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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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음…. 연애소설을 잘 읽지 않는 사람중 하나인 저로서는 ‘연애소설’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는 게 과잉된 감성, 공감할 수 없는 진부한 설정과 대사, 비현실적인 사건들이었는데요. 이 소설은 확실히 그런 편견들을 산산조각 내 주는 책이었습니다. 덤덤하고 조용히 ‘쓰는 여자와 읽는 남자’의 로맨스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2. 흥미로웠던 건 Side A와 Side B가 이어지는 부분의 형식이었는데요. Side A가 끝나고 Side B에서는 전반부의 내용과 흡사한 듯 하지만 다른 ‘쓰는 여자, 읽는 남자’의 이야기가 곧바로 이어집니다. 액자소설 형식이라고 해야 할지, 전반부의 내용을 바로 소설 속의 소설 내용으로 바꾸며 전반부와 후반부를 잇는 형식인데요,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두 가지의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연속성을 가질 줄 예상하지 못했기에 다가오는 신선함도 크고요. 그냥 두 가지의 단편소설로 읽으셔도 좋겠지만, Side B에서 Side A의 이야기를 소설 속 이야기로 간주했기 때문에 후반부에서 언급되는 전반부의 이야기와 관련된 암시를 찾아보며 읽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3. 대부분의 독자분들이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이야기의 순서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임팩트는 후반부인 Side B가 더 크지 않나 합니다. 게다가 마지막 에필로그는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는 선을 지워버리고 있으니 거기서 오는 충격도 크고요(언뜻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해요). 저같이 작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작가의 프로필을 한번 찾아보게 만드는 리얼한 결말이었습니다. 다만 둘 모두 일종의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기 때문에 그걸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힘드실 수도 있겠네요.

 

 

 4. 둘 모두 완전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깁니다. 그야말로 이런 사람을 찾고 싶어지는 책들이었어요. 가볍게 읽기 좋은 책입니다.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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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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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술을 진탕 퍼마시고 일어난 날, 머리에 뿔이 돋아나 있습니다. 상상도, 착각도 아닙니다. 멍한 상태로 룸메이트와 마주서니 룸메이트는 홀린 것처럼 마음 속에 있던 어둡고 음습한 생각들을 미친 듯이 쏟아내네요. 도움을 구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도, 성당에서도 그와 마주선 사람들은 마치 이런 얘기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는 양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습니다. 심지어 형조차 자신이 범인으로 몰렸던 1년 전 일어난 여자친구의 강간 살해사건에 대한 진실을 고백합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요. 오늘 리뷰할 소설은 조 힐이 그리는 환상적인 지옥도, 뿔입니다.

 

 

 저처럼 장르를 모르고 접하신 분들은 다소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자고 일어나보니 뿔이 돋아났다는, 꿈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에 일종의 독심술과 같은 능력까지, 환상소설의 느낌이 물씬 나지요. 하지만 소설은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뿔이 돋아난 남자의 변화된 일상에 대한 밋밋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독특하게도 주인공인 이그가 뿔과 함께 얻은 기묘한 능력으로 1년 전 여자친구를 처참하게 강간 살해한 범인을 찾고 복수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마에 뾰족이 솟은 두 개의 뿔은 명백히 악마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불과 뱀을 부릴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 속을 읽고 그들의 비밀스런 욕망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능력도 이를 보여주고 있지요. 머리에 뿔이 돋아난 그 날 이그는 악마로서의 정체성을 깨달았고, 불에 타는 차에서 상처 하나 없이 부활했을 때 악마로서 새롭게 탄생한 겁니다. 하지만 이 선량한 남자를 누가 악마로 만들었을까요? 왜 그는 악마가 되었을까요?

 


