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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갈까? ㅣ 한 권으로 떠나는 한 도시 이야기 1
장용준 지음 / 서유재 / 2018년 2월
평점 :
파리는 어쩌면 로마와 같은 도시가 아닐까. 보잘 것 없는 지방의 변두리에서 찬란한 제국의 도읍이 되어 세계의 한 구석을 주름잡고, 야만족(나치 독일)에 점령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가, 그런 것들을 뒤로 한 채 지금 보이는 문화유산들로 우러르는 그곳.
프랑스의 수도 파리. 사람들은 이 곳을 이야기할 때 으레 “아, 예술과 낭만의 도시!” 라고 하면서 감탄한다. 파리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나 또한 파리라는 곳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파리=예술, 낭만’이라는 공식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파리는 처음부터 예술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는 걸 깨달았고, 그런 것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역사를 통해 천천히 이뤄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날 모임에서는 ‘장콩 선생님’이 신간을 냈다며 소문났는데, 그걸 들었던 나도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받은 몇몇 인상들을 메모해 두고 싶다.
파리 방문부터 떠나기까지 며칠 동안 파리를 답사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퐁 뇌프’였다. 다른 역사적인 장소를 택할 줄 알았는데, 영화 제목으로 알려진 그런 곳이 1번이라니 의아했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퐁 뇌프는 4세기를 버텨 온 오랜 다리였고, 그 다리를 거치면 파리 시의 기원에 이르는 시테 섬으로 이어진다. 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파리 답사는 역사가 중심이 되지만, 역사로만 채우지는 않은 것이다. 발길 닿는 곳에 이야기되는 문화, 예술을 틈틈이 챙겨볼 수 있었다. 다만, 파리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프랑스 요리라든지, 커피 맛이 어떻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딘가 답사를 갔을 때, 먹을 건 답사지 근처에서 적당히 먹고, 별 신경 안 썼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한국사 책들을 펴냈던 경험이 반영되듯, 저자는 이 책에서 프랑스의 역사적인 연대를 동시대 한국사의 주요 사건에 빗대어 언급하고 있다. 생소할 수 있는 프랑스 역사의 시점을 독자들이 좀 더 와닿게 의도한 것 같다. 그리고 때로 이러한 서술이 사회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령, 프랑스 정부의 무책임이 만들어 낸 메두사 호의 조난에서 한국의 세월호 침몰을 떠올리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바라보며 5·18 민주화운동을 잇는다.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이 약탈로 번성하게 된 박물관이지만 일단은 가 보라, 라고 말한다. 여행갈 때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 그건 루브르 박물관 답사 부분에 나타난다. 사실 박물관의 유물들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이것이 어디에서 왔을지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가서 본 유물들의 형태, 색감, 구도 등이 주로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만 여행을 가면서 역사책을 들고 가면 그곳에서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되기까지의 여정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튼, 파리에 여행을 간 다면 이 책을 가지고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