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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와 국가의 부(富)
로버트 브라이스 지음, 이강덕 옮김 / 성안당 / 2025년 12월
평점 :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로버트 브라이스의 <전기와 국가의 부>를 읽기 시작한 것은 평범한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집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던 중, 갑자기 몇 초간 전등이 깜빡거렸습니다. 그 짧은 순간, 저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전기가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아기 세탁기까지 돌리는 바람에 과전력으로 차단기가 내려갔던 것입니다.
30년간 에너지 문제를 취재해온 저널리스트인 브라이스는 이 책을 통해 전기가 단순히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현대 문명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임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가 인도, 아이슬란드, 레바논, 푸에르토리코, 뉴욕, 콜로라도를 직접 취재하며 목격한 현장의 이야기들은 단순한 통계를 넘어, 전기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의 차이를 가슴 아프게 전달합니다.
특히 인도의 시골 여성들을 방문한 대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기가 없는 마을에서 여성들은 매일 몇 시간씩 나무를 모으고, 연기 가득한 실내에서 요리를 하며, 해가 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저자는 전 세계 30억 명이 미국의 평균적인 냉장고 하나가 소비하는 전력보다 적게 사용하며 살아간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제시합니다. 이 격차를 읽으며, 저는 제가 얼마나 당연하게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는지 부끄러워졌습니다.
브라이스가 레바논 베이루트를 취재한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내전으로 전력망이 파괴된 이 도시에서는 "발전기 마피아"가 엄청난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며,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도록 방해한다는 이야기는 소름 돋게 현실적이었습니다. 전기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복합적인 이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저자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입장입니다. 브라이스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전 세계의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고 단언하며, 기후변화에 진지하게 대응하려면 원자력 에너지가 훨씬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분명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저자의 입장에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가 제시하는 데이터와 논리를 접하면서, 적어도 그의 주장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독단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에너지 전환은 수십 년이 걸리며, 빠르거나 쉬운 해결책은 없다"고 현실적으로 인정합니다. 또한 마이크로그리드를 방문한 후 태양광과 저장 시스템에 대한 자신의 회의론을 재고하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런 태도가 이 책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복잡한 에너지 문제를 다루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때로는 긴박하게,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좋았씁니다. 암호화폐 채굴부터 대마초 재배까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전력 소비 사례를 통해 전기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는지 보여주는 방식도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전기의 안정적인 공급이 여성의 권리, 의료, 교육, 경제 발전, 심지어 전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전기는 단순히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조건이었습니다. 브라이스는 전기가 문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저자가 원자력을 강하게 옹호하는 입장 때문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평가가 다소 비판적으로 치우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의 주장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지만,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양한 에너지 옵션을 검토했다면 더 설득력 있었을 것 같습니다.
천사 전우치 : 전기가 문명과 국가의 부에 미치는 영향을 생생한 현장 취재와 구체적인 데이터로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악마 전우치 : 원자력 옹호 입장이 강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평가가 다소 비판적으로 치우친 면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