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하나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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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홀릭>, <플라나리아>의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가 '서른한 살 여자'를 주인공으로 쓴 서른한 편의 이야기. 삶이 한없이 무료한 여자, 일 년간 섹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자, 직장에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여자 등 '삼십대에 막 발을 담근 여성들의 삶'이라는 코드로 묶인 소설집이다. 각각의 작품은 일반적인 단편소설보다 길이가 짧으며, 섬세하고 날렵하고 리듬감 있다.

일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서른한 살. 진한 사랑 한번 못 해보고 빚쟁이처럼 선택을 재촉하는 문젯거리들로 머릿속이 시끄러운 나이. 하지만 부정하고픈 현실 속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서른 살 그녀들은 사랑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딱 서른 하나가 된 연초에 이 책을 읽게 된 건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른도 서른 둘도 아닌 서른 하나가 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서른 한 명의 서른 하나 인생들이 평균적인 일상들을 대표한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을 거다. 아무래도 소설의 주인공이 되려면 인생에서 한 가지 쯤은 극단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할 테니까. 성격이든, 트라우마든, 직업이든, 가정환경이든, 섹스 습관이든, 술버릇이든, 기호품이든, 남자를 보는 눈이든, 독특한 친구이든, 그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남들과 다른 하나 쯤을 가지고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일상의 요소들이 더이상 내 인생을 쥐고 흔들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잡아가는 나이, 우울하고 가끔 슬프지만 당황해 하지 않고 잦아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나이. 바로 그런 나이가 아닐까. 내 나이 서른 하나는.

아주 오래 전 교보문고에 선 채로 야마모토 후미오의 소설 <플라나리아> 한 권을 다 읽은 적이 있다. 뭔가 가슴 속에서 꿈틀꿈틀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사실 자세한 내용은 모두 까먹어 버렸지만. 거의 8년 만에 다시 읽은 거다, 그녀의 소설은. 그리고 이 책은 번역이 너무 매끄러워 훨씬 읽는 재미가 더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책의 맨 뒷장에 붙어 있는 '옮긴이의 말'(이선희)이다. 거기에 이 책에 공감한 내 모든 감정이 다 들어 있었다. 조금만 소개하고 싶다.



서른하나. 작가는 왜 서른한 살을 고집한 것일까?
그녀는 작품 속에서 여자의 입이 아닌 남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난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여자가 좋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나름대로 확고한 가치관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서른한 살짜리 여자는 좋다. 그녀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남자를 이해한다."
그렇다.
서른한 살.
이미 사랑에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하지도 않는 나이.
이미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없지만, 그렇다고 하루하루 적당히 살아가지도 않는 나이.
이미 인생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허무한 시선으로 인생을 바라보지도 않는 나이.
한마디로 말해서 머리는 적당히 차갑고, 가슴은 적당히 뜨거운 나이라고나 할까?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실연을 당하거나, 이혼을 하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직장에 목숨을 걸거나, 모든 일을 접고 여행을 떠나거나 하는 등 꼭 드라마틱해져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어떻게든 나만의 서른 하나를 잘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치기보다는 겸허함을, 열정보다는 즐길 줄 아는 나이이니까. '내 나이 서른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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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홀릭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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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앞으로의 인생, 다른 사람을 너무 사랑하지 말자.
너무나 사랑해서 상대방도 나 자신도 칭칭 옭아매지 말자.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너무 꽉 잡는다. 상대가 아파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이제 두 번 다시 누구의 손도 잡지 말자.
체념하기로 정한 것은 깨끗하게 체념하자.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과는 정말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내가 나를 배신하는 짓은 하지 말자.
타인을 사랑할 바에는 차라리 나 자신을 사랑하자.

