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hinsee >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한 용기를 낸 그들, FTM

원문 보기 : http://shinsee.tistory.com/813

  

 

 

 

 

 

 

  하, 지금 포스터를 새삼스레 유심히 보니 여성의 상징인 분홍색 풍선을 멀리 날려보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에서 가슴이 없어지는 순간 해방감을 느꼈다고 회고하던 등장인물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하다. 태어날 때부터 내게 들러붙어 있던 여성성을 떼어버리는 순간의 쾌감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로서는 절대 가늠조차 해 볼 수 없겠지만 정말 일생을 통해 간절히 원해왔던 무언가를 성취할 때의 기쁨이라고 쉽게 생각해 보면 상상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영화 제목에 나와 있는 FTM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큐를 보았다. 트랜스젠더라고 한다면 영화 <헤드윅>이나 하리수의 경우처럼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을 한 경우만 으레 떠올리기 쉽지만(이래서 미디어의 영향이 대단한 거다) FTM은 Female Toward Male의 약자로, 말 뜻 그대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전환한 성적 소수자를 일컫는 용어다. 화면 안에 처음 주인공 3명의 인터뷰 장면이 나란히 나올 때 정말 남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호르몬 치료나 가슴 절제술 등의 과정을 거친 결과다. 다만 그들의 정신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남성'(지향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성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평소에 많이 감사하며 살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물론 등장인물들의 경우처럼 한 달에 한번 거치는 행사는 좀 마다하고 싶다만) 그들이 그토록 여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심정을 100% 이해하기는 힘들다. 어찌 보면 그들은 '남성이 되고 싶다'라는 갈망보다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육체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굳이 호적상의 절차와 주위의 시선,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과 같은 복잡하고 외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평범한 한 명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 은연중에 비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인터뷰 중 가장 공감이 가고 와닿았던 말은 (FTM이든 MTF이든 간에) 모든 트렌스젠더는 자신다움을 찾기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일생이 걸린 모험을 각오한 '용기있는 자들'이라는 말이었다. 굳이 성전환과 같은 자연스러움을 거부하는 행위가 아니다 하더더라도 우리는 그들만큼 나 자신을 향한 사랑과 관심, 애정을 가졌거나 주위의 온갖 편견과 싸울 용기를 내 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이 다큐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만큼 등장인물 3명의 용기는 더욱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지 알기에 자신의 사생활을 걸고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또한 아직도 완전한 남성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들, 여성과 남성의 경계에 묘하게 걸쳐진 상태에서 고민하는 모습들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취업을 위해, 여권 발급을 위해,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그들이 거쳐야 하는 사회적 관문은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그들은 무언가 삶의 과업을 하나 이미 이뤄낸 듯한 표정이었다. 그만한 각오나 다짐 없이는 시작도 안 했을 거라는, 그간 꿈꿔왔던 것들 중 하나를 이미 이루었으니 앞으로 남은 과정은 그에 비하면 쉬울 거라는 자신감. 글쎄, 이건 제3자로서 조금 낭만적인 시각이 개입된 탓일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스스로 '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찾은 듯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정말 이 세상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바로 세워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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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 드라마를 아직 끝까지 안 봤으며, 긴장감을 잃고 싶지 않은 분이라면 이 글을 읽지 않기를 권합니다.

 다소 긴 여정이었지만 어찌됐건 시즌 4를 끝으로 그들의 모험은 무사히 종결되었다. 아..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을 결코 놓을 수 없게 만든 드라마.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몇몇 드라마 버금가는 막장드라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 첫회에서 마이클 스코필드가 형을 구하기 위해 감옥에 일부러 수감되어 폭스리버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이 드라마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전쟁까지 일으키려 했을 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 전반을 맴도는 '친자+가족 콤플렉스' 기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시즌 4에서는 그간 죽은 줄 알았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살아돌아오더니(새라, 크리스티나, 켈러맨 등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적인지 아군 간에서 쉼없이 로테이션을 반복하고 엄마와 아들이 서로 총을 겨누질 않나 다양한 유형의 패륜이 판을 치고 살인과 성희롱, 배신과 음모, 자해와 공갈, 탈취, 폭탄제조, 마약, 자살, 권력욕, 혼전임신(!), 공무원 사칭 사기 등 그 종류도 버라이어티한 유해 요소들이 등장하더니만, 시즌 1부터 갖은 고생을 하며 팀을 이끌었던 정신적 지주였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는 결국 불치병으로 죽고 말았다.




