식은 오랫동안 전수하려면 기록을 해야 하는 건가, 그 방식을 고수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시대의 우리의 모습인 클레이는 이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방법으로 컴퓨터를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구글에서는 못할 것이 없어 보인다. 여러 대의 컴퓨터를 돌릴 수 있고, 3D프린터는 모든 것을 스캔할 수 있다. 물론 책까지도. 그것이 섬뜩하기도 하면서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변화가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오래된 지식과 새로운 기기와의 만남이 참으로 재미나게 풀어냈다는 생각을 하고, 이러한 책은 처음이다 싶을 정도로 독특함을 느꼈다.

 

그리고 메이커스라는 책을 통해 3D 프린터 같은 기기의 이해가 없었더라면 좀 이해하기가 수월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기록과 과학의 만남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가하는 생각도 든다. 옛날의 기록은 지금의 기록보다 위대한 것인가. 꼭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비밀이 있는가. 아닌가. 모든 것은 추정할 뿐이지 실체적이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그 시대를 이해하려고 들면 모든 것은 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끝으로 갈수록 수수께끼의 끝이 무엇인가보다는 클레이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끈질기게 문제를 풀고자 했고 돕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 답을 향해 돌진했다. 누군가는 협박도 하고 회유도 했으나 그는 답을 향한 길에 있어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쓸 줄도 알았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사람을 모으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어떤 사람의 일생의 비밀은 무엇일까. 가장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책을 읽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일생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후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말해 내 인생이 별별 기이하고 골치 아픈 특성들을 지녔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짧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영원처럼 느껴지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온 이후로는 마치 기술이 중심이 되는 한 시대를 살아온 기분이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전화기에 인터넷이 연결되지도 않았으니까.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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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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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독후감입니다. 본 독후감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시만큼 아름다운 언어가 어디 있으랴, 이 같은 생각으로 헤르만 헤세,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기택, 이병률, 이이체등 많은 시인들과 만났다. 그런데도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만큼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시가 더 읽고 싶어졌다. 그렇기에 백석의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나온 것이 눈에 띄었다. 곧 이어 같은 출판사에서 <백석 평전>이 나왔다. 무엇을 먼저 읽을 까 고민하다 <백석평전>을 먼저 읽게 되었다.

 

<조선일보>안에는 백석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원래 백석이 모진 사람이 아닌데 결벽증이 유별난 탓에 사원들의 눈에 거슬렸던 것이었다. “얼굴색은 필리핀 사람처럼 거무스레했는데 거기에 헤어스타일이 여간한 모던보이가 아니었다.”고 후에 백철은 1930년대의 문단에서 묘사했다. 백석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세상은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그는 이 더러운 세상을 혼자서라도 맑은 사람이 되어 건너가고 싶었던 것이다. (70)

 

백석이 작품 활동을 하던 시절은 일제치하의 시대였다. 그렇기에 창씨개명을 강요당하고 일본어로만 작품 활동을 강요하는 시대였다. 그런데 그는 일본어로 시를 쓰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우리 언어로 쓰고 그렇지 못할 때는 쓰지 않았다. 그 마음만큼이나 깔끔해서 옷차림은 깔끔하였다. 외모에 있어 어려운 시대에 비싼 옷을 입어 모던 보이가 따로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다 같이 잡는 회사 문손잡이를 잡기 싫어 할 정도로 결벽증이 있었다. 안도현 시인의 평처럼 깔끔한 사람이 더 깔끔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더욱더 깨끗함에 집착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 까. 시대에 타협하는 시인들 가운데서도 언어도 이름도 바꾸기 싫어한 그 깔끔하고, 타협할 수 없는 순수한 마음을 비난한 이들이 많은 것처럼 시인 백석이 홀로 어두운 시대에서 순수함을 지키고자 투쟁한 것 같아 나는 왠지 모르게 그가 짠하고 안쓰러웠다.