<내 나이 서른 한 살> 이후 야마모토 후미오의 소설을 한 권쯤 더 읽고 싶었다. 페이지수가 상당한데도 삼 일만에 다 읽었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주인공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완벽하고 상세하게 묘사하는 그녀의 문체는 소설에 더욱더 몰입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 사실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주로 '음울하다'는 평을 듣는 분위기를 가진 인물인데 그러면서도 가끔 깜찍한 도발을 저지를 때가 있어서 의외성을 주는 캐릭터다. 소설은 중년여성이 된 그녀에 대해 호기심(절대 호감이 아니다;;)을 가진 한 남자 신입사원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우연히 술을 함께 마시게 된 그 신입사원 앞에서 그 중년여성, 그러니까 이 소설의 주인공 미나즈키는 자신이 왜 지금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후 소설은 다시 그 여성, 미나즈키의 1인칭 시점으로 돌아가 그녀의 인생을 되짚는다. 그녀가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 계기, 남편을 만난 이야기, 이혼을 하게 된 이야기, 우울했던 어린 시절 등등에 대하여 읽어나가는 동안 그녀 인생의 퍼즐이 하나씩 맞추어져 간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인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미나즈키라는 '독특한' 인물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하게 되는데, 혹자는 어쩌면 그 부분에서 경악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찜찜한 건 그런 그녀를 경멸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스스로에게 무수히 던졌던 질문을 내가 나에게 스스로 해 보아도 나 역시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는 사실이다.
'만약'... 을 과거에 끼워넣는 질문. 얼마나 바보같고 부질없는 짓인지 잘 알면서도 그 질문에 답을 내리지 않고서는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 왜 있지 않은가. '만약 그 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류의 후회들... 혹은 '도대체 내가 어떻게 했어야 그 사람이 떠나지 않았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날 좋아하게 할 수 있을까', '난 최선을 다했는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 따위의 자책들.


어떤 식으로 사람을 사랑해야 제대로 사랑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어떤 면도 받아들여 줄 수 있었다.
까다로운 성격, 자존심, 그 이면에 숨은 나약함.
그것을 모조리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 번도 그를 거스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말했다.
     나를 쳐다보지 마!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다. 더군다나 복잡하거나 변덕스러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더 어렵다. 하지만 단순한 사랑은 재미없다. 그렇지만 단순하지 않은 사랑은 소설 속 표현대로 '너절하다'. 물론 사랑은 사람마다 저마다의 유형이 있고 그 사랑법이 서로 잘 들어맞을 때에만 동등한 연애관계가 성립된다. 하지만 미나즈키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상대방에 집착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전부 다해주었다고 믿는 일방적인 사랑을 했다. 그런 미나즈키의 사랑 방식이 상대방의 숨통을 조였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처음엔 둘이 서로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게 어느 순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는지, 미나즈키를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폭력적이거나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 모든 게 전부 두 사람의 사랑의 결과였을 거라는 거다. 과연 미나즈키는 그 때 어떻게 했어야 했던 걸까. 그녀는 남편을 위해, 매력적인 바람둥이 이치즈 고지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두 사람 모두 결국 그녀를 버렸다면 도대체 더 이상 무엇을 했어야 했던걸까. 아마 미나즈키는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소설의 결말, 이제는 다소 삶의 여유를 찾은 듯한 미나즈키의 모습을 보면 다소 안심이 되긴 하다만. 그리고 두렵게도 사실은 어쩌면 그녀가 나보다 훨씬 멋진 사람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지만.

작가는 미나즈키를 통해 독자에게 '당신은 당신의 사랑법에 자신있냐'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다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도 모르게 속절없이 끝나버리는 수많은 연인관계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에서 보면서 그들을 동정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도 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닥친 이별 앞에 '붙잡지 않을 테니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뭔지나 알려달라'며 진부한 대사를 그대로 읊고 만다. 방금 이별을 겪었다거나 차였을 때 미나즈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결심하듯이 '구차하게 사랑 때문에 아파하느니 차라리 내 자신을 더 사랑해 주겠어!'라고 외쳐보지만, 세상에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나자신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만큼 외로운 것이 또 어딨겠는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사람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만끽'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이츠지 고지로와 길고 오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고 딴 애인을 마련하는 등 그 남자에 맞는 사랑법을 연구했던 이츠지의 여러 '새끼 양'들처럼.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미나츠키가 도달한 결론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쏟아붓는 것이 완전한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나는 이런 식으로 사랑해 주지 않겠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랑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는... 또 작가인 야마모토 후미오는 확실히 헌신적인 사랑을 하다 버림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디테일한 감정묘사들을.... 이거 너무 일차원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라는 컴필레이션 앨범 속 어느 글이 갑자기 생각난다. 공교롭게도 미나즈키의 상황에 꽤 들어맞는 듯한.


