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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떠한 영화를 보더라도 곱게만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가시가 내 감수성 안에 돋아났음을 먼저 인정해야겠다. 이 영화는 내게 한나와 마이클의 러브 스토리라기 보다는 그들이 치러냈고 또 기억하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혔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이 영화 역시 원작이 존재한다는 것. 요즘엔 훌륭한 원작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차피 독자들만을 위해 만드는 게 아니니 원작과 영화 모두 보는 사람보다는 철저하게 영화만을 보고 해석해야 하는 나같은 사람들이 훨씬 많으리라.
15세 소년과 30대 여인
(자막으로는 15세라고 나오지만, 마이클은 당시를 16세였다고 회고한다.) 한참 성욕과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 소년은 한 원숙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소년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그 여인은 마이클이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걸 좋아한다. 나중에 재판 장면에 가서야 밝혀지지만 관객은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여인과 소년은 사랑을 나누고 뜨거운 계절, 여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떠난다.

둘이 다시 만난 곳은 아우슈비츠 전범 재판소. 유태인 수감자 감시원으로 일했던 한나는 자신의 죄를 묻는 판사를 뚫어버릴 듯한 눈빛으로 직시하며 묻는다. "재판관님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그녀는 직업이 필요해서 감시원 자리를 얻었고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유태인 수감자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소녀들이 책을 읽어주는 게 좋아서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아픈 사람을 돌봐주었다. 하지만 불이 난 교회에서 문을 열어주어 유태인을 탈출시키는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논리적인 귀결이다. 원리원칙 이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모든 일은 규칙대로 이루어져야 했고 어긋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기분 같은 것을 고려하는 행동은 배운 적이 없다. 단 한 가지 그녀가 부끄러워 했던 것은 자신이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고백하지 않기 위해 죄를 뒤집어 쓰고 무기징역을 받는다. 그녀의 선택은 만인이 보기에 어리석은 것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는 기꺼이 그것을 감당할 줄 알았다.
그녀는 글을 몰랐고, 남의 기분을 헤아릴 줄 몰랐고, 자신의 임무가 어떤 의미를 갖는 일이며 유태인들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녀는 생각하는 것보다는 몸의 언어에 더 익숙했고 그래서 숨길 것이 없었다. 아픈 마이클을 돌봐주고 로맨스 소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선한 사람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처음부터 없었다.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 마이클은 언제나 먼저 사과하고 언제나 그녀의 청을 들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용서할 수 있는 건 마이클 뿐이었다. 그녀는 법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유일한 생존자인 유태인 여성으로부터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했다. 마이클은 그녀의 수혜를 입은 자였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했지만 법은 엄격했고, 유태인 생존자 여성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잃고, 죽음의 공포가 남았기 때문에 한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몰랐던 한나는 가석방을 앞두고 만난 마이클이 자신의 손을 놓아버렸을 때, 자신에게 감옥에서 배운 것이 있냐는 냉담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그것은 반성이나 후회가 아닌 억울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훌쩍 커버린 마이클이 더이상 예전처럼 자신을 대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에게 남겨진 전재산을 유태인 생존 여성에게 남겨달라고 유언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 유태인은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는 비록 암울한 한때를 보냈지만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글'로써 자신이 겪은 일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세상의 도움을 얻어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마치 두 명의 여성을 단순한 동시대 역사의 희생자로 등치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한나의 전재산을 문맹퇴치재단에 기부하도록 하고 자신은 어린 시절에 잃어버린 상자만을 갖겠다고 말한 그 여성은 어릴 적 가족사진 액자 옆에 그 상자를 놓는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옛날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한나도 충분히 죄값을 치른 듯 보인다. 물론 그녀를(독일을) 용서할 수 없고 마이클 역시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한나에 대한 동정심과 이해를 구함으로써 지나간 세대의 어두운 역사를 무마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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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은 한나의 무덤에서 자신의 딸에게 옛날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열 여섯살이었을 때...'로 시작하는 마이클의 이야기는 다음 세대에게 구전되는 역사다. 마이클은 한나로 대표되는 전쟁을 겪은 세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 세대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범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전쟁을 치른 세대는 사라지고 있고 역사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3세대가 남았다. 그들에게 전 세대를 이해시키는 것이 바로 마이클에게 남겨진 몫인 것이다. 법도 유태인도 용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을 가까이에서 알았던 이들만큼은 이해해야 하는 것이 전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용서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일을 저지른 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무모한 원칙주의에서 비롯된 행위일 수도 있었단 사실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앞뒤가려진 임무가 아니라 바로 '교육'이었다는 사실을 후대에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웃을 때 제대로 귀여운 데이빗 크로스.
매 순간 성실했지만 원시 상태와 같았던 한나는 그만큼 위험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감시원이 아닌 다른 임무가 맡겨졌더라도 그녀는 그 일을 아주 훌륭히 해냈을 것이다. 원리원칙을 고수하고 질서유지를 최우선시하는 독일인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인물 한나, 자칫하면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여자로 보일 뻔한 그 캐릭터를 진정성있는 인물로 만들어 낸 것은 케이트 윈슬렛의 진정성이 담긴 표정과 눈빛이었다. 온몸을 다 드러내는 연기도 솔직하고 거짓이 없는, 무모할 만큼 당당한 한나를 표현하기에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보다 '더' 훌륭한 연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무척 대단한 '여'배우란 사실이다. 간간이 그녀의 얼굴에 난 솜털이 눈에 들어올 때 저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생명성으로 다가올 정도로. 그녀는 훌륭했다.
마이클 역은 성인 역의 랄프 파인즈보다도 소년과 청년 시절을 연기한 데이빗 크로스에 더 마음이 끌린다. 아무리 남자이더라도 쉽지 않았을 과감한 노출연기, 그리고 한창 사랑에 빠진 소년의 얼굴, 그 미소..! 그런데.... !! 90년생이다.ㅡ.ㅡ;; (맙소사, 종현이랑 동갑이잖아!!)
이 영화는 원래 안소니 밍겔라가 영화화하려던 작품으로 배우는 <콜드 마운틴>을 함께 했던 니콜 키드먼이 내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안소니 밍겔라는 이 영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거대한 전쟁에 휘둘린 개인사의 비극적 스토리에 관심이 많았던 밍겔라 감독의 손길이 닿은 작품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느낀 교훈은,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한다'는 것. 본인을 위해서든, 타인을 위해서든. 누구든 인간이라면 배움에 힘쓸지어다, 제발. J.K.롤링이 말했던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상상력'은 배움의 과정에서 키워지는 것이다. 그러한 상상력만 인간들이 고르게 갖춘다면 이 세상에 전쟁 따위는 없을텐데.
정치와 역사의 흐름이 멈춘 듯한 시공간 속에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평화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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