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의 기술] 서평단 알림
구애의 기술 - 아이디어로 상대를 끌어당기는 설득의 힘
리처드 셸.마리오 무사 지음, 안진환 옮김 / 북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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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핏 제목만 보고서는 솔직히 연애코칭 서적일 것이라 짐작했었다. 만약 누군가가 "구애의 기술" 이라는 다소 선정적이고 노골적인 제목의 책을 지하철 등의 공공 장소에서 읽고있다면, 나 역시 빙그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책을 읽고 있는 주인공에 대해 재미있는 상상을 할 것만 같았다. 책을 읽고 있는 책주인은 너무나도 연애에 목말라있는 숙맥같은 사람이고, 급기야는 이런 책의 도움까지 필요한 긴박한 상황에 처해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 풍기는 달콤한 이미지는 책을 펼쳐 보자 마자 바로 급반전 되었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드러내 놓고 당당히 읽어 보이기에 다소 민망하고 닭살스러워 보이는 "구애의 기술"이라는 책 제목의 느낌과 달리, 실상 그 내용은 비즈니스 전략, 전술, 그 중에서도 영원한 숙제 중 하나인 설득의 노하우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다른 비즈니스 서적들 처럼 재미 없거나 딱딱하거나 식상한 느낌이 전혀 없고, 읽는 내내 재밌고 즐거웠다. 한 장 한 장 책을 읽어 보니, 왜 책의 제목을 "구애의 기술"이라고 붙였는지 충분히 납득이 되었고, 책 제목과 내용이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뒷받침하여 주고 있는데 감탄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 !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수시로 깨닫는게 비즈니스 세계의 현실이다. 비단 비즈니스 세계를 떠나서도 우리는 매일 같이 수시로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을 설득해야만 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들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정작 설득의 원리나 기술에는 너무나도 무지했던 듯 하다. 이 책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설득의 여섯 가지 경로는 그래서 인지 내게 매우 신선하고 인상적인 느낌이었다. 이해관계-권위-정치-합리성-비전-관계 등의 여섯 가지 주제들로 설명되고 있는 설득의 여섯 가지 경로들은 비행기 안의 승객과 승무원, 조종사들의 상호 관계의 예시를 통해 설명 되고 있는데, 설명이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적이었다.

이 책은 비즈니스 서적임에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히고 마음으로 다가오는 책 이었다. 