 

집을 나서기 전에 백석은 자야에게 누런 미농지봉투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백석이 쓴 시 한 편이 들어 있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왕응왕 울을 것이다

 

(174~175)

 

그의 연애담 또한 재미나다. 시대는 어려워도 청춘들은 사랑을 한다. 모던보이인 백석은 익히 아는 만큼 잘생긴 미남이었다. 눈도 크고 시까지 쓰는 언변이니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가 처음 좋아한 여성은 박경련이었다. 그녀를 좋아해 경성에서 통영까지 가는 길도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백석을 좋아하는 여인네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수줍어하고 여성다운 매력을 가진 박경련을 백석은 좋아라했다. 그녀만큼 순수한 여인네를 좋아한 것 같다. 두 번째로 사랑한 여인 기생출신인 자야여사와의 만남도 그녀가 처음 기방에 나와 만난 이가 백석이었다. 그는 아마도 여성의 순수함, 부끄러움을 사랑하는 남정네인 것 같다. 게다가 그녀들의 사진을 볼 때에도 그 점이 묻어났다. 여성적이고 한국적인 여성을 좋아한 백석이 자야에게 보내는 시는 여성인 내가 봐도 감동이다. 왜냐하면 시대가 악할 때, 집안의 반대가 심할 때, 세상을 버리고 나와 같이 시골에 가 살자는 남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시골에 가면 그에게도 문학 활동이 어려울 수 있을 텐데도 그는 그녀와 함께 하는 삶을 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어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사랑해서 러시아로 아름다운 나타샤라고 부른 이를 그녀는 잊을 순 없었을 것이다.

 

9월부터 백석의 신징 생활에 파열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만주에서 일본어로 된 작품을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으며 창씨개명에도 응하지 않은 백석이 택할 수 있는 것은 경제부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백석은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으로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보고자 하였다. 숭고한 이상주의자로서 만족의 시적 가능성을 탐색해보려던 그는 1940년 가을부터 만주에서 권태와 환멸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244)

 

그에게 있어 창씨개명을 하는 것, 일본어로 시를 쓰는 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펜을 오랜 세월 꺾고 외국 소설을 번역하는 데 힘쓴다. 도망이라면 도망이겠지만 시대와의 최대한의 타협이 그에게는 번역이었던 것이다. 그는 학교에서 영어선생님이었고 러시아어도 배워 능통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해방 이후에도 고향이었던 북에 남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문학 활동을 한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문학 활동이 아닌 무조건 체제를 찬송하는 시를 그는 적을 수 없어 그가 평양에서 삼수군으로 쫓겨나 문학 활동이 아닌 농사를 지으며 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는 일제치하에 번역으로 도피한 것처럼 해방이후에는 아동문학과 번역으로 도피하였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쫓겨난 것이다. 그는 나중에 창씨개명도 하였지만 일본어로 시를 쓰지 않았고, 체제를 칭송하는 시를 적었지만 그 후 그의 시는 점차 자취를 감춰갔다. 그가 남이 아니라 북에서 삶을 마감하였기에 그 후에 자료를 많이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는 해방직후에도 고난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펜도 시대를 따라 가지 않으면 펜을 꺾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며,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조국의 바다여는 백석이 북한에 발표한 마지막 시였다. 아니, 그가 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시였다. 평양에서 삼수군으로 쫓겨날 즈음 백석에게 시는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시인으로 살아남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백석에게는 더 시급했다.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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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런어웨이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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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엠마>, <모든 것의 이름으로>등 역사적 시대와 함께 그 시대 중심에 있는 여성들을 만나다 보니, 그녀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자 이와 같은 소설을 더 읽고 싶어졌는데 때마침 <라스트 런어웨이>를 만나게 되었다. <라스트 런어웨이>는 가장 미국의 어두운 시절 노예가 존재하고 산업화가 물결이 흐르는 180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엠마, 앨마에 이어 <라스트 런어웨이>의 여주인공 아너와 만나게 되었다.

 

신께서 허락하신 가장 순조로운 항해를 그렇게 견딜 수 없었다면 영국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레이스가 부두에 무릎을 꿇고서 미국에 무사히 당도하게 해주신 신계 감사 기도를 올릴 때, 아너는 영국과 두고 온 삶을 그리워하며 울기 시작했다. 이제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바다가 고향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21)

 