왜 그들이 행복해 지도록 놓아두지 않은거야!


영리하며 정의롭고 용감하고 민주적이고 인간적이고 형제간 우애가 깊으며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았던 마이클 스코필드는 지금까지 보아온 영화나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남성상을 구현한 캐릭터로 손꼽힐 만 하다. 총도 여러 번 맞았던 것 같고, 병이 악화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또 폐쇄된 공간에 갇히긴 왜 그리 자주 잘 갇히는지... 그래도 역시 번번히 뛰어난 기지를 발휘해 살아났던 석호필. 하지만 그도 '코피' 앞에서는 무너졌다.;;

그의 죽음은 거의 순교 수준으로 승화되었다. 그의 덕분으로 자유를 되찾은 인생들이 모두 모여 추모하고 자신을 꼭 닮은 아이를 분신으로 남겨 놓았으며 세계평화를(!!) 지켜내었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도 그가 평화로운 삶을 되찾길 바랐건만 역시 작가들과 대중들은 너무나 완벽한 주인공에게 역시 영원한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 심리가 있는 듯.





이 드라마에는 많은 남자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남자들 못지 않게 몇 안 되는 여성 인물들 역시 무시무시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레첸과 크리스티나가 마녀 같은 생명력과 탐욕으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악마성을 지닌 존재들이었다면 그에 비해 새라는 지적이면서도 의리있고 순정적이고 인도주의적이며 작전시에는 대담한, 결국은 마이클과 동급을 이루는 완벽한 여성상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완벽한 남녀의 결합이었건만 마지막 회에서 마이클과 새라가 여유롭게 해변가를 걸으며 행복감에 젖었던 것도 잠시, 마이클의 코피 한 줄기로 그들은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동안 단 하루도 계획을 세우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그 모든 계획을 모두 성사시켰던 마이클이 단 하나 이루지 못한 계획은 새라와 함께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는!! (아.. 슬프다. 울어버렸다.;;) 하지만 우리나라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주인공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하며 울고불고 하는 신파적 요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은 무척 인상깊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엄청난 막장 코드로 도배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시크하고 세련된 듯한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믿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미국 작가 연합의 파업 때문에 애간장이 녹는 시기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길고 긴 여정이 막을 내렸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옥상에서 총맞고 링컨네 팀에서 도태되었던 그레첸은 어떻게 되었나, UN이 실라를 옳은 용도로 사용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등등, ..), 또 한편으론 국내 막장 드라마 못지 않게 한숨 푹푹 쉬며 '이런, 또야' 중얼거리면서도... 결과가 궁금해서 계속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대본의 힘은 정말 굉장하다.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후덕해 지는 웬트워스 밀러를 보며 조금 안타깝기도... 더불어 <꽃보다 남자> 이후 이민호가 과연 어떤 후속작품으로 돌아올 것인가 하는 궁금증 못지 않게 <프리즌 브레이크> 이후 웬트워스 밀러가 과연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지 기대 반+걱정 반인 심정이라는.




대단원을 장식한 마지막 장면은 바로 마이클 스코필드의 '지(知)'의 상징, '종이오리'다.



왠지 그리워 질 것 같은 폭스리버 교도소 고공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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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풍경 제 9회 정기공연

<태수는 왜?> 09/4/16 ~ 09/5/3 | 정보소극장

권력의 축복과 경멸이 잉태한 한국의 오레스테스, 그를 향한 복수의 서막

작 : 고영범 | 연출 : 박정희


출연
태수- 호산 | 필수- 최광일 | 형사 김동호- 강승민 | 이기자- 윤복인 | 미림, 응웬- 김성미 | 형사 상욱- 김아영




연극 관람은 무척 오랜만이다. 좋은 연극이 많은데도 왜 영화 열 편 보는 것보다 연극 한 편 보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지는지.. 대학로도 오랜만. 비는 추적추적 왔지만 은근히 기대하면서 극장으로 향했다.