또한 각 챕터 마다 "정리하기"를 통해 요점을 정리해 두어 독자의 시간 활용을 배려해 준 점도 마음에 들었고, 설득과 관련하여 자가 진단 테스트를 통해 자신을 반성 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점 또한 책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높이려는 세심한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듣는 사람을 크게 게의치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매우 독단적인 설득가의 드라이버형, 자기지향모드를 비교적 조용하게 사용하는 커멘더 형, 어느 정도 상대의 관점에서 설득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 독단적이고 사교적인 프로모터형, 상대지향 모드를 비교적 조용하게 사용하는 체스 플레이어형, 자기 지향 모드와 상대지향 모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적당히 독단적인 애드버킷 유형 등등의 설득가 유형에 대한 구분 역시 신기하면서도 배울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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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Green 리빙그린 - 먹을거리와 에너지 위기 시대에 살아남는 친환경 생활 지침
그레그 혼 지음, 조원범.조향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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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겉모습 부터 심플하고 소박한 이미지에 상큼한 초록색 나무가 싱그럽게 그려져 있는 이 책은, 왠지 모르게 정감있고 따뜻한 첫 인상을 풍긴다. 전반적으로 책의 디자인, 구성, 삽화 까지 모든 것들이 심플하면서도 꽉 채워진 알찬 느낌이다. 큼지막한 삽화들 역시 시원 시원하여 보기에도 기분이 좋고, 요점이 눈에 쏙쏙 들어오도록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는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자는 내용의 이상적인 환경운동 위주의 내용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이 책은 보다 실질적으로 우리 삶의 기본적인 영역에서 부터 많은 것들을 반성하고 돌아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동안 무심코 생각 없이 일삼던 소비 위주의 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을 되짚어 보고, 필요의 충족이 아닌 욕심의 충족에 기인하여 마구 마구 물건을 구입하고 낭비했던 잘 못 된 습관들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도무지 실천할 엄두도 나지 않는 거리감 있는 환경 보호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매우 소박하고 실리적인 소소한 환경 보호 행동 지침들 부터 먼저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인지 이 책 속에서 저자가 권장하고 있는 환경 지침들은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을 만큼 의외로 매우 쉽고 간단한 것 들이다. 또한 저자는 우리 삶 속의 일상적인 소비 습관을 되돌아 보는 것을 뛰어 넘어 점진적으로 그 관심과 이해의 폭을 자연스럽게 전 세계적인 영역으로 넓혀 나간다.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제 1장은 저자가 이와 같이 '리빙그린' 운동을 펼치게된 원인이 되어 주었던 개인적인 경험담에서 시작된다. 피츠버그 도심 한 복판에 새로지은 14층 짜리 건물에서 일하게 된 저자는 새로 깐 인조 카펫과 페인트, 사무실의 가구등에서 용해되어 나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휘발성 화학 물질들로 인해 빌딩 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을 겪게 된다. 빌딩증후군의 특징은 우리 몸이 합성 화학 물질에 대한 내성이 약해져서 눈의 화끈거림, 집중력 상실, 두통, 관절통 등을 겪게 되는 것 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저자는 먹는 것 부터 유기농 식품으로 바꾸어 먹고, 일터인 사무실 가구를 천연 소재의 것으로 교체하고, 매일 매일 환기를 충분히 해 주고, 가정에서도 유독 물질을 배출하는 압축판자 등이 사용된 가구들을 모두 없애는 등의 노력을 함으로써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이 경험이 토대가 되어 저자는 세상을 좀 더 나은 곳 만들고, 좀 더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리빙그린' 운동을 펼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제일 간편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환경 운동의 첫 걸음이 바로 자신의 건강과 관련된 것임에 착안하여 제 2장에서 저자는 자연스레 먹거리 부터 살피고 돌아본다. 다음으로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문제만큼 중요한 무엇을 입을 것인가의 문제가 3장에서 다루어 지고, 4-5장은 가족이 살고 있는 울타리와 건축물과 관련하여 친환경적인 설계와 에너지 효율 등이 다루어진다. 6-7장은 그린 퓨쳐라는 주제하에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그리고 글로벌 경제 시대의 소비자의 선택이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총체적으로 되짚어 보고 있다. 

 

이 책은 무분별한 소비와 낭비를 반성하는 계기를 줄 뿐더러,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참살이의 지혜를 깨우쳐 주는 훌륭한 환경 지침서 이다. 진정한 웰빙의 생활 비결과 방법이 바로 이 책 속에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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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멘토 최윤희의 희망수업
최윤희 지음 / 프런티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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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어서 아침 방송을 진득하니 볼 기회가 없는 나는 솔직히 이 책의 저자 최윤희 씨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가끔씩 우연히 TV 채널을 여기 저기 돌리다 [아침마당]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유난히 째지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혼신의 열정을 담아 이야기를 토해내는 수다스런 아줌마 패널을 보았을 뿐이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저 아줌마는 방송 끝나면 무척 배가 고파 기절을 하거나, 온 몸에 힘이 빠져서 분명 실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스런 마음이 들 정도로 TV 속 최윤희 씨의 모습은 열정을 뛰어 넘어 다소 지나치게 격정적이기 까지한 모습이었다. 

