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과 동양철학 그리고 인간
김환규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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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제가 양자역학을 처음 접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저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그것이 저의 상식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어서였습니다. 전자는 관측하기 전까지 파동이었다가 관측하는 순간 입자가 됩니다. 입자 둘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하나에 일어난 일이 즉각 다른 하나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를 물었을 때, 물리학은 "그냥 그렇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역시나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자인 김환규님은 양자역학에 동양철학의 언어를 가져왔습니다. 읽다보니 오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저자는 양자역학이 동양철학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거나, 동양철학이 양자역학을 2,000년 전에 예견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두 학문이 세계와 존재를 이해하려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이 불교의 공(空)과 비슷하다거나, 얽힘 현상이 연기(緣起)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할 때, '우와' 했습니다. 두 사유가 서로 다른 언어로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점이 놀라웠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현대 과학의 발견들이 오히려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오래된 철학적 질문을 다시 불러낸다는 관찰이었습니다. 파동-입자 이중성이 제기하는 관측자 문제는, 관찰하는 주체와 관찰되는 대상의 경계에 대한 노장사상의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얽힘 현상이 보여주는 비국소성은, 개별 존재의 독립성보다 관계망을 먼저 보는 주역의 세계관과 공명하죠.

장자와 존 스튜어트 밀이 같은 페이지에 등장하고, 양자역학의 방정식과 불교의 연기법이 같은 맥락에서 논의됩니다. 이 통섭적 시도가 학문적으로 엄밀하지 않다는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을 저자도 압니다. 하지만 그 비약이 없으면 우리는 영원히 분절된 지식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입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으로 논의가 확장될 때, 앞에서 쌓아온 과학적·철학적 논의가 왜 거기서 필요한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관찰자가 아니라 거대한 관계망의 일부라는 인식. 그것이 단순한 환경보호 구호가 아니라, 양자역학과 동양철학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요.

책을 덮고 나서 전자 하나의 행동을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오늘 내가 내린 선택들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존재라는 것이 양자역학의 언어이기도 하고 동양철학의 언어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 삶의 언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사 전우치 : 양자역학과 동양철학을 증명과 예견의 관계가 아닌 공명의 관계로 연결하는 신중한 접근이 돋보임.

악마 전우치 : 일부 비유와 철학적 해석이 학문적 엄밀성보다 직관과 공명에 기대는 구간이 있어, 두 분야 중 하나에 깊은 배경지식을 가진 분이라면 논리의 도약이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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