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진실의 빛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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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밤늦은 시각, 한적한 거리에서 20대 여성을 칼로 잔인하게 난자하여 살해하고, 손가락 하나를 가져가는 엽기적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가장 우수한 형사들이 모였다는 일본 경시청 수사 1과 중에서도, 날카로운 추리를 자랑하며 '명탐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외골수적이고 남들과 융화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본의 아니게 적을 만드는 '사이조' 경부보.  잘생기고 능력있는 그를 질투하고 시기한 나머지 자신도 놀랄 정도로 그를 증오까지 하게 되는 지역 경찰서 소속 '와타비키,' 경찰 내부 소문을 잘 캐며 정보 수집에 빠른 '톰,' 적당히 눙치며 불성실해 보이나 오랜 형사 경력에서 나오는 날카로움을 지닌 '무라코시,' 모두와 잘 지내는 듯 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쓰이,' 그리고 첫번째 범죄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덕분에 수사에 동참하게 되어 사이소와 조를 이루게 된, 파출소 순경 '오사키' 등 다양한 형사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사건의 추리와 '손가락 수집가'라는 별명을 얻은 범인의 독백이 교차하며 사건이 전개된다.  

 

제각각 맡은 소임대로 부지런히 수사하고 추리해 보지만, 범인에게 농락당하며 사건은 좀처럼 실마리를 얻지 못하고 미궁 속으로 빠진다.  수사의 비밀이 언론에 유출되고, 부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징계를 받고 자택 근신을 명 받은 사이조는, 차갑고 숨막히는 아내와의 관계를 피해 애인인 '미에이' 집에서 머룬다.  이런 그의 불륜을 누군가가 와타비키에게 알리고, 고민 끝에 와타비키는 이를 언론에 알려, 결국 이 시국에 이런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경찰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사이조는 퇴직하게 된다.  아내에게도 이혼당하고 위자료 명목으로 전재산을 뺏기게 된 사이조는 노숙 생활을 거쳐 비디오방에서 기숙하며 사는 처지가 된다.  이 와중에서도 사건에 대한 추리를 멈추지 않고 예전 경찰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동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실감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 태도 등을 돌아보며 회환에 젖게 된다.  이 와중에도 그에게 닥친 불행은 끝나지 않고, 사건은 연이어 발생하는데, 결국 사이조가 파악한 사건의 진실은, 범인은, 바로 경찰 내부에 있었다...!

 

일본의 전형적인 경찰추리소설이다.  집단적인 사고와 행동을 중시하는 일본 경찰들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다소 오글거리는 그들 특유의 강직한 모습들을 생동감있게 잘 그려낸 작품이다.  꽤 두꺼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히는 작품이었다.  트릭과 그 풀이 자체에 중점을 두는 본격 미스터리가 아닌, 인간성의 파괴와 사회구조의 모순을 다루는 사회파 미스터리 답게, 범인과 그 수법 등은 어느정도 후반에 이르면 눈치채기 쉽다.  그보다는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해결해 나가려는 수사관들의 모습과 그들 개개인의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목이 처음에 언뜻 그 의미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자신의 오만과 독선을 후회하고 그 가운데 진실의 빛을 보는 사이조의 인생이 투과되어 만들어진 제목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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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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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독특한 이력의 작가, 누마타 마호카루의 장편 순애 미스터리 소설.

사실 미스터리 소설이라 한 것은 별로 그닥 상관이 없어 보인다.

사건의 진실이 뒤늦게 밝혀진다는 점은 있으나, 사실 그건 초중반 부분에서 파악되는 내용이고,

작가 본인도 그 부분을 반전으로 의도하거나 작품의 중심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오히려, 진절머리날 정도로 지독한 사랑 이야기라고나 할까...

