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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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
고든 뉴펠드 외 지음, 이승희 옮김 / 북섬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에게 정말 중요한 건 단순히 부모가 같이 있어주는게 아니라, 정서적 접근성이다."
이 책은 교육 문화가 과거에는 부모나 어른들을 통해 수직적으로 성숙한 주류 문화를 아이들에게 전달하였던 것과 달리, 오늘날 에는 또래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통해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미성숙한 또래 지향 문화를 새롭게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있음을 경고 한다. 이런 또래 지향적인 문화는 전에 없던 새로운 돌연변이 교육 문화이며, 이것이 바로 청소년 범죄나 비행의 주요 원인이라 주장 한다.
"아이들만의 문화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최초로 발생한, 20세기의 가장 극적이고 불길한 사회 현상 이다. 16개 나라의 우수 학자들이 참가한 이 연구에 따르면, 주류 문화의 수직적인 전달이 붕괴되면서 반사회적인 행동이 증가 했다. 주류 문화에서 배제된 아이들의 문화가 득세하는 현상과 함께 청소년 범죄, 폭행, 왕따, 비행도 따라서 증가했다.-(영국 아동 심리학자 마이클 루터경+범죄학자 데이비드 스미스)"
내 경우에도 어릴적 성적표의 가정 통신문란을 떠올려 보면 "교우 관계가 원만 하며 ..." 하는 식의 내용이 주된 얘깃 거리 였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나만의 독창성이나 개성이 고유하게 평가 받기 보단, 늘상 사람들과의 관계에 놓여서 이해되고 평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역시, 이런 또래 지향적인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느낀다. 뛰어난 업무 성과를 보였음에도, 상사나 동료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그 성과는 쉽게 인정 되지 못한다. 이 책은, 어른인 우리들도 역시 "매우 또래 지향적이어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기보다는 서로에게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의 모범을 찾으며", "눈에 띄지 않음으로써 창피를 당하지 않을 안전장치를 구하며", "이런 균질화의 역학을 존중하고 따름으로써 그럴듯한 가치를 부여"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조장된 "또래에 대한 애착" 문화는 아이들의 개성을 압박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아이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자기만의 기호를 갖고, 자신만의 의견을 이야기 하고, 자기 판단을 표현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아이를 또래지향적인 관계는 이해하지 못한다.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우정은 항상 자기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안타 깝게도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은 또래의 취약성에 대해 충분히 너그럽지 못하다. 때로는 또래의 이런 미성숙한 취약성을 집단적으로 공격하기하여 "왕따"라는 희생자를 만들어 낸다. 타인의 이런 배타적인 행위에 대해 때로는 성인들 조차 견디기 힘든 상처를 받게되며, "매우 성숙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 하지 않는 내적인 성숙의 힘을 지닌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아직 또래의 공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쉽게 상처 받기 쉬운 미성숙한 존재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또래의 공격 목표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내재된 진정한 자아를 자유롭게 표출하지 못하게 된다고 작가는 말 한다.
"사랑이 깃든 수용 속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와 "무조건적인 사랑과 포용",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기꺼이 희생 하려는 마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사랑하는 것" 과 같이 미성숙한 아이들 끼리 서로 주고 받을 수 없는 것을 우리 부모들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는게 작가의 주된 주장이다. 이를 통해 아이는 진정한 자기 보존 능력 및 진정한 자존감을 갖고, 성숙한 개체로서 독립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작가는 여기에 더하여, 부모로서 도전해야할 진정한 과제는, 아이가 그저 외양만 어른처럼 보이도록 양육하는 것이 아닌, 내적으로 진정한 자존감과 자기 보존 능력을 지닌, 성숙하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 이라고 말한다. 이런 성숙하고 독립된 개체로서 아이를 키워 내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 바로 부모에 대한 의존의 과정, 즉 부모와 아이와의 강한 친밀감 이라 말한다.
이런 작가의 주장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일찍 부터 어린 아이들에게 까지, 어른 사회의 잣대를 통해 "사회화가 잘된 획일화된 인간"이 되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갗게 했다. 정작 아이의 성장에 가장 큰 밑거름이 되는 부모의 아이에 대한 책임과 신뢰의 손길을 너무 일찍 놓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아이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사회화가 잘 된 규격화된 인간들만이 인정 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 보게 되었다.
혹시라도 작가의 이런 주장에 잠시 머뭇거리게 되거나, 반감이 드는 독자라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면 좋을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로 부터 받았던 사랑과, 친구들로 부터 받았던 사랑 중, 어느 쪽의 사랑이 진정 가슴에 깊이 남아 나에게 오래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가? 나를 세상에 있게 하고, 바른 길로 이끌었던 힘은 어디로 부터 왔던가? 어느 쪽의 사랑이 시종일관 변덕없이 오래 도록 지속되었고, 신뢰 할 수 있었던가? 하고 말이다.
아래의 책속 한 구절은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시종일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바가 은유적이고도 종합적으로 잘 표현된 부분이다.
"애착은 성숙을 낳는 자궁이다. 생리적인 자궁이 신체적인 의미에서 분리된 존재를 낳듯이, 애착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분리된 존재를 낳는다. 아이의 탄생 후 발달 단계상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정서적 애착의 자궁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거기서 아이는 (또래)애착 충동에 지배 받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개인으로 다시 한 번 태어난다. 인간은 절대 다른 사람들과의 결합욕구를 무시한 채 성장할 수 없으며,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독립적인 개체가 되기 위해서는 아동기 전체의 시간을 필요로 하며, 부모와 형성한 애착관계가 이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