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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
김만선 지음 / 갤리온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흔히들 귀향살이로 일컬어 지기도 하는 유배(流配)는 죄인을 먼 곳으로 추방하는 것을 말한다. '유(流)'는 아주 먼 곳으로 보내어 살게 한다는 뜻이고, '배(配)'는 자유로이 활동할 수 없도록 어느 곳에 배속시킨다는 의미라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요즘 처럼 대 도시가 발달하여, 화려한 도시 생활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였고, 기껏해야 저잣거리가 번화가의 전부였을 과거에,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사는 것이 당시의 고풍스런 일상의 삶과 뭐 그리 차이가 있으며, 또 뭐 그리 대단한 형벌 이겠는가 싶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유배(流配)라는 단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은 이 처럼 단순하고 무지에 가까운 것 이었다.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유연자적, 초야에 파묻혀 웰빙할 수 있는 일종의 요양같은 느낌의 단어가 바로 이 책을 만나기 전에 내가 생각해 왔던 유배(流配)의 삶 이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니, 유배(流配)는 결코 만만한 형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삼국 시대 부터 조선 시대 까지 존재했던 이 유배의 형벌은, 조선 시대에는 사형 다음 가는 중벌이었다고 한다. 단순하게만 알고 있던 유배라는 형벌이 죄의 무게에 따라 어려 단계 별로 그 종류가 세세하게 나뉘어 구분 되었고, 시대에 따라서도 그 유형과 이름을 달리했다는 점이 매우 신기하고도 새롭게 느껴졌다. 특히나 조선 시대의 유배는 원칙적으로 무기 종신형이었다고 하는데, 세상과의 영원한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는 이 형벌의 가혹함을, 책 속에 구구절절 담겨 있는 다양한 사연들을 통하여 하나 하나 만나게 되자, 유배인들이 느꼈을 먹먹함과 가슴 속의 농익은 한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절로 마음이 아파 왔다.
저자는 "어떻게 해야 독자들에게 당시 유배인의 모습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 하면서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시각이 아니라, 잠시나마 그 때 당시 유배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당시 유배인들이 어떠한 과정으로 벌을 받게 되었고, 또 그들이 유배지에서 무슨 일을 했으며, 그들이 유배의 삶을 통해 가졌을 고통과 한 그리고 고민들 모두를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였던 저자의 목적이 이 책을 통해 잘 이루어 졌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책 속에는 옛 유배인들이 남긴 역사적 흔적들이 글씨와 그림으로 때로는 한 편의 시로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나 그들이 머물고 기거 했던 거주지의 사진 혹은 집터의 사진 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어 잠시 나마 눈을 감고 유배인들이 고통속에 피워낸 인간적인 삶의 진한 향취를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어 좋았다.
그 만큼 이 책 속에선 유배(流配)의 다양한 모습을 깊이 있게 만나게 된다. 유배라는 하나의 단어가 때로는 억울함과 분통함을 의미한다.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의 한 대목처럼 유배지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한을 쌓는 일 그 자체를 말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의미 한다. 다른 한편 유배는 인간의 고통과 한(恨)을 뛰어 넘는 숭고한 정신력을 의미 하기도 한다. "몸은 유배할 수 있어도 어찌 마음까지 유배할 수 있으랴"는 말 처럼, 이 책 속에는 유배라는 지리적/육체적 속박의 가혹한 형벌을 정신적으로 뛰어 넘고, 우리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적 창작물들과 학문적 성과로 꽃 피워낸 훌륭한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삶 속에 만날 수 있는 극한의 고통들을 보았고,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피워낸 아름다운 인간의 정신력을 통해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또한 저자가 지나친 비유일지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꺼낸 아래의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
"지나친 비유일지 모르지만 필자는 어머니의 자궁을 벗어나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한 직후부터 우리 모두는 항상 어디론가 유배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삼봉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세상을 다시 보는 경험을 통해 실천을 모르는 지식인의 박학이 얼마나 무서운 허위인지를 절감한다. 왕실의 후손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원교 이광사는 집안의 몰락으로 백부와 부친 모두 유배를 떠나고, 원교가 23세 되던 해 유배지에서 돌아온 부친이 병사하고, 26세 되던 해 백부마저 옥사한다. 하지만 이것도 모자라 그가 51세 되던 해엔 나주 벽서 사건에 연루되고, 이때 원교가 참형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그의 아내가 먼저 생을 마감하는 극한의 고통 까지 겪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모질고 사나워진 자신의 운명을 뛰어 넘어, 속되고 비천한 글씨쟁이를 뛰어 넘어 중국의 한문과는 차별화 된 힘있고 아름다운 붓글씨를 남긴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문신이자 금석학자요,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 역시 그의 나이 55세에 제주로 유배된다. 유배지 제주의 수선화를 바라보며 그가 아름답게 지어낸 시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길고도 혹독한 겨울을 견디느라 몹시 고단하고 지치기도 했으련만 어떻게 제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잊지도 않고 정성을 다했는지" 하는 마음으로 마침내 꽃망울을 맺고 피어오른 어여뿐 수선화을 바라 보는 그의 고매한 정신력 또한 어찌나 멋지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이 책은 단순히 유배라는 과거의 형벌 제도만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그 형벌을 통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시련 과 고통을 보여 주며, 마침내 그 속에서 진실된 승리를 거두어 내는 인간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노랫말이 있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 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 말로 짙푸른 숲이되고 산이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책 속에는 이와 같이 "꽃 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진한 삶이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