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 - [초특가판]
호금전 감독, 홍금보 외 출연 / 리스비젼 엔터테인먼트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정치적으로 어지러웠던 명나라 말기, 벼슬에 뜻이 없는 선비 고성제는 초야에 묻혀 다른 이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며 살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폐가에 살고 있는 양낭자를 만나고 아름다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양낭자는 과거 충신의 후손으로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죽은 뒤에 가족들을 몰살하려는 조정의 무사들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는 중이다. 고성제는 양낭자 일행과 합류한 뒤 병법에서 응용한 여러 가지 계략을 세워 이들을 돕게 된다.

정확히 40년 전 영화. 무협영화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쇼브라더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아직도 중국 본토와 대만, 홍콩의 구분이 어떻게 되는 건지 감이 없는지라 정확히 이 작품이 어느 국적의 영화인지 헷갈린다. 감독 호금전은 중국 베이징 출신이지만 이후 홍콩 쇼브라더스에 입사한 이후 무협영화 걸작들을 찍었고, <협녀>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우 국적이 대만으로 되어 있다. 흠...



어쨌든 영화 자체의 스토리는 별로 특이할 만한 게 없다. 벼슬 욕심없이 홀어머니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한 청년의 옆집에 정체가 불분명한 여자가 이사를 오고 그때부터 마을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녀는 역적의 모함으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충신의 딸로 몰래 피신하여 몸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형편. 그런데 이 청년과 사랑하게 되고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조정에서 그녀를 잡기 위해 군사들을 보내는데 청년과 그녀, 그리고 조력자들이 힘을 합쳐 그들을 막아낸다는 이야기. 중국 어느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 수준의 이야기 한 자락을 화려하고 긴 무협스토리로 굽이굽이 펴낸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 30여 분이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 있겠는데 바로 혜원대사라 불리는 스님의 활약이 등장하는 곳이다. 그녀는 청년에게 대를 이을 아기를 남기고 불교에 귀의하려는데 그녀를 재판부에 끌고 가려는 조정의 무리들이 몰려오고 이때 혜원대사가 그들을 물리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혜원대사, 즉 불교를 상징하는 종교인의 모습이 거의 신화화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높은 곳에서 항상 역광을 받으며 나타나기 때문에 적으로 하여금 눈이 부셔서 쉽사리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나뭇잎을 밟고 사뿐히 내려선다든가 그들이 움직일 때 카메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 등을 빠르게 교차 편집하여 이 스님들이 속세의 인간들과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속세와의 인연'은 질기고도 구차한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속세와 종교의 삶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 스님들이 거주하는 절은 마을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산넘고 물을 건너 한참을 걸어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며 마을은 우둔한 백성들이 죄를 짓고 살아가는 곳으로 그려진다.





혜원대사의 등장,


그 자체로 '신'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마을에 사는 우둔한 백성들은 죄를 짓고는 귀신을 두려워 하며 소문에 예민하다. 주인공 청년 고성제의 어머니는 아들이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하는 이유가 가난해서이기 때문이라고 믿으며 과거 시험에 응시하라고 아들을 다그친다. 그리고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조정의 관리들 역시 서로 역적 모의를 일삼으며 충신을 내쫓고 그 식솔까지 멸하는 추악한 집단으로 나온다. 그런 지저분한 속세와 전혀 다른 세상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산사와 평정심을 잃지 않는 스님의 모습은 나약한 인간이 어디에 기대어 마음의 안정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려주는 듯 하다.