이 처럼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만나게된 최윤희씨는 그 첫인상은 또 어찌나 강렬했던지 ...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는 단 한 번 보고서도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모습이었다. 각진 사각의 얼굴과 가발을 뒤집어 쓴 듯 어색한 단발머리는 얼핏 여장남자를 의심하게 하였고, 그녀의 외모의 자유분방함은 시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더하여, 그녀 특유의 우렁차고 째지는 목소리는 나의 청각 마저 마비시켰다. 우연히 마주한 그녀의 겉모습은 솔직히 요즘의 속된 말로 '비호감' 그 자체 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는 이러한 나의 사람에 대한 즉흥적인 판단 그리고 오만과 편견을 크게 뉘우치고 반성 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최윤희씨의 충고 대로 생각을 물구나무 서기 하여 뒤집어 볼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최윤희씨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그저 시끄럽기만한 동네 아줌마라는 단편적인 편견과 오해가 점차 그녀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이해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미처 내 마음이 속속들이 닿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과 근심들도 조금이나마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자 최윤희씨가 어쩜 이리도 예쁘고 아름다워 보이는지 .. 책의 띠지에 있는 그녀의 사진을 몇 번이고 보고 또 보았다. 

고난과 역경 없이 성공을 이룬 사람이 던저 주는 충고는 그저 머리로만 이해될 뿐, 진정으로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반면, 이 책의 저자 최윤희씨 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희망을 캐내어 그것을 부둥켜 안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 사람이 전해 주는 충고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최윤희씨가 전해 주는 충고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넓은 이해의 마음에서 비롯되어 더욱 놀라웠다. 무언가 힘이 들고 고민이 될 때, 이미 그 고민의 답은 우리 마음 속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타인의 충고와 조언을 구하는 것은, 열렬한 지지와 응원,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윤희 씨는 최고로 현명한 조언가 이다. 우리는 조언을 구할 때 상대방의 잘난척이나 간섭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동감과 공감, 이해와 격려, 응원 등이 필요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제일 멋진 한 부분을 옮기면서 서평을 마무리 하고 싶다. 

[윈스턴 처칠 아저씨가 아주 멋진 말씀을 했다. "비관주의자는 희망 속에서 절망을 본다. 그러나 낙천주의자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본다." 나는 이 말씀을 살짝 바꾸고 싶다. 희망을 '본다'가 아니라 희망을 '캐낸다!'로. 희망을 그저 바라 보는 것은 소극적인 인생태도다. 희망은 내가 '캐'내야 손에 들어 오는 것이다. 호미나 삽으로 캐내든 굴삭기로 캐내든 선택은 각자 몫이지만, 절망에 걸려 엎어진 바로 그 자리에도 희망이 묻혀 있을지 모른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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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
김만선 지음 / 갤리온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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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귀향살이로 일컬어 지기도 하는 유배(流配)는 죄인을 먼 곳으로 추방하는 것을 말한다. '유(流)'는 아주 먼 곳으로 보내어 살게 한다는 뜻이고, '배(配)'는 자유로이 활동할 수 없도록 어느 곳에 배속시킨다는 의미라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요즘 처럼 대 도시가 발달하여, 화려한 도시 생활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였고, 기껏해야 저잣거리가 번화가의 전부였을 과거에,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사는 것이 당시의 고풍스런 일상의 삶과 뭐 그리 차이가 있으며, 또 뭐 그리 대단한 형벌 이겠는가 싶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유배(流配)라는 단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은 이 처럼 단순하고 무지에 가까운 것 이었다.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유연자적, 초야에 파묻혀 웰빙할 수 있는 일종의 요양같은 느낌의 단어가 바로 이 책을 만나기 전에 내가 생각해 왔던 유배(流配)의 삶 이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니, 유배(流配)는 결코 만만한 형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삼국 시대 부터 조선 시대 까지 존재했던 이 유배의 형벌은, 조선 시대에는 사형 다음 가는 중벌이었다고 한다. 단순하게만 알고 있던 유배라는 형벌이 죄의 무게에 따라 어려 단계 별로 그 종류가 세세하게 나뉘어 구분 되었고, 시대에 따라서도 그 유형과 이름을 달리했다는 점이 매우 신기하고도 새롭게 느껴졌다. 특히나 조선 시대의 유배는 원칙적으로 무기 종신형이었다고 하는데, 세상과의 영원한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는 이 형벌의 가혹함을, 책 속에 구구절절 담겨 있는 다양한 사연들을 통하여 하나 하나 만나게 되자, 유배인들이 느꼈을 먹먹함과 가슴 속의 농익은 한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절로 마음이 아파 왔다. 

