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지식인의 길 - 중국사 지성의 상징 죽림칠현, 절대 난세에 답하다
류창 지음, 이영구 외 옮김 / 유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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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말했다. "현자는 혼란한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 사람은 혼란한 곳을 피하고, 그 다음 사람은 못 볼 얼굴을 피하고, 그 다음 사람은 못 들을 악담을 피한다." 공자가 말했다. "그렇게 한 사람이 이미 일곱 명 있다."

이 '현자'賢者와 '일곱 명'(七人)을 합쳐 '칠현'七賢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칠현'은 후대 사람이 경전과 성인聖人 공자의 견해를 끌어들여 지어낸 듯하며, 여기에 '죽림칠유'의 '죽림'이 더해져 '죽림칠현'이라는 명칭이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p.30. 죽림칠현의 미스터리 中



이 때의 완적은 극도로 절망적인 상태였다. 어머니의 사망은 그에게 심한 충격을 주었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셔도 그 비통한 심정을 다 말할 수 없었다.

바꿔 생각해보면 말끝마다 예법을 옹호한다는 사람들은 과연 부모를 잃은 슬픔을 완적만큼 처절하게 느껴보았을까? 그들이 옹호한 것은 그들이 의지하고 기생하려 했던 위선적인 예법의 빈껍데기일 뿐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완적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 모든 예법과 투쟁한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법이 사람 사이의 당연한 도리인 것은 맞지만 일단 교조화되면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몽둥이가 될 수도 있고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서 멀어져 그 합리성조차 의심받게 된다고 알렸다. 사람마다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며, "술과 고기가 창자를 지나가도 인仁과 효는 마음속에 남아 있다." 세속의 예를 따르지 않았다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않았다고 그 사람에게 진실된 맘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p.220, 취객의 뜻은 술에 있지 않았다 中





혜강과 상수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고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혜강은 여전히 꽝꽝 쇠를 계속 두드렸다. 그러면서 마치 바깥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반나절 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일전에 종회가 던져놓고 간 책을 분명 봤을 텐데도 어떤 품평도 하지 않았으며 최소한의 인사도, 무시하거나 깔보는 표시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종회라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종회는 말을 세운 채 같이 온 무리와 함께 난처해 어쩔 줄 몰랐다. 쇠를 두드리는 소리만 마치 종회의 뺨을 때리는 것처럼 맑고 우렁차게 울렸다.

p.240, 얼음과 불의 성격 中

혜강은 편지에서 자신의 성격과 습관에 대해 서술했다. 그런데 읽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내용이 있다.

"저는 성정이 자유분방하고 나태하며 몸이 둔하기 그지없어 한 달에 보름이나 세수를 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가렵지 않으면 머리도 잘 감지 않습니다 게다가 몸을 일으키기 싫어서 방광이 터지기 직전까지 참았다가 소변을 보곤 합니다."

비범하고 영웅적인 풍모를 지닌 혜강이 이토록 겉치장에 소홀하고 게으른 인물이었을 줄이야.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자유분방하고 일체의 구속을 거부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법을 사용한 것뿐이다.

p.274, 절교의 진위 中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광릉산>은 오직 혜강만 연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임종 전 그의 마지막 연주는 더욱 상징적인의미가 있었다. 사람과 곡이 한 몸이어서 사람이 죽어 곡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어쩌면 혜강은 이 곡만이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동행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내가 연주하고 나면 이 곡은 세상에 전해지지 않으리라. 내가 죽고 나면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이때부터 <광릉산>이라는 이름은 혜강의 이름에 꼭 붙어 다녔다. 이미 실전失傳되어 영원히 들을 수도 없는데 말ㅇ다.

p.301, 광릉산의 절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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