동네에 소문이 퍼지는 과정을 표현하는 화면분할 편집방식. 당시라면 꽤 획기적인 방법 아니었을까.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화면에 담기는 소소한 부분들은 지극히 미학적이다. 칼싸움 장면이야 요즘 현란한 CG와 각종 무술 효과에 단련된 우리의 눈에는 어설프고 새로울 것도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발견되는 매력들이 있다. 특히 호금전 감독은 속세에 찌들고 거짓과 욕심에 미혹되어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거미줄에 걸린 곤충에 비유하여 보여주는 듯 하다. 영화의 첫장면에서부터 거미줄과 거미를 보여주는가 하면 여검객 양낭자가 몰래 숨어 사는 집 안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듯한 밧줄이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다. 또한 적을 공격할 때 가장 마지막에 쓰는 방법이 밧줄로 몸을 묶어 그 끝을 길게 늘어뜨려 기둥 4개에 묶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거미줄에 곤충이 걸린 모습과 닮았다. 우리는 결국 속세라는 거미줄을 벗어나려면 종교에 귀의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 당시의 영화가 여성을 이토록 진취적인 인물로 그렸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에 비하면 남자 주인공 '고성제'는 싸움보다는 점잖게 머리를 굴려 전략을 구사하는 스타일이다. 어머니에게 구속되어 반은 마마보이와 같은 상태이며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마음이 여려 오히려 여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기를 남기고 절로 떠나는 아내의 모습이라니, 흡사 자식(사랑했던 기억)을 남겨놓은 채,고 전쟁터에 나가거나, 무림으로 떠나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무협영화 혹은 혹은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을 닮지 않았나. 왜 이 영화가 당시 새로운 스타일의 무협이라 불렸는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회고되는 고전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일단 스타일이 좋다. 인정. 영화는 자그마치 180분이 넘어서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단 끝까지 다 보고 나면 그래도 꽤 재밌고 심오한 내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세상살이가 지칠 때, 무협영화 한 편쯤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조금만 화질과 음질이 좋다면..)



유일하게 로맨틱한 장면, 꽤 근사하다

<협녀>의 영어 제목은 'A Touch of Zen'이다. '선의 감촉'이라고 번역되어 있던데.. 의미심장한 제목이다. 그리고 이 '협녀' 에피소드는 청나라 학자인 포송령이 지은 <요재지이>라는 책에 나오는 4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라고. (최근 개봉한 <화피>도 역시 원전을 <요재지이>에 두고 있다.) 역사가 유구하고 문명이 발달했던 만큼 아무리 캐도 이야깃거리가 마르지 않는다는 점도 장차 중국영화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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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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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어떠한 영화를 보더라도 곱게만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가시가 내 감수성 안에 돋아났음을 먼저 인정해야겠다. 이 영화는 내게 한나와 마이클의 러브 스토리라기 보다는 그들이 치러냈고 또 기억하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혔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이 영화 역시 원작이 존재한다는 것. 요즘엔 훌륭한 원작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차피 독자들만을 위해 만드는 게 아니니 원작과 영화 모두 보는 사람보다는 철저하게 영화만을 보고 해석해야 하는 나같은 사람들이 훨씬 많으리라.

15세 소년과 30대 여인

(자막으로는 15세라고 나오지만, 마이클은 당시를 16세였다고 회고한다.) 한참 성욕과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 소년은 한 원숙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소년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그 여인은 마이클이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걸 좋아한다. 나중에 재판 장면에 가서야 밝혀지지만 관객은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여인과 소년은 사랑을 나누고 뜨거운 계절, 여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떠난다.




둘이 다시 만난 곳은 아우슈비츠 전범 재판소. 유태인 수감자 감시원으로 일했던 한나는 자신의 죄를 묻는 판사를 뚫어버릴 듯한 눈빛으로 직시하며 묻는다. "재판관님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그녀는 직업이 필요해서 감시원 자리를 얻었고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유태인 수감자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소녀들이 책을 읽어주는 게 좋아서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아픈 사람을 돌봐주었다. 하지만 불이 난 교회에서 문을 열어주어 유태인을 탈출시키는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논리적인 귀결이다. 원리원칙 이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모든 일은 규칙대로 이루어져야 했고 어긋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기분 같은 것을 고려하는 행동은 배운 적이 없다. 단 한 가지 그녀가 부끄러워 했던 것은 자신이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고백하지 않기 위해 죄를 뒤집어 쓰고 무기징역을 받는다. 그녀의 선택은 만인이 보기에 어리석은 것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는 기꺼이 그것을 감당할 줄 알았다.