저자는 "어떻게 해야 독자들에게 당시 유배인의 모습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 하면서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시각이 아니라, 잠시나마 그 때 당시 유배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당시 유배인들이 어떠한 과정으로 벌을 받게 되었고, 또 그들이 유배지에서 무슨 일을 했으며, 그들이 유배의 삶을 통해 가졌을 고통과 한 그리고 고민들 모두를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였던 저자의 목적이 이 책을 통해 잘 이루어 졌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책 속에는 옛 유배인들이 남긴 역사적 흔적들이 글씨와 그림으로 때로는 한 편의 시로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나 그들이 머물고 기거 했던 거주지의 사진 혹은 집터의 사진 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어 잠시 나마 눈을 감고 유배인들이 고통속에 피워낸 인간적인 삶의 진한 향취를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어 좋았다.     

그 만큼 이 책 속에선 유배(流配)의 다양한 모습을 깊이 있게 만나게 된다. 유배라는 하나의 단어가 때로는 억울함과 분통함을 의미한다.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의 한 대목처럼 유배지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한을 쌓는 일 그 자체를 말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의미 한다. 다른 한편 유배는 인간의 고통과 한(恨)을 뛰어 넘는 숭고한 정신력을 의미 하기도 한다. "몸은 유배할 수 있어도 어찌 마음까지 유배할 수 있으랴"는 말 처럼, 이 책 속에는 유배라는 지리적/육체적 속박의 가혹한 형벌을 정신적으로 뛰어 넘고, 우리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적 창작물들과 학문적 성과로 꽃 피워낸 훌륭한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삶 속에 만날 수 있는 극한의 고통들을 보았고,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피워낸 아름다운 인간의 정신력을 통해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또한 저자가 지나친 비유일지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꺼낸 아래의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


"지나친 비유일지 모르지만 필자는 어머니의 자궁을 벗어나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한 직후부터 우리 모두는 항상 어디론가 유배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삼봉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세상을 다시 보는 경험을 통해 실천을 모르는 지식인의 박학이 얼마나 무서운 허위인지를 절감한다. 왕실의 후손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원교 이광사는 집안의 몰락으로 백부와 부친 모두 유배를 떠나고, 원교가 23세 되던 해 유배지에서 돌아온 부친이 병사하고, 26세 되던 해 백부마저 옥사한다. 하지만 이것도 모자라 그가 51세 되던 해엔 나주 벽서 사건에 연루되고, 이때 원교가 참형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그의 아내가 먼저 생을 마감하는 극한의 고통 까지 겪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모질고 사나워진 자신의 운명을 뛰어 넘어, 속되고 비천한 글씨쟁이를 뛰어 넘어 중국의 한문과는 차별화 된 힘있고 아름다운 붓글씨를 남긴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문신이자 금석학자요,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 역시 그의 나이 55세에 제주로 유배된다. 유배지 제주의 수선화를 바라보며 그가 아름답게 지어낸 시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길고도 혹독한 겨울을 견디느라 몹시 고단하고 지치기도 했으련만 어떻게 제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잊지도 않고 정성을 다했는지" 하는 마음으로 마침내 꽃망울을 맺고 피어오른 어여뿐 수선화을 바라 보는 그의 고매한 정신력 또한 어찌나 멋지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이 책은 단순히 유배라는 과거의 형벌 제도만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그 형벌을 통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시련 과 고통을 보여 주며, 마침내 그 속에서 진실된 승리를 거두어 내는 인간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노랫말이 있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 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 말로 짙푸른 숲이되고 산이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책 속에는 이와 같이 "꽃 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진한 삶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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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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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문학소년을 만나다 ...]

