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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떼의 재앙 - 멕시코 정복이 환경에 초래한 결과
엘리너 G. K. 멜빌 지음, 김윤경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5년 2월
평점 :
책을 처음 접한 것은 해냄에듀 역사 서평 이벤트를 통해서였다. 해당 이벤트는 신간 여러 권을 소개하는 한편, 서평 희망자에게 책을 증정하는 이벤트였다. 어떤 책을 고를지 고민하던 중, 저자와 역자들 사이에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띠었다. 거기에는 스페인 내전과 관련하여 역사교육 학술지에도 여러 차례 기고한 분의 익숙한 이름이 있었으며, 그와 같은 지극히 사소한 계기로 이 책, 『양 떼의 재앙』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평소 번역자로서 원서의 제목이 어떻게 번역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원서의 제목(‘A Plague of Sheep’)에서는 이 책은 미개척지 전염병이 퍼져나가고, 구세계의 방목 가축이 신세계의 생태계로 유입되어 마침내 신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게 된 것을 일종의 전염병(a plague)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 점에서 한국어 번역본에 비해 책의 내용이 더욱 직접적으로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이 제목을 곧이곧대로 번역했을 경우, 짐작하건대 많은 사람들이 구제역, 돼지열병과 같은 가축 질병을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때문에 번역자들이 최적이라 생각되는 제목으로 번역했으리라 고심했을 것이 느껴지는 듯하다.
얼핏 보기에 비슷한 컨셉의 책이 이미 나와 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바로 그것이다. 『총, 균, 쇠』는 지난 10년간 갑자기 엄청난 명성을 얻은 『사피엔스』 이전에, 가장 유명한 역사책들 중 하나였다. 단, 이 두 책은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기나긴 시간과 공간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특징이다. 오늘날 역사학이 다루는 시공간은 주로 구체적인 사실을 둘러싸고 한 시대 또는 지역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양 떼의 재앙』은 『총, 균, 쇠』가 출간된 바로 그 해에 등장했다. 16세기 멕시코 메스키탈 계곡이라는 보다 특정한 시공간을 사례로 했다는 점에서 볼 때, 역사학의 흐름에서도 자연스럽고, 구체적인 사례를 심도 있게 파고들면서 학문적 밀도 또한 높을 뿐만 아니라. 역사교육에서 생태환경사가 대두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에 역사교사의 입장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책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메스키탈 계곡에서 생겨난 변화를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해, 이와 유사한 환경을 지닌 19세기 전반 오스트레일리아의 뉴사우스웨일스의 고지대와 고원의 사례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어서 다시 멕시코의 메스키탈 계곡으로 돌아와, 에스파냐가 신세계로 가축을 들여오고, 목축을 유지하기 위한 목초지와 물을 차지하는 정복 과정을 규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유명한 영화의 제목처럼, 낙원의 정복(conquest of paradise)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의 결과로 생겨난, 모두에게 이질적인 세계였음이 밝혀진다.
물론, 오늘날 그 지역은 멕시코 시티의 폐수를 처리하는 동시에, 그 폐수에 의존하고 이를 양분으로 삼아, 폐수를 길러낸 도시에 다시 채소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수 세기에 걸친 이와 같은 변화를 살펴본다는 것은 급격한 생태환경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