 

8년 전 '쿠로사키'라는 남자에게 호되게 이용당하고 정신적으로 망신창이가 된 '토와코'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며 산다.  그런 그녀를 실제로 부양하며 사랑하며 사는 건, 그녀가 혐오해 마지 않는 남자, '진지 사토.'  토와코보다 나이도 15살 연상이고, 육체노동에 찌든, 칠칠치 못하고 지저분한 남자이다.  능력도 별로 없고 외모도 볼품없고 하는 짓마다 어눌하기 짝은 없는 이 남자는 토와코의 갖은 학대와 멸시, 구박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집착 수준의 애정을 보인다.  그런 그가 싫을 수록 너무나 대조적으로 비교되는 쿠로사키의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토와코는 충동적으로 쿠로사키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고, 이를 계기로 그가 5년 전 실종된 사실을 알게 되며 충격에 빠진다.

 

한편, 고장난 손목시계 때문에 알게 된 쇼핑센터 직원 '미즈시마'와 갑작스런 불륜에 빠지게 되면서, 토와코는 더욱 더 진지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미즈시마와의 장미빛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그러나 쿠로사키의 실종이 혹시 진지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되면서, 자신의 불륜상대인 미즈시마와의 미래도 진지 때문에 무너질까봐 겁에 질리게 되고, 실제로 토와코와 미즈시마의 불륜행각이 조금씩 드러나며 토와코는 무서운 결심을 하게 된다.  이후 밝혀지는 과거의 무서운 진실과 마주치게 된 토와코와 진지, 그리고 미즈시마의 삼각 관계는 파국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사실 후반부에 이르도록, 거의 내내 읽는 동안 짜증이 났다, 토와코와 진지,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진지라는 남자는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 결코 아니다, 그게 그의 잘못은 아니라 해도,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그를 싫어하고 혐오하고 짜증내는 토와코를 이해 못할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에게 얹혀살고 그의 부양을 받으며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이면서도 그에게 갖은 모욕과 모멸감을 안기는, 이기적인 걸 뛰어넘어 진지 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학대하는 걸로 보이는 토와코의 새디스틱함에.  그리고 역으로, 도저히 이해 안 가는 토와코의 투정과 짜증을 다 받아주면서 그녀에게 집요하리만큼 집착하고 오히려 그녀의 학대를 즐기는 듯 하는 진지의 매조키즘적 모습이.  이들의 이런 관계에 한창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토와코가 문득문득 느끼듯 나 역시 진지라는 남자에 대해 조금씩 맘이 열리기 시작한 때는.  여전히 부족하고 수준미달로 보이는 진지지만, 토와코가 해바라기하는 남자들인 화려하고 세련된 쿠로사키나 미즈시마의 추악한 모습들이 대조되면서.  진지가 어느 날은 토와코에게, 넌 왜 그리 매끈하게 잘난 놈들에게만 빠지냐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어느 여자가 여기서 자유로울까.  나부터가 그렇지만, 특히나 토와코는 그런 남자들에게 너무나 쉽게 잘 빠진다, 무서울 정도로.  그건 그녀가 그만큼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는 반증이고, 이걸 꿰뚫어 보고 더더욱 그녀에게 일방적인 순애를 바친 진지.  그런 그들의 사랑이 불편하고 불쾌하고 그만큼 아프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른다,는 비평가의 말처럼. 

 

삶의 의욕을 상실한 그녀에게, 반드시 살아가라고, 네가 아이를 낳으면 그건 바로 자신이라며, 반드시 네게 들어가겠다고 외치며 자신의 사랑을 온몸을 던져 보이는 진지의 선택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고 집요하고 슬프고 아프다.  진지가 걸어들어간 곳은, 타마리스크의 붉은 꽃들이 뒤덮인, '무한한 사멸'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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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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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승 지장스님이 매주 토요일, '에이프릴'이라는 바에 나타나, 그곳에 모인 멤버들에게 자신이 겪은 살인사건 이야기를 풀어낸다.  멤버들은 그의 이야기를 언제나 청하며 듣고, 지장스님은 자신이 단순하게 풀어버린 복잡한 사건들의 이야기를 의기양양하게 얘기하는 구조로.