유괴범과 바람둥이

아동 유괴범이 검거될 확률 97%

그러나 유괴범죄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유괴범들은 자신이 검거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밖의 3%에 속한다고 믿기 때문.

바람둥이와의 사랑에 실패할 확률은 99%

그러나 바람둥이를 사랑하는 여자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여자들은 자신이 바람둥이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 밖의 1%에 속한다고 믿기 때문.

바람둥이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는 날로 우후죽순.

그것은 아직도 그를 사랑한
그녀들의 수가 더 많다는 것을 입증하는
영상매체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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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발칙한 한국학
J. 스콧 버거슨 외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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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한국을 바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남들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가지고 한국을 평가하는 것도 옳지 않긴 마찬가지이다만... 예쁜 아가씨들이 매주 모여서 재미나게 수다로 들려주는 한국의 모습만 하더라도 사실 그렇게 유쾌하기만 한 풍경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좀더 신랄하고 예리한 시선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이것이야말로 재한 외국인들이 짚어주는 한국의 객관적 모습에 대한, 한국인은 모르기 쉬운, 알더라도 그게 뭐? 하면서 별스럽지 않게 넘겼을, 조금은 부끄러워 모르는 척 하고 싶어할지도 모를 그런 지점들이다.

자신이 직접 쓴 글과 친구들이 한국에 관해 쓴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스콧 버거슨은 <발칙한 한국학>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이 책은 미처 읽지 못했지만 그 책의 속편 격에 속하는 이 책의 제목에 '더'라는 비교급 수사가 쓰인 것은 그 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치명적인 이야기들이 더 생겼다는 뜻이었을 거다. 그리고 이 책의 뒷부분에 그 핵심이 나와 있다. 그 사건, 외국인들의 눈에 한국이 '더' 발칙해 보이도록 만든 그 역사적 사건은 바로 작년 여름을 들썩인 '촛불집회'였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은 조금 지루한 고개를 넘고 돌아 나간다. 물론 각 글쓴이의 개성에 따른 한국문화의 여러 가지 장면들이 묘사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지긴 하지만 결국 이 책의 핵심은 그 촛불집회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에서 벼라별 사건들을 다 겪은 외국인들의 슬픈, 황당한 경험담들이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정말 한국사회를 제대로 보여주는 대사건이 바로 그 촛불집회였고 거기에서 시위(그 모임의 명칭과 성격을 어떤 단어로 규정지어야 할지 나는 아직 판단이 서질 않는다) 참여자들이 바로 이 한국인의 의식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잠재되어 있는 온갖 피해의식과 집단무의식을 보여주는 것이었을 테니까.

외국인, 아니 외부인 입장에서는 그것만 제대로 보았더라도 한국을 바로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억울해 하기보단 좀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게 맞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당시 사건의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건 모든 일에 무심한 내 성격 탓이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다섯 명 이상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좋은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그다지 없다는 걸 은연중에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자신들의 의견이 옳음을 주장하고자 하는 목적 하에 모인 사람들은 팽배한 자신감을 다소 폭력적으로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섯 명 이상 모인 의미를 부각할 수 없을 뿐더러 명분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혼자서 하거나 여러 명이더라도 평화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과격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미 촛불집회는 처음과 끝의 목적이 다른 한바탕 난장으로 끝난 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거울 노릇을 해주고 있어 다행스럽긴 하다. 특히 이렇게 집요하고 냉철한 시선을 가진 외국인에 의해..

클로테르 라파이유의 <컬쳐 코드>에서 미국인의 뇌구조가 샅샅이 분석되어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 한국인의 뇌구조도 분석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름대로 해소가 된 듯 하다. 물론 <컬처 코드>처럼 재미있고 명확한 키워드로 설명되진 않지만 <더 발칙한 한국학>은 짓궂고 냉소적이며 적당한 엘리트의식을 가진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하위문화를 전파한 데 대한 자부심과 외국인에 대한 쓸데없는 편견을 비판하는 측면, 북한이라는 경탄스러운 독재국가에 대한 호기심, 영어 컴플렉스와 은근한 인종차별주의,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문화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균형을 잡느라 꽤나 고생했을 듯 하지만) 그리고 '엑스펫'으로 나름대로 한국 문화 업그레이드에 기여했다는 자부심 등까지. 그들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생활이 부러워 지는 순간도 더러 있다.