아너 브라이트는 결혼하는 언니 그레이스를 따라 고향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아너의 약혼자 새뮤얼은 다른 사람을 사랑해 파혼했고 그 파혼 때문에 퀘이커 교도였던 아너는 종교사회에서 불쌍한 여인네로 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시선들을 피해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아너의 평소 침착하고 순종적인 성격으로 볼 때 이 무모한 결정은 가족들을 놀라게 했지만 파혼을 생각할 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갈 때, 아너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배 멀미가 심해 항해 내내 난간을 붙잡고 토했다. 그래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도착하자 갑작스럽게 그레이스가 황열병으로 죽음을 맞고, 이 소식 형부에게 전하기 위해 아너는 홀로 페이스웰로 향한다. 그 길 가운데 잠시 벨 밀즈 모자 상점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모자상점 여주인인 벨은 노예를 숨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지하 연락망을 지하철도라고 불렀다. 벨이 노예를 숨겨주는 반면에 동생인 도너번은 노예사냥꾼이었다. 그는 아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너는 앉아서 반짇고리를 열고 물건을 꺼냈다. 이 과정만은 적어도 낯익었다. 반짇고리는 할머니 것이었는데, 시력이 약해지자 손녀들 중에서 바느질 솜씨가 제일 좋은 아이에게 물려준 것이었다. 호두나무로 만든 반짇고리 안쪽에는 초록색, 노란색, 하얀색 은방울 꽃 문양으로 만든 안감이 대어져 있었다. 이 문양을 아너는 어렸을 때부터 봐왔다. 눈을 감고도 그 문양을 완벽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53~54)

 

영국에서는 퀼트로 이불을 만들어 시집을 가거나 멀리 떠날 때 그들의 천 조각을 대어 선물하곤 했다. 그녀는 그 이불을 가져왔고 반짇고리와 어머니가 준 여러 개의 천 조각까지도 가져왔다. 그것을 볼 때마다 어느 곳에서 있더라도 가족과 함께 있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 안심이 되었다. 그렇기에 모자 상점에서 자신이 가져온 반짇고리로 일을 도우면서 그녀는 차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모자 상점에 도착한 형부 애덤은 아너가 같이 온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의아해 했고 애덤의 형도 병으로 죽었고 형수인 애비게일과 애덤, 아너 이렇게 살게 될 것을 아너에게 알려주었다. 셋의 삶이 시작되자 퀘이커 교도로써 주변에서도 아너도 이러한 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다고 여겼고 자신에게 사랑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잭과 도너번 중 잭을 선택해 결혼한다. 잭은 같은 퀘이커 교도였기에 종교적 마찰이 없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퀘이커 교도는 만민평등을 내세우기에 노예를 도와야 하고 그것이 그들의 종교적 실현이라 생각했는데 잭의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다. 음식을 밖에 두어 도망치는 흑인노예를 돕는 아너의 소극적인 행동에는 뭐라 하지 않았지만 점차 집에도 노예를 들이는 모습에서는 그들은 아너와 뜻이 다름을 강하게 표현했다. 게다가 아너는 처음에는 퀄트보다 시간이 절약되고 실용적이지만 정교함이 덜 한 아플리케를 하는 미국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 순종하기 위해 노예문제, 아플리케 등 모든 것을 따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차차 내면에 노예문제에 있어서는 그들도 한 생명이기에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집을 떠나기까지 이른다. 노예와 같이 그녀도 뜻이 다른 가족에게서 해방되기를 원했다. 가출한 그녀를 찾아온 남편에게 말한다. 전처럼 살 수 없으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이제 그들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 컴포트와 함께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아너는 처음에는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다. 도망 끝에 언니의 죽음,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결혼, 시어머니와의 의견충돌 등 더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큰 시련이었던 노예문제에 있어 실제로 퀘이커 교도들은 법을 어기는 것을 염려해 퀘이커 교도 다수는 도망치는 노예들을 돕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반해 아너는 옳은 것을 실현하는 소수의 퀘이커 교도였다. 이러한 옳은 행동은 잭의 가족들과 불화를 낳았다. 이에 아너는 가족을 존중해 그들 뜻에 따랐지만 죽어가는 노예도 모른척한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화를 느꼈으며 집을 나왔다. 만삭이 되어 집을 나온 것은 잘못된 행동이지만 의견이 다른 것에 대해 매번 충돌하는 것보다는 잭과 함께 독립을 택한 것에 대해 그녀의 삶이 앞으로 더 기대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녀는 삶에 순종해 결국, 삶을 개척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가 먼저 자신의 뜻만을 내세웠다면 나는 그녀의 독단적인 선택에 답답해하며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인내하며 순종하며 자신을 낮출 줄 알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 것을 보며, 아너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너처럼 항상 지금에 감사하며,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순종하며 인내하며, 좋은 결론에 이르고 싶다고 말이다.

