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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공부의 종말 - 우리가 공부라 믿는 것은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가
아나 로레나 파브레가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6년 8월
평점 :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교육학자이자 교육 혁신가인 아나 로레나 파브레가 의 책 <가짜 공부의 종말>을 집어 들었을 때,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약간의 피로감이 있었습니다. 제목에 끌려 집어들긴 했지만 '또 흔한 교육 개혁론이나 표준화된 학교 시스템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는 거 아냐' 하는 지레짐작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어갈수록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묵직하게 가슴을 찔렀댔습니다. 우리는 정말 아이들이 '배우는 방법'을 익히길 바라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학교라는 시스템의 규칙'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걸까요?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메타포는 매우 명쾌합니다. 저자는 지금의 교육 현장이 진짜 배움(Learning)이 아닌 '학교 게임(Game of School)'을 수행하는 장으로 변질되었다고 말합니다. 정해진 답을 빠르게 찾고, 교사의 눈밖에 나지 않으며, 좋은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한 요령을 익히는 것이 과연 진짜 공부일까 반문합니다. 책은 나이와 학년별로 아이들을 일률적으로 나누고,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만을 주입하는 산업화 시대의 유물 같은 학교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그리고 진짜 배움은 아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실패를 무릅쓰며, 자신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일어난다고 말하죠.
책을 읽으며 유독 마음이 머물렀던 지점은 '혼란과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기존 정규 교육 과정에서는 정답을 바로 내놓지 못하거나 오답을 적어내는 상황을 '부족함'이나 '수치'로 간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배움의 과정에서 느끼는 적당한 막막함과 착오야말로 뇌를 자극하고 호기심을 폭발시키는 진짜 동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정답만 정갈하게 정리된 요약본을 외우는 것은 공부의 시늉일 뿐,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막히는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과정이야말로 가짜 공부를 털어내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죠.
이러한 지적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과도 직결됩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초·중·고교생의 사교육비 총액은 약 27조 1천억 원으로 3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고 합니다. 사교육 시장이 커질수록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는 시간보다 잘 정제된 문제 풀이 기술을 습득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죠. '학교 게임'을 넘어 '사교육 게임'에까지 매몰되어 버린 셈입니다. 결국 높은 성적을 받아 대학에 진학해서도 막상 자율적인 연구나 과제를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이 책이 말하는 '가짜 공부'의 결과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물론 AI 에게 물어서 답을 찾을 수는 있겠으나, 오히려 성적이나 두뇌 활용도는 떨어지는 결과는 결코 이렇게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모습의 방증입니다.
물론 저자의 모든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현행 학교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하며 제시하는 주도적 프로젝트 학습이나 비표준화된 대안적 교육 모델은, 현실적으로 상당한 자원과 부모의 관여, 혹은 경제적 여유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아이가 스스로 탐구 과제를 설정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기초적인 학력 기준이나 기본적인 지식의 뼈대를 쌓아야 하는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반복과 틀이 필요한데, 책에서는 대안적 접근의 이점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느라 기존 제도권 교육이 가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다소 저평가한 감이 있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타성에 젖어 있던 저의 교육관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그동안 '성실한 공부'라고 믿었던 것들의 상당수가 어쩌면 평가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동적인 수행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진정한 공부란 남이 정해준 트랙을 완주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질문을 따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일이어야 하죠. 책을 덮고 난 뒤, 결과를 내는 것에 급급해 질문하기를 멈췄던 저 자신의 일상부터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천사 전우치 : 기존 교육 제도의 허점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스스로 배우는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적 통찰을 보여줌.
악마 전우치 : 모든 학습자에게 적용하기에는 대안적 모델의 현실적 장벽과 구체성이 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