이그나티우스 마틴 페리시는 밤새 부어라 마셔라 들이켜고
온갖 추잡한 짓거리를 해댔다.
아침에 지끈거리는 머리로 일어나, 관자놀이에 손을 대보니
익숙하지 못한 무엇이 느껴졌다.
끝이 뾰족한 혹 같은 것.
속이 너무 쓰리고 눈도 침침한데다 기운도 하나 없어서
처음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숙취가 너무 심해서 아무 생각도, 걱정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변기 앞에 흔들흔들 서서 세면대 거울이 비친 자기 모습을 본 순간,
자는 동안 머리에 뿔 두 개가 자라났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을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악(惡)과 대립하는 이그가 그 자체로 악마를 나타내는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소설 내에서 이그의 연인인 메린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의 정체는 비교적 빨리 밝혀지며, 작가는 공을 들여 그의 악마적인 성격에 대해 묘사합니다. 독자들은 빠르게 누가 악(惡)인지 알아차리죠. 하지만 하룻밤 새 연인을 잃고도 모두에게 범인으로 의심받는 것은 이그에요. 모두가 또 다른 피해자일 뿐인 그를 의심하고 손가락질 하는 사이, 그는 형편없이 망가졌고 피폐해졌으며 연인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웠습니다. 모두가 그를 악마라고 부를 때, 그는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몸부림치다 결국 다시 악마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죽인 자에게 잔인한 응징을 가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죠. 메린이 죽은 뒤 지옥도가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자신이 악마가 되지 않는다면 악과 맞서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자기 인생 단 하나의 선(善)이었을지 모르는 연인의 복수를 위해 나서는 악마의 모습은 기묘하고도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독자들은 이그가 선을 위해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지고 그 행위가 진정 악인지 확신할 수 없게 돼요. 이그를 보며 독자들은 선과 악이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약하고 작은 인간 속에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셈입니다.

 


“넌 좋은 사람이야, 이그나티우스 페리시.”
테리 형이 눈도 뜨지 않고 속삭였다.
“신성모독이야.”
이그가 대답했다.

 


 ‘가장 신성모독적인 것이 가장 성스러운 것’ 이라는 소개가 참으로 탁월했다는 생각입니다. 아버지의 명성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조 힐이 언젠가는 ‘스티븐 킹의 아들’이 아닌 그저 ‘조 힐’로서 더 유명해질 날이 오리라 확신하게 만들어 준 작품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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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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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트린 댄스,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

인기 있는 시리즈가 계속되다 보면, 그 시리즈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몇몇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운 시리즈로 독립해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죠. 영화 터미네이터도, 영국 드라마 닥터 후도 그런 스핀오프 시리즈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가히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한 캐릭터가 자기만의 시리즈를 만들어 ‘독립’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도로변 십자가입니다.

 

1권 잠자는 인형에서 잔인한 살인마였던 다니엘 펠 사건을 마무리하고 윈스턴 켈로그 역시 기소했던 캐트린 댄스는, 2권 도로변 십자가에서 새로운 유형의 살인마와 맞서게 됩니다. 인터넷에서 자신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던 사람들을 피해자로 삼고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표적에 접근하는 소년이지요. 게다가 이 소년은 현실과 다름없는 리얼한 게임에 사로잡혀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심각한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을지도 모르며, 불특정다수를 공격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캐트린 댄스는 이 소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소년의 행방은 좀처럼 찾을 수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캐트린의 어머니인 이디 댄스가 후안 밀라의 안락사 혐의로 체포됩니다. 동료인 오닐은 다른 사건으로 바빠서 통 볼 수 없고, 사건은 점입가경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댄스는 한계에 몰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요. 과연 사건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그녀만의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반가웠던 것은 캐트린 댄스 시리즈가 링컨 라임 시리즈와는 다른 캐트린 댄스 시리즈만의 분위기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전작인 잠자는 인형은 아직까지 제프리 디버의 새로운 시리즈라는 느낌보단 디버의 스탠드얼론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는데,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노선이 잡혀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디버의 메가히트작이자 대표작인 링컨 라임 시리즈가 쉴 새 없는 반전과 촘촘한 플롯으로 독자들의 눈을 잡아챈다면,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일종의 스핀오프 시리즈이면서도 아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차분하며, 텐션은 느리지만 차분히 정통 스릴러의 길을 밟는 느낌이에요.

 

아마 그것은 역자님이 말씀하시듯 디버가 이번 책에서 이미 독자들에게 검증받은 촘촘한 플롯과 반전 대신 현실적인 수사과정에 집중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캘리포니아 연방수사국 소속 수사관인 캐트린 댄스는 상대적으로 법집행기관 내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좋은 인물이지요. 매 작품을 쓸 때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참고자료를 빠뜨리지 않는 디버에게 캐트린 댄스는 디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캐릭터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빠른 텐션과 예측할 수 없는 반전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만일 좀 더 사실적인 느낌의 스릴러를 좋아하신다면 캐트린 댄스 시리즈도 아주 좋은 선택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익명성, 그리고 군중심리

인터넷을 통한 마녀사냥과 개인정보 유출은 이미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이므로 아마 익숙하게 느끼실 독자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진실을 밝힌다는 미명 아래 교묘하게 여론을 선동하는 블로그가 등장해 현대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비인간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군중심리와 익명성이 결합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블로그 칠턴 리포트는 결국 끔찍한 결과를 낳지요.