그녀는 글을 몰랐고, 남의 기분을 헤아릴 줄 몰랐고, 자신의 임무가 어떤 의미를 갖는 일이며 유태인들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녀는 생각하는 것보다는 몸의 언어에 더 익숙했고 그래서 숨길 것이 없었다. 아픈 마이클을 돌봐주고 로맨스 소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선한 사람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처음부터 없었다.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 마이클은 언제나 먼저 사과하고 언제나 그녀의 청을 들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용서할 수 있는 건 마이클 뿐이었다. 그녀는 법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유일한 생존자인 유태인 여성으로부터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했다. 마이클은 그녀의 수혜를 입은 자였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했지만 법은 엄격했고, 유태인 생존자 여성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잃고, 죽음의 공포가 남았기 때문에 한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몰랐던 한나는 가석방을 앞두고 만난 마이클이 자신의 손을 놓아버렸을 때, 자신에게 감옥에서 배운 것이 있냐는 냉담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그것은 반성이나 후회가 아닌 억울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훌쩍 커버린 마이클이 더이상 예전처럼 자신을 대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에게 남겨진 전재산을 유태인 생존 여성에게 남겨달라고 유언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 유태인은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는 비록 암울한 한때를 보냈지만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글'로써 자신이 겪은 일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세상의 도움을 얻어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마치 두 명의 여성을 단순한 동시대 역사의 희생자로 등치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한나의 전재산을 문맹퇴치재단에 기부하도록 하고 자신은 어린 시절에 잃어버린 상자만을 갖겠다고 말한 그 여성은 어릴 적 가족사진 액자 옆에 그 상자를 놓는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옛날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한나도 충분히 죄값을 치른 듯 보인다. 물론 그녀를(독일을) 용서할 수 없고 마이클 역시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한나에 대한 동정심과 이해를 구함으로써 지나간 세대의 어두운 역사를 무마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마이클은 한나의 무덤에서 자신의 딸에게 옛날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열 여섯살이었을 때...'로 시작하는 마이클의 이야기는 다음 세대에게 구전되는 역사다. 마이클은 한나로 대표되는 전쟁을 겪은 세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 세대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범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전쟁을 치른 세대는 사라지고 있고 역사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3세대가 남았다. 그들에게 전 세대를 이해시키는 것이 바로 마이클에게 남겨진 몫인 것이다. 법도 유태인도 용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을 가까이에서 알았던 이들만큼은 이해해야 하는 것이 전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용서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일을 저지른 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무모한 원칙주의에서 비롯된 행위일 수도 있었단 사실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앞뒤가려진 임무가 아니라 바로 '교육'이었다는 사실을 후대에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웃을 때 제대로 귀여운 데이빗 크로스. 


매 순간 성실했지만 원시 상태와 같았던 한나는 그만큼 위험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감시원이 아닌 다른 임무가 맡겨졌더라도 그녀는 그 일을 아주 훌륭히 해냈을 것이다. 원리원칙을 고수하고 질서유지를 최우선시하는 독일인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인물 한나, 자칫하면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여자로 보일 뻔한 그 캐릭터를 진정성있는 인물로 만들어 낸 것은 케이트 윈슬렛의 진정성이 담긴 표정과 눈빛이었다. 온몸을 다 드러내는 연기도 솔직하고 거짓이 없는, 무모할 만큼 당당한 한나를 표현하기에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보다 '더' 훌륭한 연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무척 대단한 '여'배우란 사실이다. 간간이 그녀의 얼굴에 난 솜털이 눈에 들어올 때 저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생명성으로 다가올 정도로. 그녀는 훌륭했다. 
 마이클 역은 성인 역의 랄프 파인즈보다도 소년과 청년 시절을 연기한 데이빗 크로스에 더 마음이 끌린다. 아무리 남자이더라도 쉽지 않았을 과감한 노출연기, 그리고 한창 사랑에 빠진 소년의 얼굴, 그 미소..! 그런데.... !! 90년생이다.ㅡ.ㅡ;; (맙소사, 종현이랑 동갑이잖아!!)

이 영화는 원래 안소니 밍겔라가 영화화하려던 작품으로 배우는 <콜드 마운틴>을 함께 했던 니콜 키드먼이 내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안소니 밍겔라는 이 영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거대한 전쟁에 휘둘린 개인사의 비극적 스토리에 관심이 많았던 밍겔라 감독의 손길이 닿은 작품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느낀 교훈은,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한다'는 것. 본인을 위해서든, 타인을 위해서든. 누구든 인간이라면 배움에 힘쓸지어다, 제발. J.K.롤링이 말했던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상상력'은 배움의 과정에서 키워지는 것이다. 그러한 상상력만 인간들이 고르게 갖춘다면 이 세상에 전쟁 따위는 없을텐데.



