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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파괴자 1
안병도 지음 / 피앙세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무협소설.
글쎄... 이걸 정통 무협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무협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으니 정교한 비교는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고. 다만 무협소설의 클리셰들을 몇몇 무협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해 보았으니 책으로 읽는 것이 어색할 것은 없었다. 아, 어릴 적 아빠를 따라 만화가게에 가서 빌려보았던 무수한 천제황 무협만화들을 본 것도 기억에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무협소설의 초짜 독자인 나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정통무협소설의 틀을 깨고자 하는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서 작가의 평소 관심 범위가 들여다보이는데 온라인 게임과 무기에 관련된 과학적 지식들, 그리고 조금 오래된 듯 한 CF의 유명 카피들까지 자유롭게 소설 속에 녹여내고 있었는데 이것이 이 소설을 잘 읽히게 하는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무협소설의 설정 자체가 21세기 한국 사회의 백수족을 대표하는 청년 안진현이 한 명이 우연치 않게 과거 무림세계로 들어가 '진대협'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여행을 하는 데에 굳이 과학적 현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단지 그가 유일하게 무림세계 안으로 지니고 간 물건이 '권총'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무림'을 '파괴'해 나갈 것인가를 자유롭게 상상하면 되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무협소설에 무수히 등장하는 틀에 박힌 설정들을 자세히 설명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시크하게 그 관습을 슬쩍 뛰어넘고 비튼다. 솔직히 산속에서 도적떼를 만나 위험에 빠진 여인을 구하고서 멋있게 바람처럼 사라져 버릴 능력 같은 게 우리의 주인공에게 없는 것이다. 그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부지런히 걸어 최대한 빨리 현장을 빠져 나갈 뿐. 그러면서 속으로 '아, 쪽팔려' 하는 식이다. 물론 여색을 탐하는 한량 고수도 만나고, 슬픈 사연을 간직한 남장소녀도 만나는 등 무협소설에 빠지지 않는 요소들도 하나씩 건드려 준다. 그리고 평소 가지고 있던 무기에 관한 상식들, 대한민국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고 하)는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스스로 무기를 발전시켜 나가고 무공과 결합하여 점점 고수로서의 면모를 지녀 가게 되는 과정, 전혀 어렵지 않고 통쾌하며 확실히 읽히는 재미는 있다.
평소 무협소설에서 연상되는 무겁고 폼잡는 주인공이나 문체는 없다. 가볍고 발랄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남자다운 호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걸까.. 하면서도 결국엔 빠져들어 열심히 읽는 바람에 색다른 경험이자 3권에 대한 기대감만 잔뜩 남겨졌다는.
역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책들이 존재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