하지만 모든 챕터를 한국'학'이라고 이름붙이는 건 과해 보인다. 마지막 챕터, 그러니까 스콧 버거슨이 직접 쓴 촛불집회(촛불문화제?!! 설마..)에 관해 쓴 글을 제외하고는 그냥 더 발칙한 한국(혹은 한국'인') 정도로 하면 적당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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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파괴자 1
안병도 지음 / 피앙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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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무협소설.
글쎄... 이걸 정통 무협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무협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으니 정교한 비교는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고. 다만 무협소설의 클리셰들을 몇몇 무협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해 보았으니 책으로 읽는 것이 어색할 것은 없었다. 아, 어릴 적 아빠를 따라 만화가게에 가서 빌려보았던 무수한 천제황 무협만화들을 본 것도 기억에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무협소설의 초짜 독자인 나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정통무협소설의 틀을 깨고자 하는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서 작가의 평소 관심 범위가 들여다보이는데 온라인 게임과 무기에 관련된 과학적 지식들, 그리고 조금 오래된 듯 한 CF의 유명 카피들까지 자유롭게 소설 속에 녹여내고 있었는데 이것이 이 소설을 잘 읽히게 하는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무협소설의 설정 자체가 21세기 한국 사회의 백수족을 대표하는 청년 안진현이 한 명이 우연치 않게 과거 무림세계로 들어가 '진대협'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여행을 하는 데에 굳이 과학적 현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단지 그가 유일하게 무림세계 안으로 지니고 간 물건이 '권총'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무림'을 '파괴'해 나갈 것인가를 자유롭게 상상하면 되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무협소설에 무수히 등장하는 틀에 박힌 설정들을 자세히 설명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시크하게 그 관습을 슬쩍 뛰어넘고 비튼다. 솔직히 산속에서 도적떼를 만나 위험에 빠진 여인을 구하고서 멋있게 바람처럼 사라져 버릴 능력 같은 게 우리의 주인공에게 없는 것이다. 그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부지런히 걸어 최대한 빨리 현장을 빠져 나갈 뿐. 그러면서 속으로 '아, 쪽팔려' 하는 식이다. 물론 여색을 탐하는 한량 고수도 만나고, 슬픈 사연을 간직한 남장소녀도 만나는 등 무협소설에 빠지지 않는 요소들도 하나씩 건드려 준다. 그리고 평소 가지고 있던 무기에 관한 상식들, 대한민국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고 하)는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스스로 무기를 발전시켜 나가고 무공과 결합하여 점점 고수로서의 면모를 지녀 가게 되는 과정, 전혀 어렵지 않고 통쾌하며 확실히 읽히는 재미는 있다.

평소 무협소설에서 연상되는 무겁고 폼잡는 주인공이나 문체는 없다. 가볍고 발랄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남자다운 호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걸까.. 하면서도 결국엔 빠져들어 열심히 읽는 바람에 색다른 경험이자 3권에 대한 기대감만 잔뜩 남겨졌다는.
역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책들이 존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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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심벌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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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이 6년 만에 펴낸 소설『로스트 심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 숨겨진 비밀 결사조직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파헤치는 12시간의 숨 가쁜 추격전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로버트 랭던이 이번 작품에도 등장하여, 여러 상징과 단서를 좇아 워싱턴의 곳곳을 누빈다.

하버드대학의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피터 솔로몬으로부터 미국 국회의사당에서의 저녁 강연을 요청받는다. 하지만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잔인하게 잘린 피터의 손이 의사당 건물 한복판에서 발견된다. 피터를 납치한 악당 말라크는 랭던에게 그를 구하고 싶으면 오래전 잃어버린 지혜의 비밀 세계로 가는 고대의 비밀 암호를 풀 것을 요구한다.

랭던은 피터를 구하기 위해 말라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가 놓아둔 단서를 따라가며 모험을 시작한다. 한편, 노에틱사이언스의 최고 권위자인 캐서린은 오빠 피터의 행방을 찾아 랭던의 모험에 합류한다. 두 사람은 말라크의 치밀한 음모와 계략에 맞서고, 그 속에서 프리메이슨의 세계와 숨겨진 역사가 드러나는데….