 

기술의 발전은 현대 사회를 문명화시켰고, 인간을 편리 아래에 두었지만 한편으로 비인간성을 극대화시키는 역할도 했습니다. 제프리 디버가 이번 책에서 지적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정보의 바다라는 별칭답게 인터넷 상에서 우리는 좀 더 빠르고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어떤 정보를 믿고, 어떤 정보를 믿지 않아야 하는지 알기 어렵게 되지 않았나요? 단순히 신뢰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보가 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할 때,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그것을 부추긴 사람들에겐 책임이 없는 것일까요? 쉽게 내뱉은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들에게는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제프리 디버가 이번 책에서 던져 놓는 화두는 다양하고도 어렵습니다. 우리 주변에 만연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었던 문제들을 디버는 허구라는 틀을 빌려 어렵잖게 제기하지요. 저처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고민에 빠지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디버의 이번 책 도로변 십자가는 단순히 스릴러로써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를 담아낸 소설로도 꼭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해요.

 

 

마치며

걸출한 작품 혹은 시리즈를 낳은 작가들의 딜레마일 테지만, 디버의 작품 역시 링컨 라임 시리즈가 아닌 다른 시리즈를 읽을 때는 링컨 라임 시리즈에 비해 인상이 다소 약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캐트린 댄스 시리즈를 읽으며 드디어 링컨 라임 시리즈가 아닌 캐트린 댄스 시리즈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갖추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었네요. 디버의 팬이건 그렇지 않건, 무조건 일독을 권합니다. 훌륭한 스릴러를 만나실 수 있으리라 보장합니다. 추천해요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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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밀실살인게임 3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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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타노 쇼고가 돌아왔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밀실살인게임 시리즈를 들고요.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쇼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은 아니지만, 확실히 쇼고의 신본격 작가로서의 재능이 가장 빛나는 책들임엔 틀림없습니다. 넵, 오늘 리뷰할 책은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의 세번째 책인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입니다.

 

 

 일단 가장 처음 받은 인상은 얇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소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시리즈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두께는 담보하기 마련인데 생각보다 책이 작고 얇아서 읽기 전부터 의아했습니다. 왜 이리 얇은가 했더니…. 생각 외의 반전이 등장하더라고요. 조금 놀랐습니다. 그 반전이 맘에 들건 들지 않건, 이 시리즈를 꾸준히 봐 온 사람이라면 아마 예상치 못한 반전이지 싶어요. 쇼고가 두 권에 걸쳐 독자들의 뇌리에 심어놓은 고정관념을 깨는 반전입니다. 쇼고는 이 시리즈를 계속 이어갈 생각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시리즈 자체의 형식을 깨버리는 단편도 한번쯤은 나와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만 그 시점이 지금인가에 대해서는 저도 다른 분들처럼 의문이 드네요. 보통 3부작으로 끝을 맺기 마련인데, 이게 완결작이라고 하면 너무 힘이 약하고, 작가 스스로도 외전격이라고 했으니 제대로 된 3부작의 완결을 들고온다면 좋겠지만…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말이 나온 김에 잠시 이 시리즈에 대해서 딴소릴 해 보자면, 밀실살인게임 2.0을 보면서부터 느낀 거지만 이 책들은 새로운 형태의 ‘시리즈’이긴 한데 롱런할 수 있는 시리즈로서의 생명력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선 회의감이 들어요. 시리즈가 생명력을 갖고 숨쉴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시리즈에선 명확한 캐릭터가 다섯이나 존재하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기도 하니 말입니다(전 그래서 이 시리즈가 1권인 왕수비차잡기에서 끝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도 살아있고, 당시에 볼 수 없었던 새롭고 충격적인 이야기였으며, 예상치 못한 반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니까요). 시리즈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 밀실살인게임 시리즈가 롱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캐릭터가 보여주는 스토리 없이는 그저 트릭이 가득 찬 단편집과 다를 바 없을 뿐이고, 독특하고 기발한 트릭이 가득 찬 단편집이라면 사실 이 책 외에도 많으니 말입니다. 만일 3권이 나온다면, 그 정도가 이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한계가 아닐까 해요.

 

 

 여튼 약간은 실망스러운 한 권이었습니다. 만일 이 책이 아닌 새로운 책이 이 시리즈의 완결을 짓는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써는 좋은 피날레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1, 2권의 텐션으로 돌아가서 훌륭한 트릭과 기발한 스토리를 갖춘 좋은 완결권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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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와이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9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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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스릴러 장르 마니아들에게는 여타의 평가를 막론하고 신간이 나오면 필히 구입하는 작가나 시리즈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저에게는 링컨 라임 시리즈가 그와 같은 책 중 하나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홉 권째 링컨, 그리고 아멜리아와 함께 하고 있으니 이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이제는 질릴 법도 한데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니, 이것 참 묘한 일이지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링컨 라임의 팬들이 같은 생각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넵, 오늘 리뷰할 책은 오랜만에 찾아온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신작, 버닝 와이어입니다.