 

원래 단편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망설였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 목말라 있기도 해서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손에 잡았다.  예상대로 가볍고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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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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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인 미나코 가나에, 아주 깔끔한 문체로 섬뜩하리만큼 무서운 인간의 속성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리는 작가.  너무나 담담히 서술되는 그녀의 문체에 방심하고 있다보면 불편한 진실을 어느새 다가와 있고 인간 본성의 밑바닥이 드러나 있는 식...

 

이 작품은 제목에 걸맞게, '편지'라는 매개체로 두 사람이 주고 받는 이야기 중편소설 3편을 다룬 작품이다.  이메일과 SNS의 홍수 속에서 더이상 손편지를 쓰지 않는 시대이기에, 등장인물 스스로도 편지를 쓴다는 행위에 낯설고 쑥스러워 한다. 

 

첫번째 편은, 어릴 적 친구들 중 커플이 탄생하여 그 결혼식에 참가했던 친구들이, 행방불명됐다고 알려진 다른 한 친구의 행방을 찾으며 편지를 주고 받는다.  그 과정에서 밝혀진 그들의 고교시절의 우정이라는 얇은 껍질 밑에 감쳐줬던 진실이 점차 드러나며, 그간의 서로의 오해와 진실이 밝혀진다.

 

두번째 편은, 초등학교 선생님과 이제는 성인된 제자가 주고 받는 서간을 통해, 다른 제자들의 근황이 알려지고, 그 과정에서 이십 년 전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사고를 회상하며, 각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사건의 이면과 그 사고가 투영된 현재의 모습들이 다뤄지며, 하나의 큰 원을 그리는 작품이다.

 

앞의 두 편이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는 반면, 마지막 편은 중학교 동창으로서 오랜 연인이, 남자가 업무 차 먼 타국으로 떠나감에 따라 주고 받는 편지에서 드러나는 과거의 기억이 그들 관계에 불행을 드리우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 간의 애틋한 정을 전하다가, 점차 그들이 어렸을 적 겪었던 위험했던 학창시절, 그리고 일어난 사고를 기억하게 되고, 기억을 덮으려 했던 남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기억을 되찾는 순간 마주친 진실은 계속되는 반전을 이루며 배신과 불신으로 이어진다.  결말을 꼭 비극으로 볼 건 아니고, 두 사람 관계의 앞날이 어떻게 이어질 지는 사실 모르는 거지만...

 

작가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조용한 어조로 '편지'라는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는 공통점을 지닌 세 작품이었다.  쉽게쉽게 쓰고 보내는 이메일이나 SNS과는 달리, 작중 인물의 말처럼, 다시금 되짚어보고 좀 더 신중하게 할 말을 생각해 보게 되는 편지라는 수단을 통해서 말이다.  그를 통해 진실에 더 한층 깊이 다가가고 그를 마주칠 수 있게 되듯이.

 

그녀가 보내는 또다른 편지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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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안 -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9인의 단편집
미야베 미유키 외 지음, 한성례 옮김 / 프라하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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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아야츠지 유키토, 시마다 소지, 미치오 슈스케, 모리무라 세이치, 아리스가와 아리스, 오사와 아리마사, 다나카 요시키, 요코야마 히데오, 이 쟁쟁한 일본 추리소설 작가들의 단편소설 9편을 묶은 작품이다.  "혈안"은 그 중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제목.

 

각자의 개성 만큼이나 쟝르도 제각각이었다.  처음에는 추리 단편소설집인가 했는데, '50'이라는 숫자를 공통점으로 해서 추리, 괴담, 환상소설 등이 다양하게 실려 있었다.

 

개중에는 뜬금없이 끝나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결말이 뭐? 싶기도 하고, 역시 나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구나를 다시금 확인시켜주기도 한 책이다.

 

그 중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혈안'이 가장 좋았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혈안'이라는 이름의 요괴가 사람에게 빙의되어 도박 중독에 이르고, 대물림되는 이 빙의를 끊어내기 위한 사람들의 합심된 노력이 그 얼개를 이룬다.  이름 그대로, 혈안이란 건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벌개진 눈의 형상을 했다는 점이 섬뜩하면서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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