 

물론 불안하기도 해. 오늘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하느라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하지만 언니랑 브리드포트를 떠날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기분이야. 그때는 달아나는 것이었고, 눈을 감은 채 의지할 곳도 없는 것 같았어. 이제는 눈을 크케 뜨고 있고, 잭과 컴포트를 잡고서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어. 미국인들은 그렇게 살아. 나도 결국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 도망치는 것과 달려 나가는 것의 차이를 배우고 있으니까.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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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이름으로 2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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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이젠 저희와 함께 저녁 예배를 드리러 가시지요, 휘태커 자매님.”

그러죠앨마는 포기하고 대답했다.

그는 앨마를 이끌고 교회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으며, 그녀는 자기가 가진 귀중품과 전 재산을 남겨 두고 가야 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176)

 

또한 웰스 목사가 일러 준 대로 시간이 지나 결국 그녀의 짐이 나타나든 아니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런 상황이 괴롭긴 했지만 어쩐지 공평하다고 느껴졌다.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긴 상황은 일종의 속죄 같았다. 어쩐지 앰브로즈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타히티는 그들 두 사람 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러 찾아온 곳이었다. (197)

 

앨마는 갑자기 생을 마감한 남편 앰브로즈의 유품을 보고는 타히티로 향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유품인 스케치북에는 유독 한 사람을 그리고 있었는데 왜 그 사람만 그리는 지 의구심이 들었고 아버지의 유언에도 타히티로 갈 것을 독려했다. 그러니 그녀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떠난 본적 없는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오랜 향해 끝에 닿은 타히티는 타히티족의 헐벗은 옷차림과 자신을 도와 짐을 옮겨줄, 마치 하인같이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많은 쇼크를 받았다. 그래도 그녀는 가져온 종이와 펜, 작은 현미경, 옷 등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짐은 개인적이고 값어치 있으며 곁에 없으면 도둑맞기 쉬운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목사님도 타히티족과 같이 그녀를 도울 생각보다는 그 물건을 버리라는 듯이 두고 따라오라고 한다.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따르라 하신 것처럼 그녀는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물건들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만다. 그들도 이방의 물건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알거니와 물건의 소유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동굴은 너무도 아름다워 갈망으로 뼛속까지 아파올 지경이었다. 이토록 무언가를 탐내 본 적이 없었으며, 아련한 빛을 뿜어 대며 장관을 이루고 있는 그곳의 이끼를 갖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앨마는 그곳이 자기를 삼켜주기를 바랐다. 지금 바로 거기 서 있는데도 벌써부터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남은 평생 그리워하게 되겠지.

앰브로즈는 늘 당신이 이곳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일 아침이 말했다.

그제야 앨마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307)

 

앰브로즈의 그림 속 그가 앨마를 데려간 곳은 동굴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이끼 시스토테가 펜나타가(schistostega pennata) 있는 곳이었다. 앰브로즈는 그곳을 볼 때마다 앨마를 떠올리며 그녀가 좋아할 거라고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서로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 떠난 앨마를 그리면서 말이다. 그는 그때에도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제야 그녀는 그를 위해 진정으로 울 수 있었다. 사랑이 아니기에 결혼에 실패했다고 여겼다. 그의 사랑의 방식은 평범하지도 앨마와 같지도 않기에 더 이상 결혼생활을 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자신이 틀린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그녀는 시스토테가 펜나타가(schistostega pennata)를 사랑하듯이 그를 평생 그리워하고 끝까지 사랑할 것이다.