정치와 역사의 흐름이 멈춘 듯한 시공간 속에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평화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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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 텔레비전과 스크린을 통해 아시아를 횡단하고 통과하기 그리고 넘어서기
김소영 엮음 / 현실문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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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지역 대중문화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고찰을 통해, 각 지역을 하나로 연결하고 통합하는 '문화지도'를 그린다. 엮고쓴 이 김소영 교수가 동료들과 함께 조직해 온, 아시아 영화 및 문화연구 관련 여러 국제 심포지엄의 결과물들과 새 기고문들을 엮어 펴냈다.

1장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는 텔레비전 및 스크린 등의 영상문화에서 트랜스 아시아, 인터 아시아적 흐름을 포착해 개념화하고, 그것을 트랜스 아시아 대중문화 연구로 끌어올리려 의도로 씌어진 글들이다. 2장 '(트랜스) 아시아 시네마'는 동아시아의 내셔널 시네마와 아시아를 횡단하는 인터 아시아 시네마 그리고 자국과 아시아 지역, 또 국가와 지역을 넘어서는 트랜스 아시아 시네마에 대한 개념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3장 '(동)아시아 내셔널 시네마의 새로운 토픽들'은 동아시아 영화를 구성하는 중국.일본.한국의 내셔널 시네마에 대한 민족주의적.국족주의(國族主義)적 혹은 오리엔탈리즘적 접근을 지양한다. 또 어떻게 아시아 영화들이 민족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며 글로벌한 세계질서의 충격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그 힘들에 개입하고 과거 식민주의 역사를 재기술하는지를 묻는다.


거의 한달 동안 붙들고 읽은 책.
장장 607페이지에 달하는 육중한 무게감과 정보력을 자랑하는.
줄친 부분 워드로 옮기는 데에만 근 8시간 소요, 62페이지에 걸쳐 정리했다.
책에 수록된 총 18편의 논문 모두 오늘날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영상문화에 있어서의 이슈를 적절히 소화하는 내용으로
나의 최근 관심사와 잘 맞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논문 주제를 급 변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기도.;;)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소감 정도가 되겠다.
사실 18편의 리뷰를 모두 포스팅해보려고 했으나 시도했으나 포기.; (그 무모한 시도의 증거는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다.)
그냥 나 혼자 소화하기에도 벅찬 내용들.
여러 가지 문제의식들을 불러일으켜서 이후 더 찾아서 읽어봐야 할 책들이 늘어났다.
일본과 중국의 영화사에 대한 정보나
최근에 영상문화의 경계가 지워지는 과정에 대한 여러 각도에서의 조명과 학문적 접근들은
동아시아를 하나의 로컬로 통합하고 그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앞으로 한동안 지속될 것임을, 그 방향을 설정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동의하고 싶은 것은 동아시아를 단지 할리우드영화로 대표되는 세계화(미국화)에 맞서기 위한 경계짓기의 시도라기보다는
초-아시아 영화의 흐름 그 자체를 하나의 주 대상(오브제 a)으로 삼아 연구하고자 하는
자신감과 적극성이 요구된다는 점.
특히 미국에 못지 않게 중국과 일본이 각자 품고 있는 문화 영역에 있어서의 이상은 높기만 한데
한국은 여전히 영상문화에서마저 이도 저도 아닌 형국인 듯 하여 안타깝다.

역시 키워드는 '정체성'이다.
미국, 중국, 일본, 그 어디에도 포섭되거나 대항하지 않는 자주성과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담론 형성과 관심 확대만이 길이다.

