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
전대호 지음 / 해나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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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저는 자연과학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물리와 화학 수업은 악몽이었습니다. 외워야 할 공식들, 이해되지 않는 개념들, 차가운 숫자들. 과학은 저와 전혀 상관없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의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과학을 아예 모르고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를 키우면서 최소한의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선택하였습니다.

전대호 저자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철학도 공부했습니다. 시인이기도 하고, 과학책 전문 번역가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정체성이 한 사람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쓴 사이언스 이야기는 딱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인간적이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것은 피보나치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피보나치 수열을 수학 교과서에서 배웁니다. 하지만 왜 그가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보급했는지는 배우지 않습니다. 피보나치는 상인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아라비아 숫자의 편리함을 깨달았습니다. 로마 숫자로는 복잡한 계산이 어려웠습니다. 그는 상인들을 위해, 실용적인 필요 때문에 아라비아 숫자를 소개했습니다. 괴학은 이렇게 삶의 필요에서 시작됩니다. 과학과 기술의 구분, 그 둘의 통합에 관한 글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마리 퀴리의 이야기도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녀는 라듐을 정제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특허를 받았다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특허를 포기했습니다. 지식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뢴트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엑스선을 발견했지만 특허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과학자이기 전에 인간이었습니다. 이익보다 더 큰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과학자들은이 단순한 지식 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봉사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슈뢰딩거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양자역학의 대가였던 그는 나이 오십이 넘어 생물학에 도전했습니다. 전공도 아닌 분야였습니다. 동료들은 말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호기심을 따랐습니다. 그가 쓴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분자생물학의 탄생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DNA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도 이 책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호기심과 용기가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저자는 자연과학의 어두운 면도 숨기지 않습니다. 현대과학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습니다. 빅사이언스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 편의 논문에 수천 명이 공동 저자로 참여합니다. 개인의 목소리는 희미해집니다. 거대 프로젝트 속에서 과학자는 부품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이 과학발전의 대가일까요? 저자는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과학이 인간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책을 읽으며 저는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며 무척 아쉬웠습니다. 만약 그때 이렇게 배웠다면 어땠을까요. 공식 암기가 아니라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실험 결과가 아니라 그들의 고민과 선택으로. 과학은 훨씬 더 흥미로웠을 것입니다. 제 인생도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1783년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하늘을 날고 싶어 했습니다. 이카로스의 신화부터. 그 꿈을 이룬 것은 화학의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화학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날고 싶다는 인간의 열망이었습니다. 자연과학은 그 꿈을 실현하는 도구였을 뿐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스마트폰을 볼 때, 약을 먹을 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볼 때. 그 안에 담긴 괴학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호기심, 열정, 실패, 성공. 과학은 더 이상 차갑지 않습니다. 따뜻합니다. 인간적입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두고 다툰 이야기도 나옵니다.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 자존심 싸움이었습니다. 과학자도 질투합니다. 화를 냅니다. 실수도 합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이기적인 인간이니까요.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책은 주로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과학적 원리 자체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개념들이 있었지만, 간략하게만 소개되고 넘어갑니다. 또한 서양 과학사 중심입니다. 동양 과학, 한국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거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이 책은 제게 과학과의 화해를 선물했습니다. 그것은 차갑고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자연과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천사 전우치 : 과학을 인간적 맥락에서 풀어내 독자에게 친근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줌.

악마 전우치 : 사례 중심 설명이 많아 과학적 원리 자체에 대한 심화 분석은 다소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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