 

후에 그녀는 나이가 50세 정도 되었지만 이끼큐레이터로써 처음으로 직업다운 직업을 갖게 되었고, 외삼촌과 조우해 호르투스 식물원을 돌본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학문적 결론에 다가간 윌리스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녀는 윌리스에게 동료의식보다도 앰브로즈와 닮은 윌리스의 모습에서 남편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앰브로즈처럼 윌리스도 이 세상에서 인정하기 힘든 이론에 다가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앨마의 탄생에서부터 90세까지의 삶을 바라보면서 여성의 사랑, 결혼, 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앨마의 착각과 함께 끝난 첫사랑, 불타는 감정에 휘둘려 한 결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끼에 관한 식물학자의 꿈까지 그녀의 일생은 매우 부유하게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엇하나도 거저 얻은 것이 없어 보인다. 그 인생의 굴곡가운데 간접체험하면서 좀 더 일찍이 앨마를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러면 지금보다 조금 일찍 성장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여성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에 대해 충고해주고 있는 것 같아 여성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앨마는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의 자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희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이 결혼했던 남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128)

 

p.s. 시스토테가 펜나타가(schistostega pennata)를 검색해보니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저작권에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 사진을 옮겨오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입니다. , 작가 후기를 보니 책에 등장하는 네덜란드의 호르투스 보타니쿠스 식물원은 실제로 존재하는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튤립을 피운 식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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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이름으로 1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전 소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소설의 호평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소설이 영화화 된 작품이 좋다는 말까지도 들었다. 그러니 그녀의 소설이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의 이름으로>의 주인공 앨마 휘태커는 식물학자인 어머니와 식물수입상인 아버지를 닮아 어려서부터 식물에 관심이 있었다. 책은 그녀의 탄생과 함께 그녀의 성장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앨마의 아버지 헨리가 어떻게 식물 수입상이 되었는지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얼마 안 있어 헨리는 총검 끝으로 위협이라도 받은 것마냥 페루를 누비고 다녔는데, 그 총검의 정체란 바로 본인의 강렬한 야망이었다. 로스 니븐은 죽기 전 남미 여행에 관한 세 가지 중요한 충고를 해 주었고 청년은 현명하게 그 충고를 모두 잘 따랐다. 첫째, 절대로 장화는 신지 마라. 원주민의 발처럼 보일 때까지 맨발을 단련시켜서, 축축한 짐승 가죽에 싸여 발이 영영 썩어 가는 걸 피해라. 둘째, 묵직한 옷가지는 버려라. 원주민들처럼 옷을 가볍게 입고 춥게 견디는 법을 배워라. 그렇게 하면 건강해질 거다. 그리고 셋째, 원주민들처럼 매일 강에서 목욕을 해라. (59~60)

 

헨리는 어려서부터 왕립식물원 큐가든의 과수원지기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아버지만큼이나 식물을 잘 알았다. 그는 아버지가 가난한 것이 부끄러워했고 반대로 성공한 식물학자인 뱅크스를 동경했다. 그런데 뱅크스는 웬만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희귀식물 표본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많은 돈을 주고 사겠다는 이들에게서 절대적으로 희귀식물을 지켜 큐가든의 명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알게 된 헨리는 큐가든에서 몰래 식물표본을 훔쳐 당대 최고로 인정받는 식물학자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아버지에게 꼬리가 잡히고 아버지는 뱅크스씨 앞에 그를 데려다 놓고 선처를 구한다. 헨리는 당돌하게도 사과는 하지 않고 자신을 제자로 써먹으라고 뱅크스에게 제안을 한다. 뱅크스는 도박을 거는 심정으로 헨리를 시험했고 그래서 그는 뱅크스에게 위임을 받아 희귀식물을 채취하러 쿡선장과 함께 떠난다. 그는 기나나무가 해열제로써의 역할을 간파하고 안데스 고산지대에서만 나는 기나나무를 비슷한 기후인 인도에서 생산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희귀식물 채취해서 돌아오자 뱅크스는 그를 잊고 그다지 환영하지 않아 헨리는 그를 저주하며 안녕을 고하고 계획을 홀로 실행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계획대로 기나나무는 인도에서 잘 자랐고 약용식물 재배로 인해 그는 많은 부를 축척하게 된다.