책 전체의 주제와는 관계가 없지만 책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불끈했던 부분이 있어 인용해 본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1885년 저술한 <탈아론>이란 책의 일부로 얼 잭슨 주니어의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들: 현대 일본영화에서의 차이와 정체성'에 인용되어 있다. (책의 485쪽.)
이 글을 보면
반드시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감정의 발로가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필요는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명백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이 보여준 문명화라는 새로운 국면 덕에, 문화적으로는 아시아로부터 이미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따라서 일본이 중국과 조선이라는 두 아시아 이웃의 짐을 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세 나라가 모두 동아시아적 정치사상을 통해 형성되었음에도 거기에는 인종적, 유전적 혹은 교육적으로 정해진 중요한 차이가 있다. 중국인과 조선인은 서로 매우 닮았고 또 일본과는 매우 다르다. 중국인과 조선인은 어떤 발전의 가능성도 보여 주지 못했다.... 서양 문명화의 장점을 접해도 그 고대 전통에 대한 완강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교육은 여전히 공자나 맹자의 저작에 대한 기계적 반복을 의미한다...그들은 여전히 야만적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이 서양을 따라잡는 것을 기다리고 이쓸 수 없다.... 아시아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서 문명화한 서양 국가들에 편입되는 것이 일본에게는 훨씬 낫다.

           
                                                                                 -후쿠자와 유키치  

                                                                                    <탈아론> (1885)




책의 순서 (밑줄은 개인적으로 선호)

1장: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1.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개념화 -추아 벵후아
2. 전 지구적 프리즘: 트랜스 아시아 미디어 연구를 위해서 -이와부치 고이치
3. 욕망과 폭력으로서의 ‘아메리카’: 전후 일본과 냉전 중 아시아에서의 미국화 -요시미 순야
4. 자본의 분할 전략과 동아시아의 성: 쾌락/향유 기계의 선용은 가능한가 -하승우
5. 사랑했고 상실한: 트랜스 중국 스크린 문화에서 나타나는 성장기 소녀들의 동성 로맨스 -프랜 마틴
6.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한류 붐: 재일 붐과 영화 《박치기》 -안민화
7. 《겨울연가》와 능동적 팬의 문화실천 -모리 요시타카

2장: (트랜스) 아시아 시네마
1. 민족적/국제적/초국적: 트랜스 아시아 영화의 개념과 영화비평에서의 문화정치학 -미츠히로 요시모토
2. 글로벌 시대의 지역 페미니스트 장의 탄생: 트랜스 시네마와 여성장 -김소영
3. ‘트랜스 아시아’ 영화(들)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헤마 라마샨드란
4. 퀴어 디아스포라/심리적 디아스포라: 왕자웨이의 공간과 세계 -데이비드 L. 엥
5. 스타의 횡단: 초국적 프레임에서 본 이소룡의 몸, 혹은 중화주의적 남성성 -크리스 베리
6. 지구를 둘러싸기: 세계 영화에서 《링》 리메이크하기 -데이비드 데서

3장: (동)아시아 ‘내셔널’ 시네마의 새로운 토픽들
1. 중국영화사의 영화시원 서술과 루쉰의 글쓰기 기원을 논함 -박병원
2. 중국 영화학을 둘레 짓기 위한 물음: 중국 영화학은 웨인 왕의 영화를 다룰 수 있는가 -임대근

3. 현대 일본영화에서의 차이와 정체성 -얼 잭슨 주니어
4. 일본 고전영화에서의 저항하는 여성들 -사이토 아야코
5. 한국영화를 통한 우회 -폴 윌먼






시도의 증거
2009/02/22 - [신씨는 공부중] - [후기] 추아 벵후아_동아시아 대중문화의 개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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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시절 문지 푸른 문학
다치아 마라이니 지음, 천지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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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는 세계 어느 곳이든 혼란스럽고 무기력했다.
특히 이 소설 속 소녀 엔리카가 살아가는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도 그랬을 것이다.
희망보다는 체념과 묵인이 살아가는 데 더욱 도움이 되었을 그 시공간 속에서
소녀의 육체는 나약했고 유혹에 쉽게 흔들렸다.
이 소설을 설명하는 문구에서처럼 이 소녀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그 모든 일들을 겪어내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자기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한 판단을 내릴 시간이 없이 시간에 등떠밀려
먼저 어른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잔소리가 심했지만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보험회사 직원이지만 새장을 만드는 데 더 열심인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언젠간 저 새장 안으로 들어가고 말거다'라고 말한다.
엔리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허술하게 쳐 놓은 새장 밖으로 드나들며
자신의 성을 팔고 미래가 없는 남자를 사랑하며 아이를 가졌다가 지운다.
그리고 어느날 드디어 그 새장 밖으로 정말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무의미한 사랑을 하고 인생을 돌보지 않는 어른들 틈에서 빠져나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열일곱을 살아왔던 소녀에게
사회는 어떤 미래를 가져다 주었을까.
이것이 단지 잠시잠깐 스쳐가는 '방황의 시절'이었길 바라고 싶지만
소녀는 너무 많은 일들을 겪고 스쳐보낸 것은 아닌지...

