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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들의 시간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이세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파리정치대 교수이자 <크렘린의 마법사>로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저자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이 매우 매서웠습니다.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을 비롯한 테크 업계의 거물들을 단순한 혁신가나 기업가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저자의 눈에 이들은 현대 정치의 혼란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거침없이 새로운 권력 종족으로 부상한 존재들입니다. 마키아벨리가 지금 이 세계를 들여다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라는 질문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 책이 특별히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추상적인 이론의 언어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뉴욕, 피렌체, 몬트리올, 파리, 리야드를 직접 누비며 권력이 실제로 작동하는 현장을 발로 기록합니다. 독재자들의 집무실, 기술 권력자들의 회의장, 무질서를 전략으로 삼는 정치인들의 연설 무대. 그 생생한 현장감 덕분에 독자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냄새가 스며든 공간 속에 직접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정치학적 통찰과 저널리즘적 현장감이 결합될 때 탄생하는 고유한 힘일까요?
책이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누가 통치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가." 기술 기업의 CEO들이 국가 지도자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알고리즘이 여론을 설계하며, 선출되지 않은 자들이 민주주의의 언어를 해체하는 현실. 저자는 이 흐름을 "포식자들의 시대"라는 은유로 포착하며, 전통적 정치 질서가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게 만듭니다. 읽는 내내 불편함이 쌓이는 것은 그 분석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정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에어리언 어스>가 떠올랐습니다. 드라마의 세상은 국가가 아니라 거대 기업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이 책. 정치 에세이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라 AI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천사 전우치 : 마키아벨리적 시선과 르포적 현장감이 결합되어, 기술 권력과 정치의 융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냄.
악마 전우치 : 복잡하게 얽힌 권력 사례들과 정치적 맥락이 촘촘히 쌓여 있어, 배경지식이 부족한 분이라면 헤맬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