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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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흑해에 대해 나는 뭘 알고 있었나?"였습니다. 솔직히 거의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세계지도에서 유럽과 아시아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이름만 들어본 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를 놓치고 살았는지 깨달았습니다다. 흑해는 세계의 끝이 아니라, 세계사가 만나는 교차로였습니다.

저자는 첫 장부터 흑해를 '변방'으로 보는 시선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곳을 탐험하던 시대부터, 오스만제국과 러시아가 이 바다를 두고 싸우던 시대, 그리고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쳐 오늘날까지—흑해는 언제나 문명이 충돌하고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곳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니요.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건, 흑해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단순히 지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의 분수령이었다는 점입니다. 오스만제국의 흥망, 러시아의 남하 정책, 크림전쟁, 소련의 팽창, 그리고 냉전 이후의 불안정한 평화까지. 흑해를 중심으로 보니, 세계사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이 단순한 정치사와 다른 점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강대국의 전쟁과 조약 이면에는 언제나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강제 이주, 제노사이드, 민족 갈등—역사책에서 한 줄로 스쳐 지나가는 이 단어들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너졌는지를 저자는 세심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흑해 주변에 살았던 수많은 민족과 종족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스인, 타타르인, 체르케스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이들은 각자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가지고 이 바다 주변에서 살았지만,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사라지거나 떠밀려났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은 제국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은 계속해서 상기시켜줍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흑해의 역사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느꼈습니다다. 냉전이 끝났지만 흑해는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유럽 통합 과정에서 공백 지대로 남았고, 러시아와 서방의 긴장은 여전하죠.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흑해가 여전히 지정학적 충돌의 중심에 있다는 게 실감납니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제국들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흑해를 두고 각축을 벌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희생되고 있구요. 저자는 이 오래된 패턴을 담담하게 서술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 깊은 우려가 담겨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쉽지 않습니다. 2700년의 역사를 다루다 보니 등장하는 인물, 사건, 지명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중간중간 "이게 누구였더라?" 싶어서 앞으로 돌아가 확인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학술적인 부분도 있어서,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꿔주기 때문입닏다. 흑해를 통해 보니, 유럽도 다르게 보이고, 러시아도 다르게 보이고, 중동도 다르게 보였습다. 세계는 중심과 변방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모든 곳이 누군가에게는 중심이죠. 이 책은 그걸 보여줍니다.

<흑해>를 다 읽고 나니, 세계지도를 다시 펼쳐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흑해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이 작은 바다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싸우고, 사랑하고, 떠났을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 삶은 이어지고 있겠지요.

찰스 킹은 잊혀진 바다에 목소리를 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중심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변방이 중심이 되는 순간을 포착한 책. 흑해를 통해 세계사를 다시 보게 만드는 놀라운 여정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천사 전우치 : 흑해를 정치·문화·민족사의 교차점으로 복원하며, 강대국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역사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악마 전우치 : : 2700년을 아우르는 방대한 서술로 인해 초반에 압도될 수 있고, 세부 사건마다 깊이 파고들기보다 넓게 훑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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