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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인생을 묻다 - 그랜드 투어, 세상을 배우는 법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쌤앤파커스 / 2025년 9월
평점 :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자꾸 불편해졌습니다. 체스터필드 경이 아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는 분명 사랑에서 출발한 조언인데, 그 끝없는 조언의 홍수 속에서 아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 역시 내 아들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할 것 같다는 사실을. 더 잘 살았으면 해서, 실수하지 않았으면 해서,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해서… 하지만 그것들이 사실은 아들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까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명확하게 조언에 대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사랑에서 하는 말이라도, 시기와 양을 지나치면 조언은 잔소리가 되고, 잔소리는 통제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그냥 믿어주는 것”이야말로 때로는 최고의 조언일 수 있다는 것.
체스터필드 경은 그랜드 투어 중인 아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냈고, 선생을 통해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으며 하나하나를 관리하고 지시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감시’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지나치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문득 아주 무례하고 건방진 상상까지 들었습니다. 혹시 체스터필드 경의 과한 조언과 통제가 아들의 삶을 더 일찍 지치게 한 건 아닐까? 책을 덮고 잠시 멍해졌습니다.
귀족 자녀들이 수년간 유럽을 돌아다니며 삶을 배우는 ‘그랜드 투어’. 그 엄청난 경비와 시간, 그리고 기회를 마련해준 부모의 마음은 지금의 유학을 보내는 부모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 아무리 순수해도, 그 과정에서 자녀가 느끼는 압박과 부담은 또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랜드 투어' 에서 배움을 얻어야 하는데 참.
책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와 그 편지를 해설하는 저자의 글이 번갈아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저자의 해설이 있어 편지 속 메시지를 보다 깊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내용이 많았지만 정작 제게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조언의 내용이 아니라, 그 조언을 받아야 했던 아들의 마음이었다니 아이러니합니다.
체스터필드 경의 편지가 여러 사람들에게 분명 훌륭한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읽히는 것이겠지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저는 부모로서 참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들이 앞으로 제가 어떤 부모가 될지 방향을 바꿔놓았습니다.
천사 전우치 : '체스터필드 경의 편지’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악마 전우치 : 조언과 간섭 사이에서, 부모로서 다시 돌아본 나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