 

 

 뉴욕 시 전체에 대량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앨곤퀸 전력 회사의 전력실에 연이어 ‘치명적 오류’ 메시지가 뜨기 시작합니다. 다섯 개의 변전소로 나누어 들어가던 전기가 57번가의 MH-10 변전소로 몰리기 시작하고, 단 하나의 작은 수도꼭지로 어마어마한 저수지의 물이 흘러나오려는 상황이 되죠. 앨곤퀸에서 사건을 해결할 새도 없이, 압력을 견디지 못한 변전소는 폭발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맙니다. ‘시계공’ 리처드 로건을 쫓던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즉시 사건에 투입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유래없는 대량의 사상자를 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 미지의 살인자와 맞서게 됩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제프리 디버는 범인에게 무기로 전기를 쥐어주었습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각 권마다 범인들의 독특한 개성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이번 편은 범인이 무자비한 학살의 도구로 전기를 사용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이 학살 도구는 칼이나 총과는 달리 원거리에서 무차별 대량 학살이 가능하며, 문명화된 현대 사회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고, 폭탄과 달리 탐지하기도 쉽지 않지요. 게다가 무형의 도구이기 때문에 칼이나 총처럼 현장에 흉기로 특정지을 수 있는 증거나 미량 증거물 역시 남기지 않습니다. 십수년을 함께 온갖 살인 사건에 맞서 온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 역시 전기라는 새로운 개념의 살인 도구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어떠세요, 제프리 디버가 참으로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도구를 골랐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사실, 제프리 디버는 이미 링컨 라임 시리즈 여섯번째 권인 12번째 카드에서 전기를 무기로 이용한 적이 있습니다. 범인이 전기로 아지트에 경찰을 잡기 위한 덫을 놓아둔 장면이었지요. 아마 제프리 디버는 그 때부터 전기를 이용한 살인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이유처럼 전기는 범인에게는 참으로 유리한 살해 도구이며, 링컨 라임의 팀에게는 새롭게 맞이하는 또 다른 고난이 될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제프리 디버에게 이번 책이 그의 회심의 한 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브로큰 윈도를 보며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가장 높은 텐션을 이끌어낼 만한 범인은 정신적 기만과 물리적 위협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브로큰 윈도의 범인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라임의 팀을 제압하긴 했지만 사실 라임과 손에 땀을 쥐는 두뇌 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아멜리아조차 제압할 신체적 기술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죠. 그게 브로큰 윈도 전체를 통틀어 서사에 텐션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모든 범인이 천편일률적으로 총과 칼, 혹은 폭탄만을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독자에게 적절한 소재로 기술의 발전 - 15년간 이어져오는 이 시리즈에서, 무려 JPG가 뭔지 설명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D - 을 보여줘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 이번 작품에서, 디버가 상기의 목적들을 꽤 훌륭히 만족시켰다고 생각해요. 버닝 와이어의 범인은 정신적 기만과 물리적 위협을 모두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기라는 아주 독특한 살인 도구를 이용하죠. 물리적 위협을 줄 수 있는 독특한 도구,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술의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 전기만큼 좋은 소재가 있을까요.

 

 

 또한 링컨 라임 시리즈의 팬으로서, 한가지 더 제가 이번 시리즈에서 반가웠던 것은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름의 변화를 만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위기를, 어떤 사람은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며, 어떤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여태껏 독자들이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요. 오랜 세월간 계속되는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캐릭터이고, 캐릭터가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정체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버닝 와이어에서 보여준 스테디 멤버들의 새로운 모습은 독자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 책을 읽으며 몇몇 부분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드디어!”라고 외치실 분들이 계실겁니다 :)

 

 

 시리즈의 전작인 브로큰 윈도가 다소 아쉬웠던 사람으로서, 이번 책은 오랜만에 링컨 라임 시리즈의 초기작을 읽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은 어떻게 해결될지, 라임을 비롯한 멤버들이 본인 앞에 닥친 새로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손에 땀을 쥐고서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최근작이 다소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는 평가에 마음 아프셨던 링컨 라임의 팬이시라면, 망설이지 말고 집어드시기 바랍니다. 만족스러운 한 권이 되시리라 보장합니다. 추천해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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