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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
홍익희 지음 / 체인지업 / 2026년 7월
평점 :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역사 교과서를 읽을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사건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로마는 왜 그 방향으로 팽창했는지, 대항해 시대는 왜 그 시기에 시작됐는지, 러시아는 왜 시베리아 끝까지 나아갔는지 말이죠. 홍익희 교수의 <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는 인류 문명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사람들이 간절하게 원했던 물질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소금이었고, 모피였고, 향신료였고, 다이아몬드, 후추였다고.
이 책이 처음부터 저를 사로잡는 이유는, 가장 친숙한 것에서 가장 낯선 이야기를 꺼내었기 때문입니다. 소금. 지금은 마트에서 몇 백 원에 살 수 있는 그것이, 로마의 가도망을 만들고 베네치아의 번영을 이끈 물질이었다고 합니다. 샐러리(salary)라는 단어가 소금(sal)에서 왔다는 것. 소금이 화폐처럼 쓰였던 시대에, 소금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가졌다는 것.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로마의 팽창이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영토를 넓힌 것이 아니라, 소금 루트를 확보한 것이었다는 생각이죠. 역사를 물질의 흐름으로 읽는 방법을 한번 익히고 나니, 이후의 챕터들이 훨씬 빠르게 납득이 되었습니다. 납득이가 된 거 아니고요. (썰렁)
모피가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을 이끌었고, 향신료가 대항해 시대를 열었으며, 석유가 달러 패권의 핵심 축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각각의 물질이 어떻게 제국의 방향을 결정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 세계사를 연도와 인물 중심이 아니라 욕망과 자원 중심으로 읽는 경험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자가 32년간 KOTRA에서 쌓은 실무 경험이 이 책의 서술에 특별한 감각을 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일반적 역사 지식이 아니라, 교역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사람의 눈으로 물질의 흐름을 추적한 듯 보입니다. 보석 챕터에서 드비어스의 독점과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비극을 함께 다루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문명의 발전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승자의 언어가 아니라 약소국과 산지 주민들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이 책이 또한 특별하게 다가왔던 점은, 한국사를 세계 교역망 속에 위치시키는 챕터들이었습다. 고조선의 모피 무역, 백제의 요서 진출, 일제강점기의 경인선 철도 부설. 제가 교과서에서 배운 사건들이 세계 경제사의 맥락 속에서 이렇 의미가 있었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가 동아시아 교역망의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를 알게 되니, 우리 역사가 고립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와 연결된 흐름의 일부였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실험실 다이아몬드와 석유 분쟁 같은 현대적 이슈로 마무리되는 구성도 좋았습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지금 뉴스와 연결되는 순간, 역사가 살아있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도와 그림에 많아서 이해도 쉬워 도움이 되었습니다. 에드 콘웨이의 <물질의 세계>를 읽고 싶지만 좀 어렵게 느껴졌던 분들이라고 이 책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천사 전우치 : 소금·모피·보석·향신료·석유라는 친숙한 물질을 매개로 세계사의 흐름을 욕망과 교역의 언어로 풀어냄.
악마 전우치 : 다섯 가지 물질을 넓게 다루는 만큼 각 주제의 서술이 깊이보다 흐름에 집중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