 

아홉 번째 여름을 맞이한 앨마는 완전히 혼자 힘으로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을 알게 되었다. 오전 5시에 보면 언제나 눈개 승마 꽃이 벌어지고 있었다. 6시에는 데이지와 금매화가 피어났다. 시계가 7시를 치면 민들레가 피어났다. 8시엔 별봄맞이 꽃 차례였다. 9시엔 별 꽃, 10시엔 콜히쿰, 11시가 되면 전 과정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정오가 되면 눈개승마가 오므라들었다. 1시에는 별꽃이 오므라들었다. 3시가 되면 민들레가 꽃잎을 접었다. 금매화가 꽃잎을 닫고 달맞이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5시는 앨마가 깨끗이 손을 씻고 집에 돌아와 있지 않으면 혼이 날 시간이었다. (107)

 

헨리는 식물학자 집안의 규수인 베아트릭스를 아내로 삼는다. 그들은 필라델피아의 초원과 손을 타지 않는 숲을 350에이커를 사들여 큐가든에 버금가는 온실 2채와 그리스식 정원과 숲을 소유한 대저택 화이트에이커를 짓는다. 1800년 헨리와 베아트릭스 사이에서 화이트에이커의 자두라고 불리는 그들의 딸 앨마 휘태커가 태어난다. 그녀는 부모를 닮아 어려서부터 식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찰력을 보였고 무엇보다 영리했다. 하지만 외모는 헨리를 닮아 여자임에도 여성적인 매력이 없었다. 손은 두꺼웠고 흐린 적갈색 머리, 불그레한 피부, 작은 입, 넓은 이마, 큼지막한 코 등 얼굴도 야수 같은 아버지를 닮았다. 헨리의 부를 동경한 많은 이들이 화이트에이커에 다녀가고 그 식사 자리는 유명인들의 토론자리가 되었다. 휘태커부부는 앨마와 양녀 프루던스를 언제나 토론 자리에 참여하도록 하는 그때 당시에는 신여성적인 면모를 보였다. 안타깝게도 집은 넓었고 집안에는 그 크기만큼이나 처리할 일이 많아 아내를 비롯한 두 딸까지도 집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1820년 갑작스러운 사고로 베아트릭스가 사망하고 프루던스와 유일한 친구였던 레타가 결혼하게 된다. 홀로 집안 살림을 떠안은 앨마는 적응시기를 지나자 지루해져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이끼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세상에 그런 자유도 있었다. 앨마는 그런 식으로 자유로운 느낌을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로 그날, 그가 다리를 뻗고 누운 동안 앨마는 조심스레 근처 바위에 앉았다. (352)

 

이렇게 아름답고 섬세하게 식물을 그릴 수 있는가?!’싶은 그림을 그린,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난초 판화가 앰브로즈 파이크씨를 만나게 된다. 앨마가 이성적이고 규칙적으로 살았다면 앰브로즈는 따뜻하고 감성적이며 자유로워 정글에서 18년간을 살았다. 정 반대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식물을 사랑하는 공통점과 함께 그녀의 열정을 인정하는 앰브로즈의 모습에서 앨마는 사랑을 느끼게 된다.

 

1권을 읽었을 뿐인데도 그녀의 삶을 전체를 알게 된 것만 같다. 마치 한 여성의 일기장을 보듯이 책은 앨마라는 여성의 삶을 투영한다. 그녀는 자연 과학자로써 실험하고 논문을 쓰며 화이트에이커에 갇혀 살아간다. 그녀가 밖의 세계와 연결되는 것은 유일하게 사람이었다. 그녀는 외로웠다. 그 외로움을 식물에 대한 연구로 해소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의 한계는 언제나 보였고 자신과 정반대인 감성적인 앰브로즈의 매력에 빠져 처음으로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 부자이면 부자라서 관리할 재물이 많아 밖의 세계와 단절된 앨마와 헨리의 삶을 통해 부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앨마의 친구인 레타와 프루던스의 결혼생활을 통해 결혼상대에 따라 한 여성의 일생은 많은 것으로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서로가 너무나 달랐던 레타의 결혼의 경우에는 파국을 치닫아 너무나 안타까웠다. 레타는 시끄럽고 감성적인 여성인데 반해 조지는 차분한 신사였다. 레타의 발랄함은 언제나 조지에게는 짜증이었다. 그런 그들의 결혼생활이 제대로 이어질 리가 없었고 레타는 발랄함을 잃었고 조지는 삶의 생기를 잃었다. 결국, 결혼은 감정적인 것이 아닌 이성적으로 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마치 식물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나 서로의 삶의 목적에 동의한 베아트릭스와 헨리의 결혼이 가장 이성적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벌어질 앨마의 삶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같은 여성으로써 그녀의 삶에 공감하며 함께 고민을 해보면서 2권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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