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존 갤브레이스 돈을 말하다 - 화폐의 탄생부터 금융 위기까지 돈에 관한 모든 역사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 이강국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9월
평점 :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돈이라는 존재가 삶의 뼈대를 이루고 있음에도, 도대체 돈이란 무엇인지 정말 깊게 고민해 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마침 '돈의 역사'를 통째로 다룬 고전이라는 말에 이 끌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존 갤브레이스 돈을 말하다>를 펼쳐 들었습니다. 솔직히 궁금하면서도 딱딱한 통화량 수식이나 경제학 이론만 나열되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솔직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자마자 마주한 글들은 의외로 인간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냉철하게 파헤치는 한 편의 거대한 역사극에 가까웠습니다.
저자인 갤브레이스는 화폐의 발생부터 은행 제도의 탄생,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대공황에 이르기까지 돈을 둘러싼 거친 궤적을 훑어 내려갑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화폐는 결코 순수하거나 중립적인 제도가 아니었습다. 특정 세력의 권력관계와 정치적 타협, 그리고 인간의 헛된 탐욕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지극히 인간적인 산물이었죠. 화폐가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나가고,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있는 것처럼 믿으며 버블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금융 역사 속에서 똑같은 실패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반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백 년 전의 광기와 파산 구조가 이름만 바뀐 채 현대에도 그대로 재현된다는 사실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늘 자신이 사는 시대는 과거와 다르며, 이번만큼은 새로운 금융 기법으로 리스크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착각의 끝은 언제나 참혹한 경색과 공황으로 이어졌죠.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돈(화폐)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지금의 우리 삶과도 아주 가깝게 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몇 년 전 전 세계를 흔들었던 가상자산 열풍이나 부동산 과열, 그리고 최근까지 이어진 고금리와 자산 가치 변동을 바라보면 갤브레이스가 지적한 '기억상실증'이 떠오릅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규제안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예금 자금 유출로 순식간에 파산한 사건은 여전히 시스템과 인간의 신뢰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의 교훈을 까맣게 잊고 새로운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태도는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죠.
물론 책을 읽는 내내 온전히 공감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이 1975년에 처음 세상에 나온 책이라는 점에서 오는 시대적 간극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막 무너진 시점에 쓰여졌다 보니, 이후 궤도에 오른 변동환율제나 파생상품의 기하급수적 팽창, 그리고 오늘날의 디지털 화폐 같은 현대적인 금융 지형은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갤브레이스 특유의 신랄한 제도 비판적 시각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 보니, 주류 경제학이나 시장 고유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에 대해서는 다소 박하게 평가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 돈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지갑 속 지폐나 계좌의 숫자들이 수많은 사람이 주고받은 신뢰와 권력, 그리고 수시로 흔들리는 불완전한 합의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경제 지식을 얻었다기보다는, 돈이라는 거대한 신화 앞에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사 전우치 : 화폐의 역사를 인간의 탐욕과 권력 구조라는 맥락에서 위트 있게 풀어내어 깊은 통찰을 준다
악마 전우치 : 원저의 출간 시기상 현대의 복잡한 금융 시스템을 담아내지 못하고 특정 관점에 다소 치우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