섹스 이후의 임무에 여전히 소홀한 남성들의 이기심과
허무맹랑한 사랑의 환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실감각 제로인 백작부인,
장례를 돕는 척 하면서 어머니의 물건을 모두 훔쳐가 버린 윗층 아줌마와
스스로 만든 새장 안에 갇혀 밖을 돌보지 않는 무능력한 아버지,
순수했지만 소녀의 마음을 열기에는 부족했던 소년 카를로.
모든 것이 그녀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녀는 축 늘어진 가슴과 뱃살의 어머니가 되지 않기 위해, 초점 없는 눈빛에 술잔을 손에 든 백작부인의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 내일 새벽이면 백작부인의 집을 나가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설 것이다.
우울한 잿빛을 연상케 하는 60년대를 벗어나는 새로운 세대들의 도약은 아마도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엔리카의 앞날에,
그리고 그다지 다를바 없는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의 앞날에 상처보다는 행복이 있기를.


유럽의 잿빛 하늘 아래 소녀들 - 관련 영화 :

2009/01/08 - [신씨의 리뷰/영화] -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 (2007, 크리스티앙 문주)_살아남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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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누군가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그 고민을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에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그저 내 삶의 고민들에 대한 진정한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얼굴도 내 이름도 모를 그 사람, 김어준에게 한 마디 듣고 싶다는 것은 객관적인 관계에서 말해질 수 있는 모든 가치와 진정성에 대한 나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은 거다.
그래서 그 사람, 김어준의 말은 냉정하되 하는 족족 가슴에 콕콕 들어와 박힌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의 산과 같았던 고민이 하잘 것 없이 줄어들어 버리고 만다.
고민거리 자체와 고민을 하는 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나의 '입장'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다.
내가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내가 이 고민을 하게 되었나를 생각해 보다 보면 '어떻게'에 대한 해답도 때로는 떠오를 때가 있게 된다는 걸,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나의 '선택'의 문제라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정신 바짝 나게.

놀라운 건 이토록 다양한 수의 고민과 질문들이 단 하나의 진리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자기 삶의 중심이 되어라, 인 것이다.
고민이라는 외피를 둘러싼 세상의 편견 내지는 나의 자존감의 결여는 오직 나에게서 비롯된 것,
그걸 인정하면 고민의 반은 해결된 셈이다.

사람은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선택의 순간과 만나게 된다.
한 쪽을 선택한다면 다른 한 쪽은 반드시 포기해야만 하는 기회비용을
잘 계산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그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정말 감이 오지 않을 때
신에게 기도하고 점집에 찾아가지 말고 그 분에게 물어라.
싸가지 없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나에게 도움이 되는 한 마디를 내려주실 그 분.
그리고 그 분은 신보다도 점쟁이보다도 한 인간으로서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응원해 주실 게다.
'건투를 빈다, 졸라.'
라고.

이 책은 방황하는 20대,
특히 우리나라에서 20년이라는 세월을 부모와 학교의 품 안에서 옹알대느라
20대에 접어들면서 동시에 사회에 격하게 내팽개쳐진 젊은이들,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별걸 다 고민하게 되는 세대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나의 고민의 원인, 원천, 근본을 알게 될 것이다.
명쾌하고 쿨하다.
세상이 그리 만만한 것도 아니지만 사실 그렇게 벅찬 상대도 아니다.

본 도서 리뷰는 티스토리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블로거 북 리뷰' 행사에 참여하는 블로그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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