댄 브라운의 신작 소설, 운좋게 리뷰단을 통해 읽을 기회를 얻었다. 첫페이지부터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이미 유명해진 전작들와 영화를 통해 익숙한 로버트 랭던의 얼굴이 톰 행크스의 육신을 빌어 연상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영화화된 전력이 있어서일까, 모든 챕터가 영화의 씬을 이루듯 모든 것이 비주얼로 떠오르고 매 장면전환까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건 주인공들이 겪는 정신적 혼란과 육체적 고통에 대한 묘사, 그리고 역시 댄 브라운의 전매특허인 실제 역사와 허구의 재구성을 통한 미스테리를 엮어나가는 기법이다.

<천사와 악마>에서 바티칸 교황청을, <다빈치 코드>에서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무대로 삼아 미술과 종교, 과학에 대해 논했던 그의 시선이 이제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을 누빈다. 그리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로 일컬어졌던 이들이 몸담았던 프리메이슨이라는 신비주의 단체가 곳곳에 숨겨놓은 상징과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로버트 랭던이 또다시 투입된다. 사실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결사대 성격의 단체는 댄 브라운이 이미 그 정체를 파헤쳤던 일루미나티와 오푸스데이의 명맥을 잇는 또 하나의 키워드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신비주의나 음모론, 종교 간 갈등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단체들의 실존 여부나 현재 잔존해 있는 세력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하나의 일관된 슬로건을 가지고 소설을 계속 써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굉장한 흥미가 느껴졌는데 예를 들자면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끊임없은 호기심과 탐구본능, 그리고 그것이 일반인들이 일상을 영위해 가는 데에 미칠 수 있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에 관한 상상 등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많은 연결고리와 반목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는 동시대 학문들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을 확대하여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가 들고 있는 돋보기의 이름은 바로 '지적 호기심'이다.

이번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의 축은 캐서린 솔로몬이라는 노에틱사이언스 과학자의 연구로 표현된다. 노에틱사이언스(Noetic Science, 지력과학)은 인간의 집중된 정신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계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정이 뒷받침되는 과학이다. 과학의 한 분야로 여겨지지만 쉽게 생각하자면 어느 종교단체의 교주가 환자의 몸 속에 퍼져 있는 암세포를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치료한다든가, 앉은뱅이를 일으킨다든가 하는 사례가 바로 노에틱사이언스라는 것이다. 예수가 행했던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면,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라면 세계는 얼마나 충격에 빠지게 될 것인가. 이러한 인간의 마음이 일으킬 수 있는 힘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간이 그 능력을 발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그룹도 존재한다. 엄청난 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누구에 의해 쓰여지느냐에 따라 인류의 역사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신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모든 인간이 알게 된다면 그것이 반드시 좋은 일에만 쓰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리메이슨과 같은 소수 집단이 인류의 능력과 지혜를 아무나 발굴해 내지 못하도록 꽁꽁 싸매서 감추고 그 비밀을 밝혀낼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도록 상징과 암호로 도배를 해버린 것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이 내내 보여주는 것은 인류를 뒤흔들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고대의 수수께끼가 어떤 식으로 감춰지고 교묘하게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추적에 대한 과정이다. 그 비밀이 하나씩 파헤쳐 지고 로버트 랭던이 진실을 향해 한발짝씩 다가가는 과정 자체가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서스펜스의 힘이 된다. 해당 분야에 관한 엄청난 양의 연구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했을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지간한 독자가 아니라면 진실과 허구를 잘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나처럼;;)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불신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열려있는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힘을 믿고 그것을 닦고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능력이 온당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다같이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그의 최종 메시지가 아닐까.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감이 있긴 하다만.

조만간 또 하나의 고대 유물 미스테리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주인공은 당연히 톰 행크스일 것이고. 워싱턴 D.C.의 수많은 건물과 유적들을 비추며 그 안을 헤집고 도심을 질주하기도 할테지. 그리고 감독과 배우들의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영화 홍보 일정이 끝난 후 영화가 개봉을 하게 되는 날, 마치 처음부터 짜여져 있는 각본처럼 나는 극장에 가게 될 것 같다.


 

소설 속 수수께끼의 중심 배경인 미국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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