 

나의 유년 시절인 80-90년대만 해도 "문학소녀/문학소년"이라는 단어는 심심치 않게 자주 들을 수 있었으며, 실제 이 단어에 걸맞는 친구나 언니 오빠, 동생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던 시대였다고 생각 된다. 특히나 책 읽기를 좋아하고 책을 읽다 어느새 단꿈에 젖어 잠들길 좋아 했던 꼬마 시절의 나는 "문학소녀/문학소년"이라는 이 단어들에 대해 나만의 로망을 늘상 가슴 한 켠에, 마치 이루고 싶은 열망 처럼 품고 살았다. 하지만, 불과 20년 남짓 지나버린 지금, 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단어가 생경하기 그지 없다. "문학소녀/문학소년"이라는 단어가 지금에 와선 너무나 낯설고 너무나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옛스런 단어들을 여러 번 곱씹어 되풀이 하자 나도 모르게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 아날로그적 향취와 그윽함에 나도모르게 젖어든다.

 

이 책 [독서]는 내가 유년 시절 잠시나마 느꼈던 아날로그적인 향취와 그윽함이 묻어 나는 책이다. 유년시절 문학소녀의 꿈을 품고 자라난 내게 이 책은 단순히 독자 대 작가와의 만남을 뛰어 넘어, 문학을 사랑하던 한 소녀와 소년의 만남을 의미한다. 

 

이 책은 어린 시절의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자극하며, 잊고 있던 책에 대한 진한 사랑과 고마움을 되새기게 한다. 데이터들의 복제, 삭제, 편집이 간편해 지고 그에 따라 무수한 정보들이 홍수 처럼 넘쳐 나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우리는 책이 전해 주는 감동과 귀중함을 잊고 산다. 특히 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은 한 권의 책이 전해 주는 진한 감동과 여운을 가슴에 새기기 보다는, 닌텐도 게임 한 펙이 전해 주는 순간적이고 단순한 재미를 쫒으며 살기 쉽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 역시 이 아날로그적인 냄새를 폴폴 풍기는 한 권의 책 [독서]를 만나기 전에는, 미처 요즘 아이들이 처한 이와 같은 물질적 풍요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 [독서]를 읽고 나자 요즘의 아이들이 참으로 가엽게 느껴졌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는 요즘 아이들이 맞닥뜨린 "풍요 속의 빈곤"이 깨우쳐 졌고,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열규 교수님은 1932년 경남 고성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낸 분이다. 흔히들 문학 소녀/소년이라 하면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 작품의 창작에 뜻이 있거나, 문학적 분위기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사람을 일컫는다.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저자 김열규 교수님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는 누가 뭐래도, 문학 소년이요, 최고의 책벌레에, 북키드 였다. 문학 소년의 공통된 특징 처럼, 그는 책을 통해 꿈을 키우고, 그 꿈을 다시 책을 통해 넓히고 성장시키며, 책을 통해 보다 더 넓은 세상과의 만남을 지속 시켜 왔다. 외할머니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 부터 어머니의 목소리로 듣는 언문제문, 그리고 해방과 더불어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책더미 속에 만난 앙드레 지드와 헤르만 헤세,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린 시절의 그를 정신적으로 성장 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는 창구가 되었다. 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 어렵게 구하여 책을 읽었던 만큼 저자에게는 책의 한 부분 부분이 어느것 하나 버려진 것 없이 고스란히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오늘날의 그를 형성 시켰던 듯 하다. 한국 전쟁 때에는 미국 병사들이 버리고 간 책들 속에서 [세터데이 리뷰]와 같은 문예 잡지며, [신비평]과, [애틀랜틱]등의 책을 통해 영/미 문학의 원전을 접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문학을 바라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그의 안목도 한결 드높아 졌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한 작품 한 작품 읽을 때 마다 저자 김열규 교수님은 그의 표현 대로,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세계를 늘려 나가는 경험을 하며, 일찌기 사람이 몸으로만 노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도 신명나게 또 진지하게 놀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다. 

 

문학 작품의 창작이나 문학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쯤 이 책을 읽어 봄직하다. "독서"라는 하나의 줄기가 엮어 만들어진 이 책은 "독서"가 주는 모든 것을 말해 주는 듯 하다. 혹여라도 문학의 깊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단순히 책이 있는 분위기나 공간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도 이 책은 분명히 많은 자극과 여운을 전해 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만큼 이 책은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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