 

 정보소극장은 처음 가 보는 곳이었는데 공간의 3면이 관객석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딱히 어느 곳이 정면이라기보다는 그저 바라보는 곳에서 각기 배우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배우들이 입장,퇴장하는 문도 모두 3곳에 마련되어 있다. 독특한 구조였지만 연극의 입체감을 다양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3면 모두에서 한번씩 감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

연극의 첫장면은 빗소리를 배경으로 손을 씻는 태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태수의 어머니가 살해되고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지만 태수는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노라고 자백한다. 굴지 기업 회장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태수가 정말 어머니를 죽였을까, 정말 죽였다면 왜 그랬을까에 대한 질문을 풀어나가는 것이 이 연극의 핵심 내용이다. 태수의 친구 필수는 책으로 펴내기로 한 태수의 소설을 형사에게 넘기고 형사들은 소설 속 주인공의 행적을 좇으며 수사를 펴 나간다. 이 연극에 모티브가 되었다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오레스테스는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하는 인물이다. 태수는 모두가 부러워 할만한 완벽한 조건을 지닌 인물인 듯 보이지만 암울한 시대의 희생양이자 가해자로서 열패감과 자책감으로 점차 무기력해져간다. 이 연극의 시점은 현재이지만 주요 이야기는 태수와 필수의 과거 에피소드가 벌어지는 1980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트남전, 독재를 지나 민주화가 자리를 잡던 80년대를 거쳐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는 90년대, 기성세대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혔고 자식들 역시 부모와 나라의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또 이 연극의 주인공 두 명은 남성이지만 비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여성들의 죽음 역시 이 연극의 큰 축을 형성한다.
태수가 경험한 아버지로부터의 억압과 당시 한국사회가 자행했던 폭력이 겹쳐지고 태수와 필수의 우정과 배신이 이어지고, 과거와 현재의 에피소드가 정교하게 얽히면서 단출한 무대는 스토리와 상징으로 꽉 들어찬다.
 


 

6명의 배우들이 모두 맨발로 등장해 마루바닥으로 된 무대를 누비며 열연하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태수의 친구 필수 역을 맡은 최광일씨의 연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연극적인 딱딱한 발음이 아니라 실제로 말하는 듯 자연스럽게 발음하기 때문에 잘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대사를 놓치기 쉽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확 빠져들게 된다. 태수 역의 호산 아저씨는 극중 대사처럼 잘생겼고 체격좋고 기타등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주인공 역에 제격이었다는;;(또 이런다...)


 연극을 정말 오랜만에 보기도 했지만 보는 내내 참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한정된 인물이 출연하여 모든 시공간은 소품과 조명, 음향으로 연출되는 무대하며, 무엇보다 바로 앞에서 눈 말똥말똥 뜨고 있는 관객들을 마주하고 연기에 몰입하는 배우들의 집중력도 놀랍고, 모두 한 공간 안에 있는데 각기 다른 시간대와 장소의 대사가 섞이는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긴박감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영화로 치자면 마치 몽타주 편집과도 같은.
대사도 한 줄 한 줄 심오하여 두 세 번씩은 곱씹어 봐야 할 듯 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영화보고 나서 시나리오 읽어보고 싶어지는 경우는 (개인적으로는 사실) 별로 없는데 이 연극은 극본이 어떻게 씌여졌을까 무지 궁금하다는. 특히 이 연극이 더 그러한 이유는 태수가 필수에게 넘긴 소설이 극중에서 많이 읽히고 인용되는데, 배우들의 대사와 소설 구절을 읊는 내래이션이 뒤섞이면서 문어체와 구어체의 혼합이 묘한 리듬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실 소극장 연극의 경우 홍보비용을 많이 들일 수 없는 만큼 이런 좋은 연극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면 꽤 정성이 필요할 듯 하다. 그저 귀만 열어놓고 눈뜨고 있으면 침투하는 영화 홍보와 너무나 다르게 조용히 대학로 한 작은 극장에 붙박인 채 매일매일 공연되고 있는 이런 연극, 놓치긴 아쉬운데 말이다.

어쨌든 알라딘 문화이벤트 덕분에 간만에 좋은, 묵직~한 경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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