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버닝 와이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9 ㅣ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평점 :
미스터리/스릴러 장르 마니아들에게는 여타의 평가를 막론하고 신간이 나오면 필히 구입하는 작가나 시리즈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저에게는 링컨 라임 시리즈가 그와 같은 책 중 하나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홉 권째 링컨, 그리고 아멜리아와 함께 하고 있으니 이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이제는 질릴 법도 한데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니, 이것 참 묘한 일이지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링컨 라임의 팬들이 같은 생각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넵, 오늘 리뷰할 책은 오랜만에 찾아온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신작, 버닝 와이어입니다.
뉴욕 시 전체에 대량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앨곤퀸 전력 회사의 전력실에 연이어 ‘치명적 오류’ 메시지가 뜨기 시작합니다. 다섯 개의 변전소로 나누어 들어가던 전기가 57번가의 MH-10 변전소로 몰리기 시작하고, 단 하나의 작은 수도꼭지로 어마어마한 저수지의 물이 흘러나오려는 상황이 되죠. 앨곤퀸에서 사건을 해결할 새도 없이, 압력을 견디지 못한 변전소는 폭발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맙니다. ‘시계공’ 리처드 로건을 쫓던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즉시 사건에 투입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유래없는 대량의 사상자를 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 미지의 살인자와 맞서게 됩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제프리 디버는 범인에게 무기로 전기를 쥐어주었습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각 권마다 범인들의 독특한 개성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이번 편은 범인이 무자비한 학살의 도구로 전기를 사용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이 학살 도구는 칼이나 총과는 달리 원거리에서 무차별 대량 학살이 가능하며, 문명화된 현대 사회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고, 폭탄과 달리 탐지하기도 쉽지 않지요. 게다가 무형의 도구이기 때문에 칼이나 총처럼 현장에 흉기로 특정지을 수 있는 증거나 미량 증거물 역시 남기지 않습니다. 십수년을 함께 온갖 살인 사건에 맞서 온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 역시 전기라는 새로운 개념의 살인 도구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어떠세요, 제프리 디버가 참으로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도구를 골랐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사실, 제프리 디버는 이미 링컨 라임 시리즈 여섯번째 권인 12번째 카드에서 전기를 무기로 이용한 적이 있습니다. 범인이 전기로 아지트에 경찰을 잡기 위한 덫을 놓아둔 장면이었지요. 아마 제프리 디버는 그 때부터 전기를 이용한 살인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이유처럼 전기는 범인에게는 참으로 유리한 살해 도구이며, 링컨 라임의 팀에게는 새롭게 맞이하는 또 다른 고난이 될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제프리 디버에게 이번 책이 그의 회심의 한 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브로큰 윈도를 보며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가장 높은 텐션을 이끌어낼 만한 범인은 정신적 기만과 물리적 위협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브로큰 윈도의 범인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라임의 팀을 제압하긴 했지만 사실 라임과 손에 땀을 쥐는 두뇌 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아멜리아조차 제압할 신체적 기술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죠. 그게 브로큰 윈도 전체를 통틀어 서사에 텐션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모든 범인이 천편일률적으로 총과 칼, 혹은 폭탄만을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독자에게 적절한 소재로 기술의 발전 - 15년간 이어져오는 이 시리즈에서, 무려 JPG가 뭔지 설명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D - 을 보여줘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 이번 작품에서, 디버가 상기의 목적들을 꽤 훌륭히 만족시켰다고 생각해요. 버닝 와이어의 범인은 정신적 기만과 물리적 위협을 모두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기라는 아주 독특한 살인 도구를 이용하죠. 물리적 위협을 줄 수 있는 독특한 도구,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술의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 전기만큼 좋은 소재가 있을까요.
또한 링컨 라임 시리즈의 팬으로서, 한가지 더 제가 이번 시리즈에서 반가웠던 것은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름의 변화를 만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위기를, 어떤 사람은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며, 어떤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여태껏 독자들이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요. 오랜 세월간 계속되는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캐릭터이고, 캐릭터가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정체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버닝 와이어에서 보여준 스테디 멤버들의 새로운 모습은 독자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 책을 읽으며 몇몇 부분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드디어!”라고 외치실 분들이 계실겁니다 :)
시리즈의 전작인 브로큰 윈도가 다소 아쉬웠던 사람으로서, 이번 책은 오랜만에 링컨 라임 시리즈의 초기작을 읽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은 어떻게 해결될지, 라임을 비롯한 멤버들이 본인 앞에 닥친 새로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손에 땀을 쥐고서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최근작이 다소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는 평가에 마음 아프셨던 링컨 라임의 팬이시라면, 망설이지 말고 집어드시기 바랍니다. 만족스러운 한 권이 되시리라 보장합니다. 추천해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