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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원시인 - 10만 년을 되돌려 되찾는 뇌 설계도
자청 지음 / 필로틱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완벽한 원시인>은 무슨 뜻일까? 부제가 왜 10만 년을 되돌려 되찾는 뇌 설계도지? 뇌과학과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쓰였나 여러 가지 질문들을 생각하며 첫 장을 펼쳐 들었습니다.
저자 자청은 첫 장부터 수만 년 전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프리카 초원을 맨발로 달리던 우리 조상들. 매 순간이 생사의 기로였던 그 시절, 인간의 뇌는 살아남기 위해 철저하게 최적화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건 생존. 문제는 그 뇌가 지금도 거의 그대로라는 겁니다. 21세기를 사는 몸 안에, 석기 시대의 뇌가 들어앉아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과학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말인데요. 책으로 다시 보니 뭔가 새롭게 또 다가왔습니다. 뭔가 툭 하고 풀리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모르는 사람의 댓글 하나에 하루 종일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유 없이 불안해지는 것도, 배부른데 야식 앱을 켜는 것도.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수만 년이 만들어낸 생존 회로가 오작동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 잘못 설계된 내가 아니라, 시대에 뒤처진 설계를 가진 내가 있었던 겁니다.
책의 절반쯤을 넘어가다보니 저자는 슬그머니 방향을 틉니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이 책이 여타 자기계발서와 결정적으로 갈립니다. "본능을 이겨라", "더 강해져라" 같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본능과 싸우는 건 처음부터 질 게 뻔한 싸움이니, 차라리 그 본능을 내 편으로 만들라고 합니다.
저자는 여기서 자기 이야기를 꺼냅니다. 흙수저로 태어나 스스로 일어서기까지의 과정을. 멋지게 포장된 성공 스토리가 아닙니다. 열등감에 짓눌리던 시절, 뇌를 어떻게 속이고 환경을 어떻게 설계해서 겨우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는지를 꽤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이미 <역행자>에서 들어봤지만요. 실제로 바닥을 기어본 사람의 언어였기 때문에 더 신뢰가 갔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잠시 멍하니 있었습니다. 딱히 무언가 대단한 깨달음이 온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좀 가벼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왜 자꾸 남과 비교하는지, 왜 잘 되고 있을 때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지. 오래된 그 질문들에 드디어 이름이 붙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붙고 나니, 예전처럼 그냥 '내가 문제야'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아, 또 원시인 모드가 켜졌네' 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는 거리가 생겼습니다. 그 거리가 생각보다 많은 걸 바꾸지 않을까 싶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그냥, 나를 좀 더 이해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근데 돌이켜보면 그게 제일 어렵고, 제일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읽었던 렛뎀이론과 조화하면 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운동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천사 전우치 : 내 나태함과 열등감을 '진화가 남긴 자연스러운 오류'로 재정의해주며, 오랫동안 짊어지고 다니던 자책의 무게를 슬그머니 내려놓게 해준다.
악마 전우치 : 모든 실수를 '조상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완벽한 논리적 방패가 생겨버려서, 자칫하면 아주 당당하고 진화된 원시인으